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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9화 (9/200)
  • < 해피머니 >

    끼이이익!

    기름칠 되지 않아 쇠 긁히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소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문으로 모였다.

    말 그대로 딱 사무실이었다. 자리에 앉아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인상이 상당히 좋았다.

    모르고 왔다면 사채업자들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가 일어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표정이 어찌나 좋은지 누구라도 그걸 보면 긴장이 풀릴 것이다.

    물론 강하진은 그 ‘누구라도’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

    강하진의 말에 응대하던 직원은 대번에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더욱 환하게 웃으며 안쪽으로 양 손을 뻗으며 강하진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좀 웃기는 어휘선택이긴 했지만 강하진은 신경 쓰지 않고 사내를 따라서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마석을 판별하는 장치가 있었다. 각성자들이 가진 스킬을 이용해 가짜 마석을 팔기도하기에 큰 돈 들여서 마련한 장비였다.

    그리고 그 장비는 돈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마석 거래 하러 오신 거죠? 여기 놓으시면 됩니다. 양이 많으면 이쪽에 쏟으시고요.”

    사내가 장비 한쪽에 붙은 서랍을 열며 말했다. 보아하니 강하진이 가져온 500여 개의 마석을 전부 담아도 될 정도로 큰 서랍이었다.

    강하진은 들고 온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마석이 든 자루를 꺼냈다.

    “어쩐지 가방이 너무 크다 싶더니 굉장히 많이 가져오셨군요.”

    사내가 반색하며 들뜬 기색을 보였다.

    강하진은 말없이 자루를 들고 가 열린 서랍에 마석을 쏟았다.

    촤르르륵!

    마석이 다 들어가자 사내가 얼른 서랍을 닫았다. 이런 대박 손님은 아주 드물다.

    “자, 판별 시작하겠습니다.”

    사내가 장비를 작동했다. 그러자 안에서 마석이 하나씩 나와 장비 아래쪽에 놓인 통으로 툭툭 들어갔다.

    그 때마다 장비에는 마석의 진위가 표시되었다.

    500개가 넘는데도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상당히 비싼 장비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조금 더 있으면 쓸모없는 장비가 되겠지만.’

    마석에 대한 비밀이 밝혀질 때마다 저 장비도 계속 업그레이드가 된다.

    아마 다음 버전 마석 판독기는 가격이 훨씬 비쌀 것이다. 마력 응집도를 표시해 주는 기능이 붙어 있어야 하니까.

    “전부 진짜로군요. 우리 해피머니를 찾아오신 걸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사실 이 정도 양의 마석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곳도 흔치 않으니까요. 하하하.”

    사내는 너스레를 떨며 마석을 일일이 확인했다. 크기를 보는 것이다.

    “전부 같은 급이네요. 이 정도 크기면 국가 공인 기준을 적용했을 때······ 2단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치겠네요. 아마 다른 데 가져가셨으면 1단계로 욱여넣었을 겁니다. 여기 오시길 정말 잘 하신 거예요.”

    사실 이 정도 크기면 2단계를 좀 넘어서는 크기였지만, 어차피 가격은 단계만으로 정해지기에 별 말 하지 않았다.

    “우리한테 처음 거래하시는 분 같은데, 가격은 알아보고 오셨죠?”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천.”

    2단계를 정식으로 각성자 관리청을 통해 판매하면 고작 300만 원밖에 못 받는다. 1단계는 더 심하다. 50만원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사채업자를 이용하면 몇 배로 뻥튀기된다. 1단계를 2백만 원에 구입하고 3단계가 되면 무려 3천만 원이나 한다.

    “그동안 어디서 거래하셨어요? 앞으로도 계속 우리한테 오시면 내가 진짜 잘해드리죠.”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방 한쪽에 놓인 커다란 금고로 걸어갔다.

    “총 514개였습니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기분 좋게 52억에 맞춰드리죠. 대신 다음에도 꼭 우리한테 오셔야합니다?”

    강하진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도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니었는지 신경 쓰지 않고 금고를 열었다.

    “일단 그 가방에는 현금을 채우는 게 낫겠죠?”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금고에서 5만 원짜리 묶음을 턱턱 꺼내서 옆 테이블에 쌓기 시작했다.

    200장짜리 묶음, 즉 하나에 천만 원이었다.

    강하진이 들고 온 가방이 제법 컸기에 생각보다 많은 액수를 담을 수 있었다.

    가방에 들어가지 않은 남은 액수는 백만 원짜리 수표로 계산해서 건넸다.

    사내는 계산을 마친 다음, 다시 강하진을 밖으로 안내했다. 강하진은 사내를 따라 나간 다음 찌그러진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끼이이익!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렸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강하진이 밖으로 나가자 사내가 음흉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돈이 생각보다 무거운데 잘 들고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사내가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 * *

    강하진은 현금이 잔뜩 든 가방을 들고 해피머니 빌딩에서 나왔다.

    ‘이러니 다들 각성자가 되고 싶어서 난리지.’

    그리고 이러니 암시장이 성장하는 거 아니겠는가.

    사실 오늘 가져온 마석을 각성자 관리청에 정상적으로 판매했다면 강하진 손에 들어온 돈은 고작해야 10억도 되지 않을 것이다.

    500개 넘는 2단계 마석을 판매해 봐야 15억이고 거기에서 세금이 또 엄청나게 까진다.

    그뿐 아니라 관리청에서 떼 가는 판매 수수료까지 있으니 실질적으로 각성자 손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실 괴물 모기 던전은 보통의 던전과는 많이 달랐다. 일반적인 던전은 그렇게 많은 괴물이 있지도 않고, 마석 드롭율도 그보다 더 낮으니까.

    등급 낮은 던전을 통해 이런 큰돈을 얻을 기회는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각성자들도 레벨이 어느 정도 오르고 손발이 맞는 동료를 찾아 안정되면 보통은 3단계 이상의 괴물이 나오는 던전을 찾는다.

    3단계 마석은 하나에 3천만 원이나 한다. 정식으로 판매해도 천만 원이다.

    4단계는 그보다 훨씬 더 비싸다. 5단계는 말할 것도 없고, 6단계부터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비록 함께 사냥한 파티원들과 이익을 나눠야 하지만, 그럼에도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났다. 사냥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마석뿐만이 아니라 괴물의 부산물도 있으니까.

    가끔은 괴물 부산물이 마석보다 훨씬 더 돈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제 돈을 벌었으니 이걸 뻥튀기하는 일만 남았군.’

    강하진은 각성자가 된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공부를 많이 했다.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건 아니었지만, 높은 정신력 덕분인지 제법 많은 것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이 돈으로 제일 먼저 뭘 할지 고민하며 걷던 강하진은 이질적인 기척을 느꼈다.

    ‘드디어 왔군.’

    애초에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니, 강하진은 처음부터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해피머니를 방문했다.

    이질적인 기척의 수는 넷이었다.

    강하진은 여기 오기 전에 미리 봐뒀던 장소로 꾸준히 걸어갔다.

    이질적인 기척이 조금씩 다가왔다.

    따라오는 자들은 각성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간단히 상대할 수 있는 자들도 아니었다.

    그들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갖추고 있는 장비가 문제였다.

    강하진의 걸음은 아주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워낙 미세했기에 쫓아가는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빨라져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겠지만, 강하진은 그때부터 딱 적당한 속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뒤쫓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서둘러 달려갔다. 골목이 쭉 이어져 있었는데, 저 멀리 뛰어가는 강하진이 보였다.

    “쫓아!”

    그제야 다들 정신이 번쩍 들어 황급히 강하진을 쫓아갔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니 조금씩 거리가 좁혀졌다.

    하지만 사실 그들을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여긴 좀 길긴 해도 막다른 골목이었으니까.

    골목 끝에 적당한 넓이의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터 끝에 강하진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후욱. 후욱. 아, 새끼 더럽게 빠르네.”

    사내 한 명이 골목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나머지 셋이 천천히 강하진에게 다가갔다.

    “어이, 형씨. 우리가 지금 뭐 빠지게 뛰어서 기분이 더럽거든? 그러니까 좀 편하게 갑시다. 그 가방, 넘겨줘야겠어.”

    강하진은 조금도 위축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사내들을 한 차례 슥 훑어봤다.

    “이 동네 경찰들은 일을 잘 못하는 모양이군. 아니면 안 하거나.”

    “경찰? 그놈들 뜨면 너도 곤란한 거 아니었어?”

    사내가 손가락으로 강하진이 들고 있는 가방을 가리켰다.

    “그거 합법적인 돈 아니잖아. 그렇지?”

    사내는 강하진이 그 말에도 별 반응이 없자,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초짜 각성자인데······ 그 많은 마석을 어디서 구했을까? 응?”

    강하진이 마석을 어딘가에서 훔쳤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500개가 넘는 마석을 그것도 전부 같은 등급의 마석을 갖다 팔았으니 당연한 의심이었다.

    “각성자들이 넘쳐나는 길드에서 빼돌렸을 리는 없고······ 기업 쪽이지? 그쪽에서 과연 이 사실을 알면 널 가만히 둘까?”

    “그럼 그렇게 하든가.”

    사내가 피식 웃었다.

    “하, 꼴에 또 각성자라 이거야? 어디 보자······.”

    사내가 주위를 세심히 둘러봤다. 인적이라고는 아예 없는 곳이었다. 근처에 있는 집들도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모를 정도로 낡고 허름했다.

    “일단 잡고 시작하자. 좀 시끄러워도 괜찮을 거 같으니까.”

    사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품에서 무기를 꺼냈다. 셋은 칼을 꺼냈고, 한 명은 석궁을 꺼냈다. 당연히 전부 마력이 깃든 물건이었다.

    그걸 본 강하진이 눈을 빛냈다.

    “역시 제대로 찾아왔군.”

    던전과 마력, 마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고 성과도 상당했지만, 그건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 혹은 정부와 연결된 연구소나 기관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장비는 저렇게 조잡하지 않다. 훨씬 세련된 디자인과 제작방식을 사용한다.

    만일 개인이 혼자서 저것들을 만든 거라면 정말 훌륭한 실력이다.

    솔직히 말해서 강하진이 보기에 저 물건들은 좀 볼품없고 투박하긴 해도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에서 지금 만들어내는 수준의 장비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니, 사실 저 장비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일은 돈도 벌고 그 사람도 찾기 위해 벌였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끝내고 가서 밥이나 먹자!”

    사내 한 명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상대가 각성자이니 각별히 주의해야 하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슉!

    뒤에 서 있던 사내가 타이밍에 맞춰 석궁을 쐈다. 보아하니 각성자를 상대로 이 짓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퍽!

    강하진의 뒤쪽에 있던 벽에 볼트가 박혔다. 강하진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것이다.

    네 사람 모두 강하진을 놓쳤다. 다들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뻐억!

    소리가 난 쪽으로 사내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석궁을 쥐고 있던 사내가 나무토막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그의 손에 있던 석궁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빠악!

    또 한 차례 소리가 났고, 사내 한 명이 쓰러졌다. 그가 들고 있던 칼도 당연히 사라졌다.

    남은 두 사람의 눈에 긴장감과 두려움이 얽혔다.

    그리고 두 번의 소리가 거의 동시에 났다.

    빠악! 빠악!

    쓰러진 네 사람 사이에 강하진이 서 있었다. 가방과 장비들을 손에 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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