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성자 등록 >
“결과 나왔다고 합니다.”
관리청 직원이 전화기를 확인하더니 강하진에게 말했다.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지난 뒤였다.
워낙 시간이 길었기에 직원과 아예 대화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어차피 강하진이 다 알고 있는 정보를 선심 쓰듯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자신과 엮인 길드와 대기업들에 대한 비틀린 정보를 슬쩍슬쩍 섞어 넣었다.
아마 저 직원과 오랫동안 대화한 사람들은 대부분 몇몇 기업에 대해 불신의 씨앗이 남게 될 것이다. 몇몇 기업에 대해서는 호감이 남고.
강하진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어딘가로 향했다. 물론 거기가 어딘지는 강하진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그 여직원도 이런 걸 했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아마 했을 것이다. 각성자 관리청에서 초보 각성자와 관계된 모든 직원이 대기업이나 대형 길드와 선이 닿아 있으니까.
각성 정보는 상당히 중요하기에 철저한 보안 속에서 관리된다.
하지만 그건 세부적인 정보일 뿐이고, 잠재력이나 레벨 등의 정보는 관리청 직원이라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세부 정보는 관리가 아주 철저해서 관리청장의 허가와 인증서를 받은 사람 외에는 절대 볼 수 없었다. 설사 각성자 본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곳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관리청 최상층에 위치한 정보관리실이었다.
“자, 들어오시죠.”
직원은 능숙하게 강하진을 안내해 안으로 들어갔다.
“뭐, 대단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막 공개하기는 꺼림칙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식으로 직접 확인하실 수 있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정보관리실은 아주 좁았다. 방이 작아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걸로 꽉 채워져 있어서 사람이 서 있을 공간 자체가 별로 없었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작은 모니터 하나가 보였다.
모니터에 강하진의 정보가 표시되어 있었다.
[각성 등급 - C]
[주속성 - 빙결]
[부속성 - 치유]
[기술 계열 - 검]
[잠재력 등급 - D]
거기까지 확인한 강하진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보는 능력은폐 스킬을 이용해 테스트할 때 자신이 의도적으로 내보인 정보와 거의 비슷했다.
연습할 때는 사실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긴가민가했는데, 결과를 보니 조금 더 연습하면 아주 쓸 만한 스킬이 될 듯했다.
‘치유는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래도 보아하니 치유의 힘이 아주 미약하게 나온 모양이었다.
옆에 서 있던 직원이 부연설명을 해 주었다.
“치유 쪽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아마 신경 안 쓰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치유라는 글자만 색이 다르죠?”
“네. 그러네요. 그것만 파란색이네요.”
“관련 속성이 있긴 한데 너무 미약해서 애매한 경우에 저렇게 나옵니다. 노란색이었으면 가능성이 좀 있는데, 사실 파란색이면 그냥 없다고 보시는 편이 속 편하실 거예요.”
직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강하진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너한테 재능 없다고 말하는 건데 기분 좋게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강하진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쪽으로는 재능 있어도 키울 생각 없었습니다. 그거 하나만 있다면 모를까. 저도 다른 사람 치료나 해주고 그런 거 성격에 안 맞아서요.”
그제야 직원의 표정이 환해졌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여기, 이 빙결 속성이 또 아주 끝내주거든요.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속성이 아니니까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잠재력 등급이 좀 낮은 편이지만 기본 등급이 C니까 노력하시면 A급까지는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겁니다. 보통 기본 등급이 C까지 나오는 것도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그건 좀 다행이네요.”
강하진은 반쯤 사무적으로 대답한 다음 직원을 보며 물었다.
“이제 가도 됩니까?”
“아, 물론입니다. 등록증 바로 발급해 드릴 테니까 그거 갖고 가시면 됩니다.”
강하진은 모니터에 표시되지 않은 나머지 정보도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걸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내가 설정한 대로 잘 은폐됐는지 좀 궁금하긴 한데······.’
일단 지금은 방법이 없으니 나중에 다시 해보기로 했다. 그걸 확인하려면 관리청 서버를 뚫어야 한다.
강하진은 각성자 등록증을 받은 다음, 관리청에서 나왔다.
그리고 능력은폐를 사용했다. 이제 누가 봐도 강하진은 완벽한 일반인일 것이다. 능력만 통한다면 말이다.
차라리 이렇게 능력을 아예 감춰버리는 건 사용하기가 편했다.
강하진이 걸어가자,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와서 꽂혔다.
기업이나 길드에서 보낸 스카우터들이었다.
각성 확률이 낮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꾸준히 각성은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각성을 하면 무조건 각성자 관리청에 와서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러니 저렴한 조건에 각성자를 스카웃하기 가장 좋은 장소가 바로 여기였다.
문제는 각성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선별해 내는 것이었다. 스카우터들은 그걸 장비로 해결했다.
마력 감지장치였다. 물론 성능이 정교하지는 않다. 하지만 마력의 응집을 감지하는 정도는 충분했다.
그들은 강하진이 지나갈 때, 반사적으로 마력 감지장치를 사용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걸 쓰는 것이다.
아무 반응이 없자 그들은 기계적으로 다시 고개를 돌려 관리청 입구를 바라봤다.
강하진은 별다른 귀찮은 일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다. 조만간 강하진에 대한 신상정보가 거대길드나 대기업에 넘어갈 것이다. 그때 다시 한 번 스카웃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은 각성자의 능력에 관계없이 무조건 많은 수를 확보하는 시기였으니까.
* * *
강하진은 옥탑방의 문을 열었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집을 찾아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옥탑방 안으로 들어간 강하진은 잠시 안을 둘러봤다. 당시 여기서 살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정말 암울했다.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것도 병으로 고생하시다 가셨기에 집에 남은 돈도 없었다.
친척이 몇 명 있었지만 연락도 되지 않았다.
강하진은 혼자서 이를 악물고 살았다.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안식은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고작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그것도 오전에는 일하고 오후에 잠깐 가서 빠르게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제부터는 그조차 안 할 것이다. 회귀 전에 이미 거리가 멀어진 취미였으니까.
강하진은 차분히 방안을 뒤적였다. 워낙 오래 전이기에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좀 더 명확히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 뭘 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걸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집을 뒤지다보니 예상치 못했던 기억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자신의 머리가 이렇게 좋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정신력이 높아서 그런 건가?’
정신력이 높다고 머리가 그 수치에 걸맞게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상관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정신력도 뇌를 쓰는 힘 중 하나이긴 하니까.
강하진은 통장 몇 개를 찾아냈다. 그리고 집에 고이 모셔두었던 현금뭉치도 찾았다.
힘든 와중에도 꾸준히 돈을 모았고, 얼마 전에 복권에 당첨되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비록 3등에 불과했지만, 그 돈이 책상 서랍 속에 현금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통장을 확인하니 전부 합해서 2300만원이 있었다.
“제법 모았네.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강하진은 일단 은행에 가서 당분간 생활비로 쓸 돈 약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찾았다.
2천만원이 넘는 현금을 들고 그가 향한 곳은 한강변에 있는 던전이었다.
속칭 한강 던전이라 부르는 곳인데, 그곳은 공개 던전이었다.
굉장히 드문 일이지만, 던전을 완벽하게 정복했는데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다.
던전을 유지시켜주는 코어를 뽑아냈는데도 던전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기에 괴물이 나타나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다른 던전에 비해 환경이 인간에게 크게 적대적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던전에 출입제한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도 들락거릴 수 있었다.
그런 던전은 적당한 입장료를 받고 공개해서 돈을 버는 수단으로 쓰곤 했다.
그 중에서도 한강 던전은 좀 더 특별했다.
그곳은 각성자들을 위한 시설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각성자만을 위한 장비 상점도 있었고, 각성자들을 위한 훈련장도 있었다.
한강 던전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자 강하진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한강변에 유람선 선착장이 거대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선착장이 바로 던전으로 가는 입구였다.
선착장에는 정박한 유람선도 보였다. 실제로 한강 유람선까지 운영하면서 던전도 같이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선착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다. 사실 저 안에 있는 던전이 거대하기 때문에 굳이 외부를 크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선착장 근처에 주차장이 굉장히 잘 조성되어 있었다.
따로 주차장 건물이 몇 개나 서 있었고, 주차장 빌딩 주변에도 널찍널찍한 주차 자리가 무수히 보였다.
다음에는 차를 끌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 강하진은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던전 출입증을 파는 매표소가 보였다. 그리고 던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다.
저 문으로 들어간 다음에도 5미터쯤 걸어가야 던전이 있었다. 그 던전을 지키는 사람도 두 명이나 있었고.
강하진은 각성자 등록증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새까맣게 일렁이는 포탈이 보였다. 검은 포탈은 마치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꼭 밤하늘을 보는 것 같네.’
예전에는 그렇게 자주 여길 드나들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강하진은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젤리를 통과하는 듯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확 변했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듯한 광경이었다. 사방에 빛이 날아다녔다.
마치 빛으로 이루어진 요정이 노니는 것 같았다.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건 빛의 정령이었으니까.
이 던전은 원래 정령의 던전이었다.
정령의 힘을 이용하는 괴물들이 득실거렸는데, 그 괴물들을 모조리 없애고 나니, 괴물들이 부리던 정령만 남아서 이런 광경을 보여주었다.
이 던전 안의 정령들은 결코 해롭지 않았다.
빛과 어둠의 정령만 있었기에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구슬들이 어우러져 사방에 날아다녔다.
그 광경은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또한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그리고 이곳은 그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여유롭게 놀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거대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공원을 지나면 상점 거리가 쭉 이어진다.
상점 거리를 숙박시설이 크게 둘러싸듯 자리 잡았고, 그 숙박시설을 거대한 절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절벽 위로는 숲이 펼쳐져 있었는데, 숲을 구성하는 나무가 지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종이었다.
정령의 영향을 받아 불길이 타오르거나 물줄기가 솟구치는 모습으로 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빛과 어둠의 열매까지 맺고 있어서 일단 눈길을 주면 시선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이러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광하러 여기까지 오는 것 아니겠는가.
강하진은 공원을 지나쳐 상점가로 들어섰다.
상점가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식당이 모인 곳이 있고, 기념품 상점이 모인 곳이 있었다.
그리고 각성자 전용 상가들이 모인 거리도 있었다.
각성자가 여기 오면 대부분 저 상가 안에 있는 A-마켓으로 간다.
A-마켓은 던전에서 나오는 물품을 이용해 만든 장비를 파는 상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 있는 A-마켓은 체인점이었다. A-마켓 서울지점이었다.
하지만 강하진이 가려는 곳은 거기가 아니었다.
강하진은 상점가 뒤쪽으로 이어져 있는 골목을 통해 숙박시설이 모인 곳을 지나쳤다.
강하진이 진짜 가려는 곳은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감춰진 장소였다.
강하진은 골목과 절벽이 이어진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굉장히 교묘하게 감춰진 동굴 입구를 찾아냈다.
인간의 착시를 이용해서 감췄기에 아무리 봐도 그냥 꽉 막힌 절벽처럼 보였다.
강하진은 마치 절벽 속으로 파고들어가듯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그곳은 던전 안에 버젓이 마련된 암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