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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25화 (225/236)
  • 225화

    경한그룹(1)

    “내 머릿속에 폭탄이 있다!”

    정대수가 우리의 아지트로 들어오자마자 한 말이었다.

    제인!

    [“전자 장치가 들어있긴 했어요. gps와 통신 기능은 제가 마비시키긴 했지만…. 자동 폭발 기능은 직접적인 수술이 필요합니다, 마스터.”]

    그 말을 들은 즉시, 나는 오른쪽 눈을 감아 정대수의 뇌 안을 들여다보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히어로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폭탄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뇌에 무언가가 심어져 있긴 하군.”

    그 말에 즉시 수술에 들어가게 된 정대수.

    “미안한데, 수면마취가 가능할 정도의 약품은 우리가 가지고 있질 않거든요. 투여할 수 있는 양은 극히 적어요. 그래도 수술, 하시겠어요?”

    “어…? 어?”

    밀키웨이의 말에 정대수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죽는 것보다는 잠깐 아픈 게 낫지. 참아 보마.”

    이 새끼 말이 좀 짧네?

    잡혀 온 마당에도 말을 높이지 않는 모습이 고깝게 느껴졌지만….

    컨셉이려니 하고 참는다.

    [“그리고 곧 고통으로 몸부림 치는 모습을 보여줄 텐데요 뭘.”]

    하지만… 나는 참았지만 퀘이사는 그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야. 말이 짧다?”

    “…….”

    “뇌에 폭탄 빼달라고 하는 주제에 말이 이렇게 짧으면 우리가 해줘야 하나? 응? 어떻게 생각해 밀키 언니?”

    “…죄송합니다. 말 조심하겠습니다.”

    역시, 화 나면 얘가 제일 무섭다니까.

    황당한 얼굴로 퀘이사를 보기를 잠시.

    밀키웨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다크 카이저님. 보신 장치가 어디에 들어있는지, 이 그림 위에 표시해주실 수 있겠어요?”

    사람의 머리와 뇌 모양이 그려져 있는 종이 한 장을 밀키웨이로부터 건네받았다.

    나는 내가 봤던 폭탄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여 밀키웨이에게 넘겨주었다.

    “… 밀키 언니. 할 수 있겠어?”

    “내가 진짜 의사도 아니고 어떻게 확실하게 말하겠니? 그래도… 사람이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흑사자가 우리에게 잡혀갔음을 사대희가 눈치채는 순간, 곧바로 폭탄은 폭발하고 말테니까.

    그렇게 수술은 시작되었다.

    투여된 마취제의 양이 적었던 만큼 고통이 분명 컸을 텐데….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더더더더더더더덜덜덜-!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장비들이 돌아가는 소리에도….

    “후욱… 후욱…. 후욱….”

    정대수는 단 한 번도 신음을 흘리지 않고 머리를 가르는 고통을 참아냈다.

    [“와 이 독종 같으니. 괴로워하는 걸 꼭 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폭탄 제거했습니다.”

    그 말에 눈에 띄게 안정되는 정대수의 표정.

    이젠 봉합이다.

    밀키웨이의 전투적인 능력은 사라졌지만, 회복능력만큼은 아직도 최고 수준이었다.

    곧바로 머리에 대고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밀키웨이.

    녹색의 따스한 빛이 정대수의 머리를 천천히 회복시킨다.

    그리고 그 순간,

    펑!

    옆에 놓아뒀던 폭탄이 폭발음을 내며 폭발했다.

    작은 폭발이었지만, 저 폭발이 뇌에서 일어났다면 한 사람의 뇌를 엉망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을 터였다.

    그 모습을 본 정대수는….

    “꼴깍.”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     *

    정대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사대희는 정대수가 폭탄을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최상급 이능계열 능력자인 정대수는, 어느 순간 자신의 머리 안에 폭탄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대체 언제 그 같은 작업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섣불리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누구도 모르게 폭탄을 심는 게 가능하다면, 그것을 터뜨리는 일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정대수는 그렇게 사대희가 시키는 대로 복종을 하며, 훗날 그것에서 벗어날 대비를 했다.

    “…….”

    수술이 끝나고 정신을 되찾은 정대수는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분명 구멍이 뚫렸었는데 순식간에 아문 듯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은 머리.

    안에 있던 폭탄이 빠져나오는 것을, 직접 봤다.

    “큭… 크크크큭… 하하하하하하!”

    자신은 살아남았다.

    사대희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 살아남고 만 것이다!

    하지만, 사대희라면 여기서 끝내지 않을 터였다.

    언젠가, 어떻게든 자신을 죽일 방법을 찾아내 찾아올 것이다.

    그럼 여기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정대수는 곧바로 결론을 내렸다.

    다크 카이저에게 완전히 협조해서, 사대희를 이 도시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사대희를 몰아내고 나면, 자신이 저지른 일의 죗값을 치러야겠지만….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던가?

    죗값을 치르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정대수는 살아남고 싶었다.

    *     *     *

    “이제… 전부 끝났네요?”

    어비스 위치의 말에 조용해지는 사무실 안.

    끝났다.

    4개로 나뉘어 천산시를 지배하던 범죄집단을 전부 흩어놓는 데에 성공했다는 의미일 터였다.

    이제 천산시에는 거대 범죄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잿빛망토단도, 불곰파도, 망령당도, 그리고 흑사자회도.

    밤거리를 어지럽히고, 피로 물들이던 범죄조직이, 이제 천산시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도 간헐적으로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경찰들만으로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할 정도.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어비스 위치, 소연이는 히어로로서 이 일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역시나 어비스 위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퀘이사.

    “아직 끝나지 않았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상대해야 할 집단이 남았거든.”

    “응? 누… 누구죠? 역시 저 같은 신입은 모르는 숨겨진 흑막이 존재하는 건가요?”

    “그래. 우리가 진짜 상대해야 할 마지막 흑막은, 경한그룹이야.”

    “…네?”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어비스 위치.

    그럴 만도 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한은, 이 도시를 이끌어가는 중심과도 같은 기업이니까.

    “흑사자. 경한그룹의 비서실장이랑 동일인물이야.”

    “헤에에엑?”

    “지금껏 천산시의 범죄를 방치한 것도 경한그룹이고. 천산시의 범죄들을 일부러 방치하며, 돈을 벌고 있는 것도 경한그룹이고.”

    “히에에에에엑?”

    퀘이사의 말을 듣고 울상을 짓는 어비스 위치.

    “내 핸드폰부터 우리집 티비 세탁기 전부 다 경한 건데!”

    “그래서 이제 우리의 마지막 상대와 싸우기 전에, 회의를 시작해야 하는 거지. 우리의 적은 아주 크고 강한 대기업이니까.”

    나는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대화를 나누는 두 친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서로 정체도 모르는데 죽이 잘 맞네. 괜히 둘이 친구 먹고 사는 게 아니라니까?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지켜보는 것도 재밌지만, 지금은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야 할 때다.

    예전에 밀키웨이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일개 히어로들은 경한을 이길 방법이 없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조그마한 상처를 남기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그 상처가 하나둘 많아지다 보면 경한 그룹의 상처 안에 있는 검은 부분이 세상에 알려질 거라던.

    그리고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진 경한그룹을 끌어내리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사람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할 거라고도 했었다.

    그때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

    이 도시, 천산시에서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히어로로서 쌓은 명성 덕분에,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는 것이다.

    경한의 검은 부분을 알고 증언해줄 수 있는 범죄자들의 신변 또한, 우리가 관리하고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경한과 함께 싸워볼 만한 평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정대수.

    아무리 밀키웨이의 회복 능력이 좋다지만,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 메꾸는 것엔 소모된 에너지가 많을 것이다.

    밀키웨이의 회복 능력은, 회복시킨 대상의 회복력을 억지로 끌어올려 사용하기도 하니까.

    말하자면, 정대수는 지금 진짜 환자처럼 정신이 핑글핑글 돌고 어지러울 거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이 회의실까지 왔다는 건…?

    “내가 도와주지.”

    “…내가?”

    퀘이사의 살벌한 목소리에 다시 말투가 바뀌는 정대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경한 그룹과의 일전.”

    정대수는 경한그룹의 비서실장이었고, 경한그룹에서 일어나는 비리란 비리는 모두 알고 있을 터.

    정대수가 도움을 준다면, 경한그룹의 검은 속내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젠, 마지막 일전을 준비해야 한다.

    *     *     *

    “송!!!! 태!!!! 일이!!!!!!”

    경한 타워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사대희의 목소리에, 송태일 실장은 서둘러 사대희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사대희는 들고 있던 신문을 송태일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쫙!

    분명 신문지로 맞았는데도 송태일의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응?”

    송태일은 허겁지겁 신문을 받아 들어 기사를 살펴보았다.

    기사에는 경한그룹이 몰래 저지른 비리에 대한 의혹과, 구체적인 정황이 적혀있었다.

    “이 새끼들 뭔데? 왜 갑자기 이런 기사를 내는 거야? 송실장 얘네한테 제대로 대우 안 해준 거야 , 뭐야?”

    “아… 아닙니다. 분명 제대로….”

    “아니긴 뭐가 아니야! 관리를 똑바로 못했으니 이런 기사가 난 거 아니야, 어?”

    송태일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당장 나가서 이 새끼들이 어디서 뒷돈 받아서 이런 일 벌이는 건지 확실하게 알아 와. 다른 데선 쓸데없는 잡음 나지 않게 관리도 하고!”

    “네… 네. 알겠습니다.”

    송태일은 코를 부여잡고 급하게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정대수… 이 새끼….”

    이때의 이야기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기사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정대수밖에 없다.

    설마 했는데, 놀랍게도 정대수는 머리의 폭탄이 터졌음에도 살아남은 것이다.

    폭탄의 gps와 통신이 꺼졌을 때, 분명 함께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것도 다 다크 카이저 때문이겠지.”

    사대희에겐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

    이 사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허접한 슈트를 입은 광대라고만 생각해 내버려 뒀었다.

    그때의 다크 카이저는 높이 올라갈 수 없는 히어로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경단. 희미하게 켜져 있는 촛불 같은 히어로.

    그것이 바로 다크 카이저의 인상이었다.

    하나, 최근에 본 다크 카이저는 달랐다.

    예전의 허접한 자경단이 보이지 않았다. 희미했던 촛불은, 이젠 활활 불타는 장작불처럼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빛을 내는 히어로였다면, 사대희는 가차 없이 다크 카이저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렸을 터였다.

    처음으로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틀린 것이다.

    송태일에게 괜히 화풀이 하긴 했지만, 다크 카이저는 송태일이 상대할 수 있을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다크 카이저는 이제 자신과 같은 높이까지 올라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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