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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95화 (95/236)
  • 제95화

    RedRabbit Returns(4)

    하늘에서부터 날아온 검은 혜성은 레드 래빗을 곧바로 들이받았다.

    “케… 케헥!”

    레드 래빗이 목을 조르고 있던 다크 스코프가 레드 래빗의 손에서 튕겨져 나가 바닥을 굴렀다.

    쿨럭쿨럭.

    다크 스코프가 기침을 하는 소리를 들으며 레드 래빗은 몸을 일으켰다.

    “다크 스코프. 괜찮소?”

    “케헥… 예… 예… 일단 전 괜찮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다크 카이저였다.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레드 래빗은 알 수 있었다.

    대체 왜 처음에 다크 스코프를 다크 카이저라고 착각했는지 모를 정도로.

    레드 래빗은 다크 카이저를 증오했다.

    형제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자신의 형제를 죽인 것은 다크 카이저가 아니라, 뼈가 부러진 거 같으니 응급 처치를 부탁한다고 했던 형제의 요구를 묵살한 경찰이었으니까.

    하지만 레드 래빗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그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어머니를 죽인 병원도, 갈비뼈가 부러진 동생의 응급 처치 요구를 무시한 경찰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혼자 살아남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었다.

    자신의 엄마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아산 성모병원의 관계자들은 모두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감옥에 수감되고 나서 단 일주일 만에 레드 래빗은, 자신이 그들이 벌을 받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형제가 죽지 않았기를 원했다. 살아 돌아오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드 래빗은 불행했다. 그리고 그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 원인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레드 래빗은 다크 카이저를 증오하게 되었다. 자신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살려서 이 끔찍한 고통 속에 남겨두었기 때문에.

    그때 자신을 죽였더라면, 그때 자신을 죽여줬더라면 이런 끔찍한 감정을 느끼진 않았을 텐데.

    그리고 오늘, 그 고통스러운 기억들의 대가를 받기 위해 다크 카이저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다크… 카이저…!”

    *    *    *

    다크 스코프를 공격하고 죽이려고 했던 건, 레드 래빗이었다.

    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탈옥했구나.

    눈앞에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기는 다크 스코프를 보자 아득해지려던 정신을 다잡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이 떨려온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래빗즈 테러 사건을 막은 이후, 몇 주간 히어로 슈트를 입기 전에 내가 느꼈었던 증상들이었다.

    원작에선 존재하지도 않는, 내 스스로의 오만이 만들어낸, 오롯이 내 잘못인 사건.

    내게 있어서 래빗즈 테러 사건은 그런 사건이었으니까.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네 글자의 사자성어가 머릿속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다크… 카이저….”

    증오에 가득 차 있는 레드 래빗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휘이이익-

    내게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보며 일단 반사적으로 다크 쉴드를 들어 올렸다.

    파파팍!

    다크 쉴드에 부딪힌 고드름이 흩어졌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나를 향해 계속해서 고드름을 쏘아내는 레드 래빗.

    번쩍-

    눈앞에 무언가가 날아오는 기분에 또다시 반사적으로 몸을 젖혔다. 레드 래빗이 달려오며 던진 고드름 하나가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대응하고 싶었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진정이 되질 않았다.

    뒤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빙결 광선과 고드름 발사의 강력한 장거리 공격 콤비네이션.

    연속으로 들어오는 공격들을 다크 쉴드로 막아내며 블래스터로 대응 사격했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발이 떨리는 탓에 내가 하는 공격은 제대로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Dark Shield

    ■■□□□□□□

    Dark Blaster

    ■■■□□□□□

    속절없이 깎여 들어가는 다크 쉴드와 블래스터의 에너지.

    [“마스터! 정신 차리세요! 이러다가 진짜 죽어요!”]

    【“정신 차려라, 소년! 사거리 싸움으로 들어가선 네가 이길 수 없다!”】

    Dark Shield

    ■□□□□□□□

    다크 쉴드의 에너지가 한 칸 더 깎여 들어가자 비명을 내지르는 제인.

    [“꺄아아악! 마스터! 제발!”]

    하지만… 난 자격이 없는걸.

    [“지금 이런 상황에서 무슨 자격 타령이에요? 마스터, 이러다 죽는다니까요?”]

    레드 래빗의 분노는 타당하니까. 나는 레드 래빗의 동생을 죽였고, 레드 래빗의 어머니의 죽음에도 책임이 있어. 그런 내가 저 사람의 복수를 막을 자격이 과연 있을까?

    Dark Shield

    ■□□□□□□□

    내겐 자격이… 없다.

    Dark Shield

    □□□□□□□□

    다크 쉴드가 속절없이 꺼지고, 꽁꽁 얼어붙기 시작하는 내 몸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    *    *

    끝난… 건가?

    꽁꽁 얼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다크 카이저를 보며 레드 래빗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다크 카이저의 코 밑에 가져다 대었다.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도 뛰지 않았다.

    다크 카이저는, 자신의 손에 죽어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레드 래빗은 엄청난 허무함을 느꼈다. 감옥 안에 있을 때부터 밖으로 나올 때까지. 레드 래빗의 인생 목표는 오로지 다크 카이저와의 싸움,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레드 래빗은 쓰러져 꿈틀대며 도망치고 있는 다크 스코프를 들어 올렸다.

    *    *    *

    [“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다크 카이저의 슈트 안, 검은 공간에서 제인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끝나면 안 되는데. 아직 갈 길이 너무 먼데.”]

    [“어떻게 해? 어떡해? 어, 그래! 흑염! 벨제뷔트! 너 지난번에도 흑염으로 얼음 다 녹였었잖아. 어떻게 좀 해줘 봐!”]

    【“…그땐 소년에게 의지가 있었다. 이 얼음 속에서 빠져나가 병원을 구하고 싶다는 의지. 지금은 살아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부족하다. 흑염은 정신과 의지를 통해 움직이는 힘.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얼음을 녹일 수 없다.”】

    [“꺄아아아악! 안 돼! 어헝헝… 그러면 우리 강림이 이렇게 죽는 거야? 안 돼! 그러면 안 된단 말이야!”]

    【“시끄럽다! 생각 좀 하게 조용히 좀 해!”】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은 벨제뷔트의 일갈에 제인의 입이 다물어졌다.

    【“네 권한으로 내 봉인을 풀어주는 건 어떤가? 봉인을 해제해 준다면 내가 이 상황을 정리해 줄 수 있다.”】

    [“그건 안 돼.”]

    【“어째서?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내 힘이 필요하지 않나? 너와 맺은 계약으로 어차피 난 이 세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너의 봉인이 해제된다면, 너에게 이끌려 지옥에서 온갖 것들이 기어 올라올 테니까. 네가 그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설득할 시간이 부족했다. 벨제뷔트는 곧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음 방법을 내놓았다.

    【“네가 허락만 해준다면, 내 능력으로 지금 이 상황에서 트라우마만 지워버리는 건 손쉽게 가능하다. 트라우마가 지워지면 흑염의 힘을 다시 컨트롤할 수 있게 될 거고, 그러면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을 거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저질러 버리고 싶었지만, 벨제뷔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제인과 맺은 계약 때문에 벨제뷔트는 나강림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으니까.

    [“네가 강림이의 인격에 손을 대게 내가 내버려 둘 것 같아?”]

    【“이----! 개----! 같-----은---!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이대로 갔다간 어차피 소년이 죽는다! 소년이 죽으면 어차피 내 봉인도, 너와 한 계약도 모두 해제된다고! 그럼 어차피 난 자유의 몸이야!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를 모르겠냐? 나도 이 소년을 살리고 싶단 말이다!”】

    분노한 벨제뷔트의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메아리쳤다.

    [“잘됐네. 그럼. 당분간 강림이를 부탁할게.”]

    그 소리를 듣고, 안심했다는 듯 말하는 제인의 목소리.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바로 그거였어.”]

    제인은, 슈트를 과부화 시키기 시작했다.

    *    *    *

    나는 우주 공간의 한가운데에 둥둥 떠 있었다.

    매번 꿈에 나오던 그곳이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별들이 눈앞으로 아스라이 펼쳐져 있는 바로 그곳.

    그런 내 눈앞엔, 밝은 빛을 내뿜으며 공중에 떠 있는 작은 별이 하나 보였다.

    아니, 작은 별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히어로, 스타라이트였다.

    “스타라이트. 죄송해요. 전 당신처럼 히어로 일을 멋지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나를 바라보는 스타라이트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다. 내가 했던 실수, 오만, 그로 인해 발생한 일. 그리고 오늘, 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까지.

    그런 내 말을 듣고 있던 스타라이트는 불쑥 말했다.

    “그래서 네가 선택한 것이, 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인가?”

    “네… 저는 그의 복수를 막을 자격이 없어요.”

    “도망치지 마라, 다크 카이저. 죽음은 도피처가 아니다.”

    “네?”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넌 그저 도망이 치고 싶을 뿐이다. 이 세상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무서워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모두 벗어 던지고 도망치려고 하는 거다.”

    그와 동시에 내 멱살을 잡고 나를 들어 올리는 스타라이트.

    분명 아까까진 우주 공간이라 중력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스타라이트가 나를 붙잡고 들어 올리자마자 바닥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중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네가, 네 스스로가 저지른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당당하게 그 일의 책임을 져라.”

    그와 동시에, 나를 잡은 손을 놓아버리는 스타라이트.

    나는 순식간에 우주 공간의 어두운 바닥, 공허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커… 커헉!”

    *    *    *

    “커… 커헉!”

    나는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뱃속에서부터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물을 토해냈다. 마치 물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온몸이 젖어 있었다.

    슈트가 전부 따뜻하게 덥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컥… 커헉… 컥컥… 캭….”

    【“어둠의 황제여! 정신이 들었나?”】

    벨제뷔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뱃속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속에 있던 것을 모두 게워내고 나서야 나는 제정신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도, 레드 래빗도 존재하지 않았다.

    제인! 레드 래빗은? 다크 스코프 아저씨는?

    【“레드 래빗은 지금 또다시 경한 센트럴병원으로 향했다. 이대로 갔다간 또다시 테러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벨제뷔트의 브리핑을 들으며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지금 누워서 토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제인! 현재 이 상황을 보도하고 있는 기자들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줘!

    【“자… 잠깐 기다려라… 내가 찾아보고 있으니까.”】

    아니, 너 말고 제인한테 한 말이야. 갑자기 너가 왜 그런 걸 찾아보고 있는 건데? 제인!

    내가 아무리 외쳐도 제인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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