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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16화 (216/236)
  • 216화

    히어로를 하는 이유

    래피드 스타, 공다혁은 아이를 안고 아내를 업은 채 계속해서 앞을 향해 달렸다.

    이대로 이 도시, 천산시를 빠져나가 새로운 곳에 정착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래피드 스타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만이 꼭 손해로 남지는 않을 터였다.

    자신이 살던 집도,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도, 분명 본래보다 훨씬 큰돈을 주고 팔아넘길 수 있을 터.

    그렇게 새로 기반을 잡을 돈이 생긴다면,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이름을 가진 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히어로도, 빌런도, 범죄도, 구조도, 공다혁은 더 이상 연관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은 지금 당장은 아내와 아이를 다른 도시에 숨겨두고, 자신 혼자서 남은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새 삶을 살 준비를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달려나가고 있던 바로 그때.

    “으음… 으… 으….”

    마침 지금 깨어난 듯 아내, 가영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 깨… 깼어? 괜찮아? 몸 아픈덴 없고?”

    “난 괜찮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헉… 헉… 예전에… 그리고리… 기억나?”

    “어. 기억나지. 자기랑 엄청 오래 싸웠던 악당이잖아. 사형 선고받지 않았어?”

    “…안 죽었더라. 그리고리가 나를, 그리고 너랑 우리 아이를 노리고 왔어. 헉… 헉… 다크 카이저가 우릴 도우러 와서 겨우 탈출하고 있는…. 중… 중이야… 헉….”

    “그래서 지금 도망치고 있다고?”

    “너랑 우리 애는 지켜야할 거 아니야.”

    그 순간-

    퍽-!

    가영이 다혁의 등을 후려쳤다.

    “이 멍청아! 그리고리가 노리는 사람이 당신과 우리라면, 다크 카이저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주고 있는거잖아. 그런데 이렇게 꼴사납게 도망치면 어떻게 해?”

    “가… 가영아….”

    “내려! 내려!! 내려줘!”

    공다혁은 등에서 버둥대는 가영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내려놓고 말았다.

    “야 공다혁! 아니 래피드 스타! 돌아가! 다시 돌아가서, 다크 카이저를 도와서 맞서 싸워!”

    지금 이럴 상황이 아닌데… 래피드 스타의 적은 그리고리 한 명 뿐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이곳을 향해 엄청나게 많은 빌런이 자신의 가족을 해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보고 계속해서 히어로 활동을 하라고?

    “가영아! 난 히어로이기 이전에 너랑 결혼한 남자고, 별이의 아빠야. 나 이제 내 가족이 더 소중해. 가족이 위험한 상황에서까지 히어로 활동을 유지할 자신, 나 없어. 제발. 우리 그냥 도망치자.”

    “야 공다혁!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뭐?

    “너가 여기서 도망치고 나서, 평생 후회 안 할 자신 있냐구.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이때 돌아가서 싸웠어야 했는데 후회 안 할 자신, 정말 있는 거야?”

    다혁은 가영의 입에서 나온 말에 섣부르게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동생을 구하지 못하고 포기했다는 사실에 평생 후회했던 것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내가 아는 공다혁은 지금 이 일을 평생 두고두고 후회할걸. 공다혁. 우리, 부끄럽게 살지 말자. 은퇴할 때 은퇴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멋진 히어로였다고. 그렇게 기억에 남도록 끝까지 해보고 가자. 응?”

    부스럭.

    그렇게 말하며 가영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어 올린다.

    종이 봉투.

    공다혁이 그렇게 찾던 종이 봉투는, 아내의 품속에 있었다.

    “가. 가서 싸우고 와. 나와 별이의 영웅. 래피드 스타.”

    *     *     *

    그리고 다시, 현재.

    만신창이가 된 다크 카이저 앞에 서며, 래피드 스타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가서 싸우고 오라는 말에, 래피드 스타는 가장 먼저 호출기를 켜서 동료, 아스트로 스타즈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렸다.

    연락을 받자마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모여준 동료, 아스트로 스타즈.

    그런 아스트로 스타즈를 끌고 다크 카이저를 돕기 위해 나타난 지금.

    래피드 스타, 공다혁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내, 가영의 말대로 이대로 도망쳤다면 자신은 평생 후회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갔으리라.

    “잘 버텨주었다 다크 카이저. 이제부턴 우리가 상대하지.”

    내가, 와이프 하나는 잘 뒀다니까.

    *     *     *

    “잠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지금부터 치료할 테니까.”

    그러면서 내 팔에 손을 얹는 밀키웨이.

    밀키웨이의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내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드드득-

    갑자기 손에 힘을 주어 내 팔의 뼈를 맞추는 밀키웨이.

    “끄아아악!”

    나는 꼴사납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어머. 미안해요. 뼈가 어긋난 채로 회복되면 덧날 수가 있어서.”

    깜짝 놀란 내가 노려보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밀키웨이.

    “미… 미리 말 좀 해줄 수도 있지 않았나?”

    “죄송해요. 저기 전투상황을 지켜보다 보니 그만.”

    밀키웨이의 그 말에 나도 눈을 돌려 전황을 살펴보았다.

    퀘이사와 슈팅노바, 페이퍼백이 그리고리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리는 내가 눈앞에서 싸울 때도 큰 덩치였지만, 멀리서 보니까 훨씬 커 보인다.

    그리고리의 눈앞에 있는 히어로들이 전부 작은 체구의 히어로들인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 쳐도 진짜 엄청 크네.

    눈앞에서 펼쳐지는 히어로들의 공격.

    빠르게 움직이는 페이퍼백의 인피니티 체인이 그리고리를 묶고, 퀘이사의 불꽃이 그리고리를 태우고, 슈팅노바의 총탄이 그리고리를 두들긴다.

    다만.

    히어로들의 화려한 공격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지만, 그리고리에게 큰 타격이 되고 있진 않은 듯 보였다.

    자신을 묶고 있는 인피니티 체인을 끊어내고 허공을 날고 있는 퀘이사를 낚아채 바닥에 내팽개치는 그리고리.

    그리곤 움직이고 있던 페이퍼백을 손으로 잡아내 슈팅 노바의 총탄이 날아오는 곳 앞에 방패처럼 내 세운다.

    뭐야 저거? 괴물 아니야? 예전에 페이퍼백은 어떻게 저런 애를 잡아넣었대?

    “다크 카이저! 움직이지 말아요! 움직이면 치료가 더 늦어져요!”

    밀키웨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질책한다.

    나도 모르게 긴장한 탓에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스터. 일단은 치료를 다 받고, 싸움은 그 이후로 생각하자구요.”]

    크윽….

    아스트로 스타즈… 조금만 버텨줘.

    *     *     *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방금 전, 자신이 갈 길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정확하게 자기 팔을 탁 잡아낸 그리고리를 보며, 래피드 스타는 경악했다.

    대체 감옥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강해져서 나온 거야?

    다행히 최대의 화력으로 사용한 자신의 능력을 통해 잡혀 있던 팔을 빼어내는 데 성공했다.

    잘못했다간 다크 카이저처럼 팔이 부러진 신세가 되었을 뻔했던 상황이다.

    압도적으로 강한 힘과 강한 피부 때문에 초 스피드 주먹질도, 인피니티 체인도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초스피드라는 강점이 아무런 쓸모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래피드 스타의 눈에,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다크 카이저의 단검이 보였다.

    사람을 크게 다치게 만들진 않을 것 같은 정도의 날 길이. 튼튼해 보이는 외양.

    빠른 속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사용한다면 충분히 강력하게 쓸 수 있을 법한 무기였지만….

    지금까지 래피드 스타가 날붙이를 쓰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었다.

    사실 공다혁에게는 날붙이 공포증이 있었다.

    동생의 사고현장을 본 이후부터 생긴 공포증인데, 그로 인해 식칼도 공구도 들 수 없어서 많은 일을 아내가 대신 해야 하고는 했다.

    그랬던 공다혁이었는데….

    다혁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다크 카이저의 단검을 덥석 주워들었다.

    지금은 공포증이고 뭐고 극복할 수 있는 건 모두 극복해야만 했다.

    손안에 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다혁을 소름끼치게 했지만….

    다혁은 쥐고 있는 단검을 꽉 말아쥔 채 느려진 시간 속을 움직였다.

    sheeek-

    sheeeek-

    sheeeeeeek-!

    짧은 시간, 순식간에 몇 번의 칼질로 그리고리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리는 소름 끼치게도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손을 뻗어 자신을 또 잡아채려고 했지만….

    한번 걸렸던 상황을 두 번이나 걸릴 만큼, 래피드 스타가 경험이 없는 히어로는 아니었다.

    래피드 스타는 자신의 능력을 불규칙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최대한 느리게, 어떨 때는 그것보단 조금 빠르게, 또 어떨 때는 그냥 평범한 속도로.

    마음 가는 대로 무작위로 변화하는 속도엔, 그리고리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리의 몸에 계속해서 새겨지기 시작하는 상처.

    하지만….

    그리고리에게 짧은 단검으로 생긴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 번 더! 한 번 더 해봐! 페이퍼백!”

    페이퍼백의 귓가에 들려오는 퀘이사의 목소리.

    “오케이. 알겠어.”

    래피드 스타는 다시 한번 단검을 고쳐 쥐고 그리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이번에야말로 잡아채고 말겠다는 듯, 공격하려는 정확한 타이밍에 래피드 스타를 잡아채기 위해 손을 뻗어오는 그리고리.

    이번엔 잡히고 말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Bang! Bang!

    멀리서 날아온 두 발의 끈적한 탄환이 그리고리의 손을 순간적으로 묶어낸다.

    그 틈을 타 몇 번의 칼질을 그리고리의 몸에 먹이고 빠지는 래피드 스타.

    그리고,

    화르르르륵!

    상처 입은 그리고리의 피부 위로 쏟아지는 퀘이사의 화염.

    치이이이익-!

    고기 타는 소리가 들리며, 상처의 재생 속도가 극도로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 방법이라면, 놈을 지치게 할 수 있다.

    쉭-!

    탕!

    치이이익-!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반복을 통해, 아스트로 스타즈는 결국 그리고리가 무릎 꿇게 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     *     *

    그리고리가 쓰러진 이후.

    래피드 스타와 가족들은 어떻게 됐냐고?

    놀랍게도 세상은 공다혁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순식간에 잊었다.

    그 뒤에 터진 연예인들의 열애설 덕분이었다.

    대배우 이빈과 성나영의 결혼 발표 소식에, 공다혁과 공다혁의 가족들에게 쏟아져 있던 관심은 순식간에 멀어지고 말았다.

    공다혁과 다혁의 가족은, 지금 가지고 있던 집과 차, 가게를 모두 처분한 뒤 다른 도시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상 은퇴하는 것이긴 하지만….

    지금껏, 수고해줬으니까.

    “왜 다들 그렇게 표정이 슬퍼? 내가 누군지 잊었어? 나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래피드 스타야. 무슨 일 터지면 말해. 순식간에 달려 도착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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