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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73화 (73/236)
  • 제73화

    비뚤어진 우정(1)

    “요즘 세상이 흉흉하다. 최근에 이 근처에서 살인 사건도 있었고… 거기에 우리 반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오늘 아침에 선생님이 이야기했지?”

    “다들 항상 밤길 조심하도록 하고. 당분간은 다른 데로 새지 말고 집으로 바로 가라. 부모님들께서 걱정하시니까. 이만 해산.”

    나는 종례가 끝남과 동시에 챙겨놓은 가방을 가지고 몸을 일으켰다. 강도에게 당했다고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상태를 확인해야만 했다.

    항상 함께 하교를 같이하는 내 친구들, 수아와 소연이가 내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얘들아. 오늘은….”

    “어. 오늘은 유진이 병원 가려고 하는 거지?”

    그래도 요즘 같이 다닌 시간이 헛되진 않았는지, 친구들은 내가 뭘 하러 갈지 알고 있었다.

    “어. 도유진이 병원에 입원했다니까 한번 가보게. 가는 방향도 거의 반대라 오늘은 너희랑 못 갈 거 같다. 내일 보자.”

    서둘러 교실을 떠나려는 내 손목을 턱 잡는 강수아.

    “아니. 우리도 갈 거야.”

    “어? 너네가 왜?”

    의외였다.

    도유진이 얘네한테 피해를 주면 피해를 줬지, 해준 건 없었으니까. 중간고사 기간 전에는 서로 이야기도 거의 해본 적 없고, 중간고사 기간에는 억지로 공부하는데 끼어서 가르쳐 달라고 보채기만 했다.

    좋아할래야 좋아할 구석이 없을 텐데….

    “음… 사실 같이 공부해 보기 전엔 좀 무서워서 싫었는데, 막상 같이 공부도 하고 해보니까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인 거 같아서. 나한테 뭐라고 했다고 채경이랑 싸워주기도 했는걸.”

    심연의 여왕이 없어진 이후로 밝고 긍정적으로 변한 소연이의 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감개무량하다고 하셨을 텐데…. 지금은 첫사… 아니 소꿉친구가 다친 상황이라 그런가, 그런 말씀은 안 하시네.”]

    【“대신 내가 감개무량을 느끼도록 하지. 심연의 여왕을 구해낼 때 나도 크게 도움을 줬거든. 정신 속까진 따라올 수 없는 너를 대신해서 말이지.”】

    [“얼씨구. 잘나셨네.”]

    수아는 도유진 별로 안 좋아하던데… 아무래도 소연이가 간다고 하니까 따라오는 건가?

    “…뭘 그렇게 봐? 도유진한테 시험공부 알려준 거, 나야. 걱정을 하는 건 아닌데. 그냥 그렇다고.”

    솔직하지 못하긴. 아무래도 유진이가 걱정되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함께 가주겠다는 친구들이 생기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 같이 가자.”

    *    *    *

    그래서 찾아온 도유진의 병실은, 도유진의 오빠 도지훈이 입원한 천산 대학병원의 다른 병실이었다.

    “어. 나강림이 왔냐? 강수아랑 한소연도 왔네. 니네는 세트 메뉴냐? 요즘 계속 같이 다닌다?”

    다행스럽게도 입원해 있는 도유진의 모습은 꽤 멀쩡해 보였다.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멍이 들어있는 것만 빼면.

    “어뜩해… 진짜 많이 아프겠다….”

    도유진의 얼굴을 보고 울먹이기 시작하는 한소연.

    소연이는 아무래도 마음도 약하고, 이런 모습을 볼 일도 적은 터라 충격이 큰 모양이다.

    “야, 이씨. 와서 질질 짜려면 왜 왔어? 나 괜찮으니까 질질 짜지 마라.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회복이 더뎌진다. 의사 쌤이 그러시더라.”

    “그리고, 나 생각보다 회복력이 좋대. 며칠만 있으면 금방 다 나을 거라더라. 이 정도 능력이면 능력고사에서도 점수가 꽤 높게 나올 거래.”

    한참 도유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강수아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어젯밤에 의사 선생님께서 오빠가 이제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몸이 건강해졌다고 하시는 거야. 그게 너무 기쁜 나머지….”

    도유진의 말은 이랬다.

    새벽까지 오빠의 병실에 있던 도유진이 잠깐 밤공기를 쐬러 병원 앞에 밤산책을 나간 사이 습격당했다고 하는데….

    다행히 병원 근처였던지라 스스로 병원까지 걸어 들어와서 치료를 받았다는 거다. 지훈이 형을 닮긴 닮았는지, 예나 지금이나 정신력 하나만큼은 알아줄 만하다.

    “근데… 별거 아니야. 상처도 금방 나을 거고. 별일 없이 도망치는 것도 성공했고. 엄마랑 아빠가 걱정해서 잠깐 병원에 있는 거지 내일모레쯤이면 나도 학교로 다시 갈 거야.”

    제인. 당분간 이 주변 골목길 순찰 강화하자. 혹시 추가적인 범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사고 치러 다니는 범죄자 하나 잡겠지.

    [“네, 마스터.”]

    근데 이상하긴 한데… 이 근처는 사실 도심지인지라 경찰 순찰도 자주 도는 편이고, 노숙자나 범죄자들이 돌아다니기 힘들 텐데. 여기까지 와서 강도질을 하는 놈들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나 혼자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거짓말이구나. 너.”

    도유진의 말을 모두 들은 강수아가 한 말이었다.

    “도심지에선 강도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어. 가장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경찰이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곳이거든. 밤중에 갑자기 혼자 밤산책을 나가는 것도 이상하고.”

    “뭐… 뭐가 이상해? 난 원래 밤에 돌아다니는 거 좋아해.”

    “거기에 네 얼굴의 상처. 얼마 전에 얼굴에 그 상처랑 똑같은 부위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봤었거든.”

    뭐? 누구?

    “황채경. 너 이렇게 만든 사람, 황채경이지?”

    그제야 나는 도유진과 황채경이 치고받고 싸웠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당시에 나는 소연이의 상태에 신경 쓰느라 두 사람이 어떻게 싸웠는지, 어떻게 다쳤는지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싸움을 직접 말렸던 수아는 그 모든 것이 기억에 남아 있던 모양이다.

    “아니? 아닌… 데….”

    화들짝 놀라 아니라고 외치던 도유진은, 수아의 확신에 찬 얼굴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진짜로 황채경이랑 한 번 더 싸웠던 모양이다.

    “강수아, 눈치 빠르네. 하아… 나랑 채경이 일이니까 어른들이나 선생님한텐 말씀드리지 말아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말해준다면.”

    “내가 왜?”

    “친구니까.”

    “너랑 나는 친구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강림이랑 너는 친구야.”

    “아니, 우리 친구 맞잖아.”

    자신 없는 수아의 말 뒤를 잇는 소연.

    “우리 집에 와서 공부도 했잖아. 우리 엄마한테 내 친구라고 소개도 했는걸. 그럼 우리도 친구 아닌가?”

    잠깐 수아와 소연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도유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테니까, 아까 말했던 대로 어른들이나 선생님한텐 말씀드리지 말아줘.”

    “그건 약속할게.”

    “그래….”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상처 부위를 쓰다듬으며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도유진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    *    *

    “지난번에… 괜히 먼저 때린 거…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야. 한 판 더 뜨자.”

    메시지를 받고 약속 장소로 나간 도유진에게 황채경이 다짜고짜 한 말이었다.

    심지어는 도유진이 먼저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빠가 정신을 차린다면, 분명 먼저 사과하라고 했을 테니까.

    큰맘 먹고 내가 먼저 사과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돌아온 말은 한 판 더 떠보자는, 웃기지도 않는 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난번 싸움까지. 도유진은 한 번 더 싸워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황채경은 자신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오빠를 따라다니며, 오빠와 함께 여러 무술 도장을 다니며 진짜 무술을 배워본 도유진을, 타고난 육체 능력만 믿고 까부는 황채경이 이길 순 없을 거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싸워도 도유진은 황채경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난 다시 싸울 생각 없어.”

    지난번 싸움은 감정적으로 변한 도유진이 먼저 주먹을 휘둘렀기에 일어난 일이다. 황채경이 어떤 말을 했었든 간에 주먹을 먼저 휘두른 건 자신이었고, 그 결과는 받아들여야 했다.

    “왜? 너 아직도 나 무시해?”

    아직 분노에 가득 차 있는 듯한 황채경의 반응.

    “지난번에 싸움이 일어났던 건 먼저 주먹을 휘두른 내 잘못이야. 미안해. 어떤 일이 있어도 친구끼리는 말로 해결을 했었어야 했는데….”

    “친구? 나 네 친구 아니잖아. 지난번에 너랑 같이 도서실에 있던 걔네들이 네 친구지. 나처럼 멍청하고 성격 더러운 년이랑은 친구 하기 싫잖아. 맞지? 그렇잖아. 넌 원래부터 나랑 친구 할 생각 없었잖아.”

    평소와 무언가 다르다.

    도유진은 황채경의 태도에서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아니… 무슨 개 같은 소리 하냐? 친구가 아니긴 왜….”

    “그럼 왜 걔들편들었어? 왜 내 편은 안 들어주는데?왜 나 때렸어? 왜? 왜 나한텐 친구라고 하고 걔네랑 다니는데?”

    황채경의 몸 주변에서 알 수 없는 불안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묘하게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기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질적인 그 기운과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도유진은 황채경이 마약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너 혹시 약했냐?”

    퍽.

    황채경의 주먹이 도유진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    *    *

    “그래서 또 싸운 거야?”

    “아니. 싸운 거 아니야. 화 풀릴 때까지 좀 맞아줬을 뿐이지.”

    “조금 맞았는데 병원에 입원까지 했어?”

    “이건 부모님이 걱정하셔서 그런 거라니까 그러네. 별로 많이 안 맞았어. 아무튼 이건 나랑 채경이 둘의 문제니까 너흰 신경 쓰지 마.”

    당연히 도유진의 꼴은 별로 안 맞는 정도론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강수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잿빛 망토단의 간부진을 습격한 이후, 잿빛 망토단 세력의 힘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간부진이 모두 큰 상처를 입고 도망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퀘이사와 밀키웨이가 잔당들을 소탕하는 데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천산시를 갈라 먹고 있던 암흑가의 조직 중 하나였던 잿빛 망토단을 무너뜨린 것 자체는 좋았지만, 천산시의 범죄 조직은 하나가 아니다.

    비어버린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고도 하고 있었고, 원래 있던 흑사자회와 망령당도 잿빛 망토단의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활동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그런 과정에서, 황채경 같은 아이들한테까지 망령당의 손이 닿은 거겠지. 약과 정신 조작을 통해 사람들을 다루는 망령당의 활동은 항상 많은 피해자를 동반한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에게까지 손이 뻗어진 이상, 이대로 좌시할 수는 없지.

    강수아는 오늘 저녁에 퀘이사로서 해야 할 임무를 결정했다.

    *    *    *

    심연의 여왕이다.

    [“심연의 여왕이네요.”]

    【“심연의 여왕이군.”】

    나와 제인, 그리고 벨제뷔트까지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가장 빠르게 숨을 수 있는 곳은 그 자리에 있던 아이 중 하나였을 거다.

    지금까지 황채경을 생각하지 못한 건, 소연이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진의 정신 상태가 꼭 튼튼하고 멀쩡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던 건데….

    [“허를 찔렸네요.”]

    그러게. 그래도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으니 다행 아니겠어? 아직은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일지도 몰라. 친구한테 한 것치곤 조금 심하게 군 건 맞지만, 적어도 친구를 죽이려고 시도한 건 아닌 거 같으니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무래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차원의 지배자일 테니 벨제뷔트의 조언도 충분히 일리가 있을 테지. 시간이 얼마 없을지도 모르겠다.

    제인. 오늘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일들, 전부 페이퍼 백이랑 다크 스코프한테 넘겨줘. 오늘은 이 일부터 마무리해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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