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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27화 (227/236)
  • 227화

    강림… 가지 마… 제발….

    “알겠어. 다녀와.”

    나는 이모의 한마디에 살짝 눈물을 흘릴 뻔했다.

    내가 무슨 일을 계획하는지, 내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기까지 했는데도 나를 믿어준다.

    얼마 전까지 내 손발을 잡고 늘어지면서까지 나를 말리던 이모가, 나를 막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뭐야? 왜 그래, 우리 조카.”

    “믿어… 줘… 서… 흐끅…. 감사… 합니다….”

    그런 나를 꼭 안아주는 이모.

    오랜만에 안기는 이모 품은, 따뜻한 엄마의 품과 같았다.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어. 이것 봐. 강림아. 다 너를 부르짖는 사람들이야. 다 너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고, 다 너의 이야기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야.”

    그러면서 가리킨 티비 화면엔, 수많은 사람이 다크 카이저의 검은 가면과 망토를 뒤집어쓴 채, 거리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그런 시민들에게 아무 말 없이 제압구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슈퍼 솔져들.

    아무래도 일반 시민들은 다치지 않게 만들어져 있는 제압용 도구들을 사용할 모양이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게, 일반 시민이 없으면 천산시라는 도시 또한 의미가 없다.

    제압을 하더라도 최대한 반발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제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남도 우리 조카를 믿어주는데. 내가 못 믿으면 쓰겠어?”

    또 감동 감동이다.

    감동에 미쳐 눈물을 줄줄 쏟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두 시간 있다가 출발할 생각인데 왜 벌써부터 절 울리려고 하세요? 두 시간 동안은 평소처럼 행동해주시면 안 돼요?”

    전투 개시 시간을 두 시간 정도 이후로 생각해두었다.

    그때부턴 나를 돕기 위해 히어로들이 전부 참전하여 슈퍼 솔져들과 싸울 거다.

    도시 바깥에 있는 히어로들도 사정을 듣곤 화가 나서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천산시 내부에서 조용히 활동하던 히어로들도 그때가 되면 전부 함께 나와 싸울 거다.

    그럼 나는, 그때 경한 타워를 향해 아스트로 스타즈와 함께 향할 것이다.

    “아참. 그랬지. 나도 긴장이 많이 돼서… 지금 차라도 한잔 타올 테니 잠깐 기다리고 있으렴.”

    나는 잠시 앉아 이 세계에서 있었던 날들에 대해 돌아보았다.

    히어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콘셉트를 지킨다며 실수만 하던 시절…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던 시절… 그리고 지금….

    난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언제나 고고하게 타워에서 도시를 내려보는, 사대희랑은 다르다.

    여기서부터는 미지의 영역이다.

    “여기. 차 한잔하면서 마음 가라앉히고 있어.”

    “고마워 이모.”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몸이 따뜻해지며 조금 긴장이 풀린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반추하고 있던 바로 그때.

    띠띠띠띠띠띠-

    갑자기 우리집 현관의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불쑥 안으로 들어섰다.

    “소희이모 안녕하세요! 저 좀 놀러 왔어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것은 도유진이었다.

    뭐야? 이 타이밍에 쟤가 왜 와?

    *     *     *

    “어? 어?”

    나보다 눈에 띄게 당황하는 우리 이모.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지금밖에….”

    “아 밖에요? 가면이랑 망토 안 입고 있으니까 군인들도 공격 안 하던데요?”

    “그래도 이 난리 통에 여기까지 오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래서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가려고요. 헤헤.”

    아이고 두야… 쟤 왜 저러냐 갑자기.

    쟤가 여기로 왜 왔을까?

    내 정체를 알고 있나?

    [“아니요. 제 데이터에는 모를 거라고 되어있는데… 혼자 알아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죠.”]

    그럼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좀 생각해보자고.

    몇 가지 가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로, 나와 이모를 지켜주고 싶어서.

    스스로의 능력을 각성했다는 걸 알고 최근 특수 훈련도 받으며 차근차근 경찰대를 준비 중이다.

    스스로 나와 이모 정도는 지켜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마스터.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가장 먼저 부모님을 지키고 싶지 않을까요?”]

    훅 들어오는 제인의 지적.

    하지만 제인의 말이 옳다. 이 가정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가정을 머릿속으로 지웠다.

    두 번째 가정.

    세상이 이 지경이 됐으니, 곧 나라가 망할 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요즘 천산시에 사는 사람 중에선, 소수지만 이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천산시라는 큰 도시가 무너지면 한국 사회에서도 큰 문제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다른 세계에서 온 나로서는 처음에는 피해망상 같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일들을 찾아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초능력자로 인한 무장 봉기로 나라의 지도자가 바뀌는 일이, 이 세계에서는 아주 흔하디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무장봉기에 휘말리면, 대부분 평범한 일반인들은 많이 죽거나 다친다.

    그러기 전에, 가족 같았던 우리의 얼굴을 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가정.

    얘가 사실 내 정체를 눈치챘고, 내가 죽거나 다치는 게 무서워 나를 못 가게 하려는 경우.

    “어. 소희 이모! 나도 차!”

    “어? 알겠어. 잠깐만 기다리렴.”

    잠시 이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어색한 침묵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오늘 계획을 재점검하기 바빴으니까.

    “야 나강림. 아무리 그래도 친구가 왔는데 뭐 반갑다 어쩐다 인사도 안 하네? 서운하다?”

    아.

    나는 지금 당장의 일들에 정신이 쏠려서 인사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럼 인사해줘야지.

    “내가 너가 왜 반갑냐?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보고 오늘까지 보는데. 야 네 얼굴 좀 안 보고 싶다.”

    “야, 씨. 말이 좀 심하다? 나도 너 보러 온 거 아니긴 해. 소희 이모 보러온 거니까. 소희 이모 예쁘시잖아.”

    음. 우리 이모가 예쁘시긴 하지.

    누가 데리고 갈지 모르겠지만, 꼭 좋은 사람이 데려갔으면 좋겠다.

    이모 같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은 사람이겠지만.

    왜 왔냐고 물었는데 이모 칭찬을 하니까 가라고 말하기도 궁색해진다.

    나는 가만히 차를 홀짝이며 마음이나 달래고 있었다.

    “야 씨…. 그래도 내가 오랜만에 놀러 온 건데 좀 같이 놀아주면 안 돼?”

    “뭐 할 건데?”

    “야 드라마 보자. 넷플렛스에서 최근 재밌는 고전 영화 많이 가져온 거 아냐?”

    “뭐? 나 넷플렛스 별로 관심 없는데….”

    “그래도 내가 보자면 봐!”

    그러면서 티비를 틀어버리는 도유진. 제목은….

    『죽은 히어로의 사회』.

    영화의 시작은 도시를 지키던 히어로가 죽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밝혀지는 히어로의 정체는, 바로 이 도시의 시장님.

    그 사실이 밝혀지자, 도시는 광란의 도가니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도시를 가장 사랑해서 지키던 사람이 죽었으니, 더 이상 지킬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가던 중, 새로운 히어로가 하나둘씩 생긴다.

    그리고 그 히어로들이 망가진 도시를 재건할 것임을 암시하며 영화가 끝이 난다.

    옛날 영화라 그런지 1시간 20분짜리 짧은 영화였지만….

    우리의 도유진 님께선 제대로 집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영화를 보며 계속 시계를 확인한다거나, 다리를 떤다거나, 불안하게 팔을 긁어대는 등….

    도유진의 오랜 소꿉친구인 나는 도유진이 왜 이러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

    .

    .

    역시 이런 오래된 영화는 도유진의 취향이 아닌 것이다.

    욘석, 평소에 관심도 없는 올드한 영화 틀어놓고 재미없는데 창피해서 말도 못 하고 있네.

    “그래도 확실히 고전 명작이라 그런지 영화에 있네.”

    “그… 그래? 어… 어떤 주제 의식? 뭘 느꼈는데?”

    “역시, 이 세계에선 히어로라는 존재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쾅!

    그 말이 나오자 갑자기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치는 도유진.

    “뭐? 이 영화가 어떻게 그렇게 얕게 해석될 수가 있니? 도시를 가장 사랑하던 히어로가 은퇴해도,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은 언젠가 나오기 마련이라는 해석을 하는 게 더 옳지!”

    “어? 뭐… 그 해석도 맞네. 근데 너 뭐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서로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

    “너가 너무 고전 명화를 얕게 이해했잖아! 이런 명작 영화의 주제 의식을 얕보지 말란 말야!”

    뭐야? 얘 갑자기 왜 이래?

    영화 쪽으로 눈이 트였나?

    안 보는 줄 알았는데 이미 한번 본 영화였던 모양이다.

    “뭐…. 아… 알았어. 내가 무식했나보다 야.”

    “그리고?”

    “뭐?”

    “그리고 더 배운 거 없냐고.”

    “그리고… 뭐? 나보고 더 어쩌라고.”

    잠시 나를 바라보며 씩씩대던 도유진은 금세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다. 야 그럼 파랑마블하자.”

    “그거 두 명이서 해봐야 재미없어.”

    “이모 껴서 세 명이서 하면 되지!”

    “우리 이모가 네 친구냐?”

    “친구지! 소희이모!! 저랑 이모 친구 맞죠?”

    그 말에 초조한 표정으로 집안일을 하고 계시던 이모가 고갤 들어 올린다.

    “어? 응?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니?”

    “소희 이모랑 저 친구 맞죠?”

    “그럼. 내 조카 같은 친구지.”

    “이 봐라 나강림! 친구 맞잖아”

    아니 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마스터…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그렇지… 이젠 슬슬 일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나 잠깐 약속 있어. 금방 올 테니까 친구인 이모랑 놀고 있어라.”

    “뭐? 지금 이 상황에 어딜 가? 밖에 지금 전쟁터야.”

    “그거 다 뚫고 우리집에 온 주제에.”

    “나는 능력도 있고 훈련도 하잖아!”

    “괜찮아. 지금 가면이랑 유니폼 안 입은 사람은 공격 안 한대.”

    “그래도 안 돼. 싸움에 휘말려서 다치면 너만 손해야. 넌 그런데 가면 꼭 병원 신세 지잖아!”

    음… 반박할 수 없군. 정론이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내 오랜 친구인 도유진이 나를 믿어주리라 믿고 내 정체를 밝히는 수밖에.

    “도유진. 나 할 말 있어.”

    “엉? 뭔데? 밖에선 나 차더니 집에선 나한테 고백하는 거야? 너 되게 음흉하다.”

    “아니, 그런 거 아니고….”

    후.

    벌써부터 정신이 어지럽게 만드네.

    그래도 지금 상황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만 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 나 사실…!”

    “말하지 마!”

    깜짝이야!

    방안에 메아리가 칠 정도로 크게 소리 지르는 도유진.

    “그 말. 오늘 하지 마.”

    그제야 나는 도유진이 왜 여기를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얘는 내가 다크카이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다.

    “유진아 알고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도 알잖아. 나는 오늘 가야만 해.”

    매정하게 보이도록 등을 홱 돌린다.

    내 등 허리를 확 잡아채 껴안는 도유진.

    감각이 증폭돼서인지 도유진의 뛰는 심장과 떨리는 몸이 느껴진다.

    나를 잃을까 봐 무서워하는 그 감정이 닿은 몸을 통해 온전히 전달된다.

    “강림아… 가지 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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