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93화 (93/236)
  • 제93화

    RedRabbit Returns(2)

    삐빗 삐빗 삐빗-

    다크 스코프의 핸드폰이 울린다. 슬쩍 떠오른 이름을 본다. 아내의 번호다.

    <와이프 : 당신 또 나갔어요? 진짜 그놈의 도둑놈 옷 다 찢어버려도 어떻게 또 나가고 또 나가고 그러는 거야? 그냥 집에 묶어놓고 가둬놔야 할까 봐.>

    받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알 것만 같다. 다크 스코프는 핸드폰의 버튼을 꾹 눌러 핸드폰을 껐다.

    -띠리링~ 다크~ 카이저!

    벨트에 부착해 놓은 다크 카이저의 호출기가 울리는 소리…!

    다크 스코프는 재빨리 호출기를 켰다.

    <다크 카이저 : 긴급 사건. 탈옥한 닥터 보기맨이 보석동에 출현해 난동 중. 출동이 가능한 인원은 호출기의 참가 버튼을 눌러주길 바람.>

    닥터 보기맨? 그 정도의 파워를 가진 히어로라면 지금 입고 있는 장비로는 상대할 수 없다. 일단은 장비를 챙기기 위해 다크 스코프는 자신이 세워놓은 자신의 차량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내 몰래 모아놓은 비상금으로 산 개조 SUV. 개조된 차량 내부에는 좌석 대신 진열된 장비가 가득했다.

    우선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한다. 닥터 보기맨은 파워 타입의 빌런. 보기맨의 공격력을 한두 대는 맞아도 버텨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슈트와 보호구를 착용하고, 잠시나마 움직임을 제한시킬 수 있는 장비들을 챙긴다.

    섬광탄과 소닉-세이버 중에 무얼 선택할지 잠깐 고민했지만, 다른 히어로들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선 음파보다는 섬광탄이 훨씬 더 안전하다.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먹이기 위한 장비를 찾아 둘러본다.

    얼마 전에 개조를 완전히 끝낸 총기에 손을 얹었다가 내린다. 언젠가 써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아닐 테지.

    얼마 전에 저장해 두었던 라이트닝 스파크의 불꽃을 분사하는 장비, 다크-스파크 파이어를 등 뒤에 건다. 제압 용도로 사용하는 데에는 전격만 한 것이 없다.

    장비를 챙기고 차량을 운전해 사건이 일어나는 그곳까지 향한다.

    자신의 생각보다 거리가 있는지라 시간이 좀 걸린다. 가뜩이나 바쁜데 도로 상황도 그렇게 좋지 않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호출기를 슬쩍 들여다본다. 래피드 스타와 퀘이사가 한발 먼저 사건 현장에 도착한 모양이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났다.

    초조하다.

    <다크 카이저 : 긴급 사건 종결함.>

    “역시나….”

    끼기기기긱… 끼익-.

    “후우….”

    차를 돌려 언제나와 같은 순찰 경로로 들어선다. 매번 도는 순찰 경로를 계속해서 돌아봤지만, 그 후 몇 시간이 지나도 호출기는 울리지 않는다.

    차를 세우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후우….

    아무리 깊게 들이마셔 봐도 기운이 나지 않는다.

    다크 스코프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천산시에는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히어로들이 존재한다.

    다크 카이저, 퀘이사, 래피드 스타, 밀키웨이.

    전부 자신과 함께 일한 적 있는 동료지만, 자신만큼 약한 히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들 제각기의 강점을 가지고 있는, 멋진 히어로들.

    그리고 자신은 히어로라고 불리기도 어려운, 조잡한 도구를 만들어 활동하는 자경단.

    자신은

    래피드 스타처럼 빠르지도 않고,

    퀘이사처럼 화력이 강하지도 않고,

    밀키웨이처럼 안정적이지도 않으며,

    다크 카이저처럼 다재다능하지도 않았다.

    그들과 달리 자신은 지켜야 할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

    “미쳤어? 당신 미쳤어? 당신 그러고 다니다가 큰일이라도 당하면, 나 혼자 어떻게 애를 키우라고.”

    “내 생각엔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군.”

    후우….

    떠오르는 상념을 지우기 위해 연기를 내뿜었다. 내뿜은 연기는 상념과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다.

    “여기 있었군. 다크 카이저.”

    등 뒤에서 들리는, 다크 카이저를 부르는 소리.

    다크 카이저와 복장이 거의 비슷한 자신의 특성상 자주 다크 카이저와 혼동하는 범죄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다크 스코프는 굳이 자신이 다크 카이저가 아니라는 말을 하진 않았다.

    다크 카이저는 오히려 다크 스코프라는 이름을 최대한 쓰지 않게 말렸다. 다크 카이저가 왜 그러는지는 자신도 알았다. 이 일을 그만두고 돌아갔을 때 다크 스코프가 아닌, 정학근의 인생에 피해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겠지.

    그래서 종종 다크 스코프를 보고 도망가는 범죄자들은 많았지만, 다크 카이저를 불러 세우는 경우는 없었다.

    지금처럼 다크 카이저의 영향력이 강할 때, 다크 카이저를 찾아올 만한 사람은? 일반인? 혹은 히어로? 그게 아니면…?

    다크 스코프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다크 스코프의 등 뒤에 있던 사람은, 다크 스코프가 수십 번을 반복 재생했던 영상 속의, 토끼 가면을 쓴 남자였다.

    “무슨 일로 다크 카이저를 찾는 거지?”

    다크 스코프는 건틀릿에 내장되어 있는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는 척하며 버튼을 눌렀다.

    *    *    *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나는 내 방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한켠에 놓인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친다.

    가장 먼저 빨갛게 빛나는 눈이 보인다. 그다음에 보이는 것은, 슈트의 모습. 슈트의 모습은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디자인한 슈트의 영향을 많이 받아 디자인이 꽤 괜찮아졌다.

    예전에 입던 슈트보다 좀 더 심플하고 멋들어진 디자인. 물론 중2병 스타일의 슈트인 것은 변함없지만, 그래도 예전보다야 훨씬 낫다.

    슈트의 기능 자체도 많이 업그레이드되어, 예전처럼 오래 입고 활동한다고 땀투성이가 되는 일은 없어졌다.

    슈트 내부의 온도를 최첨단 AI가 항상 조절해 주고 있으니까. 물론 그래도 날씨가 꽤 더워진 터라, 집에 도착하면 샤워를 하긴 해야 한다.

    대충 씻고 돌아와 침대에 드러눕는다. 오늘의 결산을 진행해야 할 시간이다. 제인이 홀로그램 창을 띄워준다.

    [현재 동화율 : 54.75%]

    동화율이 50퍼센트를 넘어섰다. 지금 상황이 여름 방학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 빠른 속도가 아닐까?

    동화율이 오르면 오를수록 오르는 폭이 많이 줄어들고 있긴 했다. 거기에 개구리한테 매일같이 능력 사용비를 지불하고 있는 터라 더 느리기도 했고.

    뭐, 동화율이 100프로가 채워진다고 해서 지금 생활에서 많은 것이 달라지진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이모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뿐이지, 동화율을 100프로를 채운다고 이 세상에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되진 않을 테니까.

    나는 그다음으로 Heroicest의 홀로그램을 띄웠다.

    ○ 스타라이트 정신 공격

    ◐ 스카 페이스의 지옥의 문

    ● 어비스 위치의 심연의 여왕

    ● 다크 스코프의 병원 저격

    ● 해피 선데이 살인 누명

    ● 인휴먼증

    ·

    내가 원작 만화 Heroicest를 본 것은 중학생인 시절, 사실 햇수로만 치면 거의 10여 년 전에 본 내용이다.

    사실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몇 가지 중요 에피소드 외에는 거의 기억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며 히어로들, 빌런들과 부딪히다 보니 기억나는 내용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기억났던, 떠올랐던 내용들은 그때그때 곧바로 제인과 함께 메모해 저장해 놓고 있던 중이었다.

    작든 크든, 막아야 할 사건들은 미리 막아놔야만 이 세상에 닥쳐올 비극을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

    요즘 가장 경계하고 있는 에피소드는, 역시 정신 공격을 당한 주인공이 히어로들을 습격하는 에피소드이다.

    내가 이 에피소드를 경계하는 이유는 그 사건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파급력도 무섭지만, 내가 이 사건 이후로는 원작을 본 적이 없다는 부분에 있었다.

    지금처럼 내가 열심히 일한다면 어쩌면 막아낼 수 있는 사건일지도 모르지만, 미래를 예지하는 것처럼, 미리 사건이 일어날 곳을 파악해서 막아내는 지금 같은 일들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불가능하진 않아요. 마스터에겐 아직 미지의 힘이 남아 있잖아요.”]

    그래. 그렇긴 하지. 내 오른쪽 눈이 보여주는 미래.

    다크 스코프 때 미래를 보여주는 것을 막아냈을 땐, 과연 이것이 진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었지만, 소연이의 일을 막을 때에는 확실하게 느꼈다.

    이 능력은,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미래를 보여주는 능력. 그것은 내가 연달아 사건들을 막아내는 데 성공하며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스타라이트가 없어진 지금은, 내가 아닌 퀘이사가 정신 공격을 당해 히어로들을 공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강수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젠 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 강수아. 그래서 나는 강수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알게 되었다. 강수아처럼 강한 사람의 정신을 파고들어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의 정신 공격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지금의 나로선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스터. 그런데 언제까지 오른쪽 눈의 힘, 오른쪽 눈의 힘 그렇게 부르실 거예요? 이름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이름?

    내가 지은 능력의 이름들을 봐선 알겠지만, 내게 작명의 재능은 없다. 다크 스피드 모드, 다크 파워 모드, 다크 버스터 모드 따위로 기술 이름을 만들어 버린 내게 능력의 이름을 붙이라고? 난 못 해!

    [“걱정하지 마세요, 마스터. 마스터 설정 노트의 빅데이터를 근거로, 제가 대신 이름을 지어드릴 테니까요. 그럼 스스로가 지었다는 이유로 창피해하실 필요가 없어요.”]

    웃기지 마! 내 설정 노트의 빅데이터면 내가 만든 거랑 무슨 차이가 있는데?

    [“그래도 내가 지은 건 아니니까, 하고 외면할 수 있다는 점?”]

    그냥… 오른쪽 눈의 힘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당연하지만, 안 돼요.”]

    아휴. 제인이 한다고 하면 하겠지.

    날 놀려먹는데 진심인 게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니까. 나는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슬슬 피곤해지기도 했고, 내일도 학교에 가야 하기도 했으니까.

    오늘 하루도 탈옥한 보기맨을 다시 잡아넣는다고 고생해서 그런지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눈이 감기자마자 잠이 솔솔 오는….

    *    *    *

    내가 있는 곳은, 아주 깊은 어둠 속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 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사실 수많은 별이 박혀 있는 우주였다.

    예전에 본 적 있는 광경이었다. 몇 달 전, 스타라이트를 만난 적 있는 끝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

    끝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 안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의 별을 찾는다. 우리 이모의 별, 도유진의 별, 강수아의 별, 한소연의 별, 도지훈의 별… 모두 정도는 달라도 저마다의 색을 뿌리며 끝없는 어둠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내 별은 없었다. 나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밀키웨이, 래피드 스타, 슈팅 노바….

    이곳에도 내 별은 없다.

    레드 래빗, 스카 페이스, 라이트닝 스파크, 사대희….

    세상 모든 사람의 별은 있지만, 나의 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외로움,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나는 깊은 어둠 속에 잠겨 나의 별을 찾아 헤맸다.

    내가 찾은 것은, 다크 스코프. 정학근의 별.

    정학근의 하얀 별은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    *    *

    [“마스터! 마스터! 일어나 보세요, 마스터!”]

    삐빅- 삐빅- 삐빅-

    호출기의 알람과 제인의 부름에 나는 잠에서 깼다. 잠이 부족해서 그런지 정신이 멍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이 오기엔 조금 남은 시간. 하지만 이 시간에 깨웠다는 건 아마 긴급한 사건이 생겼다는 의미일 터였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호출기를 살펴보았다. 호출기엔 다크 스코프의 버튼이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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