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79화 (79/236)

제79화

매드독(1)

“강림아. 이모 금방 준비하고 올 테니까 기다려.”

“네. 천천히 하세요. 지금 우리가 급한 거 아니니까.”

씻고 나와 젖은 머리를 선풍기를 켜 말리며, 나는 홀로그램으로 뉴스 기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 (독점)팀 브릴리언트. 빌라 화재 현장에서 구조 활동….

- (독점)팀 브릴리언트 밴디저. 구조 활동 도중 멋진 망토를 휘날리며 팬서비스 하는 모습….

-(독점)팀 브릴리언트 플리커. 사진 찍지 마세요.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화제….

세상사 사람 사는 게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같은 날이 바로 그런 날이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저어 브릴리언트와 관련된 기사를 모두 치웠다. 오늘 같은 날에 보기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기사들이다.

- 히어로 사이에서 싹튼 스캔들. 다크 카이저와 퀘이사는 무슨 사이? 미튜브 ‘한밤의 수호자 더 다크 카이저’의 영상에서….

지금까지의 홀로그램들과는 다르게 반짝반짝 빛나고 동그라미와 별이 다섯 개씩 달려 있는 홀로그램 기사를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인. 이건 나 보라고 일부러 하이라이트 한거지?

[“마스터. 제 최애 히어로는 당연히 다크 카이저고, 그다음 차애가 퀘이사거든요? 둘이 엮이는 기사가 나오는데 어떻게 그냥 둘 수 있겠어요?”]

야, 넌 나랑 퀘이사가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

[“마스터. 그런 건 원래 팬들에게 별로 고려하는 사항이 아니에요.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

【“허… 악마가 따로 없군.”】

이거 완전 악질이네. 너 미튜브 좀 그만 봐라 제발.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하이라이트된 반짝거리는 기사를 손으로 치워….

손을 휘저어봤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사.

빨리 치워 제인.

[“네 마스터.”]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해서도 퀘이사와 한 번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오늘내일 언제 상 치룰지도 모르는 히어로끼리 연애는 무슨 연애냐.

“강림아. 이모는 준비 다 끝났는데. 가자.”

“네 이모.”

*    *    *

도유진의 오빠, 도지훈이 입원해있던 천산병원의 병실 안. 수술을 기다리고 있던 도유진의 가족과 나는, 충격적인 말을 들어야만 했다.

“수술… 을 할 수가 없다구요?”

“신체 계열 능력자들에게 종종 있는 일인데… 몸 상태가 호전되면서 가지고 있던 능력이 활성화되는 바람에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환자분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도유진의 오빠, 도지훈이 히어로 활동을 할 때 가지고 있던 능력은 몸이 단단해지는 경화능력이다. 요는, 갑자기 피부와 뼈가 너무 단단해져서 칼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뇌는 멈춰있지만, 몸 상태가 너무 좋아져 버린 탓에 능력 발동의 스위치가 계속해서 켜져 있는 상태라는 것.

“지훈아… 지훈아….”

스르르 무너지는 도유진 엄마의 몸을 우리 이모가 뒤에서 안아주셨다.

“그렇다면 오늘 수술은 진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까? 약을 쓰거나… 그런 방법으로 수술을 시도할 수는 없는 건가요?”

도유진 아빠의 질문에도 의사 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주삿바늘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라….”

잠깐 입술을 들썩이며 뭐라고 하려던 도유진은 등을 돌리더니 병실 문을 열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강림아. 가서 유진이 좀 봐줘. 저러다가 큰일 날라… 강림아?”

나는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보이는 도유진 오빠의 피부 상태를 멍하니 들여다보다 이모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이모 말이 맞았다. 나보다 진짜 피가 섞인 가족인 도유진의 정신적 충격이 훨씬 클 터. 나는 반쯤 열려있는 문을 밀고 도유진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    *    *

부랴부랴 따라 나오긴 했지만, 얘가 나름대로 신체계열 슈페리어이긴 한 모양인지 순식간에 사라져서 어디로 간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거 골치 아프네, 정말.

이거 자꾸 쓰면 피곤하고 머리 아파서 좀 자제하려고 했더니만….

나는 붉게 물든 눈을 가리기 위해 병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내 오른쪽 눈에서부터 빠져나오는 붉은 색 기운. 빠져나온 붉은 기운을 움직여 병원 내부부터 탐색해보았다.

[“마스터. 병원 내부엔 없을 거예요. 방금 cctv 확인했더니 밖으로 뛰어나가는 게 찍혔네요.”]

아니 그런 걸 볼 수 있었으면 진작 확인 했어야지.

[“편의점에서 오른쪽. 네. 거기로 간 거 맞아요. 그 주변부턴 cctv가 없네요.”]

제인의 가이드와 함께 탐색 범위를 늘려 병원 주변의 길부터 천천히 탐색을 넓히던 나는 한 골목길에서 탐색을 멈췄다.

“흑… 흑흑….”

골목 너머에서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거기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흐느낌.

“끅… 흑…. 끄윽… 흐흐흑….”

꽤 오랫동안 들을 일이 없었던 내 소꿉친구 유진이의 울음소리였다.

“흑… 으으으… 윽…. 끅… 으으… 흑….”

욱씬.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딘가가 욱신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눈을 떴다.

*    *    *

나는 도지훈의 병실 안, 누워있는 도지훈의 침대 옆에 앉아 눈을 감았다.

도유진의 부모님과 이모는 잠시 바람을 쐬겠다며 나가셨다. 병실 안을 지키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상황. 내가 생각한 무언가를 하려면 지금 이 타이밍밖에 없었다.

[“마스터. 그건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제인… 이젠 이 방법밖엔 없어.

【“함께 다른 사람의 정신 속에 다녀온 나로서는 충분히 해볼 가치가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건 조금 불안정하긴 했어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정신이었잖아요. 이건 달라요…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였던 사람의 정신은 매우 위험해요. 엄청나게 강력한 정신계열 능력자들도 시도하지 않을 짓이라구요.”]

그래. 알고 있어. 그래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어차피 제가 이렇게 말려도 하실 생각이시군요.”]

내 생각을 읽고 있는 제인은, 내가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 책임일지도 모르는걸.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오른쪽 눈을 붉게 물들이며,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도지훈을 내려다보았다.

*    *    *

땡땡땡땡땡!

경기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 소리.

와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링 위로 울려 퍼지는 관객의 함성.

“승자는! 챔피언! 도 지 훈!”

와아아아아아!!

매드독- 매드독- 매드독-

링에만 올라서면 미친개처럼 돌변한다는 의미로 지어진 도지훈의 파이터 네임인 매드독.

관객들이 외치는 파이터 네임이 도지훈의 귀를 기분 좋게 때린다.

도지훈은 관객들에게 화답하기 위해 멋지게 챔피언 벨트를 들어 올렸다.

와아아아아아아!!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지금까지 고생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 많은 가짓수의 무술들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고통스러운 땀을 흘렸던가?

그리고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그렇게 피와 땀을 흘려도 관객들이 외치는 자신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보상되는 것이다.

도지훈은 웃으며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

대기실로 돌아오자 도지훈의 여동생, 도유진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으… 땀냄새.”

“이 기지배가? 오빠 뒤지게 맞고 와서 얼굴에 피칠갑한 건 안보이냐?”

“오빠보다 오빠 상대가 더 뒤지게 맞았던데 무슨 소리야? 이긴 사람은 그런 걸로 징징대면 안 되지.”

“참나. 힘든 경기 하고 온 오빠한테 말하는 본새가 그게 뭐냐?”

“알았어. 아무튼 이긴 거 축하한다고. 자. 여기 꽃다발.”

도지훈은 여동생이 건네는 꽃다발을 받으며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억지로 부모님이 꽃다발이라도 쥐여주라고 해서 온 모양이다.

이 세상의 많은 남매사이가 그렇듯, 도지훈과 도유진도 사이가 그렇게 살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지훈의 부모님은 그런 분위기가 달갑지 않은 모양인지 가끔 남매가 이렇게 사이좋은 척이라도 하길 바라시곤 하셨다.

“오냐. 고맙다.”

“고맙다면서 왜 던지는데? 어?”

“내가 너한테 꽃 받아다 어따 쓰는데? 받았다 치자.”

“그래도 사람이 생각하고 사다 준 걸 던져?”

“니 생각 같은 거 필요 없는데.”

생각했던 대로 반응하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며 도지훈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강림이는 좀 괜찮고?”

도지훈은 도유진의 얼굴을 살피며 슬쩍 물었다.

나강림은 도유진과 어릴 적부터 같이 학교를 다니던 소꿉친구인데, 아주 어렸을 때 셋이 자주 같이 놀곤 했던 터라 도지훈에게 있어선 남동생 같은 녀석이었다.

그런 강림이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도유진에게 고백했다 차였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론 둘이 서먹해지는 바람에 도지훈과도 왕래가 끊겼었다.

그건 강림이를 남동생처럼 생각했던 도지훈에게 있어선 꽤 안타까운 일이었었다.

얼마 전, 그런 강림이와 끝까지 함께 하시던 강림이의 이모가 결국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이제야 알게 되었던 도유진이, 부랴부랴 집에 칩거해 며칠 동안 나오지 않던 강림이를 집 밖으로 끌어냈었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어… 뭐 괜찮지. 이제 좀 괜찮아졌어.”

도지훈은 도유진의 머뭇거림에서 무언가 다른 켕기는 것이 있음을 눈치챘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남매사이라고 해도, 같은 핏줄인 이상 동생이 오빠를 속여먹기는 힘들다.

“야. 너 강림이랑 무슨 일 있었냐?”

“어?어? 아니? 아니? 아닌데? 무슨 일 없었는데?”

백 프로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한번 떠볼까?

“니네 사귀냐?”

“어? 아… 아니….”

도지훈의 말에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하는 도유진의 얼굴. 얘 봐라? 진짠가 보네?

놀려먹으려고 던진 미끼를 덥석 무는 것을 보며 도지훈은 신나게 도유진을 놀려먹기 시작했다.

“야. 어차피 만나려면 진작 만나지. 괜히 나까지 껴서 어색해지게 말이야.”

“아… 아니… 그땐 나도 너무 어려서 잘 몰랐고….”

“아이고. 드디어 나도 강림이 얼굴 좀 볼 수 있는 거냐? 너 눈치 보여서 강림이한테 몇 년 동안 연락도 못 한 거 알아, 몰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빨갛게 익은 얼굴을 푹 숙이는 여동생을 보며 도지훈은 피식 웃었다.

강림이 얼굴도 오랜만에 한번 보러 가야겠네.

강림이의 얼굴을 떠올린 그 순간, 도지훈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뭐지…?”

똑 딱 똑 딱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귀에 똑똑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세상이 울렁울렁 흔들리는 듯한, 마치… 곧 무너질 세상처럼.

똑… 딱… 똑… 딱….

그 묘한 기시감을 깨닫고 몸을 일으킨 바로 그 순간.

세상이 멈췄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던 도유진도, 바깥에서 들려오던 사람들의 소리도, 방금까지 똑딱똑딱 움직이던 시계마저도.

모든 게 멈춘 그 세상 속에서 저벅저벅 무언가가 벽을 뚫고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벽을 뚫고 나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오른 눈이 붉게 물들어있는 나강림.

“와… 진짜 엄청 오랫동안 헤맸네. 이래서 제인이 그렇게 말렸던 거구나.”

들어오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강림이의 모습은 도지훈이 기억하던 강림이의 모습과는 조금 큰 차이가 있었다.

“어… 강림이? 넌 어떻게…?”

“지훈이형. 이제 그만 일어날 시간이야.”

“뭐…? 무슨…? 뭘 일어나?”

일어나기는 아까 전에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일어났었다.

“아니 아니. 그렇게 일어나는 거 말고. 형, 날 봐봐.”

홀린 듯 강림이의 붉게 물든 오른쪽 눈을 바라본 도지훈은 머릿속에 깨질듯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

.

.

.

.

“흐어어어억!”

도지훈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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