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74화 (74/236)
  • 제74화

    비뚤어진 우정(2)

    “하아….”

    도유진과 황채경의 친구, 서지예는 한숨을 푹 내쉬며 스마트폰을 침대 한구석에 던졌다.

    도유진은 병원에 입원한 오빠를 간호하느라 바쁘고, 황채경은 도유진과 싸운 이후로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도유진과 황채경 외에도 다른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서지예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은 도유진과 황채경이었다.

    셋이 있을 때야말로 완전해지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슬슬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똑똑.

    그때, 지예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뭐지. 여긴 아파트 4층이라 바깥엔 나무 외엔 보이지도 않는데….

    서지예는 조금 불길한 기분을 느끼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에 서 있는 것은, 최근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고 연락도 잘 받지 않던 황채경이었다.

    서지예는 놀라움 반, 반가움 반인 감정으로 한달음에 달려 나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뭐야? 너 어떻게 여기 올라왔어?”

    “안녕. 내 친구 지예. 맞니?”

    “그게 뭔 소리야? 내가 지예지 그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 같은 질문….

    그렇게 생각하던 지예는 맞은편에 있는 황채경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섬뜩한 표정이었다.

    “당신… 누구야?”

    서지예의 질문에 황채경의 모습을 한 그것은, 씨익 웃었다.

    “요즘 애들은 너무 눈치가 빠르다니까.”

    *    *    *

    [“마스터. 황채경은 어제부터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에요. 집에서 가출 신고도 한 모양이고.”]

    학교 내부 시스템을 쓱 살펴본 제인의 보고를 들으며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곧바로 황채경 집에나 가서 확인해 보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불량 청소년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시네요. 원래 불량 청소년은 가출을 밥 먹듯이 하는 게 국룰이죠. 얘는 어릴 때부터 얼마나 가출을 많이 했는지, 경찰에서 부모가 신고해도 수사를 안 들어갈 정도라니까요?”]

    이상한 단어 좀 그만 써라. 너 아직도 그놈의 미튜브 보고 다니냐? AI가 자꾸 미튜브에서 이상한 단어 학습해 오면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두려워진단 말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마스터. 사슬 안에 서식하는 어떤 악마와는 다르게, 저는 인류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으니까요.”]

    이미 너 같은 AI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인류의 해악이야.

    어디부터 찾아봐야 할지 감이 잘 안 오긴 하는데… 일단 정리부터 한번 해보자.

    【“일단 황채경이 한 말에서부터 단서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정신이 불안정할수록 그 내면이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

    도유진의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단서라서 조금 믿음직스럽지 못하긴 한데, 일단은 거기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다면 주요 키워드는 아무래도 친구겠네요. 지난번에 도유진한테 했던 말들도 그렇고, 이번에 도유진한테 한 말들도 그렇고. 친구 사이라는 관계에 꽤 집착하는 편인 거 같은데….”]

    반 친구들 괴롭히는 맛으로 살던 일진 주제에 친구 관계에 집착하는 건 조금 우스운 꼴이구만.

    【“그게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실은 좋아하고 있었다거나, 히어로를 증오하는 빌런이 역으로 히어로에 집착하는 경우도 흔하지.”】

    뭐야? 악마 주제에 인간에 대해서 잘 아는 척하지 마. 니가 인간에 대해서 뭘 알아?

    【“왜냐면, 그런 인간들이 악마들에게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악마와 계약을 요구하는 사람은 보통 후회하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

    그런 사람들은 보통 뭘 요구하는데?

    【“보통은 시간을 되돌리는 걸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흘러간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에 가깝다. 시간을 되돌리면 결국 그 시간선은 새로운 차원이 되고 마니까. 결국 새로운, 다른 세상이 되고 말지.”】

    [“우웩. 설명충 악마. 또 설명 시작하셨네.”]

    그럼 도유진 다음으로 찾아갈 곳이라면… 아무래도 서지예겠군.

    [“일단 서지예한테 먼저 가볼까요?”]

    그래. 서지예한테 먼저 가보자. 그전에 혹시 모르니까, 소연이네 집 근처에 설치해 둔 CCTV 계속 감시하고 있어 봐.

    혹시 거기로 찾아갈지도 모르니까.

    *    *    *

    퀘이사는 자연/신체계열의 슈페리어로, 몸에서 불꽃을 뿜어내는 능력과 불꽃을 몸 안에 품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뿜어낼 수 있는 불꽃의 위력은 사실 비슷한 능력의 슈퍼 파워를 가진 히어로나 빌런들에 비해 강하지 않고, 화염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육체의 화염 내성 또한 강력하고 좋은 능력은 아니다.

    하지만 두 능력을 조합해 자신이 뿜어낸 불을 머리카락에 받아들였다가 분사하는 방법으로, 퀘이사는 비슷한 종류의 슈퍼 파워보다 강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어지는 단점 또한 명확했다. 퀘이사의 능력은 눈에 너무 띈다.

    퀘이사의 은은한 붉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의 머리칼은 그 자체로 퀘이사의 상징 같은 것이 되었고, 퀘이사의 붉게 타오르는 황금빛 머리칼을 본 범죄자들은 퀘이사와 마주치기 전에 꽁무니를 빼버리곤 했다.

    마치, 경찰차의 사이렌처럼.

    그래서 조심성이 필요한 임무의 경우, 위력적인 부분에서 손해를 많이 보더라도 능력에 제한을 걸어야 하곤 했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체는 가려야 하기에 슈트와 가면은 착용하였지만, 퀘이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머리칼은 검은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 조심성이 조금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지금 만나러 온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퀘이사는 지금, 서지예의 방 창문 앞에 서 있었다.

    황채경, 강수아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문이 약물 중독으로 인생을 망치게 놔둘 순 없었기 때문이다.

    황채경과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서지예에게 황채경의 행방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 후….”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기 자신의 본모습, 강수아의 모습을 아는 사람 앞에서 히어로의 모습을 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강수아는 지금 이 상황이 조금 긴장되었다.

    ‘거기에… 창문으로 들어가는 거… 이제 조금 신경 쓰여….’

    다크 카이저와 알게 된 이후부터, 창문으로 들락날락하는 거 자체가 꽤 신경 쓰이고 불편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도 그렇게 바보처럼 보이면 어떡해….”

    다크 카이저라는 히어로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니고, 아마 스스로도 원치 않는 컨셉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지만, 다크 카이저의 행동 하나하나가 퀘이사에게도 꽤 신경 쓰였다.

    아니, 아마 지금 이 지구상의 모든 히어로들은 다크 카이저를 보면 퀘이사와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공감성 수치.

    어쩌면 모든 히어로들의 공통적인 수치 포인트일지도 몰랐다.

    “당신은 바보처럼 보이진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히에에에엑!”

    퀘이사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손을 휘둘렀다.

    화르륵-!

    턱.

    “아잇 씨X. 깜짝이야… 노… 놀랐잖소.”

    퀘이사가 휘두른 손을 턱 잡아낸 사람은, 아까까지 퀘이사가 속으로 열심히 돌려 까고 있던 다크 카이저였다.

    *    *    *

    “그… 창문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게 신경 쓰이면 내가 하면 되지 않겠소?”

    내 가면이 얼굴을 거의 완전히 덮는 식이어서 참 다행이다. 얼굴이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붉게 물드는 내 얼굴을 퀘이사도 알아봤겠지.

    이거 진짜 바보처럼 보이나 보구나.

    하… X발… 창피해.

    사실 내 스스로는 창피해도, 내심 다른 사람들은 나를 좀 더 멋있게 봐주길 기대했다.

    실제로 시민 중에서는 나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끼진 않는 모양이다.

    방금… 창문으로 들어가는 거 주저한 거 맞지?

    [“마스터를 위해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제가 봐도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아아아악! 오랜만에 진짜 너무 창피해!!

    나는 퀘이사 대신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퀘이사는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난 지는 어떻게 알고? 심연의 여왕에 대한 정보는 지금 나 외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심연의 여왕 때문이 아니라, 아마 황채경이 약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해서 그런 거 같은데요. 퀘이사라면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어. 듣고 보니 그렇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냥 데이터 분석과 감이죠. 이래 봬도 제가 최신형 기술만 탑재된, 오버 테크놀로지 AI랍니다.”]

    오냐. 너 잘났다. 그런 의미에서 이젠 나 좀 살려주면 안 되냐? 굳이 중2병 때 만든 이 창피한 컨셉… 꼭 유지해야 해?

    [“네. 꼭 유지하셔야 합니다, 마스터.”]

    나쁜 AI 같으니라고.

    나는 중얼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요즘 자꾸 여자방을 들여다보게 되는 거 같은데, 자꾸 같은 반 여학생 방을 들여다보려니까 조금 미안하네….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세요, 마스터.”]

    자꾸 자괴감이 드니까 그렇지. 이런 일 하려고 히어로 하고 싶다고 한 거 아니란 말이야.

    아쉽게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실에 켜져 있는 티비 소리가 방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아무래도 거실에 나가 티비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와하하하!”>

    거실 티비로 틀어져 있는 예능 프로에서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로 나가면 서지예의 다른 가족들과도 부딪힐지도 모르는데… 아무래도 황채경의 행방을 조용히 찾아내기엔 조금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창문을 넘어 들어온 퀘이사도 방에 사람이 없자,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먼저 앞장서도록 하죠.

    <“아하하하하!”>

    다시 한번 들려오는 웃음소리.

    나는, 그 상황에서 조금 기시감을 느꼈다. 지금 시간은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있을 만한 저녁 9시.

    그런 상황에서 티비에 깔깔 웃는 소리가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시청하면서 아무런 웃음소리도, 혹은 이야기 소리도 내지 않는다고?

    물론 집에 혼자 있게 된 상황이라던지, 티비만 켜놓고 모두 바깥으로 나가 있는 상태라던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는 많았지만,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며 나는 오른쪽 눈의 능력을 개방하였다.

    붉은빛이 문을 뚫고 나가 거실을 비춘다.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서지예와 서지예의 가족들. 그리고 그 옆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심연의 괴물들.

    숨이 턱 막혔다.

    벌써 심연의 문을 열고 괴물들을 이 세상에 불러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나는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내리고, 뒤에 있는 퀘이사에게 손짓했다.

    알아들어라, 제발.

    용케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제인이 만들어준 가면 위에 덮어쓸 수 있는 형태의 바이저를 얼굴에 쓰는 퀘이사.

    나는 곧바로 퀘이사를 향해 메시지를 보냈다.

    <이 문 바깥에 괴물 총 셋. 현관문 앞에 하나, 거실 창문 앞에 하나, 그리고 인질들 앞에 하나.>

    다른 방과 주변의 다른 곳도 샅샅이 살펴 보았지만 괴물들만 덩그러니 방을 지키고 있을 뿐, 황채경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 긴장한 태도에 놀라 고개를 끄덕이며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퀘이사.

    퀘이사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불이 팔을 따라 올라가며 천천히 퀘이사의 머리끝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퀘이사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퀘이사의 능력을 제대로 썼다간 건물에 불이 붙어 또 다른 사고를 만들어 버릴지도 몰랐다.

    나는 어제 새로 개방한, 새로운 능력을 사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SUIT MOD

    The Dark Kiaser

    천천히 내 슈트가 변형하며, 몸 여기저기 무기가 장착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인질이 있는 이상 속전속결이 중요하다.

    <인질 옆과 창문 앞에 있는 두 놈은 내가 처리하도록 할 테니, 내 등 뒤를 노릴 수 있는 현관 앞의 녀석을 쓰러트려 주시오.>

    내 메시지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는 퀘이사.

    곧이어 내 눈 위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숫자.

    [3…]

    [2…]

    [1…]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문을 박차고 나가 양손의 블래스터를 겨냥한다.

    타-탕.

    내 손의 블래스터가 불을 뿜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