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HERO(2)
“이 아줌마가, 진짜 지금 미쳤나?”
한쪽 손이 괴물처럼 커다랗게 변해 있는 슈퍼솔져가 시민 팀 ‘다람쥐들’의 미숙의 머리를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지금 당신! 군인을 공격하다 잡힌 거야. 지금 당장 총살해도 상관없다고! 그런데 이 상황에 다크 카이저 파이팅? 진짜 죽고 싶나 보네.”
초능력을 이용해 공격해온 자들은 시민이 아니다. 히어로라고 생각하고 사살해도 상관없다.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었다.
경한에서 만들어진 슈퍼 솔져라도 아직 사람의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살을 자제할 뿐, 지금 당장 이 아줌마를 죽여도 슈퍼솔져에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동료가 죽은 것도 아니었고, 잠시 잠들었던 걸로 보이니 자신도 그렇게까지 깐깐하게 처리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대충 혼내주고 집으로 돌려보내려던 바로 그때….
“퉤-!”
미숙이 슈퍼 솔져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죽여봐라! 이 경한의 개자식들아! 너희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크 카이저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아-!”
악에 받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미숙.
슈퍼 솔져는 뒷머리가 확 당겨질 정도로 분노를 느꼈다.
“이 아줌마가… 진짜 좀 봐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다. 죽여버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힘을 주려던 바로 그때….
턱-
자신의 거대한 손을 잡는, 또 다른 거대한 손.
이 팔은 분명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비정상적인 파워를 가지고 있을 텐데.
자신의 팔을 잡은 손 또한 그에 못지않게 강하게 느껴졌다.
뚜둑… 뚜둑… 뚝….
그리고 느껴지는 손아귀의 고통.
“끄아아아아아악!”
그 손의 주인은 비명을 내지르는 슈퍼솔져의 팔을 완전히 꺾어버렸다.
“꺽!”
이젠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뒤로 넘어가 기절해버린 슈퍼 솔져.
미숙은 자신을 구해준 히어로를 보며 잠시 멍하게 있었다.
히어로가 구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눈앞의 히어로가 너무나도 뜻밖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천산시의 히어로 솔라-버드. 출동 완료.”
* * *
나는 허공을 날아가며 밑을 내려다보았다.
히어로들, 은퇴 히어로, 심지어 시민까지 나와 곳곳에서 슈퍼 솔져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내려가서 놈들과 맞서 싸워 시민들을 구해내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사대희를 잡아야만 한다.
슈퍼 솔져들을 모조리 제압한다고 해도, 사대희가 도망치면 모두 말짱 도루묵이다.
시민들을 구하겠답시고 내려가는 것도, 나와 함께 싸우겠다고 나선 히어로들과 시민들에게 실례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꼭. 꼭 이겨낼게요.
* * *
강림이가 드디어 이 세상을 바꾸는구나. 다행이다.
이제 곧 출소를 앞둔 도지훈은 허공을 날아가는 나강림을 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지금 도지훈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슈퍼빌런의 치료감호소.
막 약 기운에서 정신을 차린 도지훈은 처음에는 자신을 도와준 헬 카이저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치료 감호 동안의 시간을 견디고 나니 모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과거 세계에서의 기억도, 현재 세계에서의 기억도.
당연하게도 헬 카이저와 했던 혈전 역시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면세계에서 했던 대화도 함께.
결국 도지훈은 약물에 자신을 잃지 않고 정신을 차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지훈은 자신을 이긴 나강림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분명하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쇠창살에 얼굴을 묻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도지훈의 등 뒤에서, 수상한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 기회가 왔어.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날 기회!”
“무슨 소리야?”
“밖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이 시설 안의 사람들도 몇 명 빼고 다 도망갔잖아. 여기 있는 인원으론 그 정도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지.”
손으로 자신의 목을 슥 긋는 사내.
“다 죽여버리고, 여기서 도망치자.”
그 사내의 말에 술렁이기 시작하는 감호소.
“어때? 어때? 이따가 식사 시간에 저지르고 나가면 되잖아. 지금 밖에 폭동이 났는데 우리 나가서 돈 좀 벌자.”
거기까지 들은 도지훈은 그 자리에서 돌려차기로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날아가는 사내.
“아직도 탈출하고 싶단 생각 하고 있는 사람. 혹시 있나?”
술렁이던 감호소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 *
하늘을 날아가다 보니 경한타워의 꼭대기가 보인다.
저기엔 경한의 사대희가 앉아있겠지.
[“창문을 뚫고 들어갈까요? 힘 빼지 않고 사대희와 바로 싸울 수 있을 텐데요.”]
그러면 좋겠지만….
나는 경한 주변 건물에 배치되어 있는 무기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놈들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걸.
유전자 조작 슈퍼 솔져가 튀어나왔으니, 무기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게 튀어나와도 놀랄 일이 아니다.
퉁-!
마치 내가 그렇게 생각하길 기다렸다는 듯 미사일 하나가 내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흑염을 던져 미사일을 허공에서 터트렸다.
펑!
터진 미사일이 허공을 화려하게 수 놓는다.
마치….
【“불꽃놀이 폭죽처럼 말이지. 경고와 조롱의 의미다. 다크 카이저.”】
내가 그걸 이해 못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갔다간 분명 대공 미사일들이 나를 맞추기 위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끝없이 쏟아질 미사일들과 싸워 체력을 소비할 순 없었다.
어비스 위치를 통해 건물 안으로 몰래 침입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보여주고 싶었다.
네 놈이 준비한 건, 우리 아스트로 스타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우선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런 내 뒤로 어비스 위치의 통로를 타고 줄줄이 나타나는 히어로들.
현재 나와 함께 온 멤버는,
퀘이사(QUASAR).
래피드 스타(RAPID STAR).
슈팅 노바(SHOOTING NOVA).
어비스 위치(ABYSS WITCH).
블루 래빗(BLUE RABBIT).
데다이트(DEADITE).
총 여섯 명으로, 겨우 히어로 스쿼드로서 구색이 갖춰진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숫자의 슈퍼 솔져들.
잠시 동안의 대치.
조용하게 서로를 노려보며 마음을 차분하게 준비한다.
시민 팀에게서도 쓰러지는 것을 보아, 슈퍼 솔져 개개인의 초능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슈퍼 솔져들의 장비.
현대 무기, 아니면 그 이상을 소지하고 있는 슈퍼 솔져들의 화력을 우리만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이 슈퍼 솔져들을 뚫고 간다고 한들, 내가 사대희를 이길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며 말하는 퀘이사, 아니 강수아.
“우린 할 수 있어. 다크 카이저.”
“뭐야? 갑자기 쫄았어? 왜 이래? 새삼스럽게?”
“다크 카이저는 쫀 것이 아니다. 동료가 다칠까 걱정되는 것이지.”
“우리가 다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치면 내 통로로 탈출해서 밀키웨이 언니의 치료를 받으면 되는걸?”
“그동안 데다이트가 저놈들의 공격을 막아내겠다!”
“…….”
퀘이사의 말에 왁자지껄 떠들어 오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양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
“아스트로 스타즈. 출격!”
“출격!”
내 말과 동시에 달려 나가기 시작하는 히어로들.
duadadadadada!
zieeeeeeeee-!
그제야 가만히 지켜보던 슈퍼 솔져들도 우리를 향해 공격해오기 시작했지만….
휘이이이잉-!
눈앞에 얼음 방벽이 만들어져 놈들의 총탄을 막는다.
그 위로 씌워지는 어비스 위치의 차원 통로.
우리는 다 같이 차원 통로를 타고 넘었다.
지이이잉-
짧은 통로를 넘어서자 놈들의 뒤쪽으로 넘어간 히어로들.
무너진 얼음벽 너머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걸 알아차린 슈퍼 솔져들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가 기회다.
우리는 순식간에 주변의 슈퍼 솔져들을 제압해나가기 시작했다.
“억!”
“으악! 뒤! 뒤다!”
그제야 뒤로 이동한 우리를 눈치채고 뒤를 바라보는 슈퍼 솔져들.
슈팅 노바와 어비스 위치.
래피드 스타와 블루 래빗.
퀘이사와 데다이트.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팀을 이뤄 슈퍼솔져들을 상대하며 내 앞의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슈팅 노바가 쏜 총탄들이, 어비스 위치의 통로를 타고 이동해 슈퍼 솔져들의 머리 위로 퍼부어진다.
그 옆으로 래피드 스타가 내달린다. 빠르게 내달린 래피드 스타는 인피니티 체인을 사용해 세 명의 슈퍼 솔져들을 묶는다.
zhieeeeeeeee-!
그 위로 떨어지는 블루 래빗의 얼음 광선.
묶여있던 세 명의 슈퍼 솔져는 순식간에 얼음덩이가 되고 말았다.
“헉… 헉….”
조금 무리하게 내달린 듯 헉헉거리기 시작하는 래피드 스타.
래피드 스타의 약점은, 신체 계열답지 않은 약한 몸과 빠른 탈진이지만….
얼음 방벽이 만들어져 지쳐있는 래피드 스타를 보호한다.
“땡큐 브라더.”
“…난 네 형제가 아니다.”
“같이 싸우면 모두 브라더야.”
그렇게 싸우는 네 사람에 비해 퀘이사와 데다이트는….
“이야아아아앗! 다 쓸어버려!”
“우오오오오오오!”
마치 광전사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며 슈퍼 솔져들을 근접전으로 제압해나가기 시작한다.
BOOOOOOOOOSH!
자신의 화력을 마음껏 뽐내며 공격을 시도하는 퀘이사.
얼마 안 가 불꽃을 난사한 퀘이사의 머리가 금방 검게 변했지만….
머리가 검게 변한 퀘이사가 데다이트의 등 뒤로 숨어 매달린다.
“우어어어어어어어!”
마치 전차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며 순식간에 슈퍼 솔져들을 제압해나가는 데다이트.
퀘이사는 그런 데다이트의 뒤에서 안전하게 충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동료들이 싸워서 열어준 길을, 나는 천천히 걷는다.
저 위에 앉아있는 사대희가 이곳을 보리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나는 경한 타워의 문을 바라보았다.
나는 오랫동안 견고하게 닫혀있던 경한의 성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 *
꼭대기 층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대희가 껄껄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하하! 건방진 녀석이구나. 그래. 네 상대가 되어주지.”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웃음소리 덕분에 차원의 문이 흔들릴 정도였다.
차원의 문이 흔들리자, 차원의 문 한 가운데 박혀 있던 녹색 보석이 흔들린다.
사실, 사대희는 이번 차원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히어로들은 너무나도 강하다. 자신의 슈퍼 솔져들로는 막을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하고 차원의 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려고 했건만….
다크 카이저. 놈이 자신을 도발했다.
원래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놈이라도 깨부숴놔야 속이라도 조금 풀릴 것 같았다.
사대희는 다크 카이저의 도전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 *
아무것도 없는, 폐허의 세계에 지루한 얼굴의 한 남자가 앉아있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슈트에 적혀있던 이름도 폐허의 바람에 휩쓸려 지워진 지 오래.
남자는 자신의 그저 자신의 할 일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차원의 파괴.
남자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녹색 보석을 쥐고 들어 올렸다.
아주 오래전, 기억도 나지 않는 누군가를 죽이고 얻은 보물인데, 이것이 있으면 차원을 넘나들며 이동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파괴할 차원의 좌표뿐인데….
한 차원에서 거대한 힘들이 격돌하게 되면, 남자는 그 여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쿵-!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힘들의 격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