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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66화 (166/236)
  • 166화

    킬레이븐(4)

    다크 스코프 앞을 막고 있던 쉴드가 빠르게 접히며 다시 갑옷의 형태로 돌아온다.

    이질적인 에너지를 사용해 만들어내는 다크 카이저의 쉴드와는 다르게, 다크 스코프의 쉴드는 완전히 물리적인 영역이었다.

    쉴드가 타격을 입는다면, 그만큼 갑옷에도 타격이 들어간다.

    쉴드가 접혀 갑옷의 형태로 돌아갔지만, 입고 있는 갑옷에 타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다크 스코프가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재질로 만들어진 슈트였으나, 그렘린의 광선 한방을 막은 것만으로 30퍼센트가 넘는 타격을 입었다.

    갑옷슈트를 자동수복하는 기능까진 무리겠지만, 갑옷을 만들면서 타격이 된 부분을 등 뒤로 돌린다든지, 혹은 갑옷 파츠의 조립을 새롭게 해 몸 전체로 나눠 놓는 다던지의 방법을 통해 슈트의 피해를 분산하는 방법은 생각해 두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완성이 되어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아직 미완성인 상태였다.

    슈트의 파손 부위를 파악해 피해를 분산하는 자율AI를 만들어 슈트를 담당하게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단 며칠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슈트 갑옷의 가슴 부분이 파손이 심했다.

    최대한 상대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며 전투를 해야 할 듯싶었다.

    다크 스코프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장비부터 점검해보았다.

    전부 대인 제압용 도구들에 가까웠다.

    다크 카이저와 만난 이후부턴 파괴력과 파워에 힘을 쏟지 않았다.

    다크 카이저가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처럼, 자신도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다크 스코프가 관통력, 즉 파워를 위해 만들었던 무기가 단 하나 존재했다.

    그리고 그 무기는, 다크 스코프의 머신 한켠에 잠들어 있었다.

    일단은 먼저 머신을 이쪽으로 불러내는 것이 우선이다.

    머신을 세워놓은 곳이 그렇게 멀지는 않다. 금방 이곳까지 당도해줄 터였다.

    예전에는 손에 붙어있는 리모컨으로 조작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정되어있는 손가락 제스쳐만으로 머신을 이곳까지 불러올 수 있었다.

    “놈!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냐!”

    하지만, 다크 스코프의 앞에 있던 그렘린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퓨수수수수숭!

    그렘린의 몸에서 순식간에 미사일들이 쏟아져나온다.

    투두두두두두두!

    쏟아져나온 미사일은, 갑작스럽게 도로에서 튀어나와 다크 스코프와 그렘린의 사이를 가로막은 트럭에 맞아 쓰러진다.

    그렘린의 미사일을 맞았음에도 트럭은 꽤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구의 수납, 그리고 기동성.

    섀도우 머신은 다크 스코프가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개조한 트럭이었다.

    무게 때문에 슈트에선 사용할 수 없던 소재들을 때려 박아 개조한 트럭이었다.

    자신의 생각보단 더 오래 버텨줄 터였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크아아아아!”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차체를 들어 올려 뒤집어 밀어버리는 그렘린.

    위이이이잉-!

    벽에 기대듯 쓰러진 트럭이 애처로운 비명을 내지른다.

    “네가 사용하는 도구는 아직도 저열한 인간의 몸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인간의 기준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훨씬 더 높은 경지를 볼 수 있을 거다.”

    헛소리!

    그렘린이 도발했지만 다크 스코프는 넘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완전히 기계로 개조해버린 광인이다.

    놈이 말하는 것에 휩쓸려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트럭이 기울어져 쓰러져버렸지만, 저 안쪽에 있는 도구는 멀쩡할 터였다.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 들 수만 있다면 승산이 조금은 올라간다.

    하지만….

    지이이잉-

    그렘린의 어깨 위로 두 개의 미니건이 솟아오른다.

    “뭐 저런 걸…?!”

    중화기 수준의 무기다. 갑옷 슈트를 믿고 받아들였다간 뼈 안쪽까지 타격이 스며들 터였다.

    그렇다고 피해내기엔 날아오는 총탄의 개수가 너무 많다.

    오른팔을 뻗어낸다.

    뻗어낸 오른팔을 향해 모여든 갑옷슈트가 다시 한번 방패의 형태를 구성한다.

    순식간에 슈트로 만들어낸 방패에 총탄이 틀어박힌다.

    두두두두두!

    들어 올린 방패로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을 막으며 트럭을 향해 달려 나간다.

    “어딜!”

    날아드는 총탄 사이로 광선이 섞여 날아든다.

    총탄을 막아내는 도중 광선까지 받아낸다면, 이미 타격을 받아 너덜해진 방패가 무너질지도 몰랐다.

    들어 올린 오른손을 유지한 채로 왼쪽으로 몸을 날린다.

    지이이이잉-

    다행스럽게도 가까스로 레이저를 피해내는 데엔 성공했지만,

    “큭.”

    몸을 날리는 사이 노출된 다리에 총탄 몇 개가 박혀 든다.

    우득.

    뼈가 박살 나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느껴진다.

    쉴드의 파손률이 70퍼센트를 넘어가기 시작한다. 광선을 맞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70퍼센트를 넘어간 시점에선 더 이상 쉴드를 유지할 수 없다.

    오른손에 만들어져있던 쉴드가 천천히 접혀 슈트의 형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반파.

    사실상 갑옷으로서의 활용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부서진 갑옷이 다크 스코프의 몸 위를 덮는다.

    섀도우 머신이 바로 코앞인데….

    미니건에 맞아 부서진 다리가 움직여주지 않는다.

    부서진 다리를 대신해 팔을 들어 올린다.

    기어서라도 움직여야 했다.

    “어딜!”

    퍼억.

    그런 다크 스코프의 바로 앞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그렘린이 다크 스코프를 걷어찬다.

    “크윽.”

    걷어차인 탓에 다크 스코프와 트럭의 거리가 멀어진다.

    다시 한번 손을 뻗어 기어보려고 하지만, 한번 멀어진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꿈틀꿈틀, 다크 스코프가 뻗어낸 손가락이 경련하듯 꿈틀거린다.

    “느껴지는가? 그게 인간의 한계다. 결국 인간인 너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크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린 그렘린이 손을 뻗는다.

    “하지만, 꽤 재밌었다. 내가 만든 도구들의 허점을 찾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던 지난번의 싸움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오늘의 싸움도.”

    지이이이잉-

    그렘린의 손에서 광선이 모여든다.

    “잘가라.”

    그렘린의 손에서 광선이 뻗어 나오는 바로 그때.

    다크 스코프의 슈트 중, 파손되지 않은 부분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머리를 덮는다.

    승리를 확신한 그렘린이 방심하고 있던 바로 그때, 슈트의 피해상황을 직접 머리로 계산한 다크 스코프가 파손되지 않은 부위로 헬멧을 만들어낸 것이다.

    슈트 갑옷의 남은 내구도는, 30퍼센트.

    레이저 한방만큼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정도였다.

    탕!

    그와 동시에 다크 스코프의 손에서 굉음이 울린다.

    어느새 다크 스코프의 손에는, 긴 장총이 하나 잡혀있었다.

    섀도우 머신에는, 원하는 물건을 다크 스코프를 향해 쏘아내는 기능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크 스코프 스스로도 자신의 약점을 뼈아프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그렘린과 자신의 사이가 가려진 틈을 타 필요한 도구를 받아 품에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다크 스코프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을 당시, 처음으로 만들었던 총이다.

    당시의 다크 스코프는 단지 다크 카이저를 향한 동경심으로 히어로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하려고 마음먹었던 임무는, 저격이었다.

    브루트들을 핍박하고 브루트들을 이용해서 생체실험을 자행하는 경한병원장을 멀리서 저격해서 죽이는 것.

    그것을 위해 만들었던 총이었다.

    “어… 떻게….”

    유일하게, 사람의 신체 부위를 가지고 있는 그렘린의 머리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방심… 했나?”

    털썩.

    그렘린의 기계 몸이 서서히 옆으로 넘어진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자신하던 그렘린은, 결국 인간처럼 방심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죽여버렸나….

    자신이 죽인 것이 과연 인간인지, 로봇인지 다크 스코프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몇 개월간의 짧은 히어로 활동을, 무언가를 죽인 오늘로서 그만둬야 함을 직감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마지막까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뭐야? 다크 카이저가 아니네? 잘못 골랐잖아. 남 좋은 일만 시켜버렸구만.”

    “내가 지금 죽여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닌데, 먼저 다른 놈부터 죽이고 상대해주면 안 될까? 응?”

    자신과 상대했던 그렘린이 했던 말에는 분명, 다크 카이저를 죽이겠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 좋은 일 해버렸다는 말에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도 다크 카이저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다크 카이저도 누군가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음이 분명했다.

    다크 스코프는 허리춤을 더듬어 호출기를 들어 올렸다. 먼저 다크 카이저에게 호출을 남겨보았지만….

    ‘받지 않는다.’

    이미 싸움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터였다.

    자신이 이겼다면, 다크 카이저도 분명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 계열 슈페리어인 다크 스코프는 오늘따라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크 카이저가 지금은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크 스코프는 호출기의 버튼을 눌러 다른 히어로에게 통신을 걸었다.

    *    *    *

    “끄으윽….”

    다시 병원의 분만실.

    가영의 사투는 13시간이 넘도록 끊이질 않았다.

    수술을 시도해야만 한다고, 어쩌면 산모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수술을 기다리는 그 상황에서 공다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로지 두 손을 꼭 잡은 채, 누구인지 모를 사람에게 기도를 보내는 것 외에는.

    ‘지금껏 저희가 목숨 걸고 했던 선행들이 있는데, 왜 저희를 이런 시련까지 내리십니까? 제발, 이번 한번만 저희를 도와주세요.’

    그렇게 생각하며 기도를 하고 있는 공다혁의 허리춤에서 진동이 울려 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려던 공다혁은, 울리고 있는 진동이 호출기의 진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도시가 오늘 무너지는 날이더라도 오늘만큼은, 오늘만큼은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공다혁이 호출기의 전원을 끄려던 바로 그때.

    “남편… 다녀와….”

    “뭐?”

    갈라진 목소리로 다혁을 향해 말하는 다혁의 아내, 가영.

    “호출기 울렸잖아. 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별이도… 그걸 원할 거야.”

    “그럴 순….”

    “이건 내 싸움이야! 당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가서 당신의… 으윽… 싸움을 해!”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신이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저앉아 있던 다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래. 나도 내 싸움에서 이겨낼 테니, 당신도 꼭 이겨야 해.”

    “다녀와. 내 영웅.”

    가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분만실에서 나온 다혁은 품 안에서 울리고 있던 호출기의 통신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래피드 스타.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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