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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7화 (7/200)
  • < 암시장과 특별한 마석 2 >

    “솔직히 이건 품질이 더 떨어져서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보여 달라고 하니까 보여주는 거예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까지 주절거리는 걸 보니 장사꾼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하진은 김지혜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고서야 그녀가 왜 저런 말을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멋쩍고 쑥스러워서 그런 거다. 한 마디로 부끄럽다는 뜻이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김지혜는 테이블 위에 자잘한 마석들을 좌르륵 쏟았다. 마석이 구슬처럼 둥글둥글하지 않기에 테이블 아래로 떨어지는 건 없었다.

    “전부 64개에요.”

    김지혜의 말에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석들을 하나하나 분류했다.

    “설마 이것도 개당 100만 원에 팔 겁니까?”

    강하진의 물음에 김지혜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그냥······ 다해서 300만 원만 줘요.”

    강하진은 품에서 100만 원짜리 묶음 세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턱턱턱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머니에 마석을 싹 쓸어 넣었다.

    그걸 본 김지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정말 그걸 다 사갈 줄은 몰랐다.

    그녀는 레벨이 높은 만큼 던전과 각성자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다.

    저런 자잘한 마석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었다.

    작은 마석은 대부분 연구용으로 쓰이는데, 지금 판 마석들은 연구용으로 쓰기에도 너무 작았다.

    한 마디로 마석이라고 이름만 붙은 돌멩이일 뿐이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그리고 고작 300만 원에 불과하다고는 해도 그걸 다 사갈 줄은 몰랐다.

    그래서 좀 더 깎아줄 각오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팔아버리니 뭔가 좀 미안해졌다.

    강하진은 그런 김지혜를 가만히 쳐다봤다.

    ‘저런 사람이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거지? 아, 스킬이 문제인가?’

    레벨만 높다고 끝이 아니다. 사실 레벨보다는 스킬이 훨씬 중요했다.

    마력과 정신력이 높은 걸 보면 마법 계열의 스킬을 많이 익혔을 것이다.

    능력치 분배는 스킬에 따라 자동으로 이뤄지니까.

    ‘그리고 이런 자잘한 마석을 여기서 팔고 있다는 건, 어쩌면 이런 것밖에 못 구한다는 뜻일지도 모르지.’

    강하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김지혜를 쳐다봤다. 새삼 엿보기 스킬의 숙련도가 아쉬웠다.

    ‘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서둘러선 안 된다. 강하진의 적은 크고 강력하니까.

    “이런 마석을 자주 구하러 다닙니까?”

    강하진의 물음에 김지혜가 어색하게 웃었다.

    “뭐······ 그런 편이죠. 이런 걸 잘 구하는 동생들도 좀 있고요.”

    “그럼 앞으로도 좀 부탁하겠습니다.”

    김지혜가 눈을 크게 뜨고 강하진을 바라봤다. 설마 이런 제안을 받을 줄은 몰랐다.

    “어······ 그렇게 할게요. 어차피 버리지 못해서 갖고 있던······ 아니, 그건 아니고요. 아무튼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다음에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돌아가면서 자리를 지키거든요.”

    강하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하죠.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그 말을 남긴 강하진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김지혜는 그런 강하진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바라봤다.

    * * *

    암시장에서 나온 강하진은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얻었다. 다이노의 근육을 상당히 많이 확보했고, 마석 부스러기도 잔뜩 구했다.

    더구나 그 마석 부스러기 중에서 공간의 마석도 제법 많았다.

    역시 부스러기에 공간의 힘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부스러기 마석은 괴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서 사실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미래의 일이다. 지금은 아마 부스러기 마석이 나오는 광산 형 던전이 제법 많을 테니까.

    ‘마석 광산도 좀 확보할까?’

    생각해보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강하진은 일단 방바닥에 다이노의 근육을 쫙 깔았다.

    그리고 미리 사다놓은 아르곤 가스를 준비했다.

    다이노는 공룡 형태의 괴물이었다. 사냥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약점이 너무나 뚜렷했으니까.

    근육이 없는 부위를 노리면 금방 잡을 수 있었다. 대신 탄탄한 근육이 덮여 있는 쪽은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한다.

    당연히 근육에 뭔가 비밀이 있다고 여기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전부 실패했다. 아무리 해도 죽은 다이노의 근육은 비계보다 못했으니까.

    다이노의 근육을 강철처럼 만드는 비법은 아르곤 가스에 있었다. 더 정확히는 마력에 물든 아르곤이었다.

    다이노들이 서식하는 던전의 환경은 마력에 물든 아르곤이 풍부했다.

    그것이 다이노의 호흡을 통해 피에 섞여 근육을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강하진은 아르곤 가스를 구입한 다음, 거기에 꾸준히 마력을 퍼부었다. 그냥 단순히 마력에 노출시키는 것만으로는 마력에 물든 아르곤을 만들 수 없고, 특별한 방법을 써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강하진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웬만한 전문가 뺨 칠 정도의 지식이 있었다.

    버퍼이자 힐러로 살아가며 더욱 발전하기 위해 마력에 대한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해야만 했다.

    그저 수련만을 통해 강해지는 건 딜러나 탱커뿐이었다. 버퍼나 힐러에게는 상당한 공부와 연구가 필수였다.

    그 덕을 회귀한 지금 보고 있었다.

    다이노의 근육이 뛰어난 재료인 이유는 마력에 물든 아르곤만 있으면 너무나도 가공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강하진은 다이노의 근육을 이용해 방어구를 비롯해 다양한 장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던전 공략을 위한 준비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 * *

    강하진의 던전 공략은 시작부터 약간 삐걱거렸다.

    목표로 했던 던전들을 하나씩 찾아다녔는데, 대부분이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이다.

    워낙 오래 전 일인지라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도 어떤 던전이 중요한지, 어떤 것이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는지, 또 그래서 어떤 던전이 나중에 위험을 초래하는지는 많이 기억났다.

    강하진은 혹시 더 잊을까봐 그런 정보들을 따로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해 두었다.

    가끔 놀랄 정도로 세세한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 갈 던전이 바로 그 세세한 기억의 던전 중 하나였다.

    이 던전은 나중에 큰 문제로 발전하는 던전이었다.

    워낙 발견되기 어려운 장소에 있어서 오랫동안 방치되었고, 결국 터져 버렸다.

    던전의 난이도는 높지 않았다. 한데 그건 던전에 괴물들이 갇혀 있을 때나 그렇고, 던전이 터져서 그 괴물들이 밖으로 나오게 되자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그 던전에는 거대한 모기 괴물들이 서식했는데, 이놈들이 던전을 꽉 채우고 있다가 사방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수십만 마리나 되는 모기 괴물이 주변을 초토화 시켰는데, 그때 죽은 사람의 수가 수십만 명에 달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던전에서 나온 모기 괴물이 번식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었다.

    던전 내의 환경이 그놈들의 번식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강하진은 버스를 타고 충청도로 갔다.

    충청도에 도착해서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강하진의 목표는 그 산 사이에 있는 작은 강이었다.

    어느 정도 깊이도 있고, 주변에는 인가도 없고 방문하는 사람도 없는 장소였는데, 던전은 놀랍게도 강바닥에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던전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강하진이 굳이 이 던전으로 첫 번째 목표를 잡은 이유는 나중에 터질 사고 하나를 막아내는 것도 있지만, 쉽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던전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터진 던전이기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나중에 여러 방법으로 분석이 많이 된 던전이었다.

    강하진은 어느새 폭이 5미터쯤 되는 강에 도착했다. 주변이 온통 산이고 발을 제대로 디딜 만한 강변도 없는 곳이었다.

    이쯤에 던전이 있다는 건 알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기에 이제부터 찾아봐야 한다.

    “이러니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됐지.”

    사실 강바닥에 던전이 생기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식이라면 바닷속에도 무수한 던전이 생겨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바다에 나타난 던전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강하진은 장비를 착용하고 강에 들어갔다.

    던전을 발견하면 바로 들어갈 생각이었기에 일단 방어구만 착용했다.

    들어가자마자 괴물 모기의 공격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괴물 모기를 상대할 무기는 아공간에 담아뒀다.

    지난 번 암시장에서 구입한 공간의 마석들을 이용해 몸 곳곳에 아공간을 붙였다.

    마석이 크지 않아서 아공간도 작았지만, 장비 한두 개 넣는 정도로 쓰기엔 충분했다.

    강바닥에 도착한 강하진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호흡은 마력을 이용해서 해결했다. 마력으로 공기의 통로를 만들어 호흡기와 직접 연결해 버린 것이다.

    현재의 각성자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기법이었다.

    호흡에 제한이 없으니 수색도 빨랐다. 강하진은 강바닥에 눕듯이 붙어 있는 회색 포탈을 발견했다.

    색도 이 모양이니 더더욱 발견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강하진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던전 안으로 쑥 들어갔다.

    * * *

    던전의 분위기는 어둡고 음침했다. 하지만 동굴 속이거나 건물 속은 아니었다. 활짝 열린 던전이었다.

    축축한 늪지대가 쫙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거대한 모기들이 보였다.

    강하진은 일단 던전의 규모부터 파악했다.

    늪지대가 굉장히 광활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과 진짜 규모는 많이 달랐다.

    던전은 경계가 명확히 정해져 있고, 거길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모기들의 위치를 보니까 저기가 끝이로군.’

    경계를 넘지 못하는 건 각성자나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괴물 모기들은 경계를 넘어가지 못하고 근처를 맴돌거나 튕겨 나왔다.

    “징글징글하게 많구나.”

    괴물 모기가 곳곳에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회귀 전에 던전이 터졌을 때보다는 훨씬 덜했다.

    아마 그때는 이 던전에 괴물 모기가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수십만 마리나 되는 괴물 모기가 나타날 수 있었을 테니까.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만 마리쯤 되는 듯했다.

    그래도 만 마리의 모기를 혼자 독식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강하진은 일단 괴물 모기의 정보부터 확인했다.

    [거대 모기]

    [생명력 : 1750, 마력 : 32]

    일단 확인이 가능한 정보는 딱 여기까지였다. 아마 나중에는 좀 더 자세한 능력치나 스킬까지 알아볼 수 있게 되리라.

    아니면 약점이나.

    강하진은 슬슬 사냥을 시작하기로 했다. 팔뚝에 붙인 아공간에서 주먹만 한 덩어리를 여러 개 꺼냈다.

    마치 진흙을 뭉쳐서 만든 듯한 덩어리였는데,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그걸 손에 쥔 강하진은 손바닥을 통해 은은히 전해지는 열기에 씨익 웃었다.

    이것이 오늘 이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강하진이 준비한 핵심 무기였다.

    강하진은 몸 곳곳에 붙인 아공간에 이걸 잔뜩 넣어서 가져왔다.

    이걸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가 바로 부스러기 마석이었다.

    가장 작은 걸로 이거 하나를 만들 수 있었고, 크기에 따라 어떤 건 세 개 이상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강하진은 손에 든 덩어리 하나를 위로 던졌다 받으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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