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14화 (214/236)
  • 214화

    통제(2)

    부스럭.

    “저… 가면은 벗어주시겠습니까?”

    “아. 네.”

    동행하고 있던 경찰의 말에, 다혁은 주저하며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가면을 쓰고 있는 편이 훨씬 안정적인데….

    막상 경찰과 함께 움직이려다 보니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내민 경찰의 손.

    다혁은 조금 주저하다가 들고 있던 가면을 경찰의 손 위에 얹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범죄자로서 끌려가고 계신 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재판을 받을 상황이 오긴 하겠지만… 대부분 무죄판결이 날 겁니다. 공다혁씨가 다치게 한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범죄자들이 전부니까요.”

    부스럭.

    주섬주섬 가면을 품 안에 집어넣기 시작하는 경찰.

    “그렇군요….”

    옆좌석에 앉아있는 아내가 다혁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느껴진다.

    따뜻하게 올라오는 체온 덕분에 다혁은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저희 쪽에서 관리하는 안전 가옥으로 향하는 중인데요. 일단 당분간은- 그르니까… 좀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는, 일단 거기서 생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안전 가옥이라….

    히어로 래피드 스타가 경찰의 보호를 받는 날이 올 줄이야….

    은퇴를 하면 은퇴를 했지,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옆에 앉은 가영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엄마의 품 안에 파묻혀 아무것도 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 이제 할 만큼 했어.

    정체까지 밝혀진 이상, 이제 경찰에서 무슨 요구를 하든 받아들이고 완전한 은퇴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평범한 인생을 영위하며 가족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피자집은 정리해야겠지만….

    그때였다.

    다혁은 갑작스럽게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섬뜩한 느낌!

    오랜 히어로 생활을 하며 발달한 위기 감지 능력이었다.

    다혁은 그 알 수 없는 섬뜩한 느낌을 받자마자 옆자리에 있는 아내의 머리를 잡아 눌렀다.

    dudadadadadadadada!

    “커어어억!”

    그와 동시에 차량을 향해 쏟아지는 총탄들!

    순식간에 차량은 벌집이 되었고, 앞좌석에 타고 있던 두 경찰은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운전자를 잃은 차량은 그 자리에서 두 번 빙글 돌더니 쿵- 전봇대와 부딪히는 것으로 멈췄다.

    “응애애애! 응애애애애애!”

    차량의 충돌로 인해 정신을 잃었던 공다혁이 아이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공격당했다.

    내가 이 차에 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그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정치적인 상황에 휘말린 건 아닐까?

    원래 같았다면 호위하던 경찰 차량들이 도와줄 차례라고 생각했지만….

    dudadadada!

    Bang!Bang!Bang!Bang!

    총탄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봐선, 여기까지 신경 써주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멀쩡하다. 옆자리의 아내는 기절한 듯 보였다.

    다혁은 앞자리 좌석의 경찰들을 살펴보았다.

    한 명은 총탄에 맞아 즉사. 그 옆자리에 앉아있던 경찰은 사고로 인해 사망한 것처럼 보였다.

    다혁은 경찰에게 가면을 건네준 것을 후회했다. 가면을 건네주지 않았다면, 이들이 죽지 않게 도와줄 수 있었을지도 몰랐으니까.

    방금 경찰이 품속에 넣은 가면을 되찾아야 하는데….

    다혁이 앞좌석에 앉은 경찰의 몸을 뒤지려던 찰나, 무심코 바라본 백미러로, 다혁은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ting!

    어디선가 발사된 총탄이 타고 있던 경찰차의 백미러를 부쉈다.

    경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다혁은 다시 몸을 웅크리고 주저앉았다.

    방금으로 놈들의 목적이 확실해졌다.

    놈들의 목적은 바로 나, 래피드 스타다.

    *     *     *

    래피드 스타, 공다혁이 히어로 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거의 십여 년 전의 이야기다.

    공다혁은 눈앞에서 여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살릴 수 있을 만한 상황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공다혁은 여동생을 구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구하려는 것을 포기했다.

    숨이 너무 찼고, 고통스러웠으며, 자신의 육체능력으론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그 앞까지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공다혁은 능력을 유지하는 것을 포기했다.

    눈앞에서 자신의 동생이 차에 치여 쓰러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동생을 구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단련되지 않은 육체 탓에 동생을 구할 수 없게 된 거다.

    그때 이후로 공다혁은 자괴감에 파묻히고 말았다.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의지력이 부족해 자신의 동생을 죽게 한 셈이니까.

    그날 이후로 공다혁은 히어로가 되었다.

    멋진 가면을 써 얼굴을 가릴 면목이 없어 종이봉투에 구멍을 뚫고 얼굴을 가렸다.

    동생을 지킬 수 없었던 것 때문에 슬펐던 것만큼,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히어로 활동을 하다 보니, 공다혁에게 적이 생기고야 말았다.

    당시 아이들을 납치해 인신매매를 주로 하던 ‘저지데블’이라는 집단이 있었다.

    아이들의 장기를 노리고 아이들을 납치해 해외로 팔아넘기는 놈들이었고, 공다혁은 그놈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꽤 오랜 싸움 끝에, 공다혁은 저지데블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쩌면 그들 중 죄질이 약한 몇몇은 감옥에서 나왔을 정도로.

    하지만… 방금 공다혁과 눈이 마주친 빌런, ‘그리고리’는 달랐다.

    놈의 손에 죽은 사람만 수십이 넘어갈 거고, 놈이 시켜서 죽은 사람까지 치면 수백은 될 터였다.

    그런 놈이 어떻게 벌써?

    “응애애애애! 응애애애애애애!”

    생각에 잠겨있던 다혁을 아이의 울음소리가 깨웠다.

    아니, 지금은 오래 생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다혁은 품 안에 있는, 다크 카이저 호출버튼을 꾹 눌렀다.

    “여보. 가영아. 일어나봐. 정신 차려. 괜찮아?”

    이런 제길.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하긴,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정도니… 아직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엔 무리인 모양이다.

    일단은 아내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들었다.

    “쉬… 옳지… 옳지… 괜찮아… 괜찮아….”

    아이도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알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울음소리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단 아이와 아내를 살리는 것부터 생각하자.

    그러기 위해선 먼저 몸을 지킬 무기가 필요하다.

    일단은 가면을 대체 할 수 있을 만한 종이봉투가 있는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안타깝게도 경찰차 안에는 종이봉투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경찰의 품속을 뒤져 가면을 꺼내 보았지만….

    이미 경찰의 피에 흥건하게 적셔진 종이봉투는 얼굴에 뒤집어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혁은 앞 좌석에 앉아있던 경찰들이 차고 있는 총을 뽑았다.

    리볼버.

    탄창을 열어 확인해보니, 담겨 있는 실탄은 총 6발.

    총이 두 자루니까… 총 12발의 총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바로 그때.

    한참을 이어지던 한순간에 멈췄다.

    다혁은 그 고요 속에서 불길함을 읽었다.

    “래피드 스타. 아니, 공다혁이라고 했나? 너를 죽이기 위해 내가 지옥에서 돌아왔다.”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리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다혁의 옆엔, 사고로 인해 정신을 잃고 있는 자신의 아내와, 아직 태어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갓난아이가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제발, 제시간에 도착해서 내 아이와 아내를 구해줄 수 있길.

    다혁은 아이를 한번 꽉 안아준 다음, 다시 아내 품에 돌려놓고 총을 들어 올렸다.

    저벅, 저벅-

    이곳으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후…. 하나…. 후…. 둘…. 셋!”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감과 동시에 보이는 저지데블 특유의 양뿔이 달린 악마 가면.

    역시 놈들이 맞았다.

    더 이상의 생각은 필요가 없다.

    다혁은 일단 들고 있던 총을 발사했다.

    탕!

    그동안 히어로 활동을 위해 몸을 단련해온 보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위기 상황에 나타난다는, 초인력이 생겨났던지.

    흔들리지 않는 총구에서 나온 총탄이 정확하게 악마 가면을 쓴 놈의 이마에 박혀 들어간다.

    곧바로 총구를 돌려 다른 놈을 찾는다.

    탕!

    총탄을 발사함과 동시에 빗나갔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놈도 자신을 향해 들고 있던 총을 겨누는 것이 보인다.

    탕탕!

    재차 조준하며 다시 한번 총탄을 두 발 날린다.

    놈의 손에 쥐어져 있던 총이 튕겨 나가고, 한 발의 총탄이 심장을 꿰뚫는다.

    남은 총탄은 여덟 발.

    한 번의 빗나감으로 두 발의 총탄을 낭비한 셈이다.

    Bang!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다혁은 차 문을 뛰어넘었다.

    ping!

    차에 박혀 들어간 총탄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뱉는다.

    차 문을 넘으며 확인한 곳을 향해 총을 겨눈다.

    번쩍.

    다혁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pang!

    눈앞에서 움푹하게 파이는 차 문.

    총탄이 빗나갔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몸을 들어 올려 총을 겨누고 망설임 없이 발사한다.

    탕!

    탕!

    두 발을 쏴 한 명을 맞추는 데 성공하고 총을 바꿔든다.

    남은 총탄은 총 여섯 발.

    남은 인원은… 그리고리를 제외하고 두 명.

    놈들은 아무렇지 않게 천천히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탕!  탕!

    탕!

    세 방의 총탄을 이용해 놈의 옆을 호위하듯 걷는 적들을 쓰러트린다.

    놈은 부하가 하나하나 쓰러져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원한다면 쏴보라는 듯.

    꿀꺽.

    다혁은 침을 삼키고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겼다.

    탕!

    분명 맞아 들어간 것이 확실하건만, 놈은 마치 맞지 않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마치 괴물처럼.

    탕!

    탕!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두 발까지 전부.

    총탄을 모두 쏘아내 발사해보았지만, 놈은 상처 입지 않았다.

    저벅 저벅.

    자신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하는 그리고리를 보며, 다혁은 양 주먹을 들어 올렸다.

    놈은 육체계열 능력자 중에서도, 끝판왕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력한 수준의 육체능력을 가진 육체능력자.

    능력도 사용할 수 없는 다혁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적이 아니지만….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혁은 양 주먹을 들어 올렸다.

    “으하하하. 내가 결국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래피드 스타. 내가 네게 복수하는 이 날을, 나는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퍽!

    다혁이 휘두른 주먹이 그리고리의 복부에 틀어박힌다.

    “네가 자랑하는 그 속력이 없으니, 아무것도 아니구만 그래. 걱정하지 마라. 네 아이도, 아내도, 곧 함께 보내줄 테니까.”

    쉬이이익-

    그리고리의 거대한 주먹이 허공으로 치켜들어진 바로 그때.

    다혁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한 사내의 등을 발견했다.

    까마귀 형태를 한 검은 가면을 쓴, 망토를 두른 남자.

    “지금 여기, 나 강림.”

    바로 다크 카이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