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18화 (118/236)
  • 제118화

    팀워크(4)

    【“나강림… 그렇게 당황하면 어떡하나?”】

    벨제뷔트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하지만 다크 스코프 아저씨의 표정을 보니, 이미 다시 연기하기엔 글렀다.

    이미 내 정체를 거의 확신하고 있는 듯한 표정.

    “그건, 제가 앞으로 다크 카이저님이 그리는 그림에 제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다크 스코프의 말.

    “제가 히어로를 그만두고, 가족들에게 돌아가길 원하셔서 그러셨던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나는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건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들어맞는 말도 아니었다.

    방금 전의 일을 겪으며 나는 느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일은 너무나도 높은 곳에 있고, 그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선 나 혼자만의 힘으론 불가능하다. 언제 어떻게 나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일들이 생겨날지 모른다.

    믿을만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믿을만한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솔직함 또한 필요했다.

    나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에게 조금 정도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오해요. 내가 다크 카이저라는 신분을 버린 건… 그저 두려웠기 때문이오.”

    슈트의 기능이 마비되었어도, 벨제뷔트의 힘 덕분에 형태가 바뀌었다고 해도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야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다크 카이저의 이름을 달고도 활동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헬 카이저의 이름을 달고 활동한 진짜 이유는 다크 카이저에게 시선이 너무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다크 카이저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본래의 정체에 대한 관심 또한 늘어난다.

    <“다크 카이저! 퀘이사랑 무슨 사이에요?”

    “실제로도 퀘이사와 아는 사인가요?”

    “다크 카이저는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요?”>

    가끔 나를 향해 묻는 이런 질문들이 나는 빌런들의 공격보다 더 무서웠다.

    항상 나강림의 인생이 누군가에게 공개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떨어야만한다.

    그래서 헬 카이저라는 인물을 만드는 것에 동의했다.

    다크 카이저와 헬 카이저. 공통점이 있는 히어로가 늘어나면 신비감이 더해지고, 시선이 분산될 테니까.

    <“왜!! 나를 죽이지 않는거냐!! 다크!! 카이저!!”>

    나의 적들이 나의 약점을 쉽게 찾지 못할테니까.

    이렇게 활동하다 제인이 돌아오면, 그땐 또 다른 신분을 만들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에게 지키고 싶은 소중한 가정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소중한 내 인생이 있었거든.”

    하지만 헬 카이저로서의 나를 믿지 않는 히어로들을 보며 깨달았다. 내가 두려워져 버린 것은, 다크 카이저라는 신분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대적하려고 하는 적은 강하다. 사대희는 일신의 힘만이 강한 것이 아니다. 나의 정체를 들킨다면 경한 그룹이라는 거대 힘을 이용해서 나의 본체를 짓누르려 할 터였다.

    그런 사대희에게 한 방이라도 먹여주기 위해선,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보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다시 다크 카이저로 돌아가야만한다.

    나 일신의 힘만이 아닌, 사회를 바꿀만한 강한 영향력을 가진 히어로가 되어야만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오. 내가 버렸던 다크 카이저라는 이름이 내게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소. 이제야 내가 그려야 하는 그림이 무엇인지 깨달았거든.”

    “크크크… 하하하하하하!”

    잠시간 내 말을 듣고 있던 다크 스코프가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저는 히어로라는 사람들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히어로도 다 똑같은 사람인데.”

    한참을 웃던 다크 스코프가 후련한 얼굴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다크 카이저님. 이번엔 당신이 그리는 그림에 저를 끼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잠시 다크 스코프가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일을 겪으며 나는 느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일은 너무나도 높은 곳에 있고, 그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선 나 혼자만의 힘으론 불가능하다. 언제 어떻게 나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일들이 생겨날지 모른다.

    지금의 나에겐, 동료들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는 뻗어온 다크 스코프의 손을 잡았다.

    “물론이오. 다크 스코프.”

    퀘이사를 둘러업고 다프네로 향하는 동안 다크 스코프가 다시 한번 나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다른 히어로들께도 정체를 밝히실 생각입니까?”

    【“뭐냐? 헬 카이저를 완전히 버린다는 말이냐? 안된다! 아직 디자인을 끝내지 못했단 말이다!”】

    나는 다크 스코프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은 아니오. 기왕 헬 카이저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김에 조금 더 이용해먹을 생각이오.”

    완전히 버려버리기엔 아깝다. 최근의 히어로 활동으로 헬 카이저도 점점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다.

    기왕 만들어진 인물이 언제 어떻게 쓰이게 될진 예상할 수 없는 법이다.

    경한 그룹을 상대하기 위해선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모두 사용해야 할 테니까.

    “그렇군요… 그렇다면 조금 더 크게 쇼를 만들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쇼?”

    “헬 카이저와 다크 카이저가 완전히 등을 돌리는 시나리오를 만드는겁니다.”

    다크 스코프 아저씨의 아이디어는 이랬다.

    헬 카이저가 인지도를 쌓으면 쌓을수록 다크 카이저와 헬 카이저를 연관시킬 사람들은 많아진다.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다크 카이저와 헬 카이저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처럼, 다크 카이저와 헬 카이저 간의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다크 카이저와 헬 카이저간의 전쟁을 실시간 중계 쇼로 보여주자는 거였다.

    “헬 카이저든 다크 카이저든 비슷한 느낌의 슈트와 능력의 흉내 정도는, 제 실력으로도 가능하니까요.”

    그렇게 쇼를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이 두 개의 신분을 정말 완전히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만들자는 소리였다.

    어때 벨제뷔트? 네 디자인 아직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말도 안 되는 계획이다! 나의 헬 카이저를 저런 아저씨가 사용하게 놔둘 순 없어!”】

    벨제뷔트가 질색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계획이다. 하지만 나와 싸웠던 상대가 다크 스코프 아저씨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계획의 득보다 실이 크다.

    “헬 카이저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지는 좀 더 고민해보도록 하는 게 좋겠소. 지금은, 일단 할 일부터 처리해보도록 하지.”

    나는 다프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    *

    “완전히 당했군.”

    퀘이사를 업고 들어오는 나를 보며 다프네 안의 히어로들이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일단 병실 안으로 옮겨주시겠어요? 다른 분들은 멀쩡하신가요?”

    “네 저흰 다행히 큰 상처가 없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달려온 밀키웨이의 말대로 방안에 퀘이사를 눕힌나는 히어로들이 있는 회의실로 나왔다.

    “우리는 완전히 함정이었소. 단단히 준비하고 우리가 오길 기다리고 있더군. 그쪽이 간 곳은?”

    “창고. 그런데 이미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더군. 고생해서 뚫고 들어갔더니 완전히 비어 있었지 뭔가?”

    페이퍼 백의 말에 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래서 정신계열 슈페리어들이란….

    다크 스코프 아저씨도 그렇고 그렘린도 그렇고. 정신 계열 슈페리어들의 생각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쉽게 읽어내기가 힘들다.

    아무리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해도 상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네요. 이질적인 불꽃 때문에 입은 상처가 조금 있긴 했지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에요. 오늘 하루 푹 쉬면 다 나을 거예요.”

    “…….”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곤 하지만, 사실상 빌런에게 당한 형국이라 그런지 히어로들이 침통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현재 이 도시에서 가장 골칫거리인 강철 기사단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일단 오늘 작전의 실패에 대해서 사과할게요. 오늘 작전이 실패한건 제가 얻어낸 정보가 가짜였기 때문이에요. 깨끗한 경로에서 들어온 정보라고 생각했는데 잡음이 섞여 있었던 모양이에요.”

    “우리는 그런 정보를 얻어올 경로도 없었는걸? 너무 신경 쓰지 마.”

    밀키 웨이가 고개 숙여 사과하지만 주변 히어로들이 만류한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 실패에 대한 질책을 하기보단,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할 때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서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 아까 나와의 대화로 기합이 조금 들어가 있는 모습이다.

    “저는 사실 히어로 활동을 하는 동안 전투를 하는 시간보다 장비를 만지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알 수 있어요. 지금 강철 기사단이 가지고 있는 장비들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모두 완벽한 장비들처럼 보이지만, 한 구석에 결함이 존재합니다.”

    나는 다크 스코프의 말을 듣고 안타까운 내심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해킹에 능숙한 제인이 깨어 있었다면 강철 기사단을 상대하기 훨씬 더 편했을테니까.

    “저는 오늘 전투에서 그 결함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제게 시간을 조금 더 주신다면, 놈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    *

    다크 스코프는 다프네에서의 회의를 끝내고 자신의 아지트로 돌아왔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강철 기사단의 장비의 약점들을 모두 찾아내 정리하려면 일분일초가 모자라다.

    다크 스코프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합의 이혼 동의서를 옆으로 치우며 PC의 전원을 켰다.

    삑-

    부팅된 컴퓨터의 화면에는 자신이 은퇴하기 전에 실행하려던 작전의 파일이 열려있었다.

    다크 스코프는 아직 열려 있는 파일의 제목을 살폈다.

    <경한 그룹 사대희 회장 암살 작전>

    다크 카이저가 없는 동안 암흑에 빠진 도시를 살피며, 다크 스코프는 이 도시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경한 그룹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골목길에서 활동하는 슈퍼 빌런과 슈퍼 히어로들 대부분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두운 일들의 배후에는 경한 그룹이 존재한다.

    하지만 히어로 활동을 하기 전의 자신은 그런 사실들을 알지 못했었다.

    와이프에게서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거기에 이 도시에서 다크 카이저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 은퇴를 결심하고 실행하려고 했던 계획이었다.

    인간 정학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의 하나하나에 두려움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크 카이저와의 이번 대화로 인해 깨달았다. 히어로들은 모두 두려움을 가진 채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게 어떤 방식의 두려움이던 간에, 모두 이겨내며 살아간다.

    다크 스코프도 다크 카이저가 바라보고 있는 더 높은 곳을 함께 바라보고 싶었다.

    다크 스코프는 노획에서 가지고 온 장비들을 책상 위에 올렸다.

    오늘밤은, 아무래도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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