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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28화 (228/236)
  • 228화

    HERO(1)

    도유진은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때, 긴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 나강림과 자신은 소원해진 소꿉친구였고, 오빠인 도지훈은 격투기 대회의 챔피언이었다.

    강림이와 어색해진 탓에 비록 최근에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얼굴을 보지 않는 시간들 속에도, 이따금 강림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바보 같고, 나약하지만, 어딘가 지켜주고 싶은 그리운 녀석.

    그래서 도유진은 강림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 이모?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한 달도 안 됐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그걸 왜 우리한테 말도 안 해?’

    당장에 달려가 따지려 들었다.

    하나 막상 찾아간 그 자리에는.

    아직도 바보 같고, 나약했지만….

    어딘가 지켜주고 싶은 그리운 녀석이 위태로운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야 나강림. 너 여기 계속 질질 짜고 앉아있을래? 아니면 나랑 사귈래?”

    그리고 깨어났다.

    깨어남과 동시에 도유진은 이 세계의 히어로, 다크 카이저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 그 히어로가 강림의 손에서 탄생하는 모습을 본 적 이 있었으니까.

    *     *     *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

    나강림이 묻는다.

    도유진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결국 참지 못한 눈물이 쪼르륵, 눈 옆을 흐른다. 눈물이 흐른다는 것을 들키지 않게 더 꽉 껴안는다.

    품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자주 꾸는 꿈이 있어. 너랑 나랑 오빠랑 초능력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꿈. 근데, 그게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거든. 강림아. 그 세계에서의 넌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야. 주위의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 아픔을 딛고 이겨나가는 한 사람.”

    “네 꿈속의 사람을 나에게 대입하지 마. 난 그 꿈속의 강림이가 아니니까.”

    그 말에 도유진의 양 눈가에서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린다.

    그래, 그랬지. 넌 거기 있던 그 사람이 아니었지.

    “제발… 나 지금 너 여기서 보내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 무섭단 말이야.”

    잠시의 고요. 긴장이 풀리며 흐르던 눈물이 멎는다.

    “그래도 가야 해. 유진아. 지금 바깥에서 나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가지 않으면 저 사람들을 모두 배신하는 거야.”

    유진은 강림의 말에 분노를 느꼈다.

    “네가 그래서 그 사람들을 도와줘서 얻은 게 뭐가 있는데? 돈이라도 벌었어? 아무것도 안 받고 희생하는 거잖아! 이만한 슈퍼솔져를 몰래 키우고 있던 사람이야. 그 본인은 얼마나 강하겠어? 응? 그냥 하지 말자. 제발… 강림아…”

    자신의 손 위에 강림의 손이 얹히는 것이 느껴진다.

    강림의 손이 닿자, 스르르 풀려버리는 유진의 손.

    강림이 고개를 돌려 유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그냥 자주 보던 눈인데, 오늘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럽다.

    부끄럽다….

    아니, 울어서일 거다. 아직 눈물 자국이 지워지지 않았을 테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큰 걸 얻었는데.”

    “…뭐?”

    “저 밖에서 나를 응원하는 저 사람들. 나는 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거야. 그게 얼마나 크고 귀중한 건지, 넌 모를 거야.”

    강림이에게 잡혀있던 손을 스르르 내린다.

    그래… 아니었어.

    이 세계의 강림이는 나약하지만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어.

    눈앞의 강림이는….

    이 세상을 지키기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히어로.

    한 명의 히어로가 되어 있었다.

    강림이 다시 등을 돌린다.

    펄럭-

    어느새 입혀진 슈트의 망토가 펄럭인다.

    시야를 가렸던 망토가 내려오고 나타난 것은, 강림이 아닌 다크 카이저의 모습.

    유진은 다크 카이저가 떠나는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     *     *

    나는 집을 빠져나오자마자 하늘로 뛰어올랐다.

    밤하늘이 내 품 안으로 확 들어온다. 나는 밤하늘을 품고서 하늘을 날았다.

    제인, 아스트로 스타즈에게 통신 연결해.

    [“연결되었습니다.”]

    “아스트로 스타즈. 여기는 다크 카이저. 천산시를 해방시킬 준비가 되었나?”

    <“여기는 퀘이사. 말해 뭐해? 이미 준비 완료야.”>

    <“여기는 래피드 스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나는 늦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니까.”>

    <“여기는 슈팅노바. 난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

    <“어비스 위치. 준비 완료입니다.”>

    <“여… 여기는 블루래빗… 음… 준… 준비되었다.”>

    <“우오!! 데다이트 준비 완료!”>

    <“여기는 밀키웨이. 전투는 도와줄 수 없겠지만, 응원하고 있을게요! 다치면 언제든 돌아와 주세요!”>

    동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쿵쾅대려는 심장 박동을 천천히 누그러트렸다.

    지금은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에 취해 흥분해야 할 때가 아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지.

    나는 이 도시를 지키는 히어로 다크 카이저니까.

    나는 허공에 화려한 흑염의 날개를 펼쳤다.

    지금껏 펼쳤던 것 중에서, 가장 큰 날개를.

    *     *     *

    간단한 초능력을 가진 시민 팀, ‘다람쥐들’을 이끄는 리더 오원호는 지금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슈퍼 솔져는 둘. 둘 다 계속 길을 따라 순찰 중. 어, 한 명 멈췄다. 벤치에 앉네요. 쉬려나 봅니다!”

    원호의 능력은 멀리 볼 수 있는 눈. 그마저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5분 정도밖에 안 된다.

    능력 사용 5분 후에 눈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지고 있어도 쓰지 않던 능력이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고서도 써야만 했다.

    눈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며, 오원호는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벤치 위치, 좌표 보냈어요.”

    앉아있는 벤치의 좌표를 받은 박미숙은 긴장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숙의 능력은, 쪼그려 걸으면 몸이 보이지 않는 능력이다.

    사실 어찌 보면 굉장한 능력이다. 실제로 나라에서 스카웃 제의도 왔었다.

    하지만 미숙은 겁이 많고 눈물이 많은 자신이 군인이나 경찰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남편을 놀래 켤 때나 사용하는 게 전부인 능력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겁도 많고 눈물도 많은 자신은, 오늘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싸우려고 하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건,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표선자가 만들어준 슈퍼마취침.

    당연하지만 쪼그려 다니는 자신이 걸어서 움직이는 솔져들을 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쉬기 위해 멈춘 슈퍼솔져를 습격해서 제압하는 것으로, 매번 전투를 진행해오고 있었다.

    미숙은 다시 두 다리를 쪼그렸다.

    내일 분명 종아리에 엄청난 근육통을 느끼겠지만….

    우리가 싸워야만 이 도시를 지킬 수 있다.

    미숙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슈퍼 솔져의 청력은 일반인보다 3배 이상 예민한 편이라, 훨씬 조용히 접근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미숙이 도착할 때까지 슈퍼솔져는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일어나며 목에 침을 확! 꽂아 넣은 미숙.

    “꺽? 꺼억.”

    잠깐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옆으로 쿵, 쓰러져 잠들어버린 슈퍼 솔져.

    하지만….

    <미숙님! 나머지 슈퍼솔져가 눈치챘습니다! 그쪽으로 향하고 있어요!>

    뭐? 거기서 여기까지가 보여?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놈은 자신의 모습을 알아 봐버린 모양이었다.

    급하게 쪼그려 앉았지만….

    철컥

    슈퍼 솔져의 총이 미숙의 머리 위에 걸쳐진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숨소리가 들리거든.”

    미숙은 그제야 자신의 겁먹은 숨소리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나는 아직 조금 더 싸우고 싶었는데….

    바로 그때!

    “우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탄성. 그리고, 사방을 밝히는, 다크 카이저의 흑염 날개에서 나오는 빛.

    다크 카이저가, 출동하고 있었다.

    미숙은 그냥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양손을 들어 올리고 외쳤다.

    “파이팅! 다크 카이저!!!!!!!!!”

    *     *     *

    “파이팅! 다크 카이저!!!!!!!”

    누군가가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파이팅 다크 카이저!!!!”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함성.

    “다크 카이저 강림하셨다!!”

    “죄지은 자를 벌하고, 외면당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히어로! 다크 카이저 파이팅!”

    “다크 카이저!!! 완전 팬이에요!!!”

    “우리 대신 꼭 이겨줘!”

    여기저기서 응원의 소리가 끝없이 들려온다.

    감사의 인사가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나는 허공을 날았다.

    더 많은 사람이 내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더 큰 날개를 펼쳤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멋져!!”

    나의 존재가 이들에게 희망이 된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 등불이 되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경한 타워를 향해 날아 움직였다.

    *     *     *

    그리고, 창문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태양 체육관의 박관장과 손사범이었다.

    허공에 펼쳐진 다크 카이저의 흑염 날개는 멋지고 화려했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스스로를 태우며 날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손사범이 박관장에게 물었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실 수 있겠어요?”

    “음?”

    “저기에 관장님과 제 제자, 강림이가 날아가고 있잖아요.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 제자가 저렇게 뛰는데도 체육관만 지키 실 수 있겠느냐고요.”

    “…….”

    “사이드킥이긴 하지만, 저도 히어로에요. 이런 날엔 가서 싸우고 싶단 말이에요! 이제 좀 이겨내고 다시 시작하자구요! 제발!”

    문캣의 목소리가 체육관 내부를 메아리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솔라 버드.

    “됐어요. 전 갈 거예요. 늙은 히어로는 집이나 지키세요.”

    솔라버드가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는 영화, 솔라버드는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진짜 솔라버드는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완전한 은퇴에 접어들고 말았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솔라버드가 우울증에 빠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히어로 활동을 하는 것이 두려워진 것이다. 더 이상 누군가를 구하고 싶지도 않아졌다.

    그래서 체육관을 차렸고, 히어로 지망생들만 가르쳤다.

    자신 대신 이 도시를 지켜줄 사람을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히어로가 지금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솔라버드는 비로소 오랜 우울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솔라버드는 뒤돌아 움직이려던 자신의 사이드 킥, 문캣의 어깨를 잡았다.

    “네 말이 맞다. 문캣.”

    *     *     *

    다크 카이저가 움직이는 모습은 작은 창 밖에 나지 않은 감옥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밝았다.

    대부분의 범죄자는 그 빛을 보고 두려워했지만, 단 한 사람만은 달랐다.

    그 사람, 도지훈은 쇠창살에 얼굴을 걸친 채 날아가고 있는 다크 카이저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강림! 힘내라!’

    *     *     *

    자신의 가게에서 시민들을 위해 호신용품을 보급하고 있던 다크 스코프, 정학근은 허공을 날고 있는 다크 카이저를 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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