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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24화 (124/236)
  • 제124화

    영원한 비밀은 없다(2)

    “…바로 저기야.”

    소연이가 말한 곳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눈의 능력을 발동해보아도 마찬가지다. 어둠을 꿰뚫고 먼지 쌓인 폐가만이 보일 뿐.

    【“이런 미약한 에너지를 탐지하고 있었단 말인가? 대단하군.”】

    너는 보이긴 보여?

    【“말을 듣고 나서 자세히 보니 느껴지는군. 아마 나도 듣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다.”】

    사실상 내가 찾아낼 순 없다는 말이군.

    “가… 강림아… 조심해.”

    나를 걱정하는 소연의 말을 뒤로 한 채, 나는 폐가의 안쪽을 들여다 보았다.

    벨제뷔트의 말까지 다 듣고 난 후에 나는 소연이를 향해 말을 건넸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혹시,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연이가 내게 다시 손을 내민다. 아무리 간이 큰 소연이라고 해도 진짜 귀신이 눈에 보인다면 겁이 날 수밖에.

    나는 소연이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잡은 손을 보며 숨을 크게 한번 내쉰 소연이 입을 열었다.

    “하아… 저 스님, 혹시 제 말 들리시나요?”

    잠시 기다리던 소연은 재차 입을 열어 소리친다.

    “스님!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잠시 기다리던 소연은 다시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대답도 없고, 아무런 반응도 없어.”

    【“아마 통로를 붙잡는데에 이미 많은 힘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경우엔 괜히 통로를 손대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소연이와 벨제뷔트의 말을 듣고 잠깐 머리를 굴렸다.

    스님의 영혼이 통로 앞을 지키고 있다면, 원작을 본 내 입장에선 통로를 여는 것보단, 닫는 것이 맞을 거다.

    내 눈엔 보이지 않는 스님의 영혼이 열리려는 통로를 붙잡고 있다면, 혹시 내가 원작에서 봤던 사건은 이미 일어나버린 이후일까?

    하지만, 나는 지금 영계의 통로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영계의 통로가 마음대로 열린다면 내가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게 있어서 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영계의 통로를 볼 수 있는 소연이와 함께 움직이는 것뿐이다.

    영계의 문이 열리고 나서 막는 건 결국 누군가는 다치고 만다는 의미다.

    지금이 아니면, 또 다음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영계의 틈을 막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수가 하나 있었다.

    “소연아. 할 수 있다면 통로를 아예 닫아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정말… 괜찮을까?”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히어로 활동을 조금이라도 더 해먹은 내가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

    “걱정하지 마. 나도 옆에서 도울 일이 있으니까.”

    “알겠어. 그렇게 해볼게.”

    양손을 앞으로 내미는 소연, 마치 실제로 창문을 닫는 것처럼 힘을 주며 안쪽으로 끌어모은다.

    프스스스스….

    소연이 말한 방향의 허공에 나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소연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고오오오오!

    동시에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비명…!

    균열의 틈이 점점 벌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흰머리를 산발한 채, 오래된 갑옷을 입은 한 영혼.

    영혼은 피눈물을 흘리며 이 곳을 바라보고 있다. 통로를 닫으려는 걸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마치 균열이 닫히는 것을 보고 있을 순 없다는 것처럼, 이 세계를 향해 손을 내민다.

    공포에 빠져 그 모습을 잠깐 넋을 놓고 지켜보던 그때,

    “데다이트!”

    퍼-억!

    허공에서 나타난 근육질의 팔이 빠져나오려던 여자를 잡아 밀어 넣는다.

    “강림아!!”

    그와 동시에 소연이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내 못난 정신을 일깨운다.

    “미안해! 지금 정신 차렸어!”

    【“나강림! 흑염! 흑염을 사용해라!”】

    내 머릿속에서 외치는 벨제뷔트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온다.

    흑염으로 영혼과 싸울 수 있는 거야?

    【“애초에 지옥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영혼이 가는 곳은 영계뿐만이 아니다. 지옥의 흑염이 영혼에게 아무런 타격이 없을 리가 있겠느냐?”】

    벨제뷔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화르르륵!

    “데다이트! 비켜!”

    내 말에 통로에서 또 다른 팔이 튀어나와 영혼의 얼굴을 후려친다.

    빠져나오려던 영혼이 데다이트의 주먹에 맞아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난다.

    내 오른손을 봉마의 사슬이 뱀처럼 타고 오른다. 봉마의 사슬 위로 흑염의 불꽃이 휘감아 오른다.

    뿜어져나간 흑염이 영혼의 머리칼에 옮겨붙어 타오르기 시작한다.

    “끼야아아악!”

    그랬음에도 영혼은 포기 하지 않는다.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내쉬며 고통을 참아낸다. 기어코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통로 끝을 부여잡는다.

    흑염의 영향을 받아 점점 영혼의 힘이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영혼은 통로의 끝을 계속해서 부여잡고 있었다.

    “강림아! 저 영혼이 붙잡고 있는 동안엔 절대 문을 닫을 수가 없어!”

    벨제뷔트!

    【“뭐냐! 나도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화력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야! 이 이상은 무리다!”】

    아니, 저 영혼. 혹시 영계의 주인이라던가 그런 존재는 아니지?

    【“오랜 세월 동안 마를 축적한 악령인 것 같긴 하다만, 영계의 주인은 아니야.”】

    그럼 용량 충분히 남겠네?

    【“…뭐라고?”】

    봉마의 사슬 안에, 자리 남겠다고. 방 좀 같이 써라.

    지옥의 군주, 심연의 여왕이 한번에 들어갈 순 없었겠지만, 악령 정도라면 충분히 봉마의 사슬에 담을 수 있을 터다.

    【“집주인이 방 하나 주라는데 내가 어떻게 반대를 하나?”】

    벨제뷔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체인을 휘둘렀다.

    뻗어진 체인이 통로를 칭칭 감는다. 동시에 충분히 힘을 잃은 영혼이 체인을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혼이 완전히 사슬 안쪽으로 몸을 감췄을 때.

    허공의 균열이 완전히 닫힌다. 균열을 칭칭 감은 봉인의 사슬과 함께 허공의 균열이 서서히 그 모습을 감췄다.

    슈우우욱!

    잠시의 소란이 지나고 순식간에 주변의 소음이 한번에 사라져버린다.

    허공에 있던 균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사라졌다.

    “허… 해냈다….”

    *    *    *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나는 소연의 인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열린 균열을 막아낸 이후,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스님이 소연이에게 길을 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응. 그렇지만 자꾸 손을 흔드셔. 이 방향으로 가야된다는 느낌으로.”

    길을 인도하는 귀신이라… 스님께는 실례지만 너무 무서운 이야기 아니야? 보통 유령을 따라갔다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던데. 도착한 곳이 실은 낭떠러지였다던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군. 방금의 악령을 봉인한 이후로 마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지금 방 같이 쓰는 친구는 어때?

    【“악령치고 강한 편이긴 하다만, 방금의 전투로 힘을 많이 잃었다. 완전히 정신을 잃었군. 당분간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거다.”】

    알겠어. 그럼 무슨 변화라도 생기면 바로바로 말해줘.

    【“알겠다. 걱정하지 마라. 깨어난 이후에 해야 할 일들은 내가 제대로 알려줄 테니. 후후….”】

    마치 첫 후임병을 받은 군인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 벨제뷔트.

    그러고 보니, 아까 지옥도 결국 영혼을 다루는 곳이라고 했잖아.

    【“그래.”】

    그럼 이런 악령들은 대체 왜 지옥에 가지 않는 거야?

    【“생전에 죄를 많이 지은 자들의 영혼은 이미 죽기 전부터 더럽혀져 있다. 이미 악에 물들어 더럽혀진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주시하고 있던 악마들에 의해 지옥으로 인도된다. 하지만 악령은 다르다. 악령은 죽고 나서 마에 잠식되는 존재거든.”】

    그러니까, 생전에 죄를 지은 사람만이 지옥으로 갈 수 있다는 거야?

    【“단순하게 보자면 그 말이 맞다. 생전에 죄를 짓지도 않은 영혼은 지옥에 갈 수 없는 거지.”】

    정말 어렵구만….

    사실 내가 이런 무서운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던 게… 스님이 인도하는 곳은 계속해서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 들 짐승이나 다니는 샛길들을 타고 한참을 움직인 소연이와 내가 도착한 곳은, 내가 원작에서 본 바로 그 작은 절이었다.

    “앗!”

    “…소연아. 스님은?”

    “절 앞에서 사라졌어.”

    건물 한 채로 이루어진 작은 절간 안은 촛불이 켜진 것처럼 은은하게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종이로 발려진 옛 문 너머로 한 사람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이 절을 지키고 계시는 스님이실까?

    분명 절간 안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지만, 절 주변엔 한참 동안 누군가의 왕래가 없는 것처럼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소연이와 내가 잠시 머뭇대는 동안, 절간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제가 할 일을 대신해준 은인들께 대접해드리지 못함을 사과드립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놀랍게도 여성의 목소리였다.

    “은인들이 해주신 일에 감사드리나, 이곳은 산 자가 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닿을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이. 돌아가 주십시오.”

    다행히 내가 알고 있던 원작의 사건은 벌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곳은 영계의 영혼들이 이 세계로 나오지 않기 위해 막고 있는 곳.

    소연이와 내가 가진 힘들은 영혼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는 힘. 그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을 염려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음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이곳에 생겨날지도 모르는 참사를 안다면 더 그렇다.

    나는 절 너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돌아가기전에 몇 가지 경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경고라.”

    내가 한 말이 불쾌했는지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

    “저는, 앞으로 이 곳에 생겨날 수 있는 미래를 알고 있거든요.”

    *    *    *

    “이건 아무래도 가져가기 힘들테고… 이건 너무 위험하고….”

    하준은 지금, 아버지의 비밀 공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최근 다크 카이저가 사라지면서 유튜브의 조회수가 계속해서 떨어지기 시작했으니까.

    최근까진 어떻게든 다른 히어로들의 사건들까지 끌어올려 조회수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젠 한계에 닿았다.

    한참을 비밀 공간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던 하준은, 하나의 물건을 보고 눈을 빛냈다.

    “이거. 이건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하준은 오래된 검에 손을 뻗었다.

    우르륵.

    순간, 검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뭐야?…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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