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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6화 (6/200)
  • < 암시장과 특별한 마석 1 >

    안으로 들어가니 길게 이어진 동굴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따라가면 다시 밖으로 나가게 된다.

    중간에 착시를 이용한 갈림길이 있는데, 거기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갈림길은 하나가 아니라 그 뒤로도 무려 세 번이나 더 통과해야 한다.

    착시를 이용한 것도 있고, 각성자의 스킬을 이용한 것도 있고, 그 둘을 동시에 이용한 것도 있었다.

    길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암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증표였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개 던전 내부에 이렇게 버젓이 암시장을 만들어 놓았으리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대단한 놈들이야.’

    이건 그저 대담성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암시장의 수뇌부가 국가기관과 로비를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하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능숙하게 길을 찾아갔다.

    어느새 공간이 확 펼쳐졌다. 암시장에 도착한 것이다.

    말 그대로 진짜 시장이었다. 천막을 치고 그 안에 테이블을 펼쳐놓고 물건을 전시했다.

    제대로 된 건물은 없었다. 혹시라도 정부에서 강도 높은 단속을 시작하면 바로 치울 수 있어야 하니까.

    아무리 로비를 한다고 해도 세상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암시장이 열리고, 사람들이 암시장을 찾는 이유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괴물을 처리하거나 던전을 정복하면서 구하게 되는 물건의 상당수는 무조건 각성자 관리청에 팔아야 한다.

    시세도 딱 정해져 있었다.

    꾸준한 연구를 통해 중요하다고 확인된 괴물의 부산물이나 괴물의 몸속에서 나온 마석은 국가에서 관리했다.

    그리고 그렇게 국가에서 사들인 마석과 물건은 결코 일반적인 방법으로 구할 수 없었다.

    대부분 그걸 연구하는 대기업의 연구소나 거대 길드 쪽으로 흘러갔고, 당연히 그걸 구하려면 그들을 통해야만 했다.

    그러니 암시장이 이렇게 활성화된 것 아니겠는가.

    강하진은 안쪽으로 걸어갔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저들이 전부 각성자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연구소나 기업 쪽에서 나온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다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듯했다.

    강하진은 쭉 늘어선 천막 안쪽에 마련된 진열 테이블을 건성건성 둘러보며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다.

    암시장의 규모가 워낙 컸기에 여길 그저 돌아보는 것만 해도 시간이 제법 걸린다.

    대충 보기만 해도 뭘 팔고 있는지, 품질은 어떤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강하진의 눈에는 마력이 가득 모여 있었다. 지금 엿보기를 쓰는 중이었다.

    엿보기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하지만 아직 숙련도가 낮아서 그런지 지금 알 수 있는 건 고작 이름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쓰다보면 나중에는 이름뿐 아니라 시스템에 등록된 정보를 더욱 자세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강하진이 여기 찾아온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엿보기 스킬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어디까지 정보 열람이 가능한지, 또 하루에 몇 번이나 쓸 수 있는지, 숙련도를 얼마나 더 올려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두 번째는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장비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던전은 장난이 아니다. 강하진이 아무리 뛰어난 스킬을 얻고 10년이 넘는 던전 경험, 전투 경험이 있다고 해도, 맨몸으로 무작정 들어가서 정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쓸 만한 장비를 구해야 한다.

    ‘돈이 좀 빠듯하긴 하겠지만, 어차피 완제품이 아니라 재료를 사서 만들 거니까.’

    완제품은 말도 못하게 비싸겠지만, 재료만 사는 건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구하고자 하는 재료 자체가 아직까지는 별로 쓸모가 없다고 알려지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함께 던전에 갈 동료로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던전은 상당히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혼자서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나중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 큰 던전, 더 복잡한 던전, 그러니까 더 좋은 보상이 나올 만한 던전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네 명 이상의 동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나 쉽게 믿을 수는 없으니까.’

    그게 문제였다. 강하진이 원하는 동료는 말 잘 듣고, 절대 뒤통수 때릴 염려가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여기서 동료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표 리스트에 추가한 것뿐이었다.

    제대로 물건을 보려면 사실 천막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강하진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도 천막 안쪽을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곁눈질만 하면서 걸어갔다.

    그렇게 중간쯤 갔을 때, 강하진이 걸음을 멈췄다.

    드디어 찾던 물건 중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강하진은 오른쪽에 있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각종 괴물의 부산물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한쪽에 튼튼한 철궤가 놓여 있었다.

    납이 잔뜩 섞여 있었는데, 사실 그런 걸로 마력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시스템은 마력보다 상위 차원의 힘을 이용한다.

    강하진의 엿보기 스킬이 궤짝을 꿰뚫어봤다.

    ‘마석이로군.’

    철궤 안에는 마석이 들어 있었다. 모두 일곱 개였는데, 생각보다 등급과 순도가 높은 것들이었다.

    보통 이런 암시장에 흘러나오는 마석은 질이 떨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강하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천막의 주인을 쳐다봤다.

    젊은 사내였는데, 테이블 옆에 놓인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강하진이 천막 안으로 들어섰는데도 사내는 일어날 생각도 않고 말했다.

    “가격 흥정은 할 생각 없으니 미리 알고 있으쇼.”

    강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이 적당한 가격이라면 굳이 흥정할 생각은 없었다.

    “이거 얼마입니까?”

    강하진은 테이블 위에 놓인 거무튀튀한 철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300.”

    300원일 리 없으니 300만원이라는 뜻이리라. 강하진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러자 천막 주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흥정도 안 하고 그냥 가는 거요?”

    흥정은 안 한다고 못 박았으면서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신뢰가 더 안 갔다. 물론 암시장의 상인들에게 신뢰나 상도덕을 바라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강하진이 대꾸도 하지 않고 나가려 하자,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급히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미안하다니까? 자자,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오셔서 물건이나 좀 구경해 봐. 물건은 정말 끝내준다니까? 내 딱 150만 받을 테니까.”

    강하진이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사내는 150만 원에 물건을 처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눈을 빛냈다.

    “25.”

    “뭐?”

    사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지금 장난 해? 이게 원래 얼마짜리인 줄은 알아?”

    “그걸 내가 알아야 하나?”

    그 말에 사내가 멍하니 강하진을 바라봤다. 강하진은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건 딱 하나지. 그 가격에 안 팔면 앞으로도 그걸 살 사람은 없다는 거. 설마 이게 다이노의 근육이라는 거, 내가 모를 거라고 여긴 건가?”

    사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불량한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젠장, 초짜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알았으니까 스물다섯 개 놓고 가져가쇼.”

    강하진은 현금 25만 원을 테이블에 툭 던져놓고 거대한 철판처럼 생긴 다이노의 근육을 둘둘 말아 챙겼다.

    “다른 건 필요한 거 없소? 여기 없는 거라도 조건만 맞으면 구해다 줄 수 있는데.”

    강하진은 그 말에 사내를 빤히 쳐다봤다. 그냥 보기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엿보기 스킬로 사내의 정보를 확인 중이었다.

    왠지 각성자인 것 같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의 정보가 쫙 떠올랐다.

    [이름 : 주명환]

    [레벨 : 36]

    [힘 : 33, 민첩 : 17, 체력 : 25 , 정신력 : 11, 마력 : 27]

    정보는 딱 거기까지만 보였다. 스킬이나 칭호, 그리고 상태도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고작 이 정도가 한계였다.

    어쨌든 주명환이라는 암상인은 각성자였다. 레벨이 36이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각성한 지 몇 달 안 됐을 것이다.

    강하진은 자신이 왜 저 주명환이라는 사람이 각성자일 거라고 생각했을지 고민하며 돌아섰다. 그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의 영역이었다.

    ‘아마 이걸 알아내면 엿보기 스킬 숙련도가 좀 오르겠지.’

    숙련도는 많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했다. 또한 그 스킬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도 중요했다.

    시스템은 게임과 비슷하지만, 흔한 게임처럼 단순하지는 않았다.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고, 그만큼 복잡했다.

    강하진은 둘둘 말아서 묶은 다이노의 근육을 한 손에 들고 암시장 안쪽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이 다이노의 근육은 지금이야 이렇게 헐값에 구매할 수 있지만 3년만 지나도 25만원이 아니라 2500만원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지금 가격이 낮게 평가되는 이유는 아직 쓰는 법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노가 출몰하는 던전이 점점 줄어들지. 그럼 미리 선점이라도 해놔야 하나?’

    강하진은 어느 정도 걷다가 천막에 들어가 물건을 사는 행위를 반복했다.

    ‘아공간이 없으니까 정말 불편하군.’

    강하진은 우선 아공간부터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아직 아공간을 얻은 각성자는 없을 것이다.

    아공간을 만든 사람이 바로 강하진이었으니까.

    던전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3년쯤 지났을 때 만들어냈다.

    사실 강하진이 한 건 별 거 없었다. 재료가 특별했을 뿐이었다.

    아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한 성질을 가진 마석이 필요했다.

    마석만 있으면 아공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마력이 담긴 피로 각인만 하면 되니까.

    강하진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진짜······ 호구새끼였지.”

    그때 강하진은 세상을 위해 아공간 제작법을 공개해버렸다.

    그리고 정작 그걸로 돈을 번 건 아예 다른 놈들이었다. 공간의 마석을 독점하다시피 해서 아공간 장비를 팔아먹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훨씬 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공간의 마석이 언제쯤 등장하더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암시장의 끝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지막 천막을 확인한 강하진의 눈이 커다래졌다.

    절대 아직 나타날 리 없다고 믿었던 공간의 마석 다섯 개가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으니까.

    [마석(공간)]

    설명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그리고 이렇게 간단히 공간의 마석을 알아볼 수 있다는 건 더 놀라웠고.

    강하진은 홀린 듯 천막으로 들어가 마석이 놓인 테이블 앞에 섰다.

    “마석 사려고요?”

    마석에 정신이 팔려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 천막의 주인은 특이하게도 젊은 여자였다.

    강하진은 반사적으로 엿보기 스킬을 썼다.

    [이름 : 김지혜]

    [레벨 : 129]

    [힘 : 32, 민첩 : 45, 체력 : 38, 정신력 : 84, 마력 : 216]

    깜짝 놀랄 정도의 레벨이었다. 아마 이 정도 수준의 레벨이라면 현재의 한국 각성자들 중에서는 못해도 50위권은 될 것이다.

    저런 여자가 왜 여기서 마석이나 팔고 있단 말인가.

    “크기가 작긴 하지만 그래도 마석은 마석이에요. 연구용으로는 아주 쓸 만할 걸요?”

    “그래서 얼마입니까?”

    강하진이 다시 시선을 마석으로 돌리며 물었다.

    “개당 100이요. 깎을 생각은 마세요. 그것도 싸게 파는 거니까.”

    만일 나중에 공간의 마석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확립되었다면 1억을 줘도 못 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저 마석은 어딘가 흠이 있는 콩알만 한 마석일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마석인데 300 정도는 부를 줄 알았는데 고작 100을 부르는 걸 보면 저 여자는 장사에 굉장히 소질이 없는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말없이 100만 원짜리 뭉치 다섯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턱턱 올렸다.

    그리고 다섯 개의 마석을 싹 쓸어 담았다.

    여자, 김지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살 거면 산 다고 말이나 하고 가져가야죠.”

    “살 겁니다. 액수 확인해 보실 겁니까?”

    김지혜가 피식 웃고는 돈을 챙겼다.

    “됐어요. 딱 보니까 정확하네요. 내가 이래 보여도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거든요?”

    그 말에 강하진이 피식 웃었다. 저런 말 하는 사람치고 경험 많은 사람을 못 봤다.

    “그보다 마석은 이게 전부입니까?”

    “아뇨. 더 있어요. 왜요? 더 보여드려요?”

    “그럼 감사하죠.”

    김지혜가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천막 구석에 있는 궤짝을 열었다.

    “기다려요!”

    그녀는 궤짝 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 마석이 가득했다.

    그걸 본 강하진의 눈이 한 차례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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