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happysunday_xbxbxb(1)
칙… 치이이익… 치이이이이익….
딸깍딸깍.
“어머. 다 썼네.”
휘익.
깡!
손에서 던져진 빈 스프레이 통이 허공을 날아 바닥에 툭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나강림 반의 반장 서다혜, 아니 해피 선데이(HAPPY SUNDAY)는 중간고사를 망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늘도 가면을 썼다.
처음에는 간단한 장난이었을 뿐이다. 자고 있는 노숙자의 얼굴에 낙서를 하고 SNS에 인증샷을 찍어 올린다던지, 깨끗하게 빈 벽에 낙서를 해서 SNS에 인증샷을 올린다던지 하는, 그냥 가벼운 장난들.
그렇게 했다가 걸리더라도 장난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하면 해결될 수도 있는 아주 간단한 장난들을 해서 찍어 올리고, 그걸 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아주 가벼운 취미였을 뿐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SNS 아이디,
@happysunday_xbxbxb에 이런 댓글이 달리기 전까진.
<@2_cowsilver0219jinzoo 얜 겁쟁이처럼 걸려도 아무 문제 없을 사고만 치면서,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사실 SNS 팔로워 수가 늘어갈 때마다 자주 들었던, 별것 아닌 수준의 악플이었다.
하지만 그때 마침 오르지 않는 성적으로 인해 부모님에게 한바탕 소리를 들었던 후였고, 그런 타이밍에 올라온 악플은 다혜의 분노에 불을 당겼다.
오냐. 겁쟁이? 그렇다면 제대로 한번 보여주마.
다혜는 그날 밤, 가면을 쓰고 시장 부부의 저택에 침입해 자고 있던 시장 부부의 얼굴에 낙서를 하고, 그 사진을 SNS에 올렸다.
SNS의 반응은 뜨거웠고, 다혜를 미친 범죄자라고 욕하는 댓글은 있을지언정 겁쟁이라고 욕하는 댓글은 사라졌다.
SNS의 팔로워 숫자는 빠르게 올라갔고, 다혜는 만족했다.
다혜는 그 반응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을 온갖 기행과 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천산시의 랜드마크마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놨다.
도로 한가운데를 점거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 교통 체증을 오게 하기도 했고, 서로 다른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바꿔치기하기도 하는 등의, 범죄에 가까운 수준의 장난도 서슴지 않았다.
그중 가장 재밌었던 장난은 100층짜리 경한 타워에 켜져 있는 불을 마음대로 조절해, 웃는 얼굴을 만들었을 때였다.
그때 SNS의 뜨거운 반응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부르르 떨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속상한 나머지 뭘 해서 올려야 할지 생각해 오지 않았고, 그냥 마음이 내키는 대로 아무 벽에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린 것은 칼을 들고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햐~ 오늘은 내 그림 너무 괜찮게 잘 그려졌는걸.”
반짝반짝 형광빛으로 꾸며진 자신의 마스크는 꽤 인기가 있었고,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었다.
다혜는 예술 쪽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할 것을 알기 때문에 한 번도 그 뜻을 내비쳐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내가 미술하고 싶다고 하면, 내 머리를 전부 깎아버리겠다고 할걸.’
이렇게나 재능이 있는데.
오늘 한 장난은 평소보다 재미없는, 심심한 수준의 장난이지만 그림이 꽤나 잘빠졌기 때문에 반응이 좋을 것 같아, 다혜는 그림 앞에서 웃으며 인증샷을 찍었다.
찍힌 사진에 익살스럽게 내민 붉은색 혀가 꽤 마음에 들어, 두 번 찍지 않고 바로 VPN을 켜고 SNS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가볍게 사소한 장난. 오늘은 그림이 이쁘니까 다들 이해해 주세요. 그럼 해피 선데이XD.>
* * *
“안녕, 얘들아. 좋은 아침~.”
중간고사가 끝나고 처음으로 등교하는 첫날.
피곤해 보인다며 날 집으로 돌려보낸 친구들 덕에 나는 집에서 한잠 푹 자고 일어날 수 있었고, 저녁에 있던 히어로 활동에서도 큰 사고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역시 이 빌어먹을 세계에선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사건이 펼쳐질 뿐이었지만.
【“말조심해라. 내가 군림하고 있는 지옥에선 의견 차이로 인한 다툼은 있을지언정, 이런 더러운 범죄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이 세계가 지옥보다 나은 점이 없네.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세계를 지옥보다 못하다고 표현했던 이유다. 이 세계는 지옥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게 낫지 않은가?”】
헛소리 집어치워, 벨제뷔트. 이 세계의 수많은 범지자들 중엔 너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이 수두룩 빽빽하단다. 얘가 사슬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 하는 주제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벨제뷔트에게 사슬 감금 무기징역형을 선고합니다. 땅땅땅.
[“찬성합니다.”]
“야, 나강림. 너 우리 오빠 수술하는 날 꼭 와야 된다. 안 오면 가만 안 둬. 이번에 검사해 봤는데, 몸 상태가 갑자기 엄청나게 호전돼서 수술도 버틸 수 있을 거래.”
내가 오자마자 협박해대며 으름장을 놓는 도유진.
“아니. 알겠어. 무조건 간다니까. 근데 나 가도 되는 거 맞냐? 우리 이모 수술할 때는….”
아차. 이거 이 세계에선 없어진 일인데.
“이모 수술…? 소희 이모, 어디 아프셨었어?”
“어? 아니, 아니. 수술하신 적 없는데… 내가 왜 그런 말을 꺼냈을까…? 꿈이었나?”
“야, 나강림. 너 나 속이면 가만 안 둬? 이모 아프신데 나한테 말도 안 했어?”
아니, 진짜 원래 있었던 일인데, 여기 오면서 없던 일로 된 거거든. 좀 억울한데.
“야, 내가 왜 이런 걸로 속여. 너가 우리 이모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내가 요즘 시험공부 한다고 잠을 거의 안 잤더니, 피로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했거든. 그건 강수아가 보증함. 진짜임.”
“이건 사실이야. 어제 소연이랑 같이 카페 갔는데 거의 정신을 잃고 잤어. 소연이 무릎베개까지 해줬는데, 아예 알지도 못하던데.”
뭐어? 내가 소연이 무릎베개를 하고 잤다고?
“수아야. 또 너도 나 놀려먹으려고 거짓말 치는구나. 나는 그렇게 놀려도 되지만, 소연이는 여린 아이라 그런 루머에 상처받을 수 있어.”
“…….”
아니, 근데 잠깐만. 이거 가만 생각해 보니 내로남불 아냐? 좀 열받는데?
“아니, 그리고 도유진. 너도 지훈이 형 아픈데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잖아. 이 쓰레기야. 나한테만 화내기냐?”
“어… 내가… 그랬던가…? 기억이 잘 안 나네….”
내 말에 슬금슬금 교실 뒷문으로 도망치기 시작하는 도유진.
“야, 너 어디 가?”
“어. 화장실.”
“너 담배 피우냐? 지훈이 형 일어나면 너 담배 피운다고 이른다?”
“담배 안 피우거든? 지X하지 마. 소연이만 여린 게 아니라 나도 여려서 그런 악성 루머에 상처 충분히 받거든?”
“이게 더 지X 같은데?”
“뒤질라고. 똥 싸러 간다, 씨X아. 됐냐?”
“아, 예. 즐똥 하세요. 야, 도유진 똥 싸러 간다~ 길을 비켜라~.”
“어우, 나강림. 진짜 뒤진다.”
이걸로 학기 초의 빚은 갚았다, 도유진. 소꿉친구 사이에선 원한은 깊고 은혜는 얕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길 바란다.
비척거리며 화장실로 향하는 도유진을 무시하고, 다른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준석이에게로 향했다.
얘가 원작에서도 나오는 애라 그런가, 원작 이벤트에 대한 내용은 제인보다 준석이한테 물어보는 게 더 빠른 느낌이다.
나는 준석이가 들여다보고 있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야. 얘 진짜 미친 거 아니냐? 평소에 미친 장난 많이 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번엔 진짜 선 넘었네.”
“얘 천산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거 아님? 정신병원 빌런 출신인가?”
뭐야? 무슨 빌런이 탈출을 해?
나는 친구들이 보고 있는 화면을 머리 위에서 슬쩍 보았다.
<도 넘은 장난을 하던 SNS 스타, 이번엔 살인까지 벌여… 경찰 수사 착수….>
기사에 삽입된 참고 이미지에는 혀를 내민 해피 선데이의 사진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올라가 있었다.
…뭐? 살인 사건? 그거 내가 막아놨는데?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서다혜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팔로 머리를 감싼 채 책상에 엎드려 있는 다혜의 모습이 보였다.
“다혜, 아직도 저래?”
“어제 중간고사 망친 게 엄청 힘든가 봐. 쟤네 부모님이 엄청 엄하시거든.”
“집에서 많이 혼났나 보네.”
아니, 진짜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후다닥 내 자리로 돌아가 스마트폰을 들어 SNS에 해피 선데이의 아이디를 검색했다.
<@happysunday_xbxbxb
해피 선데이! 오늘 일요일 아니라구요? 저는 매일매일이 일요일이랍니다.>
문구 보니 얘 맞네. 원작에서도 매번 하던 대사라 기억에 꽤 남아 있었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보니, 기사에 있던 사진의 모자이크되지 않은 버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밑으로 쭉 내려보자 나오는 댓글들의 반응.
<@x221_bulkupboy_3131 와 얘 이번엔 진짜 미쳤네.
@madgirl_soso_5121 와 언니 진짜 걸크러시 존나 쩔어. 올라온 사진 좀 심심하더니 이런 거였어요?
@cleancow_1213 진짜 현장 사진이 궁금한 사람은 여기 이 (링크) 클릭해 보세요. 혐오 주의.>
나는 세 번째 댓글의 링크를 클릭해 보았다.
이윽고 화면에 올라오는 사진 하나.
칼을 들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 페인트 스프레이로 그린 듯한 해피 선데이의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이 그려진 벽에 칼로 난도질 된, 피투성이의 시체가 놓여 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연출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그림에 포함된 듯한 한 장면이었다.
이거… 이거 뭐야? 이건 원작에서도 본 적 없는 사건인데?
잠깐 당황했던 나는 다시 한번 서다혜의 자리를 보았다.
아직도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는 다혜의 모습.
벨제뷔트. 심연의 여왕… 심연의 여왕이 다혜 안으로 들어갔을까?
【“흠… 내가 내 힘을 온전히 쓸 수 있었다면 감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알아차릴 수 없군.”】
쓸모없는 못생긴 개구리 같으니.
【“…….”】
* * *
다혜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점점 선을 넘는 장난을 치고 있었던 건 맞지만, 다혜는 사람을 죽일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훔친 물건도 장난을 치기 위해 훔쳐본 적은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 훔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은 전부 장난이었을 뿐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완전히 장난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이번엔 그냥 벽에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다혜는 자리에 엎드려 얼굴을 가렸다.
“다혜, 아직도 저래?”
“어제 중간고사 망친 게 엄청 힘든가 봐. 쟤네 부모님이 엄청 엄하시거든.”
“집에서 많이 혼났나 보네.”
“다혜야, 괜찮아?”
“저, 저리 가… 나… 잠깐 혼자 있게 해줘.”
지금 이 모습을 친구들에게 들켜선 안 된다.
뚝 뚝….
자신의 눈에서 흐른 눈물방울이 책상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귓속으로 울려 퍼졌다.
“내가… 내가 한 게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