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27화 (127/236)
  • 제127화

    강철기사단(2)

    이젠 정말 완연한 여름이다. 조금만 열심히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리고 히어로들은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입고 다니는 슈트들이 전부 바람이 통하지 않는 쫄쫄이들이니까.

    여름용 슈트를 구비 해놓는 히어로들도 있긴 할 테지만, 결국 몸에 달라붙는 소재의 옷은 더위를 부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온도가 높은 흑염의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나는 것보다, 차라리 걸어 다니는 게 더 나을 지경이다.

    제인이 있었다면 슈트 내부 온도를 조절해줬을 텐데… 제인은 언제쯤 돌아와 주려나.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최근에는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기보단, 너무 급한 사건이 아니라면 차라리 예전처럼 건물의 옥상을 타고 움직이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다프네의 입구에 도착하니, 슈팅 노바가 현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꼴 보기 싫은 여자가 또 밖에 나와 있군. 어허. 저거 보게.”】

    담배를 피우는 슈팅 노바를 보며 혀를 쯧쯧 차는 벨제뷔트.

    저거 저거, 담배 끊는다더니 결국 또 저러고 있네. 2주도 못 가면 담배 끊는다는 소리는 왜 한 거야?

    【“나강림. 어떠냐? 내 말이 맞았지? 내 2주도 못 가고 실패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하하!”】

    이거 지나한테 일러바쳐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 정체를 밝혀야 하니 참는다.

    “깜찍이 왔네? 반가워.”

    뻐끔뻐끔 허공에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내게 말을 건네는 슈팅 노바.

    “담배 끊는다고 하지 않았나?”

    “어. 그랬었지. 근데 그냥 피우려고. 담배 못 피워서 생기는 스트레스 때문에 일찍 죽겠더라.”

    매일 밤마다 총을 들고 생사를 건 싸움을 하는 주제에, 담배를 못 피워서 스트레스로 죽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뻔뻔하게 나불대는 슈팅 노바를 무시하며 나는 다프네의 안으로 들어섰다.

    “어. 헬 카이저가 왔군.”

    테이블에 걸쳐 앉아 언제나와 같이 무언가를 마시고 있는 페이퍼 백이 나를 향해 인사했다.

    “또 커피인가?”

    “어? 어어. 커피라도 마셔야지. 커피라도 안 마시면 아무래도 머리가 안 굴러서 말이야.”

    그래… 생각해 보니 시기상 슬슬 페이퍼백의 아내, 이가영의 몸이 많이 무거워졌을 시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출산의 때가 거의 다가왔을지도 모르고.

    따뜻하게 덕담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페이퍼백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아는 척을 할 순 없다.

    “그렇군. 항상 고생이 많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페이퍼백의 옆에는 신문을 읽고 있는 퀘이사의 모습이 보인다.

    퀘이사는 다른 히어로들이 내게 인사를 건네든 말든 완전히 무시한 채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거 엊그제까지 친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이렇게 냉담한 거 보니까 심술이 술술 올라오네.

    조금 괴롭혀줘야겠다.

    “안녕하신가?”

    “…….”

    “퀘이사?”

    “…….”

    아무리 애를 써도 묵묵부답인 퀘이사.

    부스럭.

    “아 왜? 왔으면 할 일 하면 될 것이지.”

    보고 있던 신문을 신경질적으로 내리며 내게 인상을 찌푸리는 퀘이사.

    “신문. 거꾸로 들었군.”

    “뭐?”

    내 말에 놀라 신문을 거꾸로 돌려 보는 퀘이사.

    혹시나 했는데, 진짜 읽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만?

    “거짓말이다.”

    “이이익….”

    나는 얼굴이 벌겋게 물들기 시작하는 퀘이사를 피해 회의실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헬 카이저님?”

    “왔어요?”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장비를 보며 심각하게 의논하고 있던 다크 스코프 아저씨와 밀키웨이가 나를 반겼다.

    아무래도 이 히어로들 사이에선 가장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 두 사람만 무슨 계획이라도 짜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장비를 살펴보았다. 마치 창에 이런저런 전자 기기들을 주렁주렁 달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장비였다.

    “이게 내게 말했던 그 장비인가?”

    이렇게만 봐선 어떻게 쓰는 장비인진 알기가 어려운데….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 거지?”

    내 말에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빠르게 설명을 시작했다.

    “결국 플럭스 공학회에서 만든 장비들이다 보니,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신호들이 존재하더군요.”

    그렇게 말하며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장비의 버튼을 쿡 누른다.

    피이이잉-

    전자기기가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장비에 푸르스름한 전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섀도우-스크랩 메이커는 그런 신호들을 가진 전자 장비들을 골라 마비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EMP?”

    “원리는 좀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합니다. 이걸 바닥에 꽂아 넣으면, 반경 1km에 있는 장비들을 잠시 고철 덩어리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오. 개쩌네.”

    “네?”

    “아니. 말이 헛나왔군. 멋진 물건이야.”

    “멋진 물건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테스트를 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죠.”

    “테스트는 필요 없습니다. 분명히 먹힌다니까요?”

    며칠 사이에 이런 물건을 만들어온 것에 놀라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지만, 다행히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밀키웨이 덕분에 대충 넘긴 모양이다.

    아무래도 밀키웨이는 테스트를 하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조금 걱정인 모양인데, 나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테스트도 하지 않은 장비를 실전에 투입하기에는 아무래도 위험성이 크지. 하지만 꼼꼼한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혹시 테스트를 하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제가 만들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부품들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소재들도 위험한 물건들이 많아서, 나라에서도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는 놈들이기도 하구요. 테스트하면서 한번 날리면 다시 사용하기 위해선 최소한 한 달은 걸릴 겁니다.”

    한 달. 지금 강철 기사단의 상황을 보면 한 달은 너무 길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자신은 있나?”

    “예. 물론입니다.”

    다크 스코프 아저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써보는 걸로 하지.”

    내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밀키웨이.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혹시라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다면, 오늘 작전은 모두 무르는 걸로 해요. 이런 빌런 소탕 작전에선 결국 히어로들이 다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 꼭 잊지 마시구요.”

    밀키웨이의 걱정 어린 소리에 나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    *    *

    “보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미즈 컴뱃의 보고에 의자에 앉아 있던 그렘린의 눈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알겠다. 먼저 나가 있거라.”>

    “예. 알겠습니다. 보스.”

    슈페리어 우월 주의자들이 가장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브루트들이었다.

    그것들은 두 발로 걷는 바퀴벌레나 다름없는 것들이다.

    도시에 숨어들어 새끼를 까며 야금야금 병을 옮기는 더러운 존재들.

    그리고 불곰파는 그런 더러운 벌레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근거지와 같은 곳이다.

    미즈 컴뱃은 항상 그들을 지켜보기만 하던 잿빛 망토단 시절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의 보스였던 라이트닝 스파크는 맹수 훈련이랍시고 브루트 아이들을 납치해 팔아 푼돈을 버는 것에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전쟁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보스, 그렘린은 다르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세력이 커지고 힘이 강해지자마자 불곰파와의 전쟁을 준비했다.

    그리고 전쟁의 시작인 오늘, 보스는 당연하다는 듯 참전을 선언했다.

    마치 원래부터 생각하던 목표가 불곰파와의 전쟁이었던 것처럼.

    미즈 컴뱃은 그렘린에게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방 밖으로 빠져나가는 미즈 컴뱃의 심장은 흥분으로 쿵쿵 뛰고 있었다.

    *    *    *

    작전을 꼭 오늘로 결정한 것은, 야금야금 힘을 키워나가던 강철 기사단이, 본격적으로 시외를 향해 진출하는 날이 오늘이라는 정보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시외로 세력을 확장한다는 이야기는 곧, 본격적으로 불곰파와의 전쟁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다.

    강철 기사단은 결국 잿빛 망토단에 있던 슈페리어 우월주의자들이 만든 것이고, 슈페리어 우월주의인 잿빛 망토단은 브루트 아이들을 납치해 팔아먹으려 한 전적이 있다.

    불곰파와 강철 기사단의 전쟁은 천산시 내부에서 일어나는 빌런 집단간의 세력 다툼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두 세력은 정말 서로를 죽일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거고, 어느 쪽이든 많은 피가 흐를 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강철 기사단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전초 기지에 도착해있었다.

    여기에 인원이 몇 명이 있을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여기서 조금이라도 유의미한 피해를 주게 된다면, 이번 전쟁을 막아낼 수 있을 거니까.

    나는 지금, 전초 기지로 보이는 건물 앞에서 정찰을 준비하며, 전초 기지의 건물 앞에 있는 숲에 숨어 있었다.

    이 정도면 저들에게 들키지 않고, 오른눈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나는 천천히 오른눈을 사용해서 건물 내부를 살폈다.

    전초 기지 앞에는 이미 많은 빌런들이 강철 기사단 특유의 최첨단 장비들을 손에 쥔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섀도우-통신기의 버튼을 누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 찾아왔군. 장비를 든 강철 기사단원들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 눈이 닿을 수 있는 범위까지 훑어보며, 나는 내부에 있는 대략적인 적의 숫자, 그리고 장비의 숫자, 그리고 함정의 유무에 대해서 전부 확인했다.

    전부 처음에 파악했던 정보와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간부진도 꽤 많다. 이정도면 전초 기지 수준이 아니라, 여기가 본진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번엔, 제대로된 정보를 얻은 모양이다.”>

    <“라저. 지금 출발한다.”>

    쉬이이익-

    내 신호와 함께 허공에서 들려오는,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

    처음에는 작고 희미하게 들렸던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할 때, 허공 저 편에서 불꽃을 휘날리는 퀘이사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저거 뭐야?”

    “히어로! 히어로 퀘이사다!”

    “습격 습격이다!”

    당황한 놈들이 허공에서 날아오는 퀘이사를 향해 사격을 준비해보지만,

    탕! 탕! 탕!

    놈들을 향해 날아든 슈팅 노바의 총알 때문에 사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허공에서 날아든 퀘이사가 손에 들고 있던 섀도우-스크랩 메이커를 놈들의 건물에 집어 던졌다.

    쾅!

    건물에 박혀 들어간 섀도우-스크랩 메이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동시에 놈들이 가지고 있던 장비들이 순식간에 힘을 잃는다.

    휘이이익!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히어로들이 기지의 내부로 뛰어들어왔다.

    “남은 시간은, 약 10분입니다!”

    다크 스코프의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나는 히어로들 사이로 뛰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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