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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01화 (201/236)
  • 201화

    불곰파(7)

    문철이 문을 열고 들어간 건물 안엔, 가까스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던 부하들이 모두 무릎 꿇은 채 제압당해 있었다.

    그 앞에는 불곰파의 대장, 강진웅이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히어로, 밀키웨이와 파란 토끼 가면을 쓴 남자가 두꺼운 코트를 두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있을 수가 없을 텐데…?”

    문철은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다.

    “문철아. 그만하면 됐다. 네가 뭘 원하는지 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아니야. 문철아. 이건 틀렸어.”

    자신의 독에 당했다고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멀쩡해보이는 정신.

    문철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돌아가고 있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말았다.

    브루트라는 놈들이, 히어로와 손잡고 자신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렇게 멀쩡하게 치료를 받게 된 것도, 히어로가 치료해준 탓이겠지.

    “문철아.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냐!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어! 네가 사용하는 방법으론 평생 가야 우리 브루트들이 범죄자라는 굴레를 벗을 수 없을 거다.”

    “틀려? 그럼 당신의 방법은 맞나? 달팽이놈들과 손을 잡고 같은 동족을 핍박하는 것? 그게 당신이 말하는 맞는 방법인가?”

    “문철아!”

    “싸우더라도 브루트들끼리 해결을 했어야지! 저들은 우리와 달라! 우리의 고통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우리를 무시하는 도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문철과 강진웅은 매번 똑같은 말싸움을 계속하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문철과 진웅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강진웅의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토끼 가면을 쓴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정말 역겨워서 못 들어주겠군.”

    “뭐라고?”

    “당신의 욕심으로 벌인 짓을, 계속해서 동족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합리화하고 있는 게 역겹다고 했다.”

    뭐? 어떻게 너희가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한번도 본 적 없는 히어로였지만, 결국 도시에서 활동하는 히어로일 터였다.

    “브루트의 고통을 모르는 너희들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브루트들 사이에, 히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브루트들 사이에는 히어로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건 히어로 활동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 수 있다는 최소한의 보장을 받지 못한 이는, 당연하지만 히어로를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그들이 보기에는 당연한 권리도, 브루트에게는 소중한 기회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 같은 기회를 받지 못한 브루트들 사이에서는, 히어로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브루트들의 고통을 모르는 도시의 달팽이들은 자신들을 평가할 자격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자격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토끼 가면을 쓰고 있던 남자가 입고 있던 코트를 열어젖혔다.

    그제야 보이는, 브루트 특유의 비틀린 골격과 털.

    “너는 동족을 위해 싸우는 열사 같은 것이 아니다. 저열한 범죄자일 뿐이지. 욕심 많고 더러운, 자신의 동족을 착취하는 배신자.”

    “웃기지 마! 내가 한 일은 모두 브루트들을 위해서 한 일이야! 나 혼자 행복하기 위해 했던 일이 아니라고! 그렇지? 그렇지 애들아? 응? 너희도 다 내 말에 동의한다고 했잖아! 어?”

    그렇게 말하며 문철은 무릎 꿇고 있는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여기 있는 부하들은, 전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니까,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분명 존재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문철이 아무리 간절하게 애원해보아도, 누구도 문철의 말에 긍정해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문철은 모든 것이 다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철은 가슴속에 숨겨뒀던 독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모두 목 안으로 들이켜버렸다.

    *    *    *

    품 안에 있던 약을 들이켜자마자 눈빛 자체가 변해버리는 문철.

    뜨득… 뜨드득….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점점 몸이 비틀려 변형하기 시작하는 문철의 모습.

    완전히 변해버린 문철은, 한 마리의 커다란 들고양이와도 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최민형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분명 처음에는 자신의 사상이 옳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점점 힘을 얻고, 세상을 바꿀 힘을 손에 넣었을 때 욕심이 덜컥 났을 테다.

    이 정도는 내가 고생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좋은 일에 힘쓰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런 조금의 마음가짐이 점점 쌓이고 쌓여 결국 사람 하나가 무너지게 된 거겠지.

    그리곤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한 채 도피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금처럼.

    “아까 나를 치료해줬던 것처럼 철이도 치료해줄 수 있겠습니까?”

    강진웅이 밀키웨이에게 물었지만.

    “진웅님은 완전히 묶여있어서 치료할 수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불가능해요. 제압을 해주셔야 할 거 같은데….”

    그 말을 듣고 강진웅이 앞으로 나섰다.

    “결국 내 잘못으로 만들어진 결과요. 내가 해결하도록 하지.”

    “안 돼요. 치료받은 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몸의 변형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어요. 지금 격한 움직임을 했다간 외려 치명상을 입으실 가능성이 높아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최민형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렇다면 내가 하도록 하지.”

    민형은 거추장스러운 코트를 벗어 던지고 파이트 자세를 취했다.

    수감생활을 하며 만들어낸 근육이 달빛을 머금었다.

    “키… 야아아아아옹!”

    “히이이이익!”

    완전히 이지를 잃은 채, 옆에 무릎 꿇려 있는 브루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는 문철.

    순간적으로 빠른 속도로 쏘아낼 수 있는 고드름을 쏴 맞출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드름은 살상력이 너무 높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얼음 광선이 더 낫겠군.’

    민형은 문철을 향해 얼음 광선을 쏘아냈다.

    Zhieeeeeeeee-!

    “키야아아아옹!”

    자신에게 쏘아지는 얼음 광선을 뒤로 펄쩍 물러나 피해는 문철.

    얼음 광선은 문철을 맞추지 못하고 애꿎은 바닥만을 꽝꽝 얼리고 말았다.

    뒤로 풀쩍 물러난 문철은 계속해서 다른 브루트들을 공격하려 했지만.

    zhieeeeeee-!

    zhieeeeeee-!

    zhieeeeeee-!

    민형이 쏘아낸 얼음 광선을 피하기 위해 변변한 공격도 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서기만을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얼음 광선의 발사 속도 자체가 빠르지는 않은 탓에 민형 또한 문철을 제대로 공격하긴 힘들었다.

    “키야아아아옹!”

    그제야 거슬리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눈을 빛내며 민형을 향해 달려오는 문철.

    상대를 다치지 않게 제압을 해야한다. 그렇다면….

    민형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문철을 향해 재차 얼음광선을 쏘아냈다.

    zhieeeeeeeee-!

    “키야아아아옹!”

    이까짓 게 별것이냐는 듯, 간단하게 펄쩍펄쩍 뛰어가며 민형을 향해 달려 들어오는 문철.

    민형은 점프해서 달려드는 문철의 발 밑을 향해 얼음 광선을 내뿜었다.

    zhieeeeeee-!

    Freeze!

    순식간에 꽝꽝 얼어버리는 바닥.

    “키야아아아앙!”

    바닥에 발을 디딘 문철은 꼴사나운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zhieeeeeee-

    그 위로 떨어지는 민형의 얼음 광선.

    완전히 꽁꽁 얼어버린 문철의 뒷모습을 보며, 민형은 밀키웨이에게 말했다.

    “제압됐군. 치료를 부탁하겠다.”

    터덜터덜 뒤로 돌아 자리로 돌아오는 민형.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씁씁해 보였다.

    *    *    *

    “생각보다 훨씬 빨리 상황이 정리가 되었군. 퀘이사에게 늦게 말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말이지.”

    “내가 제압한 게 아니야.”

    “음?”

    그럼 누가 제압했다는거야?

    내 표정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읽었는지, 퀘이사가 턱짓으로 파란 토끼 가면을 쓴채 멍하니 앉아있는 레드 래빗을 가르켰다.

    “내가 왔을 땐, 이미 저 사람이 장내를 완전히 정리한 뒤였어.”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땅을 바라보고 있는 레드 래빗을 바라보았다.

    조용해진 장내에서 내게 터덜터덜 걸어와 고개 숙여 인사하는 강진웅.

    “저 대신 브루트들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강진웅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저는 다크카이저, 당신이 연행해주셨으면 좋겠군요. 거대 조직의 보스가 잡혔다는 소식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 형님! 형님은 잘못한 게 없으시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형님! 잘못한 건 형님이 아니라 저흽니다! 감방에 가려면 저희가 가야지요!”

    강진웅의 말에 순식간에 시끌시끌해지는 장내.

    바로 그때, 강진웅이 몸을 일으키더니,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브루트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뭉쳐야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우리를 차별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바로 오늘, 나는 그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이 우리를 차별하고 잇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차별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이 세상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던거다.”

    강진웅의 말에 웅성대기 시작하는 브루트들.

    “우리가 뭉쳐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차별당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세상이 우리를 이해해주길 원했다면, 우리도 세상과 함께 부대끼며 적응했어야 했다. 나는 그걸 몰랐어.”

    “나 강진웅은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강진웅파의 해체를 선언한다.”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장내.

    말을 마친 강진웅은 나를 향해 고개 숙였다.

    “어떤 죄를 붙이든 모두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이 일로 다른 선량한 브루트들에겐 피해가 가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나를 향해 고개 숙이는 강진웅.

    나는 강진웅을 만류했다.

    “당신에게도 죄가 있는 것은 맞소. 하지만 지금 당장은 당신을 교도소에 보내지 않을 거요.”

    “…예? 왜?”

    “더 큰 악이 도시 안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레드 래빗이 말하길, 경한그룹은 강력한 빌런들을 사형시킨 척한 뒤 그들을 빼돌려 악독한 인체 실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강진웅 같은 강력한 빌런을 교도소로 보내는 것은, 경한 그룹에게 또 다른 무기를 쥐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강진웅이 재판을 받는 것은, 도시 안에 끼어있는 악의 무리들을 모두 물리치고 난 뒤가 되어야만 했다.

    “그전까지는, 우리가 관리하는 안전가옥 안에 머물러주셔야겠소.”

    나는 담담하게 내 계획에 대해 강진웅에게 말했다.

    “…내가 생각이 바뀌어 탈출을 시도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이런 제안을 하시는 겁니까?”

    나는 강진웅의 말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럼 그땐 또다시 당신들을 잡으러 가겠지. 그게 내가 할 일이니까.”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강진웅.

    “네. 알겠습니다. 당신의 생각대로 하도록 하죠.”

    나는 레드래빗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들었다.

    놈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죽이기 위해 어떤 일까지 했었는지.

    그리고 고스트 카이저에 대한 정체까지.

    레드 래빗은 경한그룹의 후계자를 공격한 채 이곳으로 왔다.

    이대로 감옥으로 보냈다간, 죗값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경한그룹을 배신한 분풀이를 당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레드 래빗. 죗값은 내가 도시 안의 악을 모두 정리 한 뒤, 그 이후에 받는 걸로 하지.”

    나는 레드 래빗에게 그렇게 말을 남기며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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