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동맹(3)
밀키 웨이가 사라졌다.
왜? 어째서? 언제부터?
생각이 자꾸 불길한 쪽으로 빠진다.
[“10분 전을 마지막으로 호출기의 발신이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발신지는, 타투 밀키웨이. 마지막으로… 구조 요청을 시도했었군요.”]
제인의 말은 내 생각에 쐐기를 박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조요청 후 끊어진 호출기의 발신.
결국 내 머릿속 상상은 불길하게 흘러가고야 만다.
얼마 전, 메두사와의 전투가 끝난 뒤 밀키웨이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힘을 거의 다 잃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대응할 힘이 부족했으리라.
예전 가게가 불타며 방비책들도 대부분 쓸모가 없게 변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의 습격을 받았으니, 밀키웨이가 대응할 수 없었을 수밖에.
안일했다.
밀키웨이를 그렇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됐는데.
최소한의 예방조치는 취해두었어야 했다.
【“정신 차려라 나강림! 아직 늦지 않았다! 후회하기엔 아직 일러!”】
벨제뷔트의 목소리가 자책의 늪에 빠지려는 나를 끌어 올렸다.
그래. 아직 포기하긴 일렀다. 고작 10여 분이 지났을 뿐.
지금부터라도 찾으러 간다면 늦지 않을지도 모른다.
때마침 타이밍 좋게 나를 공격해온 빌런들이 있었다.
타이밍상, 같은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겠지.
그렇다면, 이놈들을 심문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불안감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지금 당장은 나를 붙잡고 있는 강성한을 떼어놔야만 했다.
화르륵!
“흐앗!”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나를 붙잡고 있는 강성한에게 불꽃을 내뿜는 퀘이사.
불꽃의 위력이 꽤 강했다. 튼튼한 육체를 가진 강성한을 의식하고 사용한 불꽃인 듯했다.
강성한은 어쩔 수 없이 내 팔을 놓고 방패를 만들어내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강성한이 아무리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정도의 불꽃을 맨몸으로 막아내긴 힘들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그사이에 잠시 틈이 만들어졌다.
“다크 카이저!”
동시에 내 이름을 부르는 퀘이사.
아까까지 골목길을 환히 비추던 퀘이사의 빛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나를 구하기 위해 꽤 많은 불꽃을 사용해버린 모양이다.
현재 슈트의 모드는 스피드.
곧바로 강성한의 뒤쪽에 숨어있던 레드리퍼에게 쏘아지듯 돌진한다.
페이퍼 백이나 스카 페이스 같은 스피드 스터 수준은 아니지만, 충분히 빠른 속도.
하지만.
휙-
“어딜!”
돌진해서 내뻗은 태클을, 레드 리퍼는 몸을 돌려 손쉽게 피해냈다.
레드 리퍼도 결국 신체 계열 능력자. 기본적인 육체 강화 능력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를 향해 뻗어지는 레드 리퍼의 손.
“죽어!”
Sheeeek-!
날카로운 것으로 무언가를 베어내는 소리가 내 귓가에 스며든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서늘하고 섬뜩한 고통.
분명 맨손이었는데?
슬쩍 바라본 손에는 나이프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나있다.
무기가 단지 산성액 하나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곧바로 레드 리퍼에게 반격해 들어가려고 했지만.
“흐으으읍!”
퀘이사의 공격으로 튕겨져 나갔던 스크리쳐가 다시 숨을 들이켜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했던 연계 공격의 일환이다. 내게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승산을 가져가려는 걸 테지.
하지만, 레드 리퍼에게 날카로운 손톱이 있었던 것처럼, 내 신체 강화 능력도 단지 힘 하나만을 늘려주는 것이 아니다.
단단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강성한에게 사용하기에는 파괴력이 부족하지만, 레드 리퍼에게는 괜찮을 터였다.
꽈아악-
슈트가 내 양 팔을 움켜쥐는 것이 느껴진다.
신체강화-스피드.
“으아아아아아아!”
그런 내게 스크리쳐의 음파 공격이 들어왔지만.
BabababababaK!
내 양 주먹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다섯 번의 유효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놀라 눈을 부릅뜨는 레드 리퍼의 표정을 보며 음파를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Boooooooooosh!
그럴 필요도 없이, 뒤따라 뿜어진 퀘이사의 화염이 음파와 부딪혔다.
BOOOOOM!
골목길에 쌓여있던 먼지가 공중으로 펑! 하고 뿜어져 오른다.
뿜어져 오른 먼지를 뒤따라 일어나는 연기가 순간 눈을 가렸지만, 나는 예전부터 눈을 가린 채 하는 싸움에 익숙한 편이다.
오른눈의 능력을 이용해 연기를 헤치고 나가 스크리쳐의 위치를 찾는다.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숨을 들이켜보려고 했지만.
“큭…케엑!”
갑자기 일어난 먼지와 연기 탓에 숨을 들이킬 수 없게 된 모양이었다.
장기인 공격을 할 수 없다면, 이번엔 우리 차례지.
놈은 나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했고, 공격을 준비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먼지를 뚫고 스크리쳐의 바로 앞까지 돌진해 들어간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다리를 구부렸다.
꽈아아악-
팔다리의 근육을 쥐어짜는 듯한 슈트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그대로 튕기듯 일어나 주먹을 뻗어 올렸다.
CRASH!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먼지가 가라앉자, 서 있는 사람은 나와 퀘이사, 그리고 강성한 뿐이었다.
쓰러진 레드 리퍼의 바로 앞에 서 있는 퀘이사의 모습이 보였다.
나처럼 먼지가 골목을 덮은 틈을 타 레드 리퍼를 기습하는 데 성공했던 모양이다.
남은 것은, 단 한명.
하지만, 놈은 지금 쓰러트린 놈들보다 훨씬 단단하고 끈덕진 놈이다.
어쩌면, 이 셋 중 가장 강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놈과의 전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어?”
퀘이사의 입에서 힘빠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골목의 상황을 살피던 강성한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골목길을 빠져나가 도망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놈은 내버려 두고, 일단 이놈들부터 심문해보도록 하지.”
본래라면 놈을 쫓아가 마무리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부족했다.
사라진 밀키웨이의 행방을 알아내야만 하니까.
내가 하려는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서 불꽃을 만들어내는 퀘이사.
“심문엔 자신 없지만, 어쩔 수 없지. 밀키 언니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양손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퀘이사의 얼굴에 음영을 만든다.
분노한 탓에 무표정한 얼굴에 그늘이 만들어지니 괜히 무섭게 보이네.
“아니 됐소. 심문은 내가 하도록 하지.”
“하지만, 시간이 없어. 내 불꽃이라면 순식간에 입을 열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그런 불꽃으로 심문하는 거 히어로가 해도 되는 거 맞아? 육체에 고문의 흔적이 남잖아.
“밀키웨이의 실종으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알겠소. 하지만, 지금은 나를 믿어주시오.”
진정해. 퀘이사. 너까지 멘탈이 흔들리면 위험하단 말이야.
다행히 내 마음이 전해진 듯, 양손의 불꽃을 꺼트리며 퀘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알겠어. 다크 카이저라면 믿을 수 있어.”
묘하게 태도가 더 살가워졌네.
하긴 최근 퀘이사와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적이 꽤 많아졌지.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거나.
슬슬 동료 의식이 생길만도 한 시간이었다.
아저씨들이랑은 참 순식간에 친해졌는데… 역시 여자애라 그런지 친해지기 어렵구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절해 있던 스크리쳐를 집어 들었다.
찰싹 찰싹-
두어 번 뺨을 쳐보았지만, 제대로 기절한 탓인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스크리쳐.
내가 너무 심했나?
찰싹! 찰싹!
그렇다고 살살 깨워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조금 더 강하게 놈의 뺨을 두드려주었다.
이번엔 꽤 세긴 했는지, 순식간에 놈의 뺨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래도 안 일어나?
찰! 싹! 찰! 싹!
“끄아아아아아악! 그만! 그만!”
그제서야 눈을 뜨고 뺨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지르는 스크리쳐.
사실, 첫 번째로 뺨을 때렸을 때 정신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손가락이 꿈틀거렸거든.
그래도 기절한 척 일어나지 않으려 하길래 괘씸죄로 조금 더 패줬다.
어차피 일어 날거면 덜 맞고 일어날 것이지.
“그만. 그만. 알겠어. 알겠다고. 말할게.”
무서우니까 무슨 말이든 물어봐 주세요.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스크리쳐의 얼굴이 보였지만, 나는 놈에게 직접적으로 질문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한다고 거짓말을 안한다는 보장도 없고, 아는 걸 불게 하려면 훨씬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내 눈을 똑바로 봐라. 스크리쳐.”
벨제뷔트. 네 차례다.
【“알겠다. 알아낼 수 있는 건 모두 털어오도록 하지.”】
* * *
내 주먹과 벨제뷔트의 정신공격의 콜라보로, 우리는 놈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알 수 있었지만….
【“이 녀석들 간부가 맞긴 한 건가? 아는 게 너무 없는데.”】
실질적으로 놈들이 아는 내용은 많지 않았다.
먼저 동맹의 손길을 내민 것은 흑사자회.
놈들은 가장 먼저 공동의 적이나 마찬가지인 히어로를 먼저 처리하자고 제안해온 듯 했다.
당연하지만 지금껏 서로 앙숙으로 지내던 범죄 집단끼리.
‘저 히어로부터 처리하고 그 다음에 우리끼리 싸웁시다. 공동의 적부터 처리하는 것이 맞지 않겠소?’
하는 말에 덥썩 손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전쟁까지 벌여가며 서로 죽고 죽이던 놈들인데 그런 말을 쉽게 믿어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흑사자회는 그런 불곰파와 망령당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들이 앞장서서 우리를 공격하겠다고 제안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공격하는 것에 불곰파와 망령당은 간부들을 지원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제안한거다.
그동안 아스트로 스타즈와 부딪히며 인력을 많이 소모했던 망령당과 불곰파에겐 달콤한 제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나를 공격하는 이유를 아는 것은 흑사자회라는 의미인데….
“흐흐흑… 흑… 흑… 죄송해요. 제발…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제발….”
막상 스크리쳐가 알고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그냥 위에서 시키니까 무조건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시키는 대로만 했던 모양이었다.
말은 간부라지만 이놈은 사실상 행동대장 같은 일을 맡고 있는 잔챙이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다행히 밀키웨이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조금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릴 공격해 온 인력의 대부분의 흑사자회라면, 밀키웨이가 끌려간 곳도 흑사자회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아무리 아스트로 스타즈가 천산시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히어로라고 하지만, 지금의 공격은 조금 뜬금없는 느낌이 있었다.
혹시, 우리의 인력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 은퇴한 히어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망령당 쪽에서도 아는 건 없는 모양이다. 그냥 대신 일을 해준다니까 사람 몇 명만 보내주자. 이 정도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레드 리퍼의 정신에서 돌아온 벨제뷔트가 내게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강성한도 똑같이 아는 건 별로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때.
삐-삐-삐-
벨트에 메어둔 호출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마스터. 슈팅노바의 호출 요청입니다. 연결할까요?”]
우리가 공격 당했다면, 슈팅 노바도 공격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그래서 연락해온 거겠지.
어. 연결해줘.
<“밀키웨이의 발신이 끊겼는데, 혹시 그쪽에 무슨일이라도 생겼나?”>
“그래. 밀키웨이가 흑사자회의 공격에 당해 실종된 상태다. 지금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야.”
<“그렇다면, 내가 밀키웨이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보고 있거든.”>
삐빅-
통신을 통해 사진이 하나 전송되어온다.
멀리서 찍은 듯한 사진에는, 빌런들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는 밀키웨이 사진이 찍혀있었다.
<“위치 찍어줄게. 도우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