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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60화 (160/236)
  • 160화

    나강림, 그리고 퀘이사

    화르륵.

    나는, 파이어 파이터 모드를 켠 채 화재가 난 건물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부러졌던 오른팔을 휘저어보았다. 다행히 팔은 거의 다 회복되어 멀쩡해진 상태였다.

    문제는 다리인데….

    양다리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강제로 깁스를 풀어 해치고 슈트를 입은 탓인지 양다리에 조금의 고통이 느껴진다.

    길게 활동할 순 없을 것 같았다.

    노란 불길이 슈트의 방염복을 뜨겁게 달군다.

    다행히 슈트 덕분에 큰 타격을 받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바깥이 얼마나 뜨거운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내겐 다크 카이저의 마법 같은 슈트가 있지만, 강수아는 아니다.

    화염 내성과 초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맨몸으로 이 안을 돌파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내게 슈트가 없었더라면 나는 엄두도 내지 못할 용기였다.

    화르르륵- 쿵!

    화염에 휩싸인 건물이 서서히 무너지려고 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아까까지 노란색이던 불길이 점점 희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 화염, 분명 자연스러운 화재 상황에서 만들어진 화염이 아닌듯하다.

    뜨거운 불 때문인지, 혹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다리로 걷고 있기 때문인지, 정신이 조금 몽롱해져 오는 것이 느껴진다.

    “크윽.”

    머리를 흔들어 몽롱해져 가는 정신을 깨웠다.

    이 화염, 분명 이상한 기운을 품고 있다.

    그제서야 강수아가 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는지를 깨달았다.

    일반적인 화재로 일어난 화염이라면 수아를 해할 수 없었겠지만, 다른 기운이 섞인 이런 화염이라면 다르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싶던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강수아도 분명 위험에 처해 있을 터였다.

    제인. 화염 속에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는 것 같아. 정신 조작 계열. 약물이나 가스일 가능성이 있을까?

    [“지금 화염을 분석하는 중입니다. 화염의 분석이 끝날 때까지, 방독면 기능을 강화해두겠습니다.”]

    지이잉-

    가면이 온 얼굴을 다 덮을 수 있는 모양으로 변형된다. 아까보단 한결 숨쉬기는 편해졌다.

    한결 맑아진 정신으로 다시 건물을 오르기 시작한다.

    구출된 시민에게 듣길, 강수아에게 6층과 7층에 아직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수아는 6층이나 7층 어디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지금 같은 약물을 화염 안에 풀어놓을 수 있는 집단이라면, 역시 망령당인가.

    화르륵, 화륵.

    노랗게 보이던 불길이 완전히 흰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백염.

    희게 변한 화염이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른다.

    불꽃이 지금보다 훨씬 더 온도가 높아질 수 있는 모양이었다.

    저벅 저벅.

    이제 완전히 백염이 된 불길의 안쪽을 계속해서 걸어 나간다.

    덥다….

    숨을 쉬기는 편해졌지만, 온도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탓인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오기 시작한다.

    내 생각보다 오래 걷고 있는 탓일까?

    오히려 좋다. 몽롱해지려는 정신이 고통으로 인해 깨어있을 수 있으니까.

    저벅 저벅.

    얼마나 걸었을까? 10분? 15분?

    어느 순간, 그 뜨거운 백염의 온도가 점점 따뜻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백염의 온도는 점점 따뜻해져오지만, 다리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철벅 철벅.

    고통스럽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다리를 타고 올라온 고통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고통스럽지만 걷지 않을 수가 없다.

    백염의 온도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탓에 점점 정신이 몽롱해진다.

    몽롱해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나는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건강해진 이모와 이 세계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

    그건 이미 늦었다.

    나의 정체를 알아버린 이모는 내가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 한, 평생을 나와 함께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산시의 남은 범죄조직들을 모두 소탕하는 것?

    그것도 아니다.

    이 세계의 굵직한 범죄 조직을 모두 없앤다고 해서 이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잿빛 망토단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어도, 또다시 강철기사단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내가 망령당과 불곰파, 흑사자회, 심지어 경한 그룹까지 모두 소탕한다고 해도, 또다시 다른 범죄 집단이 분명 거리에 나타날 것이다.

    이 세계엔 아직도 수많은 범죄자들이 존재한다.

    잡아넣고 잡아넣고, 다시 한번 잡아넣어도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나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철벅 철벅.

    내딛는 발걸음 발걸음마다 알 수 없는 질척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억제력.

    범죄자들이 다시는 범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드는 억제력이 필요하다.

    그런 억제력은 어떻게 해야 만들 수 있는가?

    철벅… 철벅….

    나는 아직… 그런 억제력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고개를 치켜든다.

    백염의 끝에 누군가 서 있다.

    검은색 슈트를 입은 누군가다.

    검은 슈트를 입은 누군가를 인지함과 동시에 걷고 있던 주변의 세상이 바뀐다.

    흰 공간.

    아무것도 없는 흰 공간 위에 앞에 보이는 누군가와 나, 단둘만이 존재한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 사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한다.

    철벅 철벅.

    문득 철벅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색 액체.

    피.

    흰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피.

    흰 바닥이 온통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흐르는 피는 점점 많아져 계속해서 범위를 넓혀간다.

    나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피가 흐르고 있는 방향을 보았다.

    피가 흐르고 있는 방향에 쌓여있는 것은, 사람의 몸.

    “어? 으으으… 어?”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시체가 마치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 공간 안에 쌓여 있던 시체에서 흐르는 피가 철벅철벅 바닥에 고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본 시체의 모습은 어딘가 익숙했다.

    토끼 가면을 쓴 사람… 상처 투성이 얼굴을 가진 사람… 온갖 무기로 무장한 사람….

    나는 몽롱해진 정신 속에서도 쌓여있는 시체들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모두 슈퍼 빌런들이다.

    그제야 나를 바라보는 검은 슈트의 남자.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익숙한 모습이다. 분명 익숙한 모습이지만, 누구인지 빠르게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만큼은 분명했다.

    악인.

    분명 내 눈앞에 있는 저 남자는 악인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전투를 준비하려던 바로 그 순간.

    [“마스터!”]

    나는 내 귓가를 울리는 제인의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순식간에 주변이 허물어진다.

    마치 신기루 안에 들어온 것처럼 세상이 순식간에 바뀐다.

    노랗다 못해 흰색으로 보이던 화염의 색이 다시 붉은색으로 돌아온다.

    [“마스터! 괜찮으세요?”]

    “어? 아?”

    [“다행이다… 갑자기 멈춰서서 멍하니 불꽃 안을 바라보고 계셔서 깜짝 놀랐어요.”]

    분명 흰색으로까지 보였던 불꽃의 색은, 어느새 붉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정신이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다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비스에서 심연의 여왕에 의해 겪어본 적 있는 정신지배.

    나는 방금까지 정신지배 능력 안에 들어가 있다 깨어난 듯했다.

    대체 언제부터…?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더 오래 정신 지배를 당했다면 분명 이 불길 안에서 타죽고 말았을 터였다.

    나는 턱 밑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괜찮으세요 마스터?”]

    어 그래, 괜찮아.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강수아를 구해서 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화르륵-!

    쿵!

    [“마스터! 저 앞! 퀘이사입니다!”]

    떨어지는 건물의 파편들을 피해 가며 6층으로 올라온 순간, 나는 저 멀리 쓰러져있는 강수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으음… 다행히 몸은 멀쩡해 보이는군.”】

    화염에 대한 내성이 있는 덕분인지, 몸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훅- 후우욱-

    퀘이사가 있는 곳 주변은 불길이 훨씬 더 거센 듯한 느낌이다.

    여름에 유독 더워하던 강수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염에 대한 내성이 있어도 더위까지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으니, 높아진 건물 내부의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끼익- 끽-

    건물에서 불안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건물이 점점 한계에 다닿은 모양입니다. 빨리 퀘이사를 데리고 빠져나가는 게 좋겠어요.”]

    끽- 끼이이이익! 쿵!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내 등 뒤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건물.

    그래.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지.

    나는 건물이 붕괴하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내 뒤에서부터 천천히 붕괴하고 있지만, 계속 내 뒤에서만 붕괴하리란 보장은 없다.

    최대한 빠르게 돌파해 내 앞에 있는 수아를 구해내야만 한다.

    우르르륵-!

    내 바로 앞에 건물의 조각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건물을 가까스로 몸을 굴려 피하며 강수아를 향해 달려 나간다.

    조금만 더….

    끼기긱-

    수아가 쓰러져 있는 건물의 천장이 점점 무너지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스피드 모드?

    지금의 다리 상태론 불가능하다. 괜히 스피드 모드를 사용했다가 다리가 다시 부러지기라도 하면, 강수아도 나도 모두 죽고 말 거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수아의 머리 위, 천장이 금이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면, 무너지려는 파편을 받아낸다.

    파워 모드?

    붕괴된 건물 조각을 받아내기 위해선 파워 모드만으로는 힘들다.

    건물이 붕괴되며 떨어질 작은 조각들도 생각해야만 한다.

    조각들을 막아내기 위해선, 아머 모드가 필요하다.

    나는 얼마 전 겪었던, 총기난사 때의 일을 떠올렸다.

    제인에게 명령하지 않아도 슈트가 내 마음대로 변형했었다.

    그렇다면….

    나는 병원에 있는 동안 생각만 해보았던 슈트의 활용법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달려 나가며, 머릿속으로 슈트를 아머모드로 변형하기 시작한다.

    다크 아머의 갑옷이 내 몸을 덮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슈트를 파워모드로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내 설정노트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사용 방법이다.

    내 온몸을 다크 아머의 갑옷이 덮는다.

    그와 동시에, 슈트의 근육 모양이 파워 슈트의 형태로 잡혀가기 시작한다.

    된다.

    다크 카이저- 파워드 아머 모드.

    나는 새롭게 얻은 슈트 모드를 사용하며, 퀘이사의 몸 위로 뛰어들었다.

    우르르르.

    그런 내 몸 위로 붕괴된 건물 조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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