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가족(3)
히어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힘? 아니면 정의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올해 초부터, 가을이 된 지금까지…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막 1년을 채운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짧은 기간의 경험만으로도, 히어로로서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것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위협과 위험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가장 첫 번째 스텝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Dudadadadadadada!
바깥에서 계속해서 총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숨어있었다.
“안돼… 얘들아… 가만히 있어… 조용히… 조용히….”
완전히 멘탈이 무너져버린 이모가, 나를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간 지옥처럼 싸우던 시기에서 잘 벗어나 점점 봉합되고 있는 상처라고 생각했건만….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곧 경찰이 올 거야… 우리는 가만히 숨어있기만 해도 돼… 경찰이 해결해 줄 거야… 걱정하지 마….”
이런 번화가에 이렇게 큰 사건이 일어났으니 분명 경찰도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 아무리 빠르게 온다고 해도 그 전에 누군가가 다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총기난사. 실질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시민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테러다.
하물며, 이런 대형 사건을 일으킨 놈들은 불곰파의 급진세력이라고 한다. 지금껏 다른 세력에 눌려 천산시까지 진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강력한 범죄집단이다.
그런 테러 집단이 총기만을 가지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혹시라도 폭탄이라도 설치하고 있다면, 분명 더 큰 위험으로 돌아올 거다.
바깥에… 누군가가 다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모… 괜찮아요. 괜찮아… 괜찮아요… 별일 없을 거예요… 괜찮아… 진정해요….”
후우….
나 대신 이모를 꼭 안아준 채 진정시켜주고 있는 설지나를 보며, 나는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지나가 함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지나가 이모를 진정시킬 때까지, 일단은 상황 파악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지.
제인,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사건 정보, 파악했어?
[“…아니요 마스터. 놈들이 올린 테러 예고 영상 하나가 있긴 한데… 본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건 없을 거예요. 좀… 산만하거든요.”]
그래도 한번 틀어봐. 무슨 말을 하는지나 들어보자.
[“네 마스터.”]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영상 하나.
영상은 한 브루트의 털복숭이 팔이 가득 차게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뭐야? 어떻게 해야 작동시킬 수 있는 거야? 아니, 네가 말하는 버튼 누른 거 맞아… 그렇게 시끄럽게 하려면 네가 와서 해! 뭐? 지금 작동하고 있다고?”>
작동하고 있다는 말에 뒤로 물러나는 브루트. 브루트의 얼굴엔 흉측하게 인상을 찌푸린 곰 모양의 가면이 씌워져 있다.
<“안녕하신가? 이 세상의 모든 핍박받는 브루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이 세상에 나타난 브루트의 구세주, 강진웅 형님 밑에서 일하고 있는 배승남이라고 한다.”>
<“야! 우리 가면 쓰고 일하고 있잖아! 네 이름을 말하면 어떡해!”>
<“뭐? 야 여긴 편집해 편집. - 편집된 듯 잠시 영상이 이상한 느낌으로 끊겨있다.- 흠흠 큼흠…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궁금할 거야.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을 일으키는 건지. 자 이것 봐….”>
편집점을 잡는 것처럼 잠시 하던 말을 그만두고 몇 초 정도 침묵하는 브루트.
<“봤지? 참 재밌더라고. 우리 브루트 아이들이 납치당해 팔려 갈 위기에 처했었을 땐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브루트가 아닌 사람들이 노예로서 핍박받는다는 말이 나오니까 말이지. 자경단이고 경찰이고… 많은 사람이 튀어나와서 어떻게 지금 같은 시대에 그럴 수 있냐고 외치더군. 사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브루트들이 그것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철컥.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든 남자가, 화면을 향해 총을 겨눈다.
<“그래서 지금 알려주려고 한다. 브루트들이 얼마나 핍박받고 살았는지, 얼마나 억울하게 당하고 살…. 치지지직-”>
영상이 부자연스러운 곳에서 뚝 끊긴다.
빅 베어 강진웅의 이름이 나왔다.
불곰파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빌런 집단은 빅 베어 강진웅의 이름에서 따와 만들어진 집단이다.
그리고 강진웅은 기본적으로 빌런 집단의 수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온건파에 가깝다.
이렇게 급진적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강진웅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밀키웨이와 대화할 필요가 있겠다.
“괜찮아요. 이모. 좀 진정됐어요? 네. 잠시만요. 이렇게 꽉 안고 계시면 저도 아파요. 네.”
내가 잠시 정보수집을 위해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는 동안, 이모를 진정시키는 데에 성공한 듯 지나가 이모의 손을 풀고 벗어난다.
“지나야! 안돼! 너무 위험해!”
“강림이 이모. 오늘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찌익- 찍.
지나가 테이블보를 찢어 자신의 손에 테이핑하기 시작한다.
“프로 히어로라 그런지 패션 감각도 좋고, 얼굴도 예쁘다고요.”
지나의 말에 이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프로 ‘히어로’. 저는 연예인을 준비하는 게 아니에요. ‘히어로’를 준비하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까지 그 고된 훈련을 이 악물고 버텨낸 이유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무서워하는 이모를 보며 지나가 씨익 웃는다. 그 웃음에 특유의 눈웃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 * *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뚝.
소희는 지나의 그 말에 마음속의 무언가가 꺾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나, 그 작고 예쁜 아이의 얼굴에는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조카에게서 본 적 있던, 사명감만이 존재할 뿐.
저 아이가 이렇게 떠나게 내버려 두면, 곧 자신의 조카 강림도 똑같이 떠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찢은 식탁보를 붕대처럼 손에 칭칭 감은 지나가 식당을 벗어나 총탄이 날아다니는 거리로 나갈 때 까지, 소희는 멍하니 그 아이의 등 뒤를 바라보기만 했다.
* * *
지나는 식당 문을 열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두두두두두두!
꺄아아아아아아!
살려주세요!
방금까지 숨어있던 식당문을 열고 나오기만 했을 뿐인데도 총탄의 소리와 비명이 몇 배는 시끄럽게 들리는 듯했다.
지나는 지금까지 훈련했던 대로 벽 뒤에 숨은 채 지금 상황을 침착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빌런은 총 네명. 전부 총기로 무장한 상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비는, 테이블보로 테이핑한 자신의 두 주먹 뿐.
회사에는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슈트와 장비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법률상으로 아직 정식 히어로가 되지 못한 자신은 그걸 몸에 소지하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법률상, 히어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세. 성인이 된 이후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장비들이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히어로 일이라는 거, 항상 모든 걸 갖춘 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으니까.
다행히 이 주변은 지나가 혼자서도 자주 놀러오는 길이고, 심지어는 이 주변에서 알바도 몇 개월 정도 해본 경험이 있었다.
이 주변 골목과 지리에 대해선 꽤 빠삭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편인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사용한다면 놈들 중 한둘 정도는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무섭네, 이거.
언니가 히어로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할 때 하지 말 걸 그랬나.
좀 더 제대로 말려주지 그랬어. 언니.
지나는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언니, 설지원을 떠올렸다.
하긴, 설지원도 항상 히어로 활동이 위험하다고 소스라치면서도, 매번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히어로 슈트를 입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었으니, 말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더 잘 알았을 테지.
지나는 잠시 머리를 굴려 빌런들의 이동 경로를 예측해, 놈들을 습격할 수 있을 만한 길목을 생각해보았다.
계산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나는 골목길 안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이모.”
자신을 부르는 조카의 목소리에 소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방금 본 아이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조카, 강림이가 있었다.
“강림아… 내가 보지 않는 곳이면 괜찮아… 하지만 이모는 내가 보고 있는 곳에서 네가 싸우는 걸 견딜 자신이 없어….”
“이모의 마음은 이해해요. 그런데 이모. 지금 내가 나서지 않으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쳐요.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다치고 죽은 사람 중엔, 나와 이모가 아는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어요.”
자신의 조카, 강림이가 자신의 팔을 천천히 풀어낸다.
어쩐지 소희는, 자신보다 이 아이들이 훨씬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그저 아이처럼 떼를 쓰고 있었을 뿐이다.
경찰이, 히어로가, 다른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해줄 거라 믿으면서도, 누군가를 구하고 싶어 하는 조카 강림의 마음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며 떼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소희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미안해요. 이모. 미안해.”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간 조카가 총탄이 날아다니는 거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
* * *
힘 없이 나를 놓아주는 이모의 손을 느끼며, 나는 가슴이 찢겨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위험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나를 사지로 몰아넣는 이모의 마음은 더 아프겠지.
히어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힘? 아니면 정의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그게 아니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
올해 초부터, 가을이 된 지금까지…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막 1년을 채운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