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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77화 (177/236)
  • 177화

    정신지배(4)

    “꺄아아악! 소연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도유진의 비명소리에, 한소연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방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소연의 눈에, 커다란 살덩어리에서 빠져나온 손이 도유진의 허리를 낚아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데다이트!”

    소연이 유진을 구하기 위해 빠르게 통로를 열고, 데다이트의 손을 소환해 보았지만….

    꿀꺽!

    살덩어리의 괴물은, 순식간에 도유진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 모습을 본 소연의 두 눈안에서 무언가 번쩍, 타오른다.

    “내 친구 돌려내!”

    *    *    *

    “꺄아아악! 소연아!”

    갑작스럽게 나타난 비명소리와 동시에,

    문을 뚫고 튀어나온 그림자가 나를 덥쳐왔다.

    황색 화염을 머금고 있는 히어로, 내 친구 강수아였다.

    나를 그대로 붙잡은 채 공중 위로 끌고 올라가는 퀘이사.

    “다크 카이저!”

    밀키웨이가 비명처럼 부르는 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아니. 차라리 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완전한 1:1 상황이라면 오른눈의 능력으로 수아를 정신 차리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닿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살점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SUIT MOD

    FIRE FIGHTER

    이제는 생각만으로 변형되는 슈트의 모드가 화염 내성을 가진 파이어 파이터 모드로 빠르게 변화한다.

    “퀘이사! 정신차려!”

    어쩌면 이렇게 가까운 곳이라면 오른눈의 능력을 이용해 정신 안으로 들어가볼 수도 있겠다 싶어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Swish!

    오른눈의 능력을 사용하기도 전에 나를 향해 날아드는 퀘이사의 주먹.

    잡힌 채로 공중에 있지 않았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공중 위였다.

    Pob

    나는 가까스로 날아오는 주먹을 손을 뻗어 틀어막았다.

    마치 내가 막아내길 기다렸다는 듯 재차 뻗어지는 퀘이사의 연속 공격.

    Swish!

    Pob!

    Klam!

    Bof!

    공중에서 순식간에 이어지는 공방.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틈틈이 오른눈의 능력을 이용해 퀘이사의 정신에 침입을 시도해보았지만, 나와 완전히 눈을 마주칠 생각을 하지 않는 퀘이사의 정신에 침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투 상황에서 제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히어로 활동을 해온 데다, 공중전을 주력으로 해온 퀘이사라서 그런지, 상대가 온전한 정신이 아님에도 쉽게 승기를 잡기 힘들었다.

    그래도 공중전을 계속해서 지속하는 편이 낫지.

    오히려 지난번처럼 무언가를 태울 수 있는 지상에서 주변에 피해를 입히며 싸우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좋은 상황일지도 몰랐다.

    허공에서는 퀘이사의 화염이 영원하지 않을테니까.

    화르르륵!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길 기다렸다는 듯, 내 몸으로 퀘이사의 화염이 직격한다.

    슈트 자체의 화염내성으로 어떻게든 버티는데 성공했지만, 점점 눈 앞의 홀로그램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많이 불리해. 흑염의 날개를 펼쳐라 나강림! 그래야 조금이라도 승산이 생겨!”】

    그건 안돼!

    기본적으로 퀘이사의 전투 능력은 화려하고 눈에 띈다. 어쩌면 벌써 공중에서 무언가 번쩍거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다크 카이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흑염의 날개를 펼친다는 건, 지금 공중에서 전투상황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행히 퀘이사가 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색깔의 화염을 몸에 두르고 있어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적을 테지만,

    최대한 내가 흑염을 사용하지 않고 전투를 마무리해야만 상황이 더 커지지 않고 끝맺을 수 있을터였다.

    나는 흑염의 날개를 펼치는 대신 등 뒤의 망토를 다크 윙으로 변형하기 시작했다.

    *    *    *

    “여보! 저 하늘 위! 저기 봐요!”

    정학근은 아내의 말을 듣자마자 운전을 하다 말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허공 위에서는 마치 불꽃놀이 같은 노란 불빛이 펑펑 터지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위치가… 정확하게 다크 카이저님이 내게 알려준 위치다.’

    “저기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아내의 말에 정학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죠? 아직 차가 많이 막히는데….”

    아내의 말대로 도로는 정체상태였다. 커다란 트럭으로는 어떻게 해도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없을 터였다.

    섀도우 머신의 뒤쪽 한 켠에 오토바이 형태로 되어 있는 섀도우 머신이 존재한다.

    바이크 형태의 머신이라면 정체상황인 도로를 뚫고도 저곳까지 향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슈트를 입어야만 하는데….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 지금으로는 최신형 슈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정학근은 트럭의 짐칸으로 뛰어 들어갔다.

    정학근이 뛰어들어간 트럭의 짐칸에는 정학근이 가장 최초로 만들었던 다크 스코프의 슈트들이 진열되어있었다.

    일반적으로 다크 스코프의 슈트는 최신형이 될수록 더 좋은 기능을 담고 있으므로, 굳이 과거의 슈트를 입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정학근은, 새로운 슈트가 생길 때마다 매번 자신의 과거의 슈트를 정리하곤 했다.

    하지만, 정학근이 가장 처음으로 만든, 이 슈트만큼은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다.

    철커턱 텅 터러렁

    슈트에 매달려있는 철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져나온다.

    슈트를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슈트를 입고 준비할 만큼 여유가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정학근은 평상복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얼굴에만 가면을 썼다.

    그대로 바이크를 타고 뛰쳐나가려던 정학근은, 잠시 자리에 멈춰섰다.

    퀘이사가 자신에게 남겼던 메시지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충전…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자신의 위치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면, 굳이 그런 메시지를 남길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정학근은, 예전에 퀘이사와 함께 싸우며 썼던 장비를 들어 올렸다.

    *    *    *

    “내 친구 뱉어!”

    쾅!

    “돌려내!”

    쾅!

    “돌려놓으란 말이야!”

    콰광!

    알 수 없는 살덩어리는 데다이트의 주먹질을 모두 버티면서도 절대 유진을 뱉어내지 않았다.

    되려 살덩이에서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증기에 데다이트의 양팔만이 조금씩 녹아버리고 말았다.

    살덩어리의 몸 바깥으로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산성 액체가 주변 벽과 바닥을 순식간에 녹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런 괴생명체 안에 있는 유진은 그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수아를 구하겠다는 유진이를 내가 말렸더라면, 아니, 강림이가 만류했을 때 유진이를 데리고 포기했다면, 아니, 최소한 가장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만큼은 힘을 가진 자신 혼자서 해결을 시도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유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모두 자신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소연이 한참 고민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던 살덩어리의 뱃속에서, 밝은 빛줄기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    *    *

    조금 더. 조금 더 높이.

    강수아는 메두사의 정신지배 안에서도 최대한 피해를 줄일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메두사가 자신에게 내린 명령은, 단지 다크 카이저를 상대하고 있으라는 말뿐.

    그 말을 들은 강수아는 다크 카이저와 지상에서 전투하는 대신, 공중전을 택한 것이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자신은, 최소한 일반인들을 다치게 만들진 않을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다크 카이저는 계속해서 공중에서의 전투 상황을 유지해주었다.

    남은 것은… 다크 스코프가 자신이 남긴 메시지의 의도를 알아차리길 바라는 것.

    퀘이사는 다시 한번 침전하려는 자신의 정신을 억지로 붙잡아 세웠다.

    *    *    *

    꾸르륵….

    살덩이에게 집어 삼켜진 도유진은,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살아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았다.

    뱃속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점점 차오르는 액체가 도유진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니까.

    어떻게든 뱃속을 찢고 나가기 위해 주먹을 휘둘러 보기도 했고, 발길질을 해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빨로 물어뜯어 보려고까지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방법도 소연을 집어삼킨 살덩이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도유진은 자신의 머리끝까지 차오른 괴물의 소화액에 갇힌 채,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틀려먹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친구인 소연과 다르게 자신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반인이었으니까.

    도유진이 어렸을 적, 세상은 마치 도유진을 위해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도유진은 남들보다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고, 남들보다 강한 육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심지어는 남들보다 멋진 오빠까지 가지고 태어났다.

    학교에 가면 수많은 친구들이 유진과 친해지기 위해 다가왔고, 유진과 함께하고 싶어했다.

    유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됐다.

    학교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는 친구, 학교에서 가장 예쁘게 생긴 친구,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센 친구.

    자연스럽게 유진은 학교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소위 일진 무리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는 유진은, 자신이 또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멋진 세상에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유진은 세상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넓고 무서운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자신은 좁은 우물안에 갇혀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개구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티비에만 나온다고 생각했던 빌런들과 범죄들은, 생각보다 도유진의 곁에 가까이 있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일 거라 생각했던 유진은 그런 사건들에게서 도망가야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잘못된 임상실험에 당한 오빠가 도움이 필요할 때도, 마약 공장에 끌려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갔을 때에도.

    언제나 누군가에게 구출을 받을 뿐.

    용기 있고 과감한 사건들을 벌였다 한들, 유진은 언제나 구출받아야 할 일반인에 가까웠다.

    꼬르륵.

    점점 숨이 막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죽는 걸까? 나는 이대로 죽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진이 조용히 눈을 감던 바로 그때, 유진의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와 X발 도지훈. 오늘은 진짜 지는 줄 알았는데 이걸 이기네. 어떻게 이겼냐 진짜? 와 이걸 버티네.”

    “내가 항상 말했지. 포기만 안하면 어떻게든 수가 생긴다니까. 이 오빠 말 머릿속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라.”

    “참나. 잘난 척은. 알았다.”

    분명 자신의 말이 맞았지만, 자신이 한 적이 없는 말. 분명 자신의 기억이 맞았지만, 자신의 기억에는 없는 기억.

    하지만, 어쩐지 따뜻한 기억.

    도유진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부릅 떴다.

    눈을 뜬 도유진의 몸 속에서, 뮤턴트 인자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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