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81화 (181/236)
  • 181화

    화해하는 법(1)

    괴물의 뱃속에서 유진을 꺼내는 데 성공한 소연은 가장 먼저 안도감을 느꼈다.

    몇 되지 않는 자신의 친구, 유진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유진이 크게 다칠 뻔한 것은 소연, 바로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산성액 속에서 십여 분을 버틴 유진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며, 소연은 그 다음 생각에 잠겼다.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언뜻 봐도 유진의 능력은 보통이 아닌 상태였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몸, 산성액체를 뿜어내는 괴물의 뱃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육체 능력.

    이대로 병원, 혹은 다른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다가는 유진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유진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소연도 스스로가 가진 능력을 비밀로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능력을 숨긴채 살아가고 있는 친구, 강림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 자신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 또한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뻗친 소연은, 유진의 능력을 공개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깨어난 유진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

    그래서 소연은, 조용히 유진을 자신의 공간 안으로만 집어넣었다.

    깨어난 유진에게 유진이 겪은 일에 대해 설명해주고, 원한다면 다크 카이저나 밀키웨이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거라고 설명해주었지만….

    “아니야. 당분간은… 내가 알아서 할게. 조금…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그리고 그 사건이 끝난 후, 일주일이 지났다.

    *    *    *

    “다녀오겠습니다.”

    DUDADADADADADA!

    대문을 열고 나와 학교를 향해 달려가며 유진은, 핸드폰을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했다.

    지각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평소 같으면 학교까지 달려가기에 무리가 있는 시간이었지만, 유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겪었던 사건으로 인해 육체 계열 슈페리어로서의 능력을 각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인 소연의 말에 따르면, 새롭게 각성한 자신의 능력은 경화 능력이다.

    ‘누가 오빠 동생 아니랄까 봐, 비슷한 능력을 각성하게 되었단 말이지.’

    소연이 말하길, 보석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고 하던데, 유진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확인한 적이 없었다.

    능력의 통제가, 자신의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능력자들이 능력을 사용할 땐, 규약이라는 것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자신의 능력에도 규약이 있을지도 모를 터였다.

    한참을 달려 나가던 유진은,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하였다.

    남은 시간은, 1분.

    저 멀리서 천천히 교문이 닫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세계는, 초능력이 존재하기 때문인지 학교에도 여러 가지 보안을 위한 조치가 취해져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높은 담이 둘러져 있다는 부분이었다. 유진이 예전에 살던 세계와는 다르게, 이 세계 학교의 담은 모두 높다.

    교문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문이 닫히면 예외 없이 지각이다.

    학교의 담을 넘는다든지 하는 방법으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슬아슬했나….

    너무 생각에 깊게 빠져있던 모양이었다. 유진은 조금 더 속력을 내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DUDADADADADADA!

    속력을 낸 덕분에 다행히 문이 닫히기 직전, 유진은 교문 안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었다.

    교문 안으로 들어선 유진은, 가장 먼저 자신을 보고 껄껄 웃고 있는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했다.

    “이야. 도유진. 오늘도 아슬아슬했네.”

    “아저씨 안녕! 좋은 아침이에요.”

    “달리기가 꽤 빨라졌는데? 경찰대 기준은 확실히 넘겠어.”

    “아 정말요? 이따가 점심시간에 한번 제대로 확인해주실래요? 지금은 바빠서.”

    “오냐. 빨리 들어가라. 교문 넘었어도 담임선생님이 지각이라고 하면 지각인 거 알지?”

    “넵. 알겠슴다~”

    이 세계의 학교 경비아저씨는, 대부분 은퇴한 경찰이나 군인들이다.

    초능력자들의 공격을 대응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같은 초능력자여야만 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니까.

    잦은 지각으로 경비팀과 안면을 익혀놓은 유진은 특유의 넉살 좋은 성격 탓에 경비 아저씨들에게 꽤 귀염을 받고 있었다.

    복도를 조심스럽게 달려 교실 문 앞에 도착한 도유진은, 조심스럽게 문 앞에 서서 귀를 가져다 대었다.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담임 선생님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내가 이겼다.’

    바로 그때.

    드르륵-

    교실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서려던 유진은,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나타난 인물을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    *    *

    지난 메두사 사건 당시, 정신지배를 당하고 있던 퀘이사 강수아는 다크 카이저와 다크 스코프의 도움으로 정신지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강수아는 항상 자신을 지켜주던 다크 카이저가 실은, 자신의 학교 친구 나강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꺼웠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곤 하지만, 강수아는 겨우 17살의 어린 나이였으니까.

    앞으로 혼자 견뎌낼 필요가 없다. 홀로 외로울 필요가 없다.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친한 친구가 존재한다는 것, 심지어 그 친구가 자신을 항상 지켜주었던 다크 카이저라는 것은, 지쳐있던 수아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떨어지던 상황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기절한 다크 카이저를 옥상까지 옮겨온 강수아는, 자신이 알아낸 이 사실을 모두 비밀로 묻어두기로 결심했다.

    수아는 자신의 친구들, 소연과 유진이 강림이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친구들이 강림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강림이와 둘만의 시간을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수아는,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이후로부터, 수아는 함께 하던 등굣길에서 매일같이 조금 더 일찍 등교하기 시작했다.

    소연이와 강림이 단 둘이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그래서 둘이 가까운 사이가 된다면, 그때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매일 같이 30분이나 일찍 와서 참고서를 펼치고 있었건만, 도저히 한 문제도 풀어낼 수 없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고개를 들어올린 바로 그 순간.

    “앗. 강수아 안녕. 뭐야? 요즘 자꾸 빨리 오네. 같이 등교했으면 좋았을 건데.”

    얘도 양반은 못될 애야.

    자신의 생각을 듣고 있었다는 듯 나타난 강림을 보며, 수아는 다급히 풀어지려는 표정을 굳혔다.

    “요즘 점수가 자꾸 떨어져서, 일찍 등교하고 있어. 시험 공부 좀 하려고.”

    “어? 그래? 그럼 소연이랑 나도 30분씩 일찍 등교하지 뭐. 같이 공부도 하고 좋네. 이따가 소연이랑도 이야기 해보자.”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는 나강림.

    참. 사람 속도 모르고.

    “됐어. 잠이나 더 자. 요즘 너 피곤해 보이더라.”

    수아는 그런 강림과 긴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디 가? 곧 선생님 오실 텐데?”

    “화장실 좀 다녀올게.”

    드르륵.

    교실문 앞으로 가 문을 연 수아의 눈 앞엔 유진이 서 있었다.

    *    *    *

    ‘하필이면 얘랑 또 마주치네.’

    유진이 문을 열었을 때 앞에 서있던 사람은, 유진의 친구 강수아였다.

    ‘뭐라고 하지? 안녕 수아야? 아니, 이건 너무 나답지 않은데. 야 강수아 저리 비켜. 이건 화해도 안 했는데 너무 세지 않나.’

    수아를 구하기 위해 다크 카이저까지 찾아가 도와달라고 말한 적이 있던 유진이었지만, 아직까지 수아와 화해하진 못했다.

    히어로들은 약속대로 수아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지만, 유진은 수아를 구출해 낼 때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했으니까.

    수아가 돌아오면 다시 한번 사과해야지, 마음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이 실제로 다시 수아를 만났을 땐, 결국 사과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아니, 사과는커녕,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했었다.

    수아의 할머니에게서 들은 수아의 과거 이야기가, 너무나도 아프고 슬펐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수아가 자신을 향해 화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도유진, 자신이라도 친한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은 불편한 과거를 들켰다면 화가 났을 테니까.

    어떻게 해야, 사과할 수 있을까?

    한편, 도유진과 마주친 강수아도 마찬가지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유진과 소연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자신이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친구들을 향해 손을 쓴 것도 자신이 먼저였음에도, 친구들은 자신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정신지배의 영향이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그런 친구들에게 화를 내고 아픈 말을 했다는 것이, 수아는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수아는 최근, 강림이에게 자신이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던 중이었다.

    자신의 친구들이, 강림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에도.

    강수아는 그런 상황에서 유진과 소연에게 사과를 할 자신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교문 앞에서 둘이 얼어붙어 있던 바로 그 순간.

    “너희 여기 앞에 서서 뭐 하는 거야? 빨리 교실 안으로 들어가라. 출석 부를 테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진의 뒤에서 나타난 담임선생님 덕분에 둘의 대치 상황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

    담임 선생님이 오는 것을 본 수아가 뒤로 물러났고, 유진은 그 덕분에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으니까.

    ‘인사라도 해볼 수 있었는데….’

    유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나는 교실 문 앞에 서서 얼어붙은 유진과 수아를 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쟤네 아직도 화해 못 했나 보네.

    어쩐지 수아가 30분씩 일찍 등교하더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내 친구들 사이에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생겼다는 걸,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최근, 강수아가 소연이와 유진이를 피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여자애들끼리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일주일 동안은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길게 어색함이 지속된다면 내가 나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인.

    [“…네?”]

    이 상황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견 없니?

    [“언제는 저는 AI라서 여자가 아니라면서요.”]

    그래도 내가 이런 거 물어볼 사람이 너 말고 누가 있겠어? 좀 도와주라아~

    내 애교 섞인 말에, 제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참나… 알겠어요. 그럼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요.”]

    *    *    *

    그런 천산 고등학교를 내려다보고 있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상처 투성이인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빌런, 스카 페이스였다.

    “학교를 공격하는 것은 취향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이번 습격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된다면, 어차피 모두 없던 일이 될 터였다.

    제대로 된 준비가 완료되기 위해선, 오늘의 습격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오늘로서, 나의 목표가 달성 될 수 있기를.

    스카 페이스는 준비를 마무리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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