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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97화 (197/236)
  • 197화

    불곰파(3)

    쉬이이이익-

    순식간에 환풍기로 빨려들어간 독가스는 안전 가옥의 내부로 빠르게 퍼졌다.

    고태용은 먼저 들여보낸 작은 바퀴벌레의 감각에 집중하여 내부를 계속해서 살피고 있었다.

    “어디서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냄새? 무슨 냄새?”

    “콜… 콜록… 콜록… 콜록….”

    털썩!

    환풍구에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여성 히어로 중 한명이 쓰러졌다.

    “어? 뭐… 뭐야?”

    “다들 코막아! 도… 독가스야!”

    “문! 문을 열어야 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히어로들이 놀라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커… 커허헉… 억….”

    털썩.

    “으… 으윽… 윽….”

    쿵!

    오히려 몸을 움직인 탓에 독이 빠르게 퍼져버린 모양인지,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이이익-!

    “으윽!”

    자신이 키운 벌레에게도 독가스가 먹혀든 모양이다.

    갑자기 밀려오는 고통에 고태용은 바퀴벌레와 공유하고 있던 감각을 끊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들킨 거야?”

    “독가스가 내 벌레까지 죽였어.”

    “하하! 거 미안하게 됐군.”

    “뭐야? 그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거야?”

    스핏파이어의 질문에 고태용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가스 공격에 대한 방비는 되어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부 가스를 들이마셨어. 내가 보기엔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더군.”

    “들이마신 게 확실하다면, 절대 버틸 수 없지. 내 독은 호플리스 님도 인정한 극독이란 말이지. 으하하하! 이봐! 흑사자회의 탐색견! 빨리 문이나 열어!”

    “네! 넵. 알겠습니다.”

    자신감에 넘치는 웃음을 터트리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는 스모커.

    “너희 뭐하나? 안 따라오고?”

    뒤를 돌아보며 능글거리는 스모커의 모습을 보며 스핏 파이어는 눈살을 찌푸렸다.

    좁은 건물 내부에 독가스가 퍼져있는데 다른 이들이 들어갈 수 있을리 없지 않은가?

    따라 들어오지 못하는 스핏 파이어를 도발하는 것이리라.

    “아하하하! 미안하군! 생각해보니 나 외엔 들어올 수 없겠구만!”

    “제발 입 좀 닫고 해야 할 일만 하면 안 되겠냐? 응?”

    “왜? 내가 네놈보다 더 많은 공을 세운 게 질투라도 나나 보지? 결국 네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잖아? 응?”

    그래. 어디 이번 일이 끝나면 두고 보자.

    “으하하하하!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군! 아주 속이 시원하구만 그래!”

    다행히 단순한 스모커는 그 정도로 만족한 듯 건물 밑을 확인하기 위해 밑으로 내려갔다.

    “아하하하하하! 다들 제대로 쓰러졌구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걸 보니까 내 독을 버티지 못하고 다들 즉사해버린 모양이야!”

    열린 문을 통해 들려오는 스모커의 목소리.

    스핏 파이어는 그 말을 듣고 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래? 거기에 다크 카이저가 있나?”

    “어디 보자… 그래! 가장 구석에 쓰러져있군! 아하하하! 내가 다크 카이저를 쓰러트리게 되다니!”

    그 말을 듣자마자 스핏 파이어는 씨익 웃으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BOOOOOooooosh!

    스핏 파이어의 입에서 뿜어져나가는 불길.

    내부에서 일어나는 폭발!

    “이런 미친! 너 뭐하는 짓이야?”

    옆에서 지켜보던 고태용이 깜짝 놀라서 스핏 파이어를 돌아보았다.

    “뭐 어때? 너도 저 새끼 계속 깝죽대는 거 열받지 않았나? 표정에서 다 보였는데.”

    정말 다크 카이저가 쓰러진 게 확실하다면, 이젠 더 이상 스모커는 필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원래 적대하고 있던 상대 조직의 간부다. 다크 카이저와 함께 저놈의 목까지 가지고 간다면 흑사자님께서 더욱더 기뻐하실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때.

    쿵쾅쿵쾅!

    “너어어어 이 새끼 뒤졌어!!”

    밑에서 커다란 고함소리와 함께 스모커가 그 커다란 덩치를 쿵쾅대며 바깥으로 뛰쳐나오더니 스핏 파이어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내가 너가 나한테 이런 개수작 부릴 때를 대비해서 방호복을 준비했지. 넌 오늘 뒤졌다. 여기서 결판을 보자.”

    “오냐. 나도 바라던 바다. 오늘 네 목숨까지 거둬가 주마.”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분열.

    고요 속에 두 빌런의 싸움 소리가 커져가는 가운데.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    *    *

    “정말 다크 카이저가 생각한대로 되었네.”

    “대단해요 다크 카이저!”

    어… 이 정도까지 제대로 먹힐 거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말이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퀘이사와 밀키웨이를 보며 나는 쑥스러움에 뒷머리가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 긁으면 없어보이겠지? 참아야지.

    외부의 대화를 계속해서 듣고 있던 나는, 놈들이 우리를 찾아내기 전에 비밀 통로를 통해 일행을 이끌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내부에는 우리를 대신할 홀로그램을 만들어둔 채.

    움직이고 조종할 수 있는 정도까지 발전한 다크 카이저의 홀로그램 능력은, 이젠 얼핏 봐서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나, 제인, 벨제뷔트가 집중해서 조종해야 한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움직일 수 있는 홀로그램은 총 세 명.

    한 명은 제대로 조종하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넷 중에 셋만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면 눈치채기 힘들 테니까.

    심지어 벌레에게 공유받은 감각으로는 진짜 움직이는 사람들과의 차이를 느끼기 더 힘들었을 터였다.

    홀로그램이 쓰러졌다고 생각하면, 애초에 우리를 쓰러트리기 위해 손을 잡은 저들은, 더 이상 동맹을 맺을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기들끼리 다투게 되겠지.

    이것이 내 계획이었던 것은 맞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먹혀 들어가긴 했다.

    우리를 쓰러트렸다고 생각하자마자 저렇게 사활을 걸고 싸울 줄은 몰랐으니까.

    BOOOOOM!

    밑에서 또다시 독가스와 충돌한 불꽃이 폭발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마스터. 평소에도 견원지간이었다고 하니까요. 스핏 파이어 입장에선 날로 먹는 상황이다 생각이 들었겠죠. 히어로들과 더불어 자신의 숙적도 제거할 수 있으니까.”]

    “죽어! 죽어! 죽어! 죽으라고!”

    “어머. 이제 슬슬 말려야하지 않을까요? 저러다 사람 하나 죽겠는데요?”

    밀키웨이의 말에 나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전투가 거의 끝이 났는지 바닥에 쓰러진 스핏 파이어를 스모커가 양 주먹이 피투성이가 될 만큼 두들겨 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스핏 파이어가 이길 줄 알았더니 또 꼭 상성대로만 결말이 나는 건 아니군.

    입고 온 방염복 때문인가?

    하지만 스모커도 멀쩡하게 보이진 않았다. 저런 상황이라면 별다른 힘을 쓰지 않고도 놈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머머. 평소에 대체 얼마나 감정이 쌓여 있던 거래요? 진짜 살 떨리네.”]

    제인이 이 정도까지 말할 정도면 슬슬 말리는 게 맞겠네.

    “슬슬 상황을 정리하도록 하지.”

    “어어. 쟨 그냥 도망친다. 난 쟤 잡아 올게!”

    도망치는 고태용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퀘이사가 나를 보았다.

    마치 내게 허락을 구하는 느낌처럼.

    나는 나도 모르게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어… 그… 혼자 괜찮겠소?”

    “뭐? 날 뭘로 보는 거야? 저 정도 빌런은 충분히 쓰러트리고도 남지. 잘 봐. 내가 지금 갈 테니까.”

    어? 그런 거 아닌데. 그냥 갑자기 나한테 물어보길래 조금 당황했던건데.

    뭐라고 대답해주려던 사이, 몸에 불꽃을 만들어낸 퀘이사가 밑으로 뛰어내렸다.

    골목을 밝은 빛으로 물들이며 날아가는 퀘이사를 보며, 나도 스핏 파이어를 쓰러트린 스모커를 제압하기 위해 건물에서 뛰어 내렸다.

    *    *    *

    고태용은 순식간에 일어난 싸움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로 물러났다.

    아까부터 계속 불안하더라니, 일이 끝나기 무섭게 두 빌런이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스모커의 말이 맞다면, 히어로들이 쓰러진 건 확실할 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끝났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보고를 올리는 걸 더 우선으로 해야 할 터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흑사자회가 우리에게 제안한 보상을 받아야 할 테니까.

    고태용은 자신의 털에 숨어있던 벌레를 띄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화르르륵!

    자신의 머리 위쪽에서 느껴지는 열기, 그리고 방금까지 어두웠던 길을 밝히는 환한 빛.

    고태용은 이런 상황이 어떨 때 발생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히어로, 퀘이사가 올 때.’

    조금 전, 분명 안전 가옥 안에서 퀘이사가 쓰러져있는 것을 봤을 텐데?

    ‘멍청한 놈들끼리 싸우느라 실패했군.’

    퀘이사의 능력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얼핏 불꽃에서 힘을 충전한다고 들었던 것도 같았다.

    아까의 폭발에서 새롭게 힘을 충전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퍼억!

    빛의 존재를 깨닫자마자 자신의 몸에 부딪혀오는 충격을 느끼며 고태용은 생각했다.

    아무튼, 결국 자신은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했다면 실패를 보고해야만 한다. 그래야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고태용은 보고를 위해 벌레들을 사방으로 흩어보내려고 했지만….

    “어딜? 뭘 하려는지 몰라도 그렇게 내버려 둘 거 같아?”

    화르르륵!

    “끄아아아악!”

    순식간에 자신의 벌레들이 불타는 것을 보며 고태용은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실패해선 안 됐는데….

    고태용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었다.

    *    *    *

    【“틀려먹었다. 이놈은 멍청해서 아는 게 없어. 머릿속을 들여다보니 나까지 멍청해지는 기분이군.”】

    스모커의 정신을 들여다보고 돌아온 벨제뷔트의 평가였다.

    생김새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지만, 스모커는 진짜 그럴만하게 생기긴 했다.

    내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준 것도, 얘가 가장 멍청하게 감정적으로 행동해 준 덕분이기도 하니까.

    이 녀석이 그렇게까지 감정적으로 스핏 파이어를 도발하지 않았더라면, 스핏 파이어도 건물 밑으로 내려간 놈을 공격할 생각까지는 안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흑사자회에서 이 일을 함께해주는 대가로 망령당에게 꽤 큰 돈을 제안한 모양이다.”】

    뭐? 처음에 들었던 이야기랑 좀 다른데?

    그제야 스모커가 그렇게 건방지게 구는데도 불구하고 스핏 파이어가 꾹 참았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냥 히어로들이 거슬리니까 먼저 치워버리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흑사자회가 우리를 꼭 쓰러트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스핏 파이어를 심문한다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핏 파이어의 정신 속으로 벨제뷔트를 집어 넣어보았지만….

    “끄아아아악! 끄아아악! 끄아아악!”

    벨제뷔트가 정신 속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이 빠져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스핏 파이어.

    뭐야 벨제뷔트? 얘 갑자기 왜 이래?

    【“이쪽은… 너무 두들겨 맞은 탓인지 아예 정신을 들여다볼 수가 없군. 지금 당장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곤란하구만. 흑사자회 쪽이 가장 중요한 키인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지.

    그럼 마지막으로….

    나는 퀘이사가 잡아온 고태용을 바라보았다.

    이전에도 불곰파 쪽은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정보를 얻을 수 없었지.

    망령당이 돈을 받았다면, 얘네도 무언가 대가를 받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고태용. 내 눈을 똑바로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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