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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22화 (222/236)
  • 222화

    흑사자(1)

    나는 고양이처럼 생긴 괴물을 두들겨 패 쓰러트린 뒤, 등을 벽에 대고 지친 숨을 몰아쉬던 중이었다.

    “헉… 헉….”

    몇 마리째의 괴물을 두들겨 잡았는지 모르겠다.

    일곱? 여덟?

    [“저는 열 마리 넘어가고 나서부터 세길 관뒀어요.”]

    제인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내게 존재하는 틈은, 단지 숨돌릴 수 있을 정도뿐.

    이 도시엔 히어로가 부족하다.

    그런 만큼, 이런 상황일수록 내가 더 많이 움직여야만 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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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H

    H

    syooom! syoom!

    허공에서 빠르게 떨어진 무언가가 내 뒤에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또 괴물인가? 아니면?

    나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자를 형상화한 검은 가면에 검은색 코트로 몸을 두른 남자, 흑사자였다.

    그리고 그 옆에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 흑표범이 그와 함께 서 있었다.

    “다크 카이저.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뭐야? 바빠죽겠는데 갑자기 너희가 왜 튀어나와?

    *     *     *

    흑사자, 정대수에게는 지금이 최적의 상황이었다.

    좁은 골목길에, 2:1의 상황이고, 다른 히어로의 백업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롯이 자신의 힘만을 이용해서 다크 카이저를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놈을 죽이기 위해 덤벼들었나?

    이름난 빌런들마저도 전부 물리치고 구금시킨 것이 바로 다크 카이저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이놈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그렇다면 이 도시의 지배자 바뀌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이 도시의 실질적 지배자는, 경한 그룹의 사대희 회장이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은 현재, 다크 카이저이다.

    다크 카이저는 슈퍼 빌런들을 쓰러트리는 수준의 히어로가 아니다.

    다른 차원의 존재와도 싸워 내쫓는, 히어로 중의 히어로, 그것이 바로 다크 카이저인 것이다.

    그런 다크 카이저를 지금, 자신이 죽이는 데 성공하게 된다면?

    그 명예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 도시, 범죄자들의 지배자가 바로 자신, 흑사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전국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퍼져나가겠지.

    그렇게 되기 위해선 먼저, 눈앞의 다크 카이저를 죽여야만 한다.

    정대수는 입을 열었다.

    “다크 카이저.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     *     *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흑사자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나를 공격해 들어온다고?

    지금처럼 내가 지치고 힘든 상황이 올 걸 알았다는 듯이? 내 위치까지 정확하게 알고서?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한다.

    그 말인즉슨, 흑사자가 이런 상황을 의도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

    그렇다면….

    【“흑사자회와 경한 그룹이 손을 잡았다, 그건가?”】

    글쎄… 그건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

    눈앞에 있는 것은, 흑사자회의 보스, 흑사자와 간부인 흑표범이다.

    원작에서는 흑사자보다 흑표범을 먼저 쓰러트리게 되는데, 나는 둘을 함께 상대하게 되는구나.

    흑표범은 신체능력자다.

    강한 신체 능력과, 동물 같은 반사신경과 감각,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

    그야말로 신체 능력자의 기본과도 같은 능력이다.

    흑사자의 능력은, 다중 염력이다.

    보통 만화같은 매체에서 염력은 기본으로 사용하는, 패시브 스킬 같은 느낌에 가까운데, 이 만화 Heroicest에선 다르다.

    염력은 정말 강력한 능력 중 하나로 손꼽힌다.

    기껏해야 돌이나 나르고 던지는 수준의 염력을 사용하는 다른 만화들과는 달리, 여기에 존재하는 염력 사용자들은 무기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칼, 총, 심지어는 수류탄 등.

    하물며, 다중 염력계의 최강자라고 불리는 흑사자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빌런이었다.

    30개가 넘는 총을 혼자서 다룰 수 있을 정도니까.

    사실상 1인 군단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다.

    본래 같았으면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내가 많이 지쳐있는 상황이기도 할뿐더러, 이 도시엔 아직도 위기에 처한 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구조 계획에 구멍이 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시야 한켠에 띄워둔 지도를 열어 확인해보았다.

    …어?

    분명 온통 빨간색이었어야 했을 지도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녹색불로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지금 상황 파악해봐. 제인.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잠시 후 내 눈앞에 두 개의 영상을 띄워주는 제인.

    하나는 데다이트가 홀로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영상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블루 래빗의 모습이었다.

    바로 얼마 전, 내가 히어로 활동을 하게 만들 순 없다고 말했던 인물들인데….

    [“모두 자신의 의지로 구조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밀키웨이님이 그걸 꼭 강조해달라고 하시네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피식 웃으며 양 주먹을 쥐었다.

    거, 참 알겠습니다.

    그제야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는질 알 수 있었다.

    나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던 빌런 집단, 킬레이븐과 같은 맥락이다.

    히어로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고, 혼자 남은 나를 죽이려는 거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흑사자는 경한그룹과 꽤 연이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경한 그룹이 자신들의 실험체를 아무 관계도 없는 빌런 집단에 내어줄 리가 없으니까.

    어쩐지 흑사자회 쪽에 합법적 밤 장사가 많더라니.

    어쩌면 흑사자회는, 경한이 눈먼 밤의 돈을 먹기 위해 만들어낸 조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나에게 있어서도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돌며 지쳐있던 몸이 기운을 내기 시작했다.

    *     *     *

    “흑사자님. 저런 잔챙이는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아니.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다. 잿빛 망토단의 라이트닝 스파크도, 강철 기사단의 그렘린도, 망령당의 미닝리스마저도. 전부 다 강자들이야. 그런 강자들을 모두 1:1로 쓰러트려 온 놈이다. 너 혼자선 안돼. 함께 내려가자.”

    흑사자회 간부, 흑표범 서하얀은 흑사자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흑사자가 이 정도까지 고평가하는 인물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흑사자는 무감정하고 무신경한 사람이었다.

    그건 누군가를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감정 없이 로봇처럼, 데이터를 분석하는 흑사자의 비인간적인 모습에 흑표범은 매번 놀라곤 했다.

    5년이 넘는 동안, 흑표범 서하얀은 단 한 번도 흑사자가 기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바로 얼마 전, 천산시 암흑가를 지배하는 범죄집단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흑사자는 그때도 기뻐하기보다는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흑표범의 눈으로 보기엔 그 조직을 무너뜨린 사람이, 다크 카이저라는 사실을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크 카이저라는 인물을 조사하면서 마치, 그가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철저하게 잡을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지금, 흑사자의 옆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던 흑표범은 알 수 있었다.

    흑사자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흥분해있었다.

    마치, 인생 최고의 적수를 만났다는 듯.

    그렇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주는 수밖에.

    ‘흥. 뭐 이런 사람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다고.’

    겉으로 보는 다크 카이저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았다.

    유치한 디자인의 슈트와 가면, 꽁꽁 싸맨 얼굴. 슬림한 몸매.

    어딜 봐도 강함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 그 자체인 히어로.

    하지만….

    흑표범은 다크 카이저의 앞에 서서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단단한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마주 선 다크 카이저는 이미 양손을 올리고 있었는데, 양손을 올린 자세만으로도 이미 그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도저히 어디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야 공격이 먹혀들어 갈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숨이… 막혀온다….’

    대치한 지 10초도 지나가지 않았는데도 등허리에 땀이 흘러내린다.

    바로 그때!

    슈우우우우욱-!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다크 카이저의 왼손 잽.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지만….

    슈우우웅!

    마치 거대한 벽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듯했다.

    피하기 위해 어디로 몸을 돌려도 왼주먹에 얻어맞게 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흑표범은 그 주먹을 피하거나 맞서는 대신, 가드를 들어 올렸다.

    쾅!

    단지 가볍게 던진 잽인데도 불구하고, 충격이 꽤 크다.

    한 번 치고 빠져나간 왼손이 다시 한번 치고 들어온다.

    슈우우우우웅-

    다시 한번 흑표범을 향해 날아드는, 거대한 벽.

    쾅!

    이게 잽이라고? 말이 돼?

    슈우우우우우우웅!

    흑표범은 세 번째 잽을 보고 나서야 벽의 왼쪽에 살짝 나 있는 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로 몸을 돌리면, 이 잽의 영향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서야 흑표범은 왼쪽으로 몸을 비틀어 잽을 피했다.

    슈우우우우웅!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다크 카이저의 주먹.

    그리고 이어지는, 본능적인 공포.

    슈와아아아아아아앙!

    마치 피하길 기다렸다는 듯, 오른손으로 뻗어지는 훅.

    지금까지의 잽이 벽과도 같았다면, 지금 뻗어지는 훅은 세찬 바람처럼 느껴졌다.

    절대 피할 수 없는, 세찬 바람.

    흑표범은 자신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BAAAAAAAAAM!

    “크… 억!”

    흑표범의 턱에 적중하는 다크 카이저의 라이트 훅.

    단 네 합을 나눠봤을 뿐이지만, 흑표범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다크 카이저의 상대가 아니다.

    압도적인 실력 차.

    이대로 갔다간 도움이 되기는커녕, 30초 이내로 땅에 등을 눕히게 생겼다.

    흑사자님은… 대체 왜 나를… 데려오셨지?

    흑사자님은 다크 카이저를 얕보지 않았다.

    훨씬 강자라고 표현했던 걸 생각하면, 흑사자님은 내가 다크 카이저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흑사자님은 자신을 왜 데리고 왔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흑표범은, 그제야 자신이 여기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흑표범은 시야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발톱을 뽑아 들고 손을 휘둘렀다.

    당연하다는 듯, 흑표범의 발톱을 자연스럽게 피해내는 다크 카이저.

    하지만, 흑표범이 노린 것은 발톱 공격이 아니었다.

    마치 표범처럼, 그대로 몸을 웅크렸던 흑표범이 다크 카이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     *     *

    뭐… 뭐야 이거?

    흑표범이 내 몸을 노리고 달라붙을 거라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순간의 판단 미스로 몸을 내어주고 말았다.

    마치 무용선수처럼 내 몸을 칭칭 감고 유연하게 엉켜 붙는 흑표범.

    “으하하하하! 역시 내가 믿고 키운 간부답구나! 말하지 않아도 내 의도를 완벽하게 읽어줬으니!”

    철커덕 철컥

    흑사자의 등 뒤로, 장전된 총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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