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매드독(4)
“도유진. 진정해. 네가 지금 당장 거리를 이 잡듯이 잡는다고 해서 지훈이 형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경찰에도 신고해놨다며. 일단 차분하게 기다려보자.”
불안해하는 도유진에겐 이렇게 말했지만 실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세계에서 내가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는 항상 내게 불안감을 안겨주곤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사실 실종된 도지훈이 어디로 갈지, 뭘 할지에 대해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건 오히려 가족들이 더 잘 알겠지.
사실은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냥 며칠 외박을 하려는 사이 핸드폰이 고장이 났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만 하고 있어 봐야 시간만 흐를 뿐이지. 일단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저녁에 다프네로 가는 거 아니던가? 밀키웨이에게 조사를 부탁할 수도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봤다시피 도지훈은 운동선수 출신이 아니던가? 그렇게까지 큰 위험에 처한 상황은 아닐 거다.”】
“…그래, 알았어.”
도유진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유진답지 않게 시무룩해 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마음 아프네.
“야. 도유진. 니가 뭔데 지훈이 형을 걱정하냐. 뭐든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마라. 지금도 어디서든 잘 있을 거야.”
“너 그거 위로냐 욕이냐?”
내 말에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던 도유진이, 픽 웃었다.
“그래. 고맙다. 항상. 그래도 너밖에 없다.”
참 많이 들었던 말이네. 예전엔 이 말에 속아 넘어갔었더랬지.
이번 일을 조사하면서 도지훈의 일도 함께 조사해보기로 마음먹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면 됐다.”
* * *
나는 준석이와의 약속을 먼저 지키기 위해 약속 장소로 나왔다.
이미 충분히 바쁘지만… 약속을 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직은 초짜긴 하지만, 순간이동이라는 초능력 자체는 참 좋은 능력이니까, 어디에든 도움이 될 터였다.
나는 약속장소에서 두리번대는 준석이를 향해 뛰어내렸다.
“헤에에엑!”
위에서 떨어지는 나를 보고 지나치게 놀라는 박준석, 아니 데빌 보이.
“이런 사소한 걸로 그렇게 소리 지르면 위험한데 말이지.”
“앗. 정말 죄송합니다.”
【“심연에서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군. 내가 들어본 비명 중에 가장 가냘픈 비명이었는데 말이지.”】
야, 심연 때는 공포를 주 무기로 삼는 여왕이 적이었잖아. 그건 어쩔 수 없어.
【“히어로, 특히 헬 카이저는 절대 변명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맨날 변명해대는 주제에 변명하지 말라고 하는 악마의 말을 무시하며, 데빌 보이의 슈트차림을 살폈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지난번에 봤던 형태에서 변하진 않았다.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바이저가 달린 헬멧과 튼튼하게 보이는 가죽재킷. 그리고 붉은색 야구배트.
헬멧의 전면에 커다란 해골이 그려져 있지 않고, 머리 위엔 붉은색 뿔이 달려 있지 않으며, 가죽재킷엔 징이 박혀있지만 않았으면 참 좋았을 테지만… 얘도 참 취향 독특하네.
“다른 히어로들과 차별화를 두면서, 실용성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었잖아요. 머리를 보호하며 얼굴을 가릴 수 있는 헬멧에, 튼튼해서 잘 찢어지지 않는 가죽재킷. 그리고 이 배트.”
휙!
박준석은 들고 있던 배트를 허공을 향해 휘둘러 보였다.
“이래 보여도 카본으로 만든 거라 쉽게 안 부서질 거예요. 사실 제대로 구상하고 있는 건 따로 있는데… 자금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해서 완성하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어차피 네가 입고 다닐 슈트인데, 나한테 죄송할 필요까진 없다. 충분히 잘했어.”
다크 스코프 아저씨랑은 또 다른 타입이라 당황스럽긴 하네.
【“그럼… 일단 오늘은 이대로 집으로 보낼 건가?”】
일단은 이번 사건은 같이 해보는 방향으로 가자. 결국 얘도 경험을 쌓아야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해줄 테니까.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건이 생겼다. 오늘은 그 일을 같이 해결하도록 하지.”
* * *
천산시 은척동에 위치한 타투 다프네는 타투 가게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천산시 히어로들의 병원 및 아지트의 형태로 사용되는 곳이다.
그런 타투 다프네의 주인, 밀키웨이 황서현은 최근 헬 카이저에게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히어로들을 부르던 참이었다.
의뢰받은 사건의 규모가 꽤 커 적은 인원으로 해결하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똑똑.
“어 네. 들어오세요. 문 열려 있어요.”
첫 번째로 문을 열고 들어온 히어로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히어로라고 불리우는 래피드 스타였다.
“여! 밀키웨이. 잘 지내셨는가?”
“어 오셨어요?”
“하하! 역시 내가 가장 빨리 왔군. 내가 너무 빨랐던 모양이야.”
가장 빠른 히어로라는 설정에 집착하고 있는 래피드 스타는 자신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는 점이 만족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
부스럭, 부스럭.
잠시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난 후 래피드 스타의 손에는 순식간에 커피 한잔이 들려 있었다.
빠른 속도에 집착한다는 점이, 래피드 스타의 컨셉 포인트인 모양.
황서현도 히어로 활동을 꽤 오래 하고 있었지만 가끔은 그런 모습들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사실상 은퇴 직전까지 갔다 돌아온 히어로인 래피드 스타는, 은퇴를 번복한 이후에 훨씬 더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똑똑.
“네. 문 열려 있으니까 들어오세요.”
벌컥.
스읍 후.
“어이. 다들 오랜만이구만.”
호쾌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두 번째 히어로는 슈팅 노바였다.
“여기 병원으로 쓰는 곳이라 담배는 끄셔야 해요.”
“어. 그래. 미안~”
스읍 후.
슈팅 노바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 모금 더 빨고 나서야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아 정확하게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는 담배꽁초.
“우리 밀키웨이. 나 너무 오랜만에 불러주는 거 아니야? 기다리다가 목 빠질 뻔했잖아. 어 안녕 종이 모자. 너도 오랜만이네.”
“오. 오랜만이군, 슈팅노바. 종이 모자가 아니라 래피드 스타라고 불러라.”
“난 종이 모자가 더 좋아.”
너스레를 떨며 들어온 슈팅 노바 페이퍼백의 앞에 앉아 머리에 쓰고 있던 카우보이 모자를 벗어 무릎에 얹었다.
입에 문 담배와 카우보이 모자 그리고 눈 근처만 가리는 검은 반가면.
슈팅 노바의 컨셉은 담배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서부시대의 총잡이인 모양이다.
“자주 보던 얼굴들이라 좋긴 한데. 이게 끝이야? 밀키웨이랑 매일 같이 일하던 반짝이는 어디로 간 거야?”
“반짝이?”
“어. 그 머리 반짝거리는 히어로 있잖아.”
“퀘이사 말인가?”
“어 맞아. 퀘이사. 걘 이름을 너무 어렵게 지었어. 맨날 부를 때마다 헷갈린다니까.”
“퀘이사는 불곰파 때문에 천월에 내려가 있어요.”
“어머. 불곰파가 무슨 일로? 그래도 걔네만큼 조용히 사는 애들이 드문데.”
잿빛망토단이나 망령단에 비하면 불곰파는 얌전한 편이긴 하다.
불곰파는 사실상 브루트들끼리 생존을 위해 뭉친 집단이니까.
하지만 그런 불곰파도 결국은 빌런 집단인지라, 자신들의 구역을 들쑤시고 다니는 존재들이 생기면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최근 주얼리 커플이 그 주변을 들쑤시고 다니는 모양이에요. 그 때문에 그쪽 브루트들 성향이 난폭해져서.”
“으음… 또 탈옥인가…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데 말이지.”
“어쩔 수 없죠. 슈페리어의 초능력들은 아직 그 한계를 쉽게 짐작하기 힘드니까요.”
“난 괜찮아. 일이 많으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깜깜이를 닮았다던 그 친구는 언제 온대? 나 걔가 제일 궁금한데. 컨셉 골 때리잖아~ 깜깜이.”
그렇게 말하곤 킬킬 웃어대는 슈팅 노바.
“깜깜이요? 아 다크 카이저. 연락했으니까 곧 올 건데요.”
Knock. Knock.
바로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오는 노크 소리.
“누가 왔나 보군.”
“뭐야. 노크 소리가 뭔가 다르네.”
“노크 소리만 들어도 누가 왔는지 알겠네요.”
끼이익.
문이 서서히 열리며 그림자가 방 안을 드리운다.
휘이잉-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 나부끼는 망토. 달빛을 등진 채 문 앞에 서서 방 안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다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군. 바로 일을 시작하지.”
바로,
* * *
밀키웨이의 다프네 앞에 도착하자 급격하게 쭈그러들며 소심해지는 데빌 보이.
【“지난번 다크 카이저와의 기억이 소심하게 만들었나 보군.”】
“여기는….”
“온 적 있나 보군?”
“네. 다크 카이저님이랑 한번….”
“괜찮다.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다르니까. 그리고, 네 옆에는 내가 있다.”
“아 네. 알겠습니다.”
Knock, Knock.
【“좋아. 오늘은 등장씬을 어떻게 연출할 거지? 기대되는구만.”】
미안하지만, 오늘은 그런 컨셉질에 힘을 빼고 싶은 날이 아니라서… 오늘만 봐주라.
나는 벨제뷔트가 뭐라고 말을 더 붙이기 전에 빨리 문을 열어젖혔다.
문을 열고 들어섬과 동시에 나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
“왜 저 친구가 들어올 땐 바람이 저렇게 부는 거지? 그림자는 왜 저렇게 지는 거고?”
“깜깜이 친구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똑같네.”
“동감이에요. 지난번엔 문 두드리고 몰래 창문으로 들어와서 저기 서 있더라구요.”
…그냥 들어 온 건데 분위기가 왜 이러냐?
* * *
“일단은 헬 카이저가 제게 준 네 명의 명단, 그 공통점을 한 번 찾아봤어요.”
삑-
빈 벽을 향해 쏘아지는 프로젝터. 하얀 벽 위에는 폭주한 네 사람의 최근 행적이 적혀있었다.
네 명의 사람들, 그 모두가 다녀온 적이 있는 곳에 붉게 밑줄이 그어진다.
“으음….”
“네 명 모두, 경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어요. 그리고 제압된 이후에도 전부 경한 병원으로 이송되었구요. ”
병원에서 치료?
나는 순간적으로 얼마 전에 퇴원했던 도지훈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훈이 형은 경한 병원에서 치료받은 게 아닐 텐데…?
삑-
프로젝터의 화면이 전환된다.
전환된 화면 위엔 많은 숫자의 사람들 이름이 떠오른다. 슬쩍 훑어본 이름 속에 도지훈의 이름은 없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이번 일이 터지고 어제오늘, 경한 병원에서 다시 불러들인 사람들의 목록이에요. 총 스물아홉 명. 헬 카이저가 잡은 네 명을 포함한 서른세 명의 진료기록을 살펴보던 도중, 이 환자 모두에게 병과는 관련 없는 같은 약물이 투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다시 한번 전환되는 화면. 그 화면 위에는 총 여섯 명의 사람의 인적 사항이 떠오른다.
“그리고 같은 약물을 투여받고 아직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총 여섯 명. 이 사람들을 추적해서 찾아내는 게 오늘의 목표에요. 질문 있으신 분?”
“나는 없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화도 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일단은 빠른 해결이 우선시 되는 사건인 거 같네. 일단은 환자들부터 빨리 처리하고 나머지는 그다음에 생각해보자.”
“자 그럼. 저랑 페이퍼백님이 한팀으로, 헬 카이저랑 슈팅 노바 그리고 저분은 이름이…?”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서서,
“뭐? 내 이름이 궁금하다고? 내 이름은 데빌-보이. 지옥의 황제, 헬 카이저님의 사이드킥이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크하하하하! 과장이 가득한 웃음소리를 내며 요상한 등장 포즈를 취하는 데빌 보이.
얘 아까까지 기죽어 있던 애 맞아? 갑자기 왜 이래?
“보통 사이드킥이라는 애들은 다 저런 거야?”
“그래도 다크 스코프는 저것보단 나았던 거 같은데요.”
“내가 보기엔 둘 다 그게 그거다.”
【“앞으로의 일이 골치 아프구만 그래.”】
아이고 내 머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