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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44화 (144/236)
  • 144화

    고스트 카이저(2)

    피슈우우욱!

    키메라의 갈라진 머리에서 피가 뿜어져나온다.

    쿵!

    키메라의 몸이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뭐야? 피가 이 정도로 뿜어져 나온 거라면, 이 사람 죽은 거 아냐?

    “너무 걱정하지 마. 죽을 정도로 손을 쓴 건 아니니까. 애 얼굴이랑 머리에 큰 상처 정도는 남겠지만, 사실, 악당이라면 그 정도 큰 상처 하나쯤 있는 거 나쁘지 않잖아?”

    [“사실이에요. 마스터. 약 때문에 부풀어 오른 근육과 혈관 때문에 피가 뿜어져 나오긴 했지만, 죽진 않을 거예요.”]

    【“도망치는 사람의 머리를 그 정도까지 계산해서 베어 넘겼다는 말인가? 보통은 아닌 놈인 모양이군.”】

    나는 벨제뷔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히어로라고 한다면, 능력이 완전히 개화되어 있지 않거나, 혹은 능력을 다루는 게 서투를 수밖에 없다.

    초능력을 다루는 것도 결국은 점점 훈련을 통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힘을 다루는 능력을 본다면, 최소한 능력을 개방한 지 얼마 안 된 얼치기는 아닐 듯싶었다.

    그렇다면, 이미 힘을 써본 적 있는 초능력자라는 건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손속이 너무 과하다. 내가 아는 히어로들 중에 이렇게 손속이 과한 히어로는 처음이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안녕하신가? 다크 카이저. 내 이름은 고스트 카이저라고 하네. 만나서 반갑군.”

    최근 제인이 만들어준, 나의 새 디자인을 따라 베낀 듯한 슈트.

    한 가지 다른 점을 꼽자면, 가면의 모양이 마치 기와에 그려져 있을 법한 도깨비 모양이었다는 점이다.

    “당신은 누구지?”

    “나? 고스트 카이저라니까? 당신이랑 똑같은 ‘카이저’야.”

    싱글싱글 웃으며 헛소리를 해대는 고스트 카이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머리가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대체 이런 중2병 컨셉을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우리, 이렇게 여유롭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지금 저 녀석들 도망가고 있는데?”

    나는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벌써 꽤 멀리 도망치고 있는 키메라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오른쪽으로 도망치는 두 녀석을 처리할 테니, 다크 카이저 당신은 왼쪽의 두 녀석을 부탁하지.”

    도깨비 모양의 가면을 쓴 고스트 카이저는, 그대로 칼을 쥐고 오른쪽으로 크게 점프를 뛰었다.

    순식간에 펄쩍펄쩍 뛰어 오른쪽으로 도망치는 키메라를 쫓는 고스트 카이저를 보며 나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왼쪽으로 도망가고 있는 키메라들을 쫓을 것이냐, 그게 아니면….

    하지만, 내게 그렇게 깊게 고민할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꺄아아악!”

    “피해요!”

    왼쪽으로 도망치고 있던 키메라가 도망치며 사람이 타고 있던 차를 집어 던져버린 것이다.

    내가 잠시 몇 초의 고민을 해버린 탓에, 거리가 꽤 벌어져 있는 상태였다.

    추진력이 필요했다.

    벨제뷔트! 도와줘!

    【“…알았다! 맡겨다오.”】

    화륵.

    내 발밑에 흑염의 기운이 순식간에 모여든다.

    발밑에 모여있던 흑염이 작은 폭발을 일으킨다.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내 몸.

    나는 그대로 날아가는 차를 받아든 채로 바닥으로 착지했다.

    “우와! 멋있다!”

    “대단해요 다크 카이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 세례가 쏟아진다. 지금은 팬 서비스나 우쭐할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니다.

    고스트 카이저보다 더 많은 수를 빠르게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는 데에 자신이 있는 타입이라고 해도, 손속이 너무 과하다. 지금 있는 이 주변엔 시민들이 너무 많고, 보고 있는 시선도 너무 많다.

    아무리 나와 관계가 없는 사이라고 해도, 고스트 ‘카이저’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한, 내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긴 어려웠다.

    잘못하면 나 때문에 과하게 손을 쓰는 자경단이 늘어났다며 독박을 쓸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흑염의 날개를 만들어내는 대신 다크 윙을 펼쳤다.

    흑염의 날개가 아닌, 다크 윙을 만들어낸 것은 흑염의 날개가 너무 눈에 많이 띄기 때문이다.

    물론 흑염의 날개가 펼쳐져 있으면, 등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적이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쫓아오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진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매번 그런 날개를 펼치고 온 동네에 내가 여기 있다고 소문을 내는 것보다는, 강화된 카이저 슈트의 능력을 이용해서 다크 윙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낫다.

    대놓고 불꽃을 태워 가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흑염의 날개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그래도 천산시라는 도시 안에서 움직일 때엔 충분히 빠른 편이었다.

    슈우우욱-!

    제인! 블래스터 모드!

    SUIT MOD

    The Dark Kaiser

    제인! 잠깐 다크 윙의 제어 좀 맡아줘!

    [“네 마스터!”]

    제인이 다크 윙의 제어를 맡아 다루는 동안, 나는 손에 만들어진 블래스터를 도망치고 있는 키메라를 향해 겨누고 발사했다.

    Pang!Pang!Pang!Pang!

    순식간에 4발의 블래스트가 날아가 놈의 몸을 사지를 타격하는 데 성공했지만,

    “크어어어억!”

    놈은 블래스트를 얻어맞고도 잠깐 비틀거렸을 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다시 거리를 때려 부수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사용하는 약에 조금 변화라도 있었던 모양인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튼튼한 느낌이었다.

    제인, 지금 상황에서 블래스트 캐논을 사용했을 때, 저 사람이 혹시 죽을 가능성이 있을까?

    [“아니요. 마스터. 저 정도 튼튼함이라면 급소를 노려서 맞추지 않는 이상 죽지 않을 거예요.”]

    나는 제인의 소리를 듣자마자 움직임을 멈추고 양손을 쭉 뻗었다.

    철컥, 철커덕.

    뻗어진 내 양손에 만들어진 블래스트가 철컥거리며 맞물려 들어간다.

    MOD

    The Dark Kaiser

    제인, 날개 제어 완벽하게 해야해!

    [“네! 맡겨 두세요, 마스터!”]

    캐논에서 발사된 블래스터가 놈을 향해 날아간다.

    “끄어어아아악!”

    날아간 블래스터가 놈의 다리를 맞췄다.

    거대한 몸이 옆으로 쓰러진다.

    허공에서 발사하기엔 위력이 꽤 센 터라, 몸이 흔들렸지만, 제인의 제어 덕택에 금방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몸을 파르르 떨며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도망친 또 다른 놈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갔다.

    [“마스터! 지도에 도망치고 있는 빌런의 위치를 표시해뒀어요!”]

    내 눈 위로 떠 오르는 홀로그램에 도망치고 있는 빌런들의 위치가 표시된다.

    지도 위에 표시된 숫자는, 이젠 단 두 명.

    내가 한 명을 제압하는 동안 고스트 카이저라는 놈도 도망치던 빌런 한 명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너무 과하게 손을 쓰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건물 위를 날아 도망치고 있는 키메라에게 따라붙기 위해, 허공을 날았다.

    *    *    *

    하준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정말 재미없는 곳이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고,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해도 남들보다 쉽게 배우고 익혔다.

    그 때문에 아주 어릴 적부터 그는 매일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어머. 사대희 회장님 아들 아니랄까 봐 정말 천재시네요.”

    “대단하십니다, 도련님. 저는 더는 가르쳐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준은 자신이 그렇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아버지, 사대희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똑똑한 것도,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남들이랑 다르게 살아가는 것도.

    전부 자신의 아버지, 사대희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하준은, 더는 이 세상에서 이뤄야 할 것이 없었다.

    이미 자신의 아버지, 사대희가 모두 이뤄 놓았고, 앞으로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이다.

    그 어떤 일이든 아버지의 말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 사후에 아버지가 이룬 모든 것을 이어받을 수 있을거란 희망도 모두 버렸다.

    자신의 아버지 사대희라면, 자신이 죽기 전에 영생할 수 있는 약 같은 걸 발견하거나 만들어내게 될 테니까.

    그리고 자신은, 그런 아버지의 계획 속에 나온 아들일 뿐이다.

    아주 똑똑했던 사하준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계획에 따르지 않았다. 똑똑했지만 공부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원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찮게 생각하는 미튜브 채널 운영에 모든 힘을 다했다.

    그런 하준에게 있어서 다크 카이저는 오랜만에 만난 재미있는 존재였다.

    절대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 않고 언제나 제압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히어로.

    “여긴 네 놀이터가 아니다, 꼬마. 한 번 더 사건 사고 현장에서 미튜브 놀이하다 걸리면, 뼈라도 하나 부러트려 버릴 줄 알아라.”

    어딘가 어설픈 듯 보였으나, 자신과 다르게 사람을 구하는데 누구보다도 진심인 그 태도는, 언제고 진심을 낼 수 없던 하준에게 무척 신선한 것이었다.

    ‘진작 이럴 걸 그랬어.’

    처음엔 반쯤 장난이었으나, 어느덧 제법 흥미를 느낀 하준은 이제 진짜 다크카이저 옆에서 뛰어보고 싶었다.

    진심… 같은 것은 아니겠으나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마음이 생전 누려보지 못한 몰입감이라는 건 분명한 듯했다.

    “야. 이성민. 방금 도망친 새끼 어디 갔어?”

    <“어? 어 하준아. 바로 앞 코너에서 오른쪽. 오른쪽으로 가!”>

    “야 이성민. 내가 지금 슈트 입고 있는 거 안 보여? 슈트 입고 있는 동안은 사하준이 아니라 고스트 카이저라고 했지?”

    <“아… 미안해 하… 아니 고스트 카이저.”>

    “지금 다크 카이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화면 띄워.”

    하준은 성민이 알려준 방향으로 이동하며 스텔스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가면의 눈구멍을 통해 지켜보았다.

    내가 한 수 가르쳐줘야겠구만.

    고스트 카이저의 슈트에서 조용히 기계음이 미세하게 들려왔다.

    좁고 조용한 곳에서나 들릴법한, 작은 소리였다.

    하준은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고, 눈앞에 보이는 키메라를 향해 휘둘렀다.

    *    *    *

    빠르게 도망치겠다고 주변을 때려 부수던 다른 키메라들과는 달리 이놈은 아까 제압했던 놈보단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기한테 따라붙지 않았으니, 자기는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놈이 눈치채기 전에 서둘러 제압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허공에 머무르며 캐논을 들어 올렸다.

    일격으로 제압한다.

    “꺄아악! 다크 카이저다! 다크 카이저가 왔어!”

    “살았다!”

    “다크 카이저 도와줘요!”

    최대한 들키지 않게 조용히 따라붙는다고 노력했지만, 길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는 탓에 놈이 내가 왔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쿵! 쾅! 쿵!

    PANG!

    놈이 더 빠르게 움직인 탓에 내가 쏘아낸 캐논샷은 놈이 친 바닥이나 두드리고 말았다.

    또다시 주변을 때려 부수며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하는 놈을 보며 나는 혀를 쯧 찼다.

    빠르게 제압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다시 놈을 쫓아 날아가고 있던 바로 그때,

    “일격필살(一擊必殺) 데스블로우(Deathblow).”

    푸확!

    도망치고 있던 빌런의 팔다리가 쩍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올랐다.

    툭.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잿빛의 히어로 슈트를 입은 히어로, 고스트 카이저가 소리 없이 떨어져 내린다.

    뿜어진 피는 주변의 벽이나, 시민들의 옷 등으로 순식간에 뿜어져나갔다.

    “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역시, 손속이 너무 과한데….

    쓰러진 빌런을 발로 툭툭 건들며 고스트 카이저가 입을 열었다.

    “어때? 생각보다 내 실력 괜찮지?”

    이렇게 또라이 같은 놈은 처음이라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은 이야기라도 해보기 위해 나는 입을 열었다.

    “과했어. 손 속이 너무 과하니 시민들이 놀랐지 않나.”

    “뭐 어때? 당신은 그게 문제야. 그렇게 ‘신사답게’ 구니까 이런 잔챙이 놈들도 당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거잖아.”

    …뭐라고?

    “이런 놈들은 아예 짓밟아서 다시는 이런 일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맘 같아서는 팔다리 하나쯤 잘라버리고 싶었는데, 첫 등장인데 거기까지 가면 너무 자극적이지 않나 싶어서.”

    그런 말을 하며 고스트 카이저는 즐겁다는 듯 실실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놈이 어떤 타입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 그런데 이런 컨셉이면 허리춤의 칼집보단, 등 뒤에 매는 게 더 나으려나?”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히어로가 되었다기보단, 범죄자를 단죄하는 자기 자신에게 취해있는 타입.

    이런 타입의 자경단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타입을 처음 만나본 나는 곧바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타입의 사람이라면, 히어로슈트를 입고 있어도 실질적으로 빌런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이거 안 되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다크 카이저? 허리춤이 나을까, 아니면 등 뒤가 나을까? 이런 부분에선 당신이 전문가잖아.”

    실실 웃으며 내게 묻는 그 질문 덕분에, 내 인내심은 한계를 넘고야 말았다.

    “야, 안 되겠다. 너 좀 맞자.”

    실실 웃던 고스트 카이저의 웃음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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