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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63화 (163/236)
  • 163화

    킬레이븐(1)

    깨어난 후 밀키웨이에게 듣기론, 퀘이사와 내가 화재 현장에서 구해내고 싶어 했던 사람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마 화재 현장 속에서 패닉에 빠진 시민이 환청을 듣지 않았을까?”

    밀키웨이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말에 나는, 내가 언뜻 봤던 환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해주었었다.

    가볍게 듣고 넘길 말은 아니라고 했는지 밀키웨이는 내 말을 듣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기가 좀 더 알아보겠노라고 말해주었다.

    밀키웨이라면, 아마 곧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게 되겠지.

    내가 기절해버린 탓에 병실을 비운 시간이 꽤 됐지만, 다행히 이모가 도와준 덕분에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정말 네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이모는 최선을 다해서 널 도와줄게.”

    이전에 어쩔 수 없이 도와준다는 태도와는 다른, 진심을 품은 말이었다.

    그런 말을 하셨던 탓인지, 병실에서 내가 없어졌다는 병원의 말에도 잠시 집에 왔다는 식으로 둘러 대준 모양이었다.

    못난 조카를 둔 탓에, 이모가 고생이 참 많으시네.

    “진짜 신기하네… 어떻게 며칠만에 이렇게 뼈가 다 붙을 수가 있지?”

    내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의사를 보며, 나는 내심 몰래 웃었다.

    천산시 최고의 치유능력자, 밀키웨이에게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지.

    사실 병원에서도 치유 능력자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더 일찍 퇴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정도 회복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의 능력을 빌리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싼 돈이 든다.

    이 세상은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의료보험 처리가 잘 안 되거든.

    워낙 사건 사고가 많아서 그런지 보험료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싸다.

    그나마 지금 같은 경우는 테러가 일어난 틈을 타 겪은 교통사고라 의료보험 처리를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나저나, 아직도 벨제뷔트는 안 깨어났나?

    [“네 마스터. 아직도 자고 있어요.”]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해?

    [“제 눈에는 보이거든요. 체인에 꽁꽁 묶인 개구리가 자고 있는 거. 궁금하면 영상으로 띄워드릴까요?”]

    아니야… 됐어. 굳이 볼 거까진 없어.

    벨제뷔트는 내 정신세계에 들어왔던 그날 이후로 갑자기 사슬 속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왠지 모르지만, 당시 있었던 일을 제인에게 완전히 알려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최대한 머릿속에서 그때 있었던 일을 떠올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다행히, 최근 내 능력이 좋아진 탓인지, 아니면 벨제뷔트가 무슨 수를 쓴 탓인지, 제인이 그날 있었던 일과 관련된 생각에 대해선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계약을 한 번 더 하라니,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던 건가.

    벨제뷔트와 힘 자체를 계약해놓은 탓에 벨제뷔트가 잠들었음에도 나는 흑염의 힘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었다.

    [“넵. 봉인되어 있는 주제에 갑자기 무슨 잠을 자겠다고 이렇게 늦장을 부리는지… 마스터. 한번 그냥 깨워볼까요?”]

    제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냥 내버려두는 게 낫겠어.

    나는 병실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병실을 둘러보았다.

    이모의 간호를 받으며 어리광을 부렸던 곳, 지나와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던 곳, 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내게 찾아온 친구들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던 곳.

    어쩌면, 당분간 내게 있어서 편하게 쉴 수 있던 마지막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얻었던 따뜻함을 지키기 위해, 나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    *    *

    한편, 다크 카이저가 자리를 비운 동안의 천산시는, 사실상 밀키 웨이가 주축인 아스트로 스타즈와, 다크 스코프가 주축인 사공모가 양분하여 지키고 있는 상태였다.

    천산시는 한 명의 히어로가 모든 사건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다.

    천산시는 꽤 큰 도시이고, 큰 도시 전부를 혼자서 지킬 수 있는 기동력을 가진 히어로는, 사실 흔치 않았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스트로 스타즈와 사공모가 서로 협력하는 형태로 구역을 나누어 도시를 지키고 있는 형국이었다.

    다만, 사공모에서 제대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히어로는 다크 스코프와 데빌 보이밖에 없는 상태였다.

    히어로인 캡틴 클라우드와 솔라 버드는 모두 잠정 은퇴를 한 히어로들이고, 그런 히어로들의 사이드킥인 레인 걸과 문 캣 또한, 사실상 잠정적으로 은퇴를 한 상태였으니까.

    사실, 히어로들의 은퇴에 따라 사이드킥들도 함께 은퇴를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사이드킥들의 규약은, ‘사이드킥’ 그 자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히어로가 존재하지 않는 사이드킥은, 그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가 없다.

    이미 잠정 은퇴를 한 상태임에도 데빌보이에게 여러 가지 조언과 능력의 활용법을 도와준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꽤 리스크가 있는 활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훈련과 조언을 받은 데빌 보이는, 한 명의 히어로로서 자신이 맡은 구역의 범죄 활동을 꽤 잘 막아내고 있던 중이었다.

    최소한 데빌 보이가 담당하고 있는 나리동과 곽석동의 빌런들 사이에는, 자정까진 악마를 조심하라는 격언이 퍼지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데빌 보이는 오늘, 사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돌이 하나 툭 떨어진다.

    펑!

    그와 동시에, 돌이 떨어진 자리에서 데빌보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골목에 모습을 드러낸 데빌보이의 모습은 만신창이에 가까웠다.

    다크 스코프가 만들어준 슈트는 온통 그을음이 붙어있었고, 손과 발은 마치 감전된 것처럼 계속해서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헉… 헉….”

    강적. 강적이다.

    다크 스코프가 만들어준 도구들을 모두 사용해서 대적했지만, 데빌 보이의 능력과 실력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상대였다.

    만신창이가 된 채 도망치고 있던 데빌보이가, 부랴부랴 벨트에 걸려 있던 다크 호출기의 버튼을 눌렀다.

    제발… 제발….

    지지직-!

    혹시라도 전투의 악영향으로 고장이 나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다크 호출기의 화면에 인터페이스가 올라왔다.

    덜덜 떨리는 손발을 잠시 주무른 데빌 보이가 다크 호출기의 버튼을 한 자 한 자 누르며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빌런 집단 나타남. 빌런 집단의 이름은, 킬레이븐. 킬레이븐. 목적은….>

    침을 꿀꺽 삼킨 데빌 보이가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다크 카이저의 죽음.>

    *    *    *

    며칠 전….

    하준은 다크 카이저와의 지난번 싸움에서 패배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고, 하준은 패배했다는 사실에 대해 화가 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패배는 당연한 일이었다. 다크 카이저였으니까.

    나타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쌓은 히어로다.

    그런 히어로를 순식간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하준이 화가 나 있는 것은 다크 카이저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점이었다.

    다크 카이저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주겠다고 한 자신의 제안이 무시당했다.

    심지어는 그런 제안을 한 자신에게 오만한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가 바뀌어보니 알겠더군. 사람은 바뀔 수 있어. 그럴 기회만 있다면. 그러니까, 너한테도 한 번은 더 기회를 주마.”

    자신의 제안을 무시하는 건 괜찮다. 자신을 두들겨 패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용서하며,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만큼은 납득할 수 없었다.

    하준은 다크 카이저가 진짜 히어로라고 생각했다.

    이 도시의 범죄자들을 모두 몰아내려고 마음먹은, 진짜 히어로.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선 절대 진짜 히어로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크 카이저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려줬던 것처럼, 자신도 다크 카이저에게 가르침을 내려주기로 했다.

    이 세상에 범죄자가 바뀌는 경우는 없다는 가르침을.

    “이쪽으로 오시죠.”

    하준은 정대수의 안내를 따라 복도로 들어섰다.

    복도에는 수없이 많은 창문이 주르륵 붙어있었다.

    그 수 없이 많은 방에는, 하준이 직접 고른 수많은 범죄자가 팔다리가 묶인 채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범죄자들이 보고 있는 것은 벽이지만, 하준에게 있어서는 창문이다.

    복도에서는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방안에서는 복도를 볼 수 없다.

    마치 교도소 같은 느낌이었다.

    실은 이곳은 교도소가 맞았다.

    천산시 사상 최악의 흉악빌런들이 들어와 있는 빌런 교도소, 그 지하에 있는 비밀 실험실이었다.

    하준은 천천히 복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곰팡이 인간, 아르마딜로, 닥터 데블, 싸이클롭스….

    전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을 선고받은 흉악범들이다.

    그리고 몇몇은, 실제로 티비에 사형을 당하는 모습이 생중계된 적이 있기도 했다.

    실은, 이곳에 멀쩡하게 살아있는 상태였지만.

    이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들이 아직도 사형당하지 않고 교도소에 처박혀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 쓸모가 있으니까.

    슈페리어들의 초능력은 가지각색이다.

    같은 종류의 브루트 인자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도, 막상 그런 사람들마다 사용하는 능력은 천차만별인 경우가 허다했다.

    뮤턴트 인자가 어떻게 해서 초능력을 만들어내는지, 그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런 슈페리어들의 초능력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연하다.

    기계 하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선 그 기계를 분해해 샅샅이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뇌가, 장기가, 손과 발과 뼈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선, 사람을 분해해 샅샅이 살펴보아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경한 그룹은 사형을 당하는 빌런들을 인도받아 실험에 사용했다.

    어차피 벌을 받아 죽을 운명인 놈들이니까.

    그런 놈들을 분해해서 뮤턴트 인자의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면, 오히려 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선순환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준은, 그 비밀 실험실이 늘어서 있는 복도의 맨 끝, 가장 커다란 방 안으로 들어서던 참이었다.

    그곳엔, 세 명의 빌런이 눈을 감은 채 매달려 있었다.

    라이트닝 썬더, 홉그렘린, 그리고 블루 레빗.

    모두 다크 카이저에게 엄청난 증오를 가지고 있는 빌런들이었다.

    하준은 그런 빌런에게 새로운 능력을 쥐어주고 거리에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과연, 네가 기회를 준 사람들이 정말 바뀔 수 있는지 실험해보도록 하자고.”

    하준이 킬레이븐이라고 이름 붙인 프로젝트가,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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