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00화 (200/236)

200화

불곰파(6)

눈앞의 히어로를 보며, 문철은 조금 당황했다.

문철이 자랑하는 동물적 감각을 뚫고 들어와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대체 언제? 어떻게?

히어로가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에 문철은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다크 카이저… 분명 보통 히어로는 아니군. 갑자기 왜 흑사자회에서 기를 쓰고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하겠어.’

도시에 있는 빌런들은 다크 카이저와 부딪힐 일이 많았을 터.

그들 모두 자신보다 일찍 다크 카이저의 실력을 알아차렸던 것이리라.

“지옥의 악마가 오면 모를까, 너 같은 달팽이들의 히어로가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거든.”

“지옥의 악마 대신 안부를 전하러 왔거든. 지옥에서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고 하는군.”

여유롭게 자신을 향해 농담을 던지는 다크 카이저.

문철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놈이 왜 나를 찾아온 거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문철은, 방금 비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흑사자회가 자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말.

그제야 문철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달팽이 놈들이 우릴 타겟으로 넘겼군.’

도시의 달팽이 놈들이 보기에 지금은 브루트들을 정리하기 정말 좋은 기회다.

두 파벌로 나뉘어 내전을 하고 있는 브루트들을, 너희에게 필요한 걸 주겠다는 말로 설득한 뒤 히어로들을 이용해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리라.

결국 자신의 눈앞에 있는 히어로도 브루트가 아닌 한 명의 슈페리어다.

브루트들을 먼저 처리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놈이 있는 곳은 문철이 사용하는 사무실이다.

강진웅에게서 사무실을 빼앗은 뒤, 문철은 습격을 대비해 장치를 하나 만들어 두었다.

그걸 사무실까지 쳐들어온 히어로에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역시 세상사 준비해둬서 나쁠 건 없다.

문철은 앉아 있던 의자 밑의 버튼을 누르기 위해 손가락을 슬쩍 움직였다.

하지만, 마치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신의 손을 잡아채는 다크 카이저.

쌔액- 퍽!

총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며 얼굴이 꺾인다.

문철은 다크 카이저가 뻗은 주먹에 맞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쌔액-뻑-! 씨익-팍!

기다렸다는 듯 연타로 틀어박히는 다크 카이저의 손과 발.

“윽, 이 자식이…!”

하지만 문철도 브루트들 사이에서 꽤 굴러먹은 몸.

문철은 다크 카이저의 손을 피하기보다, 역으로 달려들었다.

팍- 팍- 팍!

달라붙은 자신을 떼어내기 위해 다크 카이저의 손발이 날아들었지만, 아까 전에 맞았던 것보다는 훨씬 위력이 약해진 상태.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문철은 그대로 입을 벌렸다.

송곳니가 어둠속에서 번쩍, 빛을 발했다.

문철은 입을 열린 그대로 다크 카이저의 어깨를 이빨로 물어뜯었다.

“윽!”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다크 카이저의 손에 힘이 빠진다.

기회였다.

동물적 감각으로 느끼기에, 지금 이 건물 안에는 다크 카이저 말고도 또 다른 히어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크 카이저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뒤따라온 동료들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고 도망칠 방법을 찾는 것이 나으리라.

문철은 그대로 손목을 비틀어 빼며 의자 밑의 버튼을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지이이이잉-

벽에 숨겨져있던 공간이 열리며사무실 내부에서 쾌쾌한 냄새가 풍겨져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물원에서나 맡을 수 있는, 쾌쾌한 동물의 변 냄새.

“으르르르르….”

“그르르르르….”

“애들아, 식사 시간이다.”

문철은 곧바로 창문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    *    *

나는 창문 바깥으로 뛰어내리는 문철을 잡으려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으르르르.”

“그르르르르….”

문철이 버튼을 누르자, 숨겨져 있던 벽에서 호랑이를 닮은 브루트와 곰을 닮은 브루트가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모양새가 그다지 보기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놈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놈을 쫓기는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진짜 자신들을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몸을 웅크린 채 나를 바라보는 두 브루트.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게 진짜 브루트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놈이 할 짓이냐?

“크으으으아아앙!”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향해 달려드는 호랑이 브루트.

한숨을 내쉬며 호랑이 브루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커어어어엉!”

뻗은 주먹에 호랑이가 나가떨어지기 무섭게 내게 앞발을 휘둘러 오는 곰 브루트.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다.

그렇다면 위력도 그렇게 강하지 않겠지.

나는 놈이 휘두르는 앞발을 왼손을 들어올려 막아냈다.

캉!

아머 모드를 적용한 탓인지 앞발과 부딪힌 팔에서 불꽃이 확 하고 튀어 올랐다.

“……!”

슈트 위에 선명히 새겨지는, 곰 발톱 자국.

이거, 방어 못 하고 맞았으면 내 몸이 찢어졌겠는데?

[“마스터. 곰은 원래 사람을 찢어요.”]

그래. 진짜 한방이라도 제대로 맞았다간 몸 성치 않겠다.

쒸이익-

또 한번 뻗어지는 곰의 앞발.

다행히 위력에 비해 곰의 공격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흔들어 놈의 발톱을 피했다.

쉭-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곰 발톱.

곰 발톱을 피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몸을 들어 올려 체중을 완전히 실은 무릎을 곰의 복부에 박아 넣는다.

“꾸어어어어엉!”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나는 곰.

“크아아아아앙!”

곰의 발톱을 피하길 기다렸다는 듯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호랑이.

나는 내 머리를 집어삼키려는 호랑이의 입을 가까스로 잡아 버틸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양손에 힘을 주어 나를 물려는 호랑이의 입을 천천히 벌리기 시작했다.

“끄… 끄아아아아악!”

“크어어어어엉!”

입을 강제로 벌리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호랑이의 입 안에 나는 재차 주먹을 꽂아 넣어주었다.

펑!

목 안에 직접적으로 주먹을 꽂아 넣어준 탓인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나며 쓰러지는 호랑이.

호랑이를 쓰러트리는 사이 다시 한번 내게 뻗어지는 곰의 앞발을 잡아채며, 나는 곰의 등 뒤로 올라탔다.

“쿠엉! 쿠어어엉!”

깜짝 놀란 곰이 몸을 들어 올린다.

몸을 일으킨 놈의 덩치가 얼마나 컸는지, 내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하지만 덩치 따위에 쫄 필요야 없지.

나는 그대로 곰의 목을 붙잡고 조르기 시작했다.

“쿠어어어어엉!”

쾅!

쿵!

놈은 내게 목을 잡힌 탓에 놀란 듯 사무실의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어댔지만.

쿵!

결국 곰 브루트마저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지고야 말았다.

“후우… 흐으… 제인… 그놈 도망쳤다고 밀키웨이에게 연락해. 그쪽으로 가고 있을 거라고.”

*    *    *

문철은 브루트로 태어난 자기 사신이 싫었다.

네온 사인과 불이 켜진 세상을 등진 채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야하는 브루트들의 삶이 싫었다.

그래서 문철은 도시를 동경했다.

도시에서 많은 돈을 벌어 남들 못지않은 멋진 삶을 살고 싶었다.

동물을 닮은 브루트가 아닌, 도시에 사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철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시로 나갔다.

하지만 도시는 문철의 생각보다 냉혹했다.

브루트들의 임금은 몇 달이고 체불되었고, 길에 나간 브루트들은 매일 같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문철도 마찬가지였다.

문철은 처음으로 가진 직장에서 6개월의 임금 체불을 당했지만, 돈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나앉아야만 했다.

문철은 결국, 싸구려 브루트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브루트와 슈페리어는 둘 다 뮤턴트 인자의 변이로 인해 태어난 존재들이다.

하지만, 브루트와 슈페리어가 가진 뮤턴트 인자의 차이는, 고작 0.1퍼센트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그 차이만으로도 슈페리어와 브루트는 서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불합리했다.

처음에는 담배, 그다음에는 술, 마지막으로는 마약.

그러던 어느 날, 문철은 싸구려 마약 중 하나가 브루트들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시의 달팽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는 싸구려 마약이, 브루트들에게는 이성을 잃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문철은, 자신이 원하던 도시의 인간은 될 수 없어도, 동물 중의 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헉… 헉….”

문철은 정신없이 거리 위를 내달렸다.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서 그런지 몸 여기저기가 아려왔다.

문철은 고통을 꾹 참으며 품 안에서 전화를 꺼내 들었다.

지금은 이 정도 고통에 엄살 부릴 때는 아니었으니까.

문철은 가장 먼저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박광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지금은 통화를 받을 수 없어….”>

이 새끼 지금 같은 상황에서 뭘 하고 자빠져 있는 거야?

또 술을 마시다 퍼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재범, 경택, 병헌, 일성….

많은 곳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철은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야 말았다.

뭐야? 벌써 모두 당한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문철이 듣기에, 아스트로 스타즈는 항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싸우는 히어로들이 그렇게 많이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수많은 수하가 한 번에 통신이 두절되었다는 사실이, 문철은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문철형님?”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을까? 결국 가까스로 누군가와 통화가 연결되고야 말았다.

“현승이? 현승이냐? 거긴 아무일도 없어?”

“…네? 이… 일이요? 무슨 일이요?”

다행히 별일을 겪지 않은 자신의 부하들이 존재하고 있긴 했던 것이다.

“내 말 잘 들어. 히어로들이 우릴 공격해왔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남은 인원끼리 뭉쳐야만 해. 연락되는 인원 모두 모아서 집결해라. 우리를 공격해오는 외적들과 싸워 이겨야 하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냐?”

“…네 알겠습니다, 형님.”

“니네 가게에 모을 수 있는 인원 다 모아놔라. 나 지금 거기로 가고 있으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약까지 이용한다면, 당장의 상황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모은, 숨겨놓은 돈을 가지고 도시로 도망쳐 살아가면 될 터였다.

돈이 있다면 아무리 브루트라도 무시당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현승의 가게까지 도착한 문철은, 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문철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의 부하들이 아니었다.

현승의 가게 너머에 있는 것은, 분명 자신이 마약을 이용해 폐인으로 만들었던 브루트들의 왕, 강진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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