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90화 (190/236)
  • 190화

    고마워

    토마호크 용병단의 실비아는 기절한 자신의 동료들, 에어 워커와 스틸러를 태운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토마호크가 아무리 강한 용병단이라고 해도, 지금의 인원 수준으로는, 한 나라의 경찰 특공대와 군대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weeeeeooooo-weeeeeeoooo-

    자신들을 쫓아오던 사이렌 소리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실비아는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부하는 몇을 잃었지만, 핵심 멤버의 대부분은 살아남았다.

    이 정도면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지금은 되도록, 최대한 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오랜 시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용병일을 해왔던 실비아는 알 수 있었다.

    이 도시는, 미쳤다.

    초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실비아에게는 알 수 없는 감각이 있었다.

    실비아는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지금껏 실비아의 경고를 무시하고 일을 맡았던 사람들은, 결국 모두 그 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실비아는 그 안에서 자신들이 무얼 보았든, 무얼 겪었든 더 이상 아무것에도 엮이지 않고 이 도시를 빠져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걸 느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들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리라.

    다시는 이 도시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토마호크 용병단은 천산시를 떠났다.

    *    *    *

    바스락-

    정대수는 읽고 있던 신문을 접어 내려 놓았다.

    <슈퍼 빌런 스카 페이스는 대체 왜 고등학교를 습격했는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일이, 자신의 딸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습격하는 일이라니.’

    놈이 너무 일을 크게 저지른 나머지 완전히 덮을 순 없었지만, 가까스로 경한그룹과의 고리만큼은 지워낼 수 있었다.

    ‘끝까지 나를 애먹이며 가는군. 그 친구.’

    정대수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정대수가 스카 페이스를 위해 만들어 놓았던 서류가 한철 준비되어 있었다.

    스카 페이스의 신상 정보와 함께, 그가 찾아 헤매던, 아내와 딸의 행방과 관련된 서류였다.

    워낙에 자신의 정보를 잘 숨긴 놈이라 시간이 꽤 걸렸던 것인데, 막상 조사를 끝내놓고 나니 놈이 혼자 덜컥 죽어버린 것이다.

    잠시 이 정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정대수는, 그냥 그대로 서류를 세절기 안으로 넣어버렸다.

    스카 페이스가 죽어버린 이상, 이젠 쓸모없는 정보가 되어버렸으니까.

    지이이이이잉-

    정대수가 찾아내기 위해 몇 개월 동안 고생했던 서류는 순식간에 한 줌의 부스러기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    *    *

    <“일주일 전, 슈퍼 빌런인 스카 페이스와 그가 고용한 용병들의 습격을 받았던 천산 고등학교가 다시 등교를 시작한다는 소식입니다. 서희수 기자입니다”>

    티비의 화면이 바뀐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수아에게 익숙한 천산 고등학교의 정문이었다.

    <“…천산 고등학교는 일주일간 학교를 청소하고, 깨진 유리창을 갈아치우는 정도만으로도 다시 수업을 재개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겪었던 일에 비해 경미한 피해입니다.”>

    다시 화면이 바뀐다. 나오는 것은 경찰 특공대가 훈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무장한 빌런들의 습격을 받고도 경미한 피해만 입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경찰 특공대의 빠른 대응 때문이었습니다.”>

    학교 습격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 며칠간 강수아는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

    자신의 정체가 인터넷에 올라가고, 자신과 할머니,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에게 위협이 닥치는 꿈이었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깜짝 놀라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몇 시간씩 자신의 이름과 히어로 네임을 검색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하지만, 근 일주일간 자신의 이름과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지난번에 벌어졌던 사건을 막아낸 히어로들의 이름에조차 히어로 퀘이사의 이름은 올라가지 않았다.

    다크 카이저가 빌런들을 막아내며 싸우는 사이, 경찰 특공대의 빠른 대처로 인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식의 기사들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강수아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자신은 슈트도 입지 않고 맨 얼굴로 빌런과 싸웠다.

    심지어는 히어로 특유의 포즈와 등장 대사까지 읊었던 것이다.

    정체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규약까지 알려질 수 있는, 아주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음에도 강수아의 이름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정체가 밝혀지는 즉시 몸을 숨겼을테지만….

    “걱정하지 마. 할머님은 내가 잘 모시고 있을 테니까.”

    “응. 잘 부탁해 언니.”

    “…그래. 몸 조심해.”

    할머니는 잠시간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밀키웨이에서 지내기로 하셨다.

    강수아는 마지막으로 오늘 단 하루, 학교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 혼자서라면, 거기서 무슨 일을 겪더라도 빠져나올 수 있을 터였다.

    자신 혼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면, 자신의 편이 되어줄 강림이도, 소연이도, 유진이도 있었다.

    그들이 도와준다면 자신의 몸 하나 빼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수아는 황서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 언니.”

    *    *    *

    어쩌면, 등굣길에서부터 자신의 정체를 아는 친구들이 몰려와 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어댈지도 모른다.

    아니,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기자들의 셔터세례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자신 때문에 교도소에 간 적 있는 빌런이 습격해올지도 모른다.

    수아는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등굣길에 발을 내디뎠지만….

    놀랍게도 강림이와 소연이와 함께하는, 평소와도 똑같은 등굣길이었다.

    아니, 한 가지가 다른 게 있다면….

    “야 너 대체 뭐하냐?”

    “나강림. 넌 신경 끄셔. 네가 몰라도 되는 일이 하나 있으니까.”

    “네가 앞에서 그렇게 나대는데 어떻게 신경을 끄냐?”

    자신을 걱정한 유진이가 지각하지 않고 함께 일찍 등교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어쩐지 주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아마 유진이 때문일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수아의 손을, 옆에 서 있던 소연이가 조용히 잡아주었다.

    “수아야. 걱정하지 마. 우리가 있으니까.”

    “응. 그래.”

    “자 여기 내 손도 잡아.”

    “아니… 대체 무슨 일이냐니까? 너네 나 왕따시키냐?”

    자신의 손을 꼭 잡아주는 친구들, 소연이와 유진이의 온기를 느끼며 수아는 긴장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코너를 돌 때마다 무언가가 튀어나올까 걱정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수아는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아이들도, 셔터를 눌러대는 기자들도, 자신을 죽이려는 빌런들도 없었다.

    정체를 밝힐 때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들과도 몇 명 마주했지만, 그들은 수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아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지어줄 뿐.

    “유진아. 부탁할게.”

    “걱정 붙들어 매. 소연아… 수아야 이제 내 손 꽉 잡아.”

    교실에 도착해 자신의 자리에 앉을 때까지, 수아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은, 평범한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잠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던 수아가, 수업 준비를 하기 위해 책상 밑을 바라보았을 때, 강수아는 발견할 수 있었다.

    <고마워.>

    책상 구석에 쓰여있는 짧은 한 문장.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    *    *

    그런 문구를 발견한 것은 준석이도 마찬가지였다.

    <고마웠다. 박준석.>

    준석은 그 글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손으로 슥슥 만져보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꿈이 아니네.’

    “…으음, 아마 이젠 정말, 다시는 히어로 활동을 하지 못할 거에요. 능력도 돌아오지 않을 거구요. 미안해요.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네요.”

    사건 이후, 밀키웨이에게 다시 찾아갔을 때 들었던 말이다.

    그때 자신이 나섰던 것을 전혀 후회하진 않지만, 그래도 울적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하물며 자신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까지 알려진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감정은, 자신의 책상에 새겨져 있는 이 문구를 보는 순간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단지 이 한마디만을 위해서 그런 일을 했던 것처럼.

    준석은 주변을 슬쩍 살펴본 뒤,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몰래 사진을 한 장 찰칵 찍었다.

    *    *    *

    얼마 전, 슈퍼 빌런인 스카 페이스와 그가 고용한 용병들의 습격을 받았던 천산 고등학교는 단 일주일 만에 다시 학교를 개방하였다.

    천산 고등학교는 일주일간 학교를 청소하고, 깨진 유리창을 갈아치우는 정도만으로도 다시 수업을 재개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할 수 있었다.

    겪었던 일에 비해 경미한 피해였다.

    다행히 경찰 특공대의 빠른 대처로 인해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고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실질적으로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자신들을 도우러 나타난 히어로들 덕분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사건의 공이 경찰 특공대에게 돌아간 것은,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비밀로 했기 때문이다.

    실은 천산 고등학교의 관계자들과 학생 중 눈치 빠른 이들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아무리 히어로들이 빠르다고 해도 대낮에 일어난 습격 사건에 이 정도로 빠르게 대처해 올 순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건에 대응할 수 있었던 건, 학교를 다니는 관계자였기 때문이리라.

    그걸 본 사람들도, 눈치 빠르게 눈치챈 사람들도, 모두 입을 열지 않고 다물었다.

    자신들을 구해준 영웅들을 위해서.

    *    *    *

    오늘도 나, 나 강림은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다시 천산시의 전투를 위해 나섰다.

    이제 꽤 좋아졌다곤 해도, 아직도 이 도시에는 범죄 집단이 셋이나 남아 있었으니까.

    불곰파와 망령당, 흑사자회까지.

    불곰파는 지난번 총기 난사 이후로 몸을 사리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던 탓이리라.

    아니면 조직 내부에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밀키웨이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망령당도 마찬가지로 얼마 전,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로 조용히 몸을 사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영양가가 떨어진 몇 개의 마약 공장을 넘겨준 뒤 조용히 몸을 사리다, 다시 활동을 재개할 터였다.

    그리고 흑사자회는….

    “어디야? 방금 여기로 들어왔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니까.”

    최근 들어, 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를 쫓아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아니, 얘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실질적으로 흑사자회랑 부딪힌 건 진짜 얼마 안 되는데.

    물론 언젠가 차례가 되면 흑사자회도 처리하려 마음먹고 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악질적인 테러를 시작한 불곰파와, 마약을 팔며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는 망령당보다는 범죄의 질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지.

    덤벼오면 상대해주는 수밖에.

    나는 숨어 있던 옥상 위에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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