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07화 (107/236)
  • 제107화

    매드독(7)

    “은별아. 난 이만하고 먼저 간다. 너도 좀 적당히 해. 훈련도 좋지만 휴식을 해야 몸이 버티지. ”

    브릴리언트 팀의 실내 훈련실, 부스터 양요한이 마지막으로 떠나며 하는 말에 오은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 안 해요. 조금만 더 하고 들어갈게요.”

    “어 그래. 몸 관리 잘하고.”

    마지막으로 함께 훈련하던 양요한이 떠나고 나니, 넓은 훈련장엔 오은별 혼자만이 남았다.

    원래 가장 마지막에 떠나는 사람은 지훈 오빠였는데.

    다시 한번 느껴지는 허전함을 지우려, 은별은 다시 한번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주변이 조용해질 때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며칠 전, 지훈의 동생 도유진과 했던 통화.

    .

    ..

    “여보세요?”

    전화 너머에선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혹시 최근에 전화 올 곳이 있었나 생각해봤지만, 딱히 마음에 짚이는 곳은 없었다.

    <“네, 혹시 오은별씨 전화번호 맞나요?”>

    “네 맞는데요? 누구실까요?”

    <“네, 저… 지훈이 오빠 동생, 도유진이라고 하는데요. 저… 회사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플리커님이랑 연락하라는 소리는 듣긴 했는데… 통화하기가 힘들어서요.”>

    오은별의 머릿속에 병실에서 본 적 있던 도유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 연인에 대한 아직 지워지지 않은 미련으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도유진에게만 폰번호를 남겼었다.

    “어 네. 무슨 일이실까요?”

    혹시나 도지훈이 기억을 되찾았다면, 직접 연락을 취해왔겠지. 그렇다면 좋지 않은 소식일 가능성이 높았다.

    오은별은 조금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혹시, 저희 오빠 그 회사에 간 적은 없을까요? 며칠 전부터 집에도 안 들어오고….”>

    ..

    .

    무슨 일인지도 몰라 어버버 거리는 은별의 반응에 통화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사실은 그저 잠깐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몇시간 뒤에 금방 집에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요 며칠,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서 도지훈이 돌아왔는지를 묻고 싶었지만, 은별은 그럴 수가 없었다.

    “듀크 오빠는… 저희를 지켜주기 위해 무너지려는 통로를 등으로 떠받든 채 버텼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통로를 빠져나온 그 순간,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고 듀크 오빠는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오은별은 죽은 도지훈을 위해 한 인터뷰라고 자신을 속였지만, 사실 그것은 배신이었다.

    진짜 도지훈을 위했다면, 자신은 절대 거짓말을 해선 안 됐다. 전부 사실만을 말했어야만 했다.

    우르르쾅!

    상념에 빠져 있던 은별을 창밖의 천둥소리가 깨웠다.

    은별은 다시 한번 훈련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오은별은 반사적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돌려차기를 날렸다.

    턱!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자신의 다리를 막아내는 괴한.

    위력적으로 꽤 자신 있던 발차기를 한손으로 막아내는 것은, 절대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다리가 잡히면, 순식간에 제압당할 확률이 높다. 오은별은 능력을 사용해 뒤로 물러났다.

    번쩍.

    오은별의 시야가 점멸하고, 상대방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늘어난다.

    그제서야 오은별은 상대방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마치, 악마를 형상화한 듯한 뿔이 달려 있는 검은 가면과, 검붉은 색감의 히어로 슈트.

    이건, 빌런이나 할법한 발상의 디자인이다.

    “넌 누구냐? 여기엔 무슨 생각으로 들어온 거지?”

    “놀라게 해서 미안하군. 그냥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다.”

    상대는 히어로 슈트로 무장한 상태고, 자신은 훈련을 위해 가벼운 운동복 차림만을 유지한 상태이다.

    상대가 훨씬 유리한 상황.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대화를 시도해보는 편이 더 낫다.

    오은별은 파이팅 자세를 풀고 입을 열었다.

    “말해봐.”

    “듀크. 도지훈이 널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뭐?

    *    *    *

    도망친 환자들을 잡는 동안, 가장 많이 맞닥뜨린 분노의 방향은, 애정사인 경우가 많았다.

    헤어진 전 애인, 자신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운 애인, 자신의 짝사랑을 몰라주는 상대방까지.

    결국 많은 사람이 사랑하던 사람을 반대로 가장 많이 미워하기도 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지훈이 도착하는 곳이 혹시 여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플리커의 집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플리커의 집 위치를 나한테 왜 묻나?”】

    이놈의 악마가 제인이랑은 다르다는 사실을 또 간과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플리커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브릴리언트의 본사를 찾아갔고, 브릴리언트 본사에서 아직 훈련 중이던 플리커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플리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플리커의 집에 도지훈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해해요. 제가 만약 지훈 오빠였어도 저를 미워 했을 거예요.”

    찻잔을 손으로 말아쥔 플리커의 손이 덜덜 떨린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도 되겠나?”

    문은 제대로 닫혀 있기 때문에, 올 수 있는 루트는 아무래도 창문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창문 옆 벽을 등지고 서서 오은별을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든 빠르게 제압할 수 있게.

    “기억이 돌아온다면, 가장 미워할 사람은 바로 저일 테니까요. 위험에 처한 오빠를, 결국 버리고 간 건 맞으니까요.”

    “…….”

    “전 알 수 있었어요. 지훈 오빠가 그 안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제 능력이라면, 오빠를 구해서 돌아올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저는 겁이 너무 많이 나서….”

    흑흑….

    조용한 방 안에 울리기 시작하는 오은별의 울음 소리.

    우는 여자를 달래는 방법 같은 거… 나 같은 모쏠은 모르는데… 곤란하네.

    【“…나강림. 이걸 좀 봐야 할 것 같다.”】

    응? 뭐? 뭔데?

    나는 벨제뷔트가 띄워주는 화면을 보며 오은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리모컨 어딨지?”

    “…네? 무… 무슨 리모컨이요?”

    “TV 리모컨! 지금 당장!”

    내 서슬 퍼런 기색에 놀라 TV 리모컨을 찾아 티비를 켜는 오은별.

    TV에는 철 지난 케이블 예능이 틀어져 있었다.

    “뉴스! 뉴스 채널로!”

    삑-

    【“네, 다음 뉴스입니다. 오늘 저녁 9시. 팀 브릴리언트의 리더, 밴디저 강무영이 습격, 납치를 당했다는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이와 동시에, 며칠 전부터 전 브릴리언트 팀의 히어로였던 듀크 도지훈씨도 실종상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경찰은 현재 원한관계에 놓여있던 빌런들을 용의선상에 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허억… 무영 오빠?”

    떠오른 화면에는, 기절한 누군가를 끌고 가고 있는 흰색 슈트를 입은 빌런의 모습이 보였지만, 화면이 흔들린 탓에 정확한 형태를 확인 할 수 없었다.

    【“…남겨진 메시지에는 ‘매드독’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목격자가 찍은 사진입니다. 이런 옷을 입은 사람을 목격하신 분은 지금 전화….”】

    그와 동시에 아려오는 오른쪽 눈, 그리고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책.

    피투성이가 된 채 거꾸로 매달려있는 밴디저, 강무영과 그 앞에 있는, 히어로 슈트를 뒤집어 입은 도지훈.

    매달려 있던 강무영이 부은 눈을 가까스로 들어 올리며 도지훈에게 애원했다.

    “지훈아… 내가… 내가 잘못했어… 용서… 용서해줘… 제발….”

    “리더. 그 말을… 병원에서 하셨어야죠. 그랬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잖아요….”

    퍼억-

    지훈이 휘두르는 주먹에 얻어맞은 강무영이 추욱 늘어진다. 허덕이던 무영의 숨소리도 꺼지며 주변이 고요해진다.

    “리더. 사과가 너무 늦었어요.”

    후드드득.

    그 말과 동시에 펼쳐져 있던 책이 닫히고, 타오르던 오른눈의 불꽃이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방향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도지훈은 왜 이 사람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을까?

    나는 도지훈의 기억 속에 들어갔다 나온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 알 순 없었지만, 무너지던 건물 속에서 느끼던 배신감만큼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건물이 무너질 때, 도지훈이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네 눈으로 확인했나?”

    “…네? 아… 아니요. 그건 무영 오빠가… 혹시…?”

    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플리커 오은별을 보며 나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 속에 배신한 것은 오은별이 아닌 리더, 밴디저 강무영이었던 것이다.

    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강무영을 향해 찾아갔을테지.

    그렇다면, 도지훈이 강무영을 어디로 데려가고 싶었을까?

    “혹시 예전에 도지훈이 사고를 당했던 그 건물, 위치를 알려줄 수 있겠나?”

    *    *    *

    예전 훈련하던 기억이 떠오르는군. 챔피언이 되고 싶어서 참 열심히 훈련했었는데 말이야.

    도지훈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샌드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원 투-

    퍽 퍼억.

    샌드백에서 피가 튀어 지훈이 입고 있던 흰색 슈트를 붉게 물들였다.

    무슨 정신력이 이렇게 약해? 이거 조금 맞았다고 기절한 거야?

    원투 펀치 훅.

    퍼퍽 퍼억-

    “컥… 커억! 우… 우욱… 우웩.”

    거꾸로 매달려 있던 강무영이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낸 지 오래였기 때문에.

    툭툭.

    “리더. 리더. 여기 기억나세요? 리더가 그렇게 살려달라 애원하던 저를 버리고 간 곳이 바로 여기잖아요. 저 없는 1년 동안 다시 빌딩이 세워졌더라구요. 참 세상 빠르다 그쵸?”

    깨어난 강무영의 얼굴을 두 번 툭툭 건들며 도지훈은 씨익 웃었다.

    “지훈아… 지훈아… 오해야… 오해….”

    재차 휘둘러지는 지훈의 주먹.

    빠각-

    “리더. 틀렸어요. 다시.”

    “우웩.”

    강무영은 입안에 고인 피를 토해냈다. 바닥은 이미 그가 뱉어낸 액체로 축축하게 젖은 뒤였다.

    “그래요. 솔직히 알고 있었어요. 형이 은근히 은별이 좋아하는 티 내는 것도 알고 있었고, 저랑 형이랑 평소 의견 차이가 있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형이 저를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사람이 깔렸는데 거기 두고 갈 수 있어요? 어떻게 네 동료를 거기에 두고 갈 수 있냐고!”

    지훈이 가장 크게 배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래도 한 팀이었던 사람이, 동료로서 서로 함께 일하던 그 사람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바로 그 부분.

    “그것도 오해야… 너희 둘이 사귀는 거 난 단 한 번도 싫게 생각한 적 없어. 지훈아. 오해야. 거기에 두고 간 것도 아니야. 일단 팀원들부터 위험하지 않게 빠져나가고….”

    퍼억-

    “이번에도 틀렸습니다. 다시.”

    매달려 있던 강무영이, 가까스로 부은 눈을 들어 올리며 애원했다.

    “지훈아… 내가… 내가 잘못했어… 용서… 용서해줘… 제발….”

    “리더. 그 말을… 병원에서 하셨어야죠. 그랬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잖아요….”

    도지훈이 마지막으로 주먹을 휘두르려던 바로 그 순간,

    쨍그랑!

    창문을 깨고 나온 무언가가 순식간에 강무영에게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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