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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31화 (231/236)
  • 231화

    경한타워(2)

    재희의 인생은 기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갓 스무 살이 된 해, 재희는 부모님을 모두 잃었으니까.

    남은 것은 열 살 차이 나는 여동생 하나와 자신뿐.

    그래서 재희는 천산대의 입학을 포기하려고 했다. 자신의 동생, 소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재희에게 손을 내민 곳은, 경한 그룹이었다.

    경한 그룹은 졸업 후에 당사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재희에게 장학금과 지원금을 주었고, 덕분에 재희는 박사과정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재희가 정신계열 능력을 활용한, 기계공학의 천재라서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신의 인생을 구해줬다는 생각에 재희는 경한 그룹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최선을 다했다.

    시키는 일은 의심 없이 최선을 다했다.

    지금 사대희가 입고 있는 슈트도 그 시절에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희는 직장 동료인 나성하와 만났다.

    *     *     *

    “네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어떻게든 붙잡아 놓고 싶은 인재였거든. 경한 그룹의 핵심기술 중 30퍼센트 이상이 그 여자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이상한 게 아닐 정도였으니까.”

    이곳에서의 내 엄마는, 그렇게 능력이 좋은 사람이었구나.

    [“…….”]

    “하지만 나성하, 네 아빠가 문제였다. 그놈이 순진했던 네 엄마를 꾀어내 우리 경한을 벗어나려고 했어. 안 돼. 그건 안 되지. 그렇게 많은 것을 아는 이는 경한을 떠나선 안 돼. 그래서 내가 죽였다.”

    이 사람의 손에 죽지 않았다면 지금도 우리 부모님은 살아계셨을까?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은 비가 무척 많이 내리던 날이었더랬다.

    이곳에서도 그랬을까?

    그날의 슬픔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

    “그들에게 아이가 있었다는 소식은 너무 늦게 알았다. 여동생의 집에 놀러 갔었다더군. 그땐 네가 너무 어리기도 했고, 굳이 죽여야 하나 싶어서 죽이지 않았다. 나도 아이가 있었으니까. 그게 내 목을 졸라올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갑자기 불현듯 비가 쏟아지던 장례식이 떠올랐다.

    다섯 살도 안 된 내가 묻는다.

    이모. 엄마랑 아빠는 어디 갔어? 왜 우리만 두고 가?

    이모는 빗물 젖은 눈으로 내게 말한다.

    강림아. 강림아… 불쌍한 우리 강림이. 걱정하지 마. 이모가 지켜줄게. 이모가 지켜줄게.

    “그런데 내 눈앞에서 너를 보니 이제야 알아보겠더군. 네가 입은 슈트… 그건 우리 회사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이걸 이제야 알아보게 되다니. 안타까워.”

    머릿속이 어지럽고 괴로웠다.

    이 세계에서의 내 기억과 원래의 기억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결국 내 가슴 속에 남은 것은 분노.

    나는 분노에 눈이 멀지 않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내쉬었다.

    잠깐 붉게 보였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더는 듣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 다 네 머릿속을 뒤 흔드려는 수작이다.”】

    그래. 알고 있어.

    나는 입을 열었다.

    “…말이 너무 길군. 늙은이.”

    “아하하하. 미안하게 되었군. 늙으니까 말이 좀 많아져서 말이야.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지이이이잉-

    기계음이 돌아가는 이질적인 소리가 사대희의 슈트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나성하는 드물게도 마법사였다.

    정확하게는, 연금술사.

    마법이 들어간 아티팩트들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사대희의 지시에 따라 함께 일했다.

    마법과 기계공학을 결합했다.

    마법과 기계공학을 결합하니, 뜯어보고도 따라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물건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경한만이 가진 독보적인 기술력.

    사람들은 자신이 쓰는 물건들에 마법이 걸려있는 것도 모른 채 경한이 미래 기술을 선도한다고 했다.

    매일 매일 함께 일하다 보니 우리는 점점 친해지게 되었고, 결국은 연인이 되었다.

    연인이 되고 나서도 우리가 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와 나성하는 여전히 시대를 앞서간 기술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경한은 결국 초대기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결혼했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갑자기 남편, 나성하가 바뀌기 시작했다.

    할 수 있던 일을 못 한다고 했고, 하고 있던 일을 폐기했다. 심지어는 원래 있던 기술들도 교묘하게 수정해 성능을 낮춰버리곤 했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구센터의 지하에서, 인체를 상대로 한 실험이 비밀리에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경한에 뼈를 묻다시피 한 우리는 알고 있었다. 사대희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사대희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높은 이상을 가진 회장님 밑에서 일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인체 실험은 다르다.

    그제야 우리에게 만들게 시켰던 기술들이 다르게 보였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기술을 연구하고 있던 것이다.

    “재희야. 우리 도망치자.”

    남편의 말을 듣고 도망쳤다.

    동생을 데리고 숨어서 카페 운영을 하며 살았다. 그렇게 도망쳐서 살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둘 거라 생각했다.

    안일했다.

    도망치려면 더 확실하게 숨어야만 했다.

    *     *     *

    zieeeeeeeee-!

    붉은색 레이저가 사대희의 양어깨에서 뿜어져 나온다.

    나는 다크 쉴드를 만들어내 레이저를 막아내었다.

    치이이이이이익-

    레이저와 쉴드가 부딪히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실수다.

    생각보다 압력이 크다.

    나는 손을 내리지도, 다른 공격을 하지도 못한 채 레이저를 막아내고만 있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사대희.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는 어깨 위의 총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오랫동안 쓸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아. 내 아들놈에게 자비를 베풀어줘서 고맙다. 너 때문에 교훈을 얻은 것 같더군. 사람이 달라졌어. 나도 이제야 내 후계자로 인정해줄 수 있을 만큼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나도 연장자로서 가르침을 내려주지.”

    이제 나와 근접할 정도까지 다가오기 시작한 사대희는 거대한 주먹을 들어 올려 나를 향해 뻗었다.

    “이게 내 가르침이다.”

    그와 동시에 끊어지는 레이저.

    쾅-!

    사대희의 주먹이 벽을 후려쳤다.

    나는 빠르게 몸을 숙인 후 일어나 주먹을 뻗었다.

    턱. 탁. 툭.

    순식간에 이어진 공방을 모두 간단하게 막아내는 사대희.

    “복싱이군. 그것도 슈퍼 빌런을 상대로 하는, 제대로 배운 복싱이야. 내가 가장 쉽게 이기는 타입이지.”

    퍼억-!

    언제 뻗어진 지 모를 사대희의 주먹이 내 얼굴을 후려쳤다.

    기계 슈트의 공격이라 그런지 단 한방이었는데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안돼.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나는 날아가려던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마스터! 아까 전부터 사대희의 슈트 해킹을 시도하고 있어요. 보안이 단단하지만, 뚫는 게 불가능해 보이진 않아요! 조금만 버텨요!”]

    시간을 끌어라? 알겠어. 그건 충분히 가능해.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거든.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어나가는 공격.

    휙. 턱. 픽. 툭.

    내 주먹들을 가볍게 돌려 피하거나 막아내는 사대희.

    하지만,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히어로 활동을 하던 초창기, 복싱을 배우지 않던 나와 비슷하다.

    저건….

    ai의 전투 스타일 파악 시스템이다.

    나의 전투 패턴을 컴퓨터가 파악해서 지시를 내리고 있는 거다.

    나는 복싱을 직접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안 쓰던 기능이었는데, 사대희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수룩하군.

    내가 안 쓰는 기능에는 이유가 있는 법인데.

    나는 내게 들어오는 타격을 줄이기 위해 아머 모드를 사용한 뒤, 내 공격에 일부러 패턴과 버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턱. 휙 픽. 툭. 쾅-

    순식간에 이어지는 공방을 피하고 내게 일격을 먹이는 사대희.

    굳건하게 만들어진 아머모드로 충격을 막아낸 탓에, 데미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복싱쟁이들은 너무 시시해. 다 보이거든. 어떤 경로로 공격해올지 말이지.”

    기계가 읽어주는 거잖아. 자기 실력인 것마냥 굴기는.

    픽 휙 턱 툭

    아까처럼 간단하게 내 패턴을 읽으며 공격을 피하고 막아내는 사대희.

    하지만 말이야. 갑자기 다른 패턴을 쓴다면?

    나는 네 번째 공격이 빗나가자마자 몸을 완전히 낮췄다.

    휙-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대희의 주먹.

    나는 지훈이 형에게 배웠던 태클을 사용했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뒤로 풀쩍 물러나는 사대희.

    아쉽다. 넘어뜨렸으면 내가 이겼는데.

    [“마스터. 전투 패턴 파악 시스템을 비활성화시켰습니다. 이제부턴 사용하지 못할 거예요.”]

    “…뭐지? 무슨 짓을 한 거지?”

    “전투의 패턴을 살짝 바꾼 거지. 내가 복싱만 할 줄 아는 건 아니거든.”

    “아니. 그거 말고… 아니. 너에게 따질 문제가 아니군.”

    갑자기 시스템이 꺼져서 꽤 당황한 모양인데? 잘하고 있어 제인!

    [“핵심 시스템까지 정지시킬 순 없었어요.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알겠어. 걱정하지 마.

    나는 다시 한번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     *     *

    카페 운영을 시작하던 초반에는 삐걱거림도 많았지만, 결국 우리 부부는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 아이도 하나 낳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이젠 훌쩍 커 대학을 졸업한 소희가 좋은 시간 보내라며, 강림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갔다.

    소희도 이제 진짜 어른이구나. 이런 날에 나를 챙겨 줄 줄도 알고.

    “언니. 오늘은 둘째 조카 기대해도 되는 거지?”

    얘는… 언니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아주 나쁜 쪽으로만 벌써 어른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웃었다.

    정말 애를 하나 더 낳아볼까? 그래도 행복할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으니까.

    마침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갔어야만 했다.

    집에서 단둘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잠이 든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남편인 성하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 여보. 일어나봐.”

    공포에 질린 듯한 목소리였다.

    “왜… 왜요, 여보?”

    “누군가 지금 우리 집으로 들어왔어.”

    남편이 만든 신호기가 삑삑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마법적인 능력으로 만들어진 장비라 그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물었다.

    “소희랑 강림이 아니에요?”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군가 이 집에 침입해 있다.

    그걸 깨닫고 조용히 몸을 일으키려던 바로 그 순간.

    철커덕.

    내 이마에 총이 하나 겨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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