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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66화 (66/236)
  • 제66화

    아직은 잘 모르겠어(2)

    “소연… 너무해.”

    강수아는 맞은편에 앉아 키득대고 있는 소연을 흘겨보며 약간 투덜거렸다.

    ‘이런 곳에 올 거였으면 온다고 말을 해주지… 마음의 준비라도 했지.’

    평소 히어로 활동을 할 땐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른 살인마들을 겁 없이 때려잡는 강수아였지만,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로테스크하고 호러스럽게 만든 영화나 소품에는 많이 놀라고 무서워하곤 했다.

    진짜 나타난 살인마들은 퀘이사 입장에선 싸워야 하는 대상들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소품, 시설, 영화 같은 것들은 수아가 싸워서는 안 되는 대상들이다.

    이런 소품, 시설, 영화 속에 나오는 귀신들은 대적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오직 보고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

    그런 존재들과 싸울 수 없으니까, 악의가 없이 무조건 당해야만 하게 만들어진 이런 물건들에는 수아도 많이 놀라곤 했다.

    “아, 미안해… 너희들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아직도 재밌다는 듯 킥킥 웃고 있는 소연을 보니, 수아는 오히려 마음이 조금 풀렸다.

    소연이 가끔 학교에서 보이던 겁에 질린 모습보다, 오히려 키득대고 재밌어하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은 미안한 기분도 가지고 있었다.

    수아는, 소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었으니까.

    실은, 소연처럼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불합리에 싸워 이겨내야만 한다고. 그런 생각으로 학교에서 괴롭힘당하는 친구들을 외면했었다.

    사실은, 손 한번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었는데….

    수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그 어린 자만심이 창피하고, 또 그 자만심으로 외면했던 소연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몇 달 전에 비하면 얼굴이 밝아진 소연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소연아. 공포 영화 왜 좋아해?”

    “어… 좀 안 어울리지? 나도 알고 있긴 해.”

    수아는 서투르고 짧게 말하는 버릇을 가진 스스로 때문에 소연이 상처받을까 싶어, 빠르게 말을 이어 붙였다.

    “아니. 소연이 너는 평소에 겁이 많은 편이잖아.”

    말을 뱉고 나서 수아는 이마를 찡그렸다.

    ‘아이. 이 말이 안 어울린다는 말이랑 뭐가 다르다는 거야? 더 심하잖아. 바보 같아.’

    “어. 맞아, 맞아. 처음엔 그래서 그랬어. 평소에 뭐든 너무 무섭고 두렵기만 해서….”

    “공포 영화나 공포 소설을 보면서 단련하고 익숙해지면, 평소에 좀 덜 무서워서 더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용기는커녕 공포물에 빠지기만 했지만.”

    그렇게 말하며 소연은 주문했던 레몬에이드를 빨대로 휘휘 저었다.

    레몬에이드 안에 들어가 있던 눈알 모양의 얼음이 또르륵 움직이며 수아를 쳐다보았다.

    “근데 생각보다 공포물이 무섭기만 한 게 아니더라구. 나름 작가마다 감독마다 철학이 있으니까.”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다든지, 아니면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든지. 그런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보다 보니, 어느새 빠져 있지 뭐야.”

    “그래서 좋아하는 거야. 너희가 이런 거 무서워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너희는 내 입장에선 항상 용기 있고 멋진 친구들이라서.”

    내가 아직 친구 대하는 게 서툴러.

    그렇게 말하며 소연은 싱긋 웃었다. 그 모습에 몇 달 전 느껴졌던, 스스로의 약한 부분이 들킬까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던 소연은 없었다.

    ‘아니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걸.’

    수아는 자신과 소연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히어로로서의 자신을 더 우선시하고, 현실을 외면했던 것은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연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항상 내보일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비밀이 없이, 친구들에게 모든 걸 알려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점점 변화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수아는 그럴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도 언젠가는 친구들에게 내 모든 걸 알려줄 수 있을까?’

    아니. 그건 안 될걸.

    수아의 부모님은 돌아가실 때까지도 정체가 들키지 않게 조심한 채 돌아가셨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위험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친구들이 위험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 수아는 평생 친구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릴 수 없을 것이다.

    “크… 킁… 크으… 크….”

    이게 무슨 소리래? 누가 카페에서 이렇게 코를 골아?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소연의 옆에 앉아 있던 강림이 어느새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 아, 강림아?”

    옆에 있는 소연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댄 채.

    소연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며 수아는 슬쩍 웃었다.

    ‘저러다가 얼굴 터지겠네. 조금 도와줘 볼까?’

    “나강림. 정신 차려. 집에 가서 자.”

    “킁… 크응… 컥….”

    슬쩍 작은 목소리로 불러봤지만, 무응답. 완전히 뻗어버린 모양이다.

    “컥… 킁… 크응….”

    “어뜨케… 수아야….”

    콧소리 진짜 완전 깨는데. 저런 게 좋다고 얼굴 붉히고 있는 거야? 한소연, 귀엽네.

    수아는 붉게 물들이고 있는 소연이 너무 귀여워, 조금 더 놀려먹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연. 자꾸 코 고는 거, 자는데 고개가 불편한 모양이야. 우리 할머니도 그래.”

    ‘어떻게 보면, 조금 도와주는 걸 수도 있어.’

    “어? 어? 고개?”

    “어. 좀… 고개를 만져서 숨쉬기 편하게 해줘.”

    “어… 만져?”

    소연은 얼굴이 벌게져선 강림의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리더니, 스스로가 옆으로 살짝 움직여 자신의 다리 위에 고개를 얹어 놓았다.

    “이… 이러면 될까?”

    “어? 어, 어… 그래. 그렇게 하니까 코는 안 고네.”

    ‘아니. 얼굴이나 잠깐 만져보라고 했던 말인데, 무릎베개를 한다고?’

    수아가 내심 소연의 적극적인 행동에 경악하고 있는 사이, 소연은 쌔근쌔근 잠든 강림의 머리를 한번 쓸어보고, 볼을 쿡쿡 찔러보기까지 했다.

    “이모… 대학은 꼭 졸업할게요. 꼭 할게요.”

    쟤 진짜 피곤했던 모양이네. 시험공부를 밤새 한 걸까? 대학을 졸업한다는 잠꼬대까지 하는 거 보니, 시험공부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왜 대학을 가는 게 아니고 졸업한다고 한 걸까?

    “진짜 자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야.”

    “자면서도 대학 타령하는 걸 보니, 시험공부가 꽤 힘들었나 봐.”

    “강림이는 항상 피곤해 보이지 않아?”

    “으음… 그런 거 같기도.”

    “쌘 척, 밝은 척하는데 생각보다 약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항상 밝고 활발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듣고 보니 어찌 보면 쫓기는 것처럼 생활하는 면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학교가 끝나고도 매일 학원을 가야 한다며 서둘러 떠나는 모습도 그렇고, 홈트레이닝을 한다며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스스로를 관리하는 데에 생각보다 열중하는 느낌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수아는, 강림이 부모님이 아닌 이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쩌면 죽은 부모님의 일을 이어받아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처럼, 강림이에게도 말하지 못할 마음의 짐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말을 소연에게 해주려던 수아는, 자신이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대신, 수아는 묻고 싶었던 것을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소연. 혹시 강림 좋아해?”

    수아가 그 말을 하고, 수아의 컵 안에 들어 있던 에이드의 얼음이 녹아버릴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소연이 입을 열었다.

    “사실, 처음엔 그렇다고 생각했어. 난 친구가 없었거든. 내게 가장 먼저 친구처럼 다가와 준 강림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그냥 친구로서의 감정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거였어.”

    수아는 자신이 먼저 물어봤지만, 처음으로 제 또래에게 듣는 고백 같은 말에 조금 당황했다.

    듣고 나니 왠지 간질간질하고 따뜻해지는데, 그 감정이 조금 부끄럽고 민망해 꺄악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은, 그런 미묘한 감정.

    다른 여자아이들 같았으면 참지 않고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수아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찻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흠흠…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잠깐 목을 축인 수아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소연이 뒤이어 덧붙인 말을 듣기 전까진.

    “그런데 이러고 있는 지금은 잘 모르겠네.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

    아… 못 참겠어.

    “꺄… 꺄앗….”

    “……?”

    *    *    *

    뭔가 기분 좋게 자고 있었는데, 주변이 시끄러워서 정신이 들었다.

    아니… 왜 이렇게 시끄러워? 잠 좀 자자… 나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

    아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더라?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지? 이거 약간 내가 맨 처음 만화 속 세상으로 떨어졌을 때랑 비슷한 기분인데? 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지, 어디에 어떻게 누워 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에 들리는 소리는 내가 잠이 들 만한 곳에서 날 법한 소리가 아니다.

    불길함이 가득 담긴 음악 소리에, 위이이잉… 믹서에다 무언가를 가는 듯한 소리.

    눈을 슬쩍 뜨자 가장 먼저 어두침침한 조명이 보이고, 눈알이 들어가 있는 물병, 잘린 동물의 머리 등이 놓여 있는 선반이 보였다.

    뭐지? 내가 빌런한테 당해 납치를 당한 건가?

    제인!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줘.

    […….]

    벨제뷔트?

    【…….】

    둘 다 대답이 없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누워있던 곳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보고야 말았다.

    피가 잔뜩 튄 옷을 입은 남자가 가면을 쓴 채 믹서기에 무언가를 갈고 있는 모습을…!

    뭐지? 내가 히어로 만화에서 공포 만화 속 세계로 이동하기라도 한 건가? 난 이런 만화는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나의 머릿속에, 내가 히어로 만화 속 세상으로 들어갔을 때 가장 처음으로 했던 가정이 떠올랐다.

    히어로 만화 속 세상으로 들어갔던 건 실은 모두 내 상상이었고, 나는 살인마에게 납치당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던 거다.

    아마 내 차례가 제대로 돌아오니까 정신이 돌아온 거겠지.

    나는 무언가를 갈고 있는 남자가 뒤를 돌아보지 않길 기도하며, 천천히 몸을 숙이고 이 건물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고, 출구를 찾으려던 바로 그 때,

    “어? 나강림 깼네?”

    “잠깐 화장실 다녀온 건데. 그사이에 깼나 보네.”

    그 말을 듣고 나서 주르륵 떠오르는, 내가 있는 곳에 대한 기억.

    아… 맞아, 그랬지. 나 친구들이랑 공포 영화 테마 카페에 온 거였지.

    [“킥… 키킥….”]

    【“큭….”】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 그리고 몰려오는 창피함과 배신감….

    이… 이놈들… 나를 놀려먹은 거였구나.

    [“푸하하하하!”]

    【“큭… 크크큭… 큭….”】

    [보이스 소리 설정

    제인 : □□□□□

    벨제뷔트 : □□□□□]

    나는 나를 보며 웃어대는 내 머릿속의 두 목소리를, 오늘 하루 완전히 음소거 해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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