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현장학습(4)
“많이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도유진은 진심을 담아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경찰과 군인, 어느 방향을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이번 군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뭘… 그럼 앞으로 공부도 좀 더 열심히 하고. 혹시라도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도 좋아.”
아까부터 도유진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여군이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도유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일 있으면 꼭 연락드릴게요.”
도유진은 인사를 끝내고 방금까지 친구들이 있던 풀밭을 바라보았다.
어라? 내가 생각보다 오래 있었나?
분명 저쪽 편에 드러누워 있던 친구들의 모습을 봤었는데, 전부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다.
버스로 갔나? 아니면 집합 장소?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으면 그냥 나강림한테 물어보지 뭐.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문자를 보내려던 바로 그때, 도유진은 맞은 편에 있던 자동차에서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손에는 전부 총이 들려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워 곧바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유진은 그저 멍하니 총을 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엎드려!!”
아까부터 계속 함께 이야기하고 있던 여군이 도유진의 머리를 잡아 눌렀다.
DUDUDUDUDU!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총소리를 들으며, 도유진은 눈을 감았다.
“지금 여기, 나 강림.”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 * *
와, 진짜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후두두둑.
다크 쉴드를 펼치기 위해 들어 올렸던 쉴드를 내리자, 망토에서 총알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셰이드와 셰도우를 집어 던졌다.
쉬이이이이-
던져진 나이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날아간 나이프는 경로에 있던 장애물들을 피해 정확하게 총을 들고 있는 습격자들의 어깨와 무릎에 박혀 들어갔다.
“끄으악!”
“으아아악!”
PZZZZZ!
나이프가 피부를 뚫고 박혀 들어감과 동시에 일어나는 전기 충격.
나이프가 날아가는 사이, 블래스터로 변형이 완료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PANG! PANG!
순식간에 군인을 쏘려던 네 명의 습격자들이 쓰러진다.
확실히 원거리 무기가 생기고 나니 조금 더 적들을 상대하기가 편해졌다.
“히어로 다크 카이저?”
“다크 카이저는 천산시에서만 활동하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 나타난 날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 군인들.
“습격자의 숫자는 방금 쓰러진 4명을 제외하면 18명. 전부 총기로 무장한 상태요. 지원 요청을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소.”
반면, 군인의 숫자는 버스당 2명, 총 16명이다. 학생들을 지켜야 하는 군인들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당연하지만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다.
내 말에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는 듯 입을 벌리려는 군인들이 보였지만, 지금 이야기를 계속해서 유지하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주변의 정리는 군인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나는 스피드 모드로 변형하며 아까 전에 봐뒀던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군인들의 지원도 지원인데, 히어로들의 지원도 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페이퍼 백은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대체 퀘이사는 뭘 하길래 이렇게 늦는 거지?
* * *
하아… 이러면 내가 도와줄 방법이 없는데….
“수아야. 걱정하지 말자. 걱정하지 말자. 우릴 도와줄 사람이 꼭 올 거야. 난 알아.”
강수아는 자신의 옆에 딱 달라붙은 채, 버스 안에서 몸을 숙인 채 덜덜 떨고 있는 소연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소연을 버스에 숨겨두고 슈트를 갈아입으러 가기 바로 그 직전에, 결국 사건이 먼저 일어나고 만 것이다.
빌런들은 전부 총기로 무장한 상태. 퀘이사는 대부분의 경우 총기류를 가진 빌런들을 피해 없이 제압하기 위해선, 응축된 화염을 통한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필요하다. 능력이 제대로 예열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총기를 가진 빌런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옆에 소연이라도 없었으면 지금부터 계속 예열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총소리가 들리자 자신을 꼭 잡고 버스로 끌어당기는 소연을 뿌리치고 히어로 활동을 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히어로는 절대 주변에 정체를 들켜선 안 된다. 정체를 들켰을 때 컨셉이 무너져 힘을 잃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건 부차적인 문제이고, 히어로의 정체를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
“치이이이익- 네. 32호 버스. 현재까지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버스를 지키고 있던 군인이 자신이 바깥으로 나가게 놔두지도 않을 터였다.
“방금 소리 들었어? 히어로가 왔대!”
“누구야? 누구? 다, 다크 카이저야! 다크 카이저가 왔어!”
“거기 너희! 절대 고개 들지 말고, 벽에 몸을 딱 붙이고 의자 밑에 숨어 있어.”
벌써 왔구나! 다크 카이저!
다크 카이저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 강수아는 조금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다크… 다크 카이저. 역시 다크 카이저가 왔어, 수아야! 다크 카이저라면 괜찮을 거야!”
그건 자신의 옆에 꼭 붙어서 눈을 감고 있던 소연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방금까지 겁먹었던 모습은 어딜 갔는지, 지금은 눈을 빛내며 창 쪽을 흘끗거리고 있었다.
그래. 다크 카이저라면 할 수 있을 거다. 강수아는 다크 카이저를 믿어보기로 했다.
Dudadadadada!
Pang!Pang!
창밖에선 계속해서 다크 카이저가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강수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다크 카이저.
* * *
“지금 여기, 나 강림.”
“뭐?”
나는 의아한 목소리를 내는 조무래기 1의 총을 잡아 빼며 그대로 팔꿈치를 휘둘렀다.
Crash!
지이이익-
내 몸에 걸려 있던 홀로그램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홀로그램 안에서 나타난 것은 바로 나, 다크 카이저.
“끄어어억.”
dudadada!
요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 동료를 보고 놀라 냅다 내게 총을 갈겨 버리는 조무래기 2. 나는 발사되는 총의 앞부분을 잡아 바닥으로 내렸다.
두두두두둑!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흙바닥에 박혀 들어가는 총알. 나는 그대로 뒤돌려차기를 놈의 턱에 박아주었다.
BAM!
“끄어어억.”
앞에 쓰러진 자신의 동료와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조무래기 2.
“아 뜨뜨뜨뜨.”
전투가 끝나자 손에 쥐고 있던 총열에서 나오는 열기가 느껴져 깜짝 놀라 총을 놓쳤다.
[“마스터. 호들갑 좀 떨지 마세요. 생각보다 안 뜨거웠거든요?”]
아니… 뜨거워서 그런 게 아니라 깜짝 놀라서 그런 거야.
나는 혹시 모를 총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총열을 완전히 휘어놓고 자리를 떠났다.
“이쪽이다! 이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하는 빌런들의 소리를 들으며 반대 방향으로 달려 벽을 등지고 몸을 숨겼다.
이번에 여기로 들어온 빌런들도 총 두 명, 조무래기 3과 4. 조무래기 3과 4는 벽을 등에 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없겠지만, 나는 오른눈의 능력을 이용해 놈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셰이드와 셰도우를 꺼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날아드는 나이프는 상대가 약하면 약할수록 유용했다.
이런 거 보면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진짜 엄청 유능하긴 하단 말야. 어쩌면 가끔 새로운 능력이 필요할 때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휙.
던져진 두 나이프는 말도 안 되는 각도로 꺾여 조무래기 3, 4를 향해 날아갔고, 날아간 나이프는 정확하게 조무래기 3, 4의 허벅지에 박혀 들어갔다.
이어지는 전기 충격에 기절한 조무래기 3, 4의 허벅지에서 두 나이프를 뽑아 챙기며 나는 내가 원래 가려던 목적지로 향했다.
내가 중2병 걸렸을 때 만든 히어로인 다크 카이저는, 어둠 속에 숨어 적들을 기습하고 습격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는 능력이 더 많았다.
그게 아니면 너무 어처구니없이 강해서 경험치가 많이 들어가거나, 아니면 살상력이 너무 높거나.
내가 실제로 이렇게 슈트를 입고 싸울 줄 알았다면 스타 라이트처럼 좀 더 정면에서 싸우는 느낌으로 슈트를 만들었을 텐데.
어쩌겠나. 그게 다 내 업보인걸.
언제나 그렇듯, 이런 상황에서의 후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가진 것들을 가지고 타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나는 정면에서 군인들과 빌런들의 전투를 지원하기보다는 인질이 돼버릴지도 모르는 관람객들의 구출을 전담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상대하는 빌런은 스카 페이스. 첫 만남 때 자신의 동료인 경섭이를 리볼버로 무자비하게 쏴버렸던 전적이 있는 놈이다.
내가 누군가가 총에 맞는 걸 본 것은 그 장면이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아직도 가끔 총을 보면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자신의 동료도 가차 없이 쏴버리는 놈인데, 여차하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질들을 가차 없이 공격할지도 몰랐다.
dudududududu!
dadadadadadada!
어디선가 군인과 빌런들이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오른눈의 능력을 이용해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살펴보았다.
그래도 군인들은 대부분 약간이라도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초능력자 계열이 대부분인데 반해, 이곳을 습격해 온 빌런들은 총기로 무장한 대신, 이렇다 할 초능력은 없는 모양이었다.
빠르게 빌런들을 제압하는 군인들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들이 크게 위험하지 않는 한, 그들의 전투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히어로, 영웅이라는 말을 듣고 있긴 하지만, 애초부터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는 비인가 자경단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몸을 사리지 않고 전투를 벌이고 있는 군인들은, 실제로 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지키는, 진짜 히어로들이다.
나는 그들의 방식을 부정할 자격이 없다.
“흑… 흐흑….”
나는 이윽고, 커다란 나무 옆의 벤치 아래에 숨어 있던 꼬마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걸리지 않고 잘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숨어 있는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주저앉아 울고 있던 꼬마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내 손을 잡았다.
그때!
건물의 바닥을 뚫고 튀어나오는 금속으로 된 드릴 하나.
나는 깜짝 놀라 뒤로 펄쩍 뛰었다.
지이이이잉-
그것은 작은 트럭만 한 기계 슈트였다. 바닥을 뒤집고 튀어나온 기계 슈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게 누구신가? 아주 오랜만이구만, 다크 카이저.”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데.”
누구시더라?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제인? 혹시 너가 아는 사람이야?
[“네? 제가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AI나 로봇이나 그게 그거 아니야?
지이이잉-
기계 슈트에 달려 있던 바이저가 열리고 나타난 사람은 스카 페이스였다.
“원하는 건 못 찾았지만, 더 재밌는 물건을 찾아서 말이야. 마침 잘되었군. 너한테 한번 시험해 보면 되겠어.”
드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