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17화 (117/236)
  • 제117화

    팀워크(3)

    똑똑.

    미즈 컴뱃은 그렘린의 방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지이이익-

    기계 슈트를 입은 그렘린이 데드 아이를 바라본다.

    강철 기사단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미즈 컴뱃은 단 한 번도 기계 슈트 안의 그렘린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아마 아무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일견 특이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빌런으로서 오랜 시간 밤거리에서 생활한 미즈 컴뱃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밤거리의 빌런들은 힘을 따라 움직인다. 돈이든, 약이든, 아니면 정말 강한 무력이든. 자신들을 다룰 힘이 없다면 가차 없이 리더를 배신할 빌런들도 많다.

    강력한 힘과 강력한 도구들을 가진 슈페리어지만, 절대 방심하지 않는 것이리라.

    “그렘린님. 히어로들이 저희가 만든 덫으로 들어온 모양입니다.”

    “함정은 제대로 준비되었나?”

    “예. 모두 지시한 대로 준비되었습니다.”

    빌런이 천산시라는 도시를 집어삼키기 위해선 이 도시의 지배자인 경한 그룹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자신들을 기를 쓰고 막아낼 히어로들을 물리쳐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같은 현상이 계속해서 유지되길 바란다. 그래야만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그래야만 시민들이 지금 같은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 도시의 주인이 바뀌려는 상황을 끊임없이 견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의를 부르짖는 주제에 이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며 마음대로 다루는 경한 그룹에는 대적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경한 그룹 대신 거리를 청소한다.

    경한 그룹 입장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항상 코를 풀 수 있는 격이다.

    결국 강철 기사단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이 도시를 지배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들과 대적할만한 강력한 히어로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히어로들을 모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다프네에 거짓 정보를 풀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뿌린 거짓 정보를 물고 함정으로 기어들어 왔다.

    “한 명도 살려둘 필요 없다. 모두 죽여버려라.”

    “네. 알겠습니다.”

    미즈 컴뱃은 그렘린을 향해 경례를 올려붙였다.

    *    *    *

    ‘이것 참, 신기하네….’

    당연하지만, 건물의 내부에는 히어로들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는 적들과 여러 기계 장치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헬카이저는 마치 미리 안쪽을 들여다본 것처럼 적의 위치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퀘이사와 다크 스코프는 안쪽의 적들을 거의 피해 없이 제압할 수 있었다.

    철컥-

    PZZZZZZZ!

    BOOOOSH!

    다크 스코프가 쏘아낸 탄환에서 나온 전기 불꽃이 마지막 남은 적을 제압하고, 퀘이사가 뿜어낸 응축된 화염이 함정으로 된 기계 장치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퍼억-!

    “홀에 있는 위험 요소들은 모두 정리되었다. 안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이 주변을 확인해볼 테니 기다려.”

    바로 벽 뒤에 숨어 있던 남자를 한주먹에 쓰러트린 헬 카이저가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눈을 감았다.

    아까전에도 저렇게 눈을 감았다 뜨더니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렸지.

    그런 헬 카이저의 모습을 보며 퀘이사는 생각에 잠겼다.

    헬 카이저의 능력은 다크 카이저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슈트의 형태가 변하며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는 것, 흑염을 다루는 것, 그리고 오늘처럼 마치 벽 뒤를 투시하는 듯 들여다보는 능력까지.

    일반적인 슈페리어라기엔 서로의 능력들이 너무 닮아있다.

    퀘이사는 아까전에 봤던 슈트의 변형 상태를 떠올리며 가정을 하나 세웠다.

    정신계열 슈페리어들 중, 장비를 제작하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들은 가끔 비슷한 종류의 장비들의 여러 버전을 만들기도 한다.

    같은 장인의 손에서 나온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 이렇게 비슷한 능력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카이저 슈트는 두 개로 끝나지 않을 거다. ‘카이저’ 슈트의 다른 시리즈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런 슈트들은 하루 아침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 정도의 강력함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카이저 슈트의 프로토 타입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다른 가정으로는 퀘이사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둘 모두 같은 종류의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일 가능성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황서현이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이유가 있을 거다.

    마지막 가정, 사실 헬 카이저와 다크 카이저가 같은 인물일 경우.

    히어로들의 컨셉은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 쉽게 바꿀 순 없지만, 언제든 예외라는 것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소리는, 심리적 변화로 인해 바뀔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드물지만 소소한 컨셉의 변화를 겪는 인물들도 없진 않았다.

    그럼 대체 왜 같은 인물인데도 다른 인물인 것처럼 활동하는 것일까?

    “너 그런데 왜 그 사람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아?”

    갑자기 얼마 전 황서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퀘이사는 하던 생각을 멈췄다.

    ‘언니가 놀리려고 하는 말인 걸 알지만… 괜히 신경 쓰이네.’

    사람들을 구하는 히어로기만 하다면, 다크 카이저가 컨셉을 바꾸든 말든 퀘이사가 간섭할만한 일은 아니다.

    퀘이사는 떠오르는 상념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    *    *

    “함정이었나?”

    건물의 홀에 서서 건물 내부를 살펴본 나는 혀를 쯧 찼다.

    가지고 온 정보가 함정이었다.

    이 건물은 장비를 숨겨 놓은 창고도, 본부로 사용하는 기지도 아니었다.

    건물 내부의 수많은 방에는 모두 적들과 함정이 숨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를 계속해서 습격해 기운을 빼려는 수작이었을 거다.

    완전히 우리 같은 히어로들을 물고 늘어지기 위해 만든 함정이다. 우리는 습격 해 오는 적들을 죽이기보다는 제압해 때려눕히기만 할 테니까.

    여기서 우리를 제압해 낼 수만 있다면 잃은 병력은 치료를 통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는 심보였으리라.

    나는 일행의 상황을 살폈다.

    이 조합에서 전투를 길게 지속하는 것은 위험하다.

    동화율을 이용해서 흑염을 내뿜는 나, 가지고 온 장비들을 소비해가며 전투하는 다크 스코프, 그리고 몸 안에 화염을 축적했다가 내뿜어야만 하는 퀘이사. 모두 전투를 오랫동안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불리해진다.

    이미 전투가 벌어진 사실은 놈들에게도 알려졌을 터. 이제부터 시간이 끌려 지원이 도착하게 되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가 함정이라면 다른 조들도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받은 정보가 틀렸던 모양이군. 오늘은 여기서 물러가는 것이 좋겠어.”

    “뭐?”

    “안타깝게도 이 건물 안엔 아무것도 없다. 적만이 계속해서 이어질 뿐이다. 다른 조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게 늦었을지도 모른다. 빨리 가서 지원을 해줘야 할지도….”

    【“이미 늦었다. 나강림.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나을 듯하군.”】

    벌컥!

    우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온 입구에서 미즈 컴뱃을 필두로 한 빌런들이 홀 안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온다.

    “오랜만이다. 이 녀석들아!”

    데드 아이의 외침을 신호로 건물 내부의 문이 모두 열리며 마찬가지로 많은 수의 적들이 홀 안으로 쏟아진다.

    순식간에 사방에 적들이 깔리며 우리를 조여온다.

    “늦은 건 다른 조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퀘이사의 씁쓸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양 주먹을 들어 올렸다.

    *    *    *

    POW!

    SMASH!

    CRASH!

    이렇게 많은 적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요 반년간의 히어로 생활 중에선 처음이었다.

    쓰러트리고, 또 쓰러트려도 그 뒤로 수많은 적들이 다시 몰려들기 시작한다.

    “크… 크읏….”

    건물의 천장이 높지 않은 탓에 퀘이사도 자신의 장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밀려드는 적들을 상대하기에 바빴다.

    “슈팅 노바는 여기 없나? 안타깝게 되었군. 슈팅 노바를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는데 말이지.”

    ZIE-YOUU!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는 동안 중간중간 날아오는 데드 아이의 사격은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었다.

    “허억… 허억…!”

    육체 능력이 강하지 않은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점점 지쳐가는 것이 느껴진다.

    도망칠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불현듯 나는 예전에 스카 페이스와 했던 전투를 떠올렸다.

    스카 페이스를 막아내기 위해 기계를 땅 안에 묻었을 때, 스카 페이스는 그 상황에서 도망치기 위해 지하를 파고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을 선택했었다.

    탈출로를 찾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의 나 또한 스카 페이스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할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상황에서 놈들이 우리가 빠져나간 방법을 뒤늦게 눈치채게 하기 위해선 시선을 가릴만한 능력이 필요하다.

    벨제뷔트! 지금 당장 운명의 장막과 레스큐 모드 사용할 수 있어?

    【“레스큐 모드는 가능하지만, 운명의 장막은 무리다! 그건 단순한 슈트의 기능이 아니야! 제인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는 기능이다!”】

    안 된다. 그러면 이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땅을 뚫고 나갈 시간도, 시선을 가릴 방법도 없다.

    ZIE-YOUU!

    지쳐 허덕이고 있는 다크 스코프를 향해 날아오는 레이저 광선!

    “위험해!”

    BOOOOSH!

    BOOOM!

    퀘이사가 뿜어낸 불꽃이 레이저 광선과 부딪혀 작은 폭발을 일으킨다.

    “감사합니다 퀘이사님!”

    후드드득.

    작은 폭발에 먼지가 흩날린다.

    파직거리며 건물 내부를 비추는 조명이 깜빡거린다.

    흩날리는 먼지를 뚫고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달려드는 빌런들.

    하지만 방금의 공격으로 난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방법을 하나 생각해내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낸 이 방법은 퀘이사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 과연 나를 믿지 않는 다크 스코프와 퀘이사가 나를 믿고 이 방법을 믿고 따라줄까?

    【“지금 당장 사용할 방법이 그 방법밖에 없다면, 말해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나는 함께 싸우고 있는 퀘이사와 다크 스코프에게 내가 생각해낸 작전을 설명했다.

    “안 됩니다! 그 작전은 퀘이사에게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당연하게도 내 의견을 반대하고 나서는 다크 스코프.

    “아니야. 그게 가능하다면, 해볼 가치가 있어.”

    하지만, 오히려 퀘이사는 이 작전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내가 죽더라도, 결국 두 사람을 구하는 거잖아.”

    나는 상상도 못 한 대답에 퀘이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위로,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만화 속 퀘이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네? 죽는다뇨? 그렇게 리스크가 큰 작전이면 더욱 할 수 없습니다!”

    다크 스코프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어엿한 히어로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다크 스코프, 아니 정학근은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여린 아저씨다.

    자신의 딸뻘 되는 어린 여자 아이를 희생시키고 살아남을 수 있을만큼 뻔뻔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진짜 그 정도로 죽을 거 같아요? 그리고 이 작전, 다크 카이저랑 예전에 해본 적 있어.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다크 카이저랑… 말입니까?”

    그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던 다크 스코프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한번 해보도록 하죠.”

    “좋았어! 그럼 바로 시작하자!”

    나는 작전을 서두르려는 퀘이사를 말렸다.

    “이 작전은 지금까지처럼 서로 따로 놀아선 안 되는 작전이야. 실패하면 두 번째는 없다. 제대로 팀워크를 맞춰야만 해.”

    나와 퀘이사, 그리고 다크 스코프는 서로를 바라본다. 시선과 시선이 맞부딪힌다. 그 신뢰 섞인 시선 속에서 나는, 동료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래. 이번만큼은 제대로 팀워크. 맞춰보자.”

    나는, 이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지금처럼 함께 멋진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 만화의 끝에서 세상을 구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작전은 아까 설명한 대로! 내가 카운트할 테니 집중해!”

    “알겠습니다!”

    “준비됐어!”

    “카운트 3.”

    “2.”

    “1!”

    적들을 향해 계속해서 스파크 파이어를 쏘아내고 있던 다크 스코프가 돌연 몸을 돌려 퀘이사를 쏘아 맞힌다.

    “뭐야? 내분이냐?”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적들!

    퀘이사의 몸을 향해 날아가는 스파크 파이어!

    하지만 출력이 조금 부족하다!

    다크 스코프는 마지막까지 소녀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이 두려웠던 모양이지만,

    “최대 출력! 최대 출력으로 해요!”

    퀘이사의 단호한 모습에 다크 스코프도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최대 출력!”

    “천장! 천장을 향해 사용하도록 해! 이 건물의 조명이 꺼질 수 있게!”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점점 파란색으로 물들어가는 퀘이사의 머리카락. 그리고, 퀘이사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 빅뱅 어택!

    순식간에 사위가 어두워졌다.

    *    *    *

    “다행히, 다른 조는 무사한 모양이다. 함정에 빠진 건 우리뿐인 모양이야.”

    다크 스코프는 밀키웨이의 호출기를 확인하고 난 내 말을 듣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헉… 헉…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잠시만… 잠시만 숨을 돌리고 가면 좋겠습니다.”

    다크 스코프가 숨을 돌리는 동안 나는 등에 업고 있던 퀘이사를 내려놓고 상태를 살폈다.

    스파크 파이어는 퀘이사와 상성이 거의 맞지 않는 불꽃이다. 그런 불꽃으로 빅뱅 어택을 하는 바람에 몸에 조금 무리가 간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의식만을 잃었을 뿐 몸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쉬는 동안…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다크 스코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헬 카이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다크 스코프가 할 질문이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다.

    “다크 카이저님… 왜 두 가지 신분을 가지려고 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다크 스코프의 질문에 나는 깜짝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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