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37화 (137/236)
  • 제137화

    우정(4)

    도유진은 학교에서 거리가 조금 있는,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인적 없는 골목길에 들어서고 나서야,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도유진은,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볼 생각이었다.

    더 이상 나쁜 짓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바로 그때, 연락처 목록에선 지웠지만, 통화 목록을 밑으로 내리다 보니 찾아낼 수 있었다.

    “하… 후….”

    오늘따라 심호흡할 일이 많네.

    크게 한숨을 들이마신 도유진은 전화 버튼을 눌렀다.

    뚜-…. 뚜-….

    전화의 신호음을 들으며, 도유진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뚝-.

    <“여보세요?”>

    전화가 연결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네. 선배. 저 도유진인데요.”

    <“어, 그래. 유진이니? 오랜만이네. 그동안 연락이 없어서 섭섭했는데 말이야. 무슨 일이니? 너도 돈 필요하니?”>

    ‘너도?’

    침을 꿀꺽 삼킨 도유진이 입을 열어 전화 너머의 여성에게 질문을 건넸다.

    “혹시… 지예… 거기에 있나요?”

    …….

    잠시간 전화 너머에선 아무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고, 전화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예. 여기 있지. 궁금하면 만나러 오렴.”>

    *    *    *

    나는 도유진의 통화내용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보다 깊게 얽혀있었잖아.

    몇 개월 동안 별일 없이 학교나 다니고 공부나 하길래 아무 일도 없으려나 했더니, 결국 사건이 한 번 터지기는 하려는 모양이다.

    하긴, 담배 수준의 저질 약이라고 쳐도, 약은 약이다. 아이들이 쉽게 구해서 팔고 다닐 수 있는 수준의 약은 아니다.

    계속해서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악질 빌런이나, 세계를 무너뜨릴 만한 거대 사건들 위주로 싸우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도 무뎌지기 시작한 것이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좀 먹고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이런 빌런들도, 충분히 악질적인 빌런들일 텐데.

    당장 내 눈앞을 위협할만한 사건들은 모두 치워놨으니, 사회를 좀먹고 있는 이런 쓰레기들도 치워놔야겠지.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좀먹는 이런 악질 빌런들이, 언제 내 주변인들의 삶을 깨트리려고 할지 알 수 없으니까.

    제인, 지금 도유진이 통화하는 사람, 역추적해서 위치 확인할 수 있나?

    [“네. 지금 한 번 해볼게요.”]

    제인이 전화를 해킹해 위치를 파악 동안, 나는 천천히 움직이는 도유진의 등 뒤에 따라붙었다.

    일단 지금 당장은, 위험할지도 모르는 도유진을 지키는 게 가장 1순위니까.

    *    *    *

    도유진은 잠시 그 자리에서 조금 기다렸다.

    지예가 거기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예를 어떻게 해야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지예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건 무슨 소리였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혼자 생각해보았자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후… 덥네.”

    날이 더워서 그런지 길에서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흘렀다.

    도유진의 친구 중, 그곳을 가장 먼저 알아 왔던 사람은 황채경이었다.

    황채경의 집안 환경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채경과 지예, 유진은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고, 중학교 2학년 때만 해도 셋 모두의 인생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으니까.

    채경의 가정사가 본격적으로 망가진 것은, 채경의 아버지가 해외로 파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게 된 이후부터였다.

    부부사이의 금술이 좋았던지라 채경의 어머니는 채경의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채경의 어머니는 순식간에 망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술부터 시작했었다. 하지만 슬픔을 잊기 위해 하는 술은, 결국 깨어났을 때 더 큰 슬픔과 불안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슬픔과 불안을 키우기 위해, 채경의 어머니는 더 강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정신과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약이었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처방해주는 약은 채경의 어머니에겐 항상 감질날 뿐이었다.

    마지막으론, 거리에서 구할 수 있는 싸구려 마약. 거기까지 가는 데에는 채경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유진은 아직도 가끔, 화목해 보이던 채경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곤 한다.

    사실상 채경이 벌어온 돈으로 먹고 사는 수준이었지.

    자신도 친구들도, 그런 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마약에 절여사는 어머니가 있는 덕에, 채경도 약을 구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약물 중독자의 딸이라는 점 때문에 채경은 팔지 못하고 남는 저질 약을 구할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담배와 별 차이가 없는 약성이 적은 저질 마약인지라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잘 팔리진 않았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강림이한테도 제대로 인사를 하고 나올 걸 그랬나?’

    채경의 어머니는, 채경이 없어진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도유진?”

    생각에 잠겨 있던 도유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스무살은 넘겼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여자였다. 여자는 도유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따라와.”

    누구라곤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는 뜻에 가까울 터였다.

    도유진은 여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너 참 운이 좋았어. 구역장님이 널 좋게 보신 모양이더라.”

    “네?”

    구역장님?

    “네가 전화 건 사람, 이번에 새로 이 근처의 구역장님이 되셨거든. 타이밍 좋게 들어오는 거야 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이번에 이 골목 주변으로 여러 가지 일이 많았어. 그때 잡혀간 사람이 많아서, 당원이 많이 필요해졌어. 너도 이번에 들어가면 타이밍 딱 좋게 들어오는 거야.”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해대는 여자를 보며, 도유진은 여자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이미 약에 취해 반쯤 맛이 가 있는 듯한 눈.

    채경의 집에 갔을 때, 채경의 어머니에게서 종종 본 적이 있던 눈이다.

    “아 네. 그렇군요.”

    “그래. 아 맞아. 핸드폰 이리 주고.”

    도유진은 맛이 간 눈동자를 한 표정이 무서워 잠자코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휘익-

    “아앗!”

    도유진의 스마트폰을 받자마자 무심하게 저 골목 너머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져버리는 여자.

    스마트폰은 정확하게 쓰레기통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도유진은 당황해서 여자를 바라보았다.

    “대체 왜…?”

    “너 같은 꼬맹이들이 핸드폰 들고 있으면 추적하기가 너무 쉬워지거든. 지금 들어가는 곳엔 핸드폰 같은 거 가지고 오면 안 돼.”

    저기 안에, 친구들이랑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랑 다 들어 있는데….

    “빨리 안 와?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거야?”

    스마트폰에 잠깐 미련을 가져 서성이는 도유진을 여자가 불렀다.

    잠깐 고민하던 도유진은 스마트폰을 내버려둔 채, 여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    *    *

    휴. 혹시나 해서 계속 뒤를 따라 움직이길 잘했네.

    스마트폰을 버리는 여자의 모습을 건물의 옥상에서 내려다 보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원래는 제인이 알아낸 위치에 미리 한발 앞서 정리하러 간 뒤, 도유진의 위치를 추적하려고 했었는데,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어지면 도유진을 찾아내기가 난해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도유진이 내가 앞서간 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 도유진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럼 일단, 이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둬야겠다.

    [“아무래도, 최근에 새롭게 망령당에서 이 주변 구역장이 된 사람인 것 같아요. 이름은 정애정. 나이는 스물넷. 생긴 것보다 어리네요. 훨씬 나이 들어 보였는데.”]

    내 눈 앞에 제인이 정애정의 사진을 띄워 올려주었다. 스스로 찍은 듯한 셀카였다.

    으음… 사실상 셀카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데… 내 눈에는 몇 살인지 모르겠다.

    [“마스터는 정말 보는 눈이 별로 없네요. 이거 잘 봐봐요. 스물넷이 아니라 서른둘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라니까요.”]

    얘는 무슨 AI가 셀카를 엄청 많이 찍어본 것처럼 말하네.

    그나저나 잠깐 쉬고 오는 동안 제인의 능력이 엄청나게 발전해있었다.

    이제 이렇게 먼 거리에 있는 핸드폰도 해킹할 수 있는거야?

    [“매번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마스터. 일단은 도유진은 마스터와 깊게 관여된 사람이라 특별관리를 하고 있었던 점도 있구요. 그렇다 하더라도 관리를 철저히 하는 거물이면 핸드폰을 역추적해도 이렇게 쉽게 찾기는 힘들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로 거물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망령당 구역장 정도면 꽤 높은 사람 아닌가? 이렇게 허술하게 찾을 수 있는 거야?

    [“얼마 전에 마스터 때문에 구역전쟁 도중 잡혀간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때 빈자리를 채워 진급한 사람인 모양이에요. 원래도 그 정도 능력이 있는 여자는 아니에요. 생각보다 훨씬 쉽게 끝낼 수 있겠는데요.”]

    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마. 그런 소리하면 꼭 뒤 끝이 안 좋더라.

    나는 여자가 버려버린 스마트폰을 줍기 위해 뛰어내리려다가 몸을 멈췄다.

    나 대신 쓰레기통에서 스마트폰을 주워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쟤도 왔구나… 여자애들의 우정이란….

    *    *    *

    소연은 계속해서 도유진의 등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도유진의 등 뒤를 따라가는 소연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연은 지금 유진이가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는 몰랐지만,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소연이 과거, 강림이와 수아의 등 뒤를 따라다니면서 조금 발현되었던 소연의 새로운 능력이, 도유진을 생각하는 소연의 마음 때문인지 재발현 되었기 때문이다.

    소연에게 새롭게 생겨난 능력 덕분에 소연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계속해서 도유진의 등 뒤를 따라 움직일 수 있었다.

    친구인 지예를 위해 위험을 불사하는 유진이처럼, 소연도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유진이를 꼭 구해주고 싶었다.

    데다이트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이라면, 분명 유진이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소연이 도와주고 싶어하면 데다도 도와주고 싶다!”」

    ‘그래. 고마워. 항상 데다밖에 없어. 데다가 최고야.’

    「“데다… 최고다? 부끄럽다….”」

    도유진의 등 뒤를 따라다니는 소연의 눈에, 허공을 날아가는 도유진의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어? 유진이 핸드폰!”

    저 안에, 함께 여행가면서 찍은 사진들이 다 들어 있는데….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올려준다던 사진은, 소연과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린 이후로 결국 카톡방에 올라오지 않았었다.

    핸드폰을 버린 채 멀어지는 도유진의 뒷모습을 보다, 소연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스마트폰을 주워 챙겨들었다.

    이 안에는, 유진이와 친구들의 소중한 기억이 담겨있으니까.

    유진아. 내가 꼭 구해줄게!

    멀어지는 유진이의 등 뒤를, 다시 소연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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