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거짓말(1)
이소희는 오늘, 강림이가 다니는 체육관과 학원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강림의 부모님이 죽었을 때, 강림의 이모 이소희는 스물다섯 살의 어린 나이였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어린 나이, 해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였지만 이소희는 열 살배기 조카인 강림을 맡아 기르기로 했었다.
거룩한 신념이나, 거창한 책임감 때문에 했던 결심은 아니었다.
이젠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언니의 흔적이었던 강림을, 자신이 지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소희 자신도 언니가 죽음으로서 혼자가 되어버렸으니. 아무런 가족도 없는, 혼자의 삶이 두려웠다.
그래서 소희는 강림과 함께 살기를 선택하였다.
‘언니, 언니가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딱 강림이 대학 졸업까지는 꼭 시킬게.’
그 후로 7년, 열 살배기 꼬마였던 강림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자신은 서른두 살이 되었다.
이제 소희의 삶에 자신의 조카, 강림이라는 존재는 없어서는 안 될, 자신의 인생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그런 강림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턴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강림이도, 내 손을 떠나서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학원에 다니기도 하고,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취미를 위해 체육관을 가기도 했다.
주말에도 자신과 함께 하기 보다는, 외출해서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이 잦아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여름에 함께 휴가라도 다녀오길 잘했어.’
혹시라도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릴까 걱정했었는데, 강림의 친구들도 모두 착하고 예쁜 여자아이들 뿐이었다.
소희는 그래서 강림이를 믿었다.
그런 이소희가 강림이가 다닌다는 체육관과 학원에 들러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강림이 나이대의 아이를 가진 직장 동료가 강림이가 다니는 학원에 대해 물어왔기 때문이다.
“소희씨. 조카가 학원 다니면서 성적이 많이 올랐다면서요? 학원비는 어느 정도 내요? 어머. 진짜? 너무 싸다. 진짜 거기 어디야? 이 정도면 나도 우리 애 보냈지. 우리 애도 요즘 통 공부를 안 해서, 학원이라도 좀 보내볼까 하는데… 혹시 어디 있는 학원인지 알려줄 수 있어?”
그렇게 물어오는 직장 동료에게 강림이에게 받았던 사이트를 알려주려고 했었는데, 어느샌가 강림이에게 받았던 사이트의 주소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학원이 망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카인 강림이는 여전히 밤마다 학원을 나가고 있었고, 또 학원을 다니는 만큼, 매번 성적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몇 달 전까진 강림이를 가르친다는 학원 선생님과도 자주 통화를 하기도 했었다.
“어머. 그렇다고 학원에 한 번도 안 가봤어요? 나는 그래도 원장쌤 얼굴 한번은 봐야 마음이 좀 풀리던데.”
그런 직장동료의 말을 듣고 나서야 소희는, 자신이 얼마나 안일하게 아이를 맡기고 있었는지 깨닫고야 말았다.
그래서 이소희는 이번 기회에 강림이가 다니는 체육관의 관장님과 학원의 원장님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말인 오늘, 조카인 강림이에게 다니는 체육관과 학원에 함께 가보자고 말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얘는 왜 준비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거야?
“강림아! 언제 출발할거니?”
* * *
“강림아! 언제 출발할거니?”
“네! 네! 이모 잠시만요~ 금방 나가요!”
아니 이거, 어떻게 하지? 어떡해?
나는 현재, 갑작스럽게 체육관과 학원으로 향하겠다는 이모의 말에 패닉에 빠져있던 참이었다.
그동안은 제인이 가끔 학원 선생님인 척 이모와 통화를 하기도 하고, 학원 사이트에 계획을 그럴싸하게 올리기도 했으며, 학부모를 위한 통지서를 보내기도 했던 것이, 제인이 한번 깡통이 돼버리면서 잠깐 모두 마비가 되었었기 때문이다.
[“네? 깡통이라뇨 마스터.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너 지금 그런 농담이 나와? 지금 상황 진짜 심각해! 내가 학원 다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모가 알면 어떻게 되겠어?
[“걱정 마세요 마스터. 저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게 아니니까요.”]
뭐? 그럼 미리 생각해둔 방법이 있는거야?
[“네. 일단은 이번 한 번 정도는 넘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뒀죠. 하지만 준비할 시간이 조금 필요해서 그런데, 체육관에 먼저 가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이모를 맡아 커버했던 제인이라면 분명 무슨 수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면서 외쳤다.
“네. 이모! 지금 가요! 일단 체육관부터 갈려구요.”
* * *
강림이와 함께 체육관에 온 이소희는, 체육관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크구나.”
“네. 그쵸? 여기 관장님이 부자시래요.”
“그래?”
강림이가 다니는 체육관은 겉모습만 크고 깨끗한 것이 아니라, 내부 시설 또한 문외한인 소희가 보더라도 최신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진 않구나.”
“그게… 여기 관장님이 되게 엄하시거든요. 힘들어서 많이들 포기하는 모양이에요.”
“그래?”
그냥 취미로 하는 운동인데… 그렇게까지 힘든 곳에 다닐 필요가 있나?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소희의 앞으로, 강림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강림이에게 인사했다.
“어. 강림이 안녕!”
“어? 지나 일찍 왔네? 이모. 얘는 지난번에 언니가 꽃집한다는 체육관 친구, 설지나예요. 지나야. 우리 이모셔.”
얘가 같이 체육관에 다닌다는 친구구나… 그나저나 강림이 친구는 왜 다들 여자애들이람? 조금 걱정이네. 친구들은 좀 두루두루 사귀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소희를 의문스럽게 쳐다보던 강림이의 친구, 지나의 눈이 순식간에 초승달처럼 휘었다.
“어머. 강림이 이모셔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젊고 예쁘실줄은 몰랐어요.”
“아이. 고맙네. 내가 언니랑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 말 많이 들어. 지난번에 언니분이 준 차는 잘 마셨어. 감사하다고 꼭 좀 전해드리렴.”
“네에.”
소희는 강림이와 같은 또래로 보이는 친구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것을 보자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을 느꼈다.
저렇게 여리여리하고 예쁜 아이도 버틸 수 있을 정도면, 다칠 정도로는 훈련을 시키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사범님! 안녕하세요! 어. 이모. 저기 저분이 절 담당해서 가르쳐주시는 사범님이셔요.”
“안녕하세요? 강림이를 가르치고 있는 사범, 손이경이라고 합니다.”
어머. 사범님 몸매가 정말 멋지시다. 역시 운동하시는 분은 다르구나.
서글서글하고 착한 인상의 손이경의 모습을 보자 이소희는 확실하게 마음이 풀렸다.
다들 좋은 사람들처럼 보이네.
“강림이한테 오신다는 이야기는 들었거든요. 저기 안에, 사무실에 가서 차 한잔이라도 하시면서 이야기하실까요?”
“네. 그럴까요?”
“강림이는 여기서 잠깐 혼자 트레이닝 하고 있을래? 사범님은 이모님이랑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올게.”
“넵. 알겠습니다.”
이소희는 손이경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나는 이모와 사범님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것을 힐끗힐끗 살펴보며 샌드백을 두드렸다.
제인! 제인! 시간 끌었어. 이모 가셨으니까 어떻게 할 건지 계획에 대해 좀 설명해줘! 나도 알아야 손발을 맞출 거 아냐?
[“네 마스터. 마스터의 신체능력, 정신능력, 거기에 더불어 모인 동화율이 많아진 탓에, 제가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많이 커졌거든요.”]
잔말은 일단 치우고, 본론부터 들어가자.
[“네. 마스터. 일단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일단은 진짜 실제로 존재하는 학원으로 마스터를 등록시킬 생각이에요.”]
뭐? 근데 내가 지금 당장 거기를 다니는 게 아니잖아. 거기 선생님들도 내 얼굴 전혀 모를걸?
[“네. 그렇죠.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짜 사람이 다니는 냄새가 나는 학원이라는 공간이니까요. 일단 거기까지 이모를 모시고 오시면, 제가 그 학원에서 근무하는, 마스터 담당 선생님을 홀로그램으로 만들어낸 뒤 연기할 거예요.”]
뭐? 그런 게 가능해?
[“네. 대신 동화율이 조금 소모되겠지만….”]
지금 차고 넘치는 게 동화율이야.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써. 그런데… 거기서 진짜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마스터. 다 생각해놓은 수가 있답니다.”]
알겠어. 제인. 너만 믿는다.
* * *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죠?”
“아니에요. 운전하고 오면 금방이죠.”
딸그락. 김이 나는 커피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향긋한 커피의 향이 금세 사무실을 채웠다. 이소희는 받아든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커피향이 정말 좋네요.”
“아. 네. 제 거의 유일한 취미가 커피라서… 입맛에 맞으셔서 다행이네요.”
잠시 소희가 커피의 향을 음미하고 있을 때, 손이경이 재차 말을 건넸다.
“사정은 조금 들었습니다. 이모님이 지금 강림이랑 단둘이 살고 계신다고….”
“아 네. 강림이가 어릴 때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어쩌다 보니 제가….”
“쉽지 않은 일이셨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아휴. 아니요. 사실 강림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강림이가 필요해서. 저한테도 이제 유일한 가족이거든요.”
“그러시군요… 멋진 이모님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강림이도 참 대단한 아이입니다.”
“그래요?”
강림이의 이야기가 나오자, 소희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네.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체육관이 사실, 프로 히어로 지망생들을 위한 체육관입니다. 그런 체육관의 훈련량을 네추럴인 강림이가 소화하는 게 절대 쉽지 않은 이야기거든요.”
이소희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실, 본인 네추럴인 본인 스스로도 히어로를 지망하지 않는다곤 하는데… 실질적으로 훈련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프로 히어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거든요.”
“그렇군요….”
“참 아까운 재능입니다. 네추럴이 아닌 슈페리어였다면 프로 히어로도 될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있는 친구에요. 그래서 말인데….”
“네?”
“프로 히어로는 될 수 없겠지만,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 한 번 출전시켜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강림이의 실력 정도면 충분히 입상이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이소희가 알던 조카, 강림이의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의 이야기였다.
“아. 혹시라도 공부에 방해될까 봐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보다 훈련량을 더 늘린다거나, 시간을 더 필요로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매번 체육관에 나오는….”
열 살배기 어린아이던 시절부터 강림이를 키워오던 이소희는, 강림이가 중학교 때까지는 운동이라는 것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자신의 조카, 강림이가 변했다.
강림이의 변화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자라난 덩치의 영향도 있겠지만, 스스로의 노력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강림이가 출전하고 싶어 한다면, 저는 출전에 반대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이모로서 강림이가 그런 대회에 출전하는 걸 지켜보는 건… 조금 무섭네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강림이는 이제 저한테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거든요. 다칠 수도 있는 대회에 출전시키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네요.”
그런 소희의 이야기를 들은 손이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강림이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모님하고 먼저 이야기해보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모님의 생각이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