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60화 (60/236)
  • 제60화

    한밤의 수호자, 다크 카이저(1)

    110층. 전체 높이가 500미터가 넘는, 천산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알려진 경한 타워는, 사실은 110층이 아니다.

    110층의 위,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두 개의 층. 그 두 개의 층은 사대희의 개인적인 비밀들을 위해 만들어져 있었다.

    사대희는 그 가장 높은 빌딩의 꼭대기에서 천산시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개미. 아니 개미보다 더 작게 보이는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경한 그룹, 그 그룹의 회장인 나, 사대희.

    시민들은 경한 그룹의 물건을 사서 쓰고, 경한 그룹이 만든 연예인에 열광하며, 경한 그룹 야구팀의 승리를 응원한다.

    사대희가 이 도시 내에서 하지 못할 일이라는 것은 없었다.

    천산시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가질 수 있을 만한 재력이 있었고, 이 도시 내부의 그 어떤 사람보다 강력한 무력도 가지고 있었으며, 전화 한 통만으로 천산시 시장을 갈아치울 수 있을 정도의 권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사대희는 천산시의 지배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대희는 빌딩의 꼭대기에서 자신의 도시, 천산시를 내려다보는 것을 즐겼다.

    사대희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억울하게 죽은 장수의 혼이 담긴 검, 300년이 넘게 살았던 마법사의 완드 같은 평범한 수집품부터, 경한에서 개발한, 아직 상용화할 수 없는 각종 무기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나 안드로이드 솔져 같은 비밀스러운 실험의 결과물들까지.

    사대희는 마음에 든 물건은 무엇이든 수집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게 어떤 물건이든 무조건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물건이든 간에 무조건.

    걔 중엔 세상에 큰 악영향을 끼칠 만한 물건들도 많았지만, 사대희는 개의치 않았다. 이 도시 내에서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사대희는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이런 위험한 물건들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도시에 자신뿐일 테니까.

    사대희는 짙푸른 배양액에 잠겨 잠들어 있는 괴물의 수조를 지나, 사대희의 거대한 몸집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전투 슈트 앞에 섰다.

    사대희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일하던 연구원 부부가 만들었던 이 슈트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슈트는, 그 연구원 부부 외에는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양산할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신 능력자 중 물건이나 기술 등을 만들어내는 발명가형 능력자들의 물건은, 일반적으로 따라 만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기술을 만든 정신계열 능력자들이 그걸 만드는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해도, 그 설명을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게 돼버리는 까닭이다.

    설계도를 만들거나, 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설계도나 책에 담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만든 사람뿐이다.

    만들어진 물건이 존재한다면 그 물건을 연구하고, 거기에 담긴 아이디어를 활용해 비슷한 기술을 만들 순 있겠지만, 그 기술을 완전히 따라하기는 어렵다.

    발명품에 담긴 기술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 어려움은 제곱에 제곱으로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이 슈트는 지금까진 유일하게 사대희의 비밀 공간에 있는 이 한 대가 전부인 것이다.

    아쉽구만. 아쉬워.

    이 기술이 담긴 슈트를 양산할 수만 있다면 천산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아니 이 세계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르는데….

    이 슈트를 만든 연구원 부부는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 전투 슈트를 폐기하려 들었고, 결국 사대희의 명령으로 죽고 말았다.

    안타까움에 혀를 쯧쯧 차며, 사대희는 다음 수집품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다 발을 멈췄다.

    그의 수집품 중 하나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도둑?

    아니. 사대희가 수집품을 모아둔 이 공간을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만약 도둑이 들었더라도 이 물건 하나만을 가지고 간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배신자?

    여기로 들어올 수 있는 놈 중 배신자가 존재했다면, 사대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사대희의 부하 중엔 그런 짓을 할 만큼 담이 큰 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남은 사람은 단 한 명뿐.

    이 공간에 들어온 적이 있으면서, 여기 들어와 물건 하나만 집어 나가도 자신이 크게 혼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과 똑 닮아, 가지고 싶은 물건은 꼭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놈.

    “이 녀석이… 이런 것에 관심 가지지 말고 공부나 하라 했거늘.”

    사대희의 가족. 정확히는 아들이었다.

    *    *    *

    슈우우욱.

    귓가로 바람 부는 소리가 스친다. 나는 지금 다크 카이저 슈트의 활공 기능을 이용해 건물 사이 사이를 날아서 이동하고 있었다.

    이동하면서 내려다본 도로에는 차들이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멈추어 서 있다.

    조금 전 이 도로와 통하는 곳에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멀쩡하던 건물이 갑자기 쓰러지며 옆 건물에 기대어 버린 모양인데, 그 옆 건물도 오래된 건물인지라 함께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단다.

    제인. 건물 붕괴의 원인이 뭐야?

    [“조사 결과로는 부실 공사라는데요. 얼마나 헤쳐 먹었는지 몰라도, 10년밖에 안 된 건물이 멀쩡한 부분이 없네요.”]

    【“그게 몇 푼이나 된다고 그걸 뜯어먹었단 말인가? 인간의 욕심이란….”】

    그럼 그렇지.

    이 세계가 내가 평범하게 시험 준비를 하게 놔둘 리가 없었지.

    두 빌딩에서 이 시간까지 야간 근무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몇십 명 정도 있었던 모양인데, 건물 상태와 지반이 불안정해 언제 더 무너질지 몰라 구조대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로군. 이런 때야말로 히어로가 필요한 시점이지.”】

    아마 나 외의 다른 히어로들도 이곳으로 향하고 있긴 할 테지만,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멍하니 시험공부나 하며 구경만 할 순 없는 상황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음에도 나가지 않았다 후회하는 것보단 이게 나으니까.

    【“많이 성장했군. 어둠의 황제여.”】

    얜 오늘따라 말이 왜 이렇게 많아?

    나는 멈춰 선 차들의 위를 최대한 빨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흑염의 날개를 펼치면 더 빠른 속도로 갈 수 있겠지만, 흑염의 날개를 펼치면 소모되는 동화율도 많을 뿐더러, 일단 눈에 너무 띈다.

    다행스럽게도 페이퍼 백도 그곳으로 출동하겠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나는 너무 서두르진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나? 기분이다! 오늘만큼은 공짜로 날개를 만들어주지!”】

    갑작스럽게 등 위로 펼쳐지는 흑염의 날개.

    갑작스럽게 펼쳐진 날개 덕분에 자세가 흐트러져, 하마터면 벽에 부딪힐 뻔한 걸 겨우 안정시켰다.

    “꺄아아악!”

    “으아악. 저게 뭐야!”

    건물을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가자,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야! 벨제뷔트! 말은 하고 날개를 펼쳤어야지! 깜짝 놀랐잖아.

    “저 건물에 불이라도 났나?”

    “엄마! 검은색 불사조가 하늘을 날고 있어요!”

    아니, 이 날개는 너무 눈에 띈다니까. 이래서 평소에 사용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빨리빨리 가자고. 오늘은 내가 전심전력으로 도울 테니까.”】

    제인. 얜 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신나있는 거야?

    [“…글쎄요. 저도 잘 몰라요.”]

    *    *    *

    “야, 하준아. 근데 그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 차라리 그런 거 쓰는 거보단 다른 사람들처럼 드론 하나만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야. X발, X신아. 그렇게 남들 다 하는 거 따라 해서 채널 언제 키울 건데? 어그로가 가장 중요하잖아, 어그로가. X발아. 그리고 내가 유명해지는 게 가장 중요한 거 아냐. 사고 현장만 담아서 내가 언제 유명해지는데?”

    “아니. 근데, 저기 건물 봐봐.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경찰들도 저기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잖아.”

    “야, X발. 이성민. 너 X발, 나한테 훈수 두냐? 내 말이 더 우선이냐? 아니면 경찰 말이 더 우선이냐?”

    하… 이 새끼. 말 잘 듣는 놈 필요해서 데리고 다니는 건데, 요즘 자꾸 지가 진짜 내 친구인 줄 안단 말이야. 다음부턴 다른 놈으로 바꿔야 하나?

    “아니… 아니야. 미안해. 당연히 네 말이 더 우선이지. 하준아, 준비됐어.”

    “어, 그래. 지금 나 잘 보이고 있냐?”

    “어. 드론 상태 아주 좋아.”

    “오케이… 나 지금 간다.”

    사대희의 아들, 사하준은 아버지의 비밀 공간에서 가지고 나온 백 팩형 로켓을 작동시켰다.

    슈우우우….

    작은 소음과 함께 사하준의 몸이 위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이성민이 조종하고 있는 드론 몇 대가 함께 올라온다.

    그래. 그래도 드론 여러 대를 한꺼번에 조종할 수 있는 놈 구하기가 쉬운 건 아니니까. 조금 같이 놀아줬더니 진짜 내가 제 친구인 줄 아는 게 문제지. 영상 찍어놓은 퀄리티 보면, 얘만큼 찍을 줄 아는 놈은 다시 찾기 힘들다.

    “스탠바이. 큐!”

    “네! 안녕하세요! 미드나이트 헌터, 하준입니다. 저는 지금, 보석동에 있는 천년 빌딩 앞에 나와 있는데요. 뉴스 속보로 나왔으니까 다들 아시죠? 건물 무너지려고 하는 거. 천년 빌딩이라더니 십 년도 못 가고 무너지려고 하네요. 쯧쯧.”

    “미드나이트 헌터, 하준이 오늘 이 사고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드리기 위해, 새로운 장비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위이이이잉.

    이성민이 조종하는 드론 하나가 사하준의 등 뒤로 돌아가 하준이 메고 있는 로켓 백팩을 찍는다.

    “이야~ 멋있는 물건이죠? 어떻게 구했느냐고요? 이거 시외에 있는 장인 분한테 가서 사 왔죠. 그 과정도 영상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판매자분이 출연을 거부하셔서요. 아쉽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영상으로 보여드리기 어렵겠네요.”

    사실은 아버지의 방에서 살짝 훔쳐 온 거지만. 하준은 자기가 가져온 물건들을 모두 시외에서 사 온 것처럼 꾸미곤 했다. 시외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구독자들도 신기해하면서 믿고 있는 편이다.

    “그래도 시외로 나가는 건 위험하니까요. 여러분이 하기 위험한, 또 비싼 물건들을 사서 리뷰해 주는 저 미드나이트 헌터, 하준이 대신 구해드리겠습니다.”

    “로켓 백팩이 맘에 드신다면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 눌러주….”

    우르르르릉.

    “꺄아아악!”

    하준의 등 뒤에 있던 건물이 갑작스럽게 살짝 기울며 먼지를 뿜어냈다.

    “와, X발. 야! 성민아! 방금 그거 찍었냐!”

    “어! 잘 찍혔어!”

    와, X발. 이번 영상 대박 나겠네.

    “와! 여러분, 저거 보셨어요? 저거? 방금 땅이 꺼져서 건물이 옆으로 살짝 기울었거든요? 진짜 위험하네요. 조금만 더 가까이 한번 가볼까요?”

    사하준은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로 사고 현장을 찍으며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더 가까이 가면 위험해요! 거기서 더 가까이 가시면 안 돼요!”

    밑에서 구조대원이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뭐 어쩌겠는가? 날아와서 막기라도 할 건가?

    하준은 구조대원의 말을 무시하고 더 가까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휴. 먼지가 생각보다 엄청나네요. 저 안에 계신 분들도 먼지를 엄청 삼키실 거 같은데요. 저요? 제 얼굴에 쓰고 있는 미드나이트 헌터 가면이 방진 방독면 역할도 하는 거 아시죠? 그래서 저는 더 가까이 들어갈 수 있어요. 위험하지 않은 정도로만 더 들어가 볼게요.”

    하준은 천천히 앞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부우웅.

    “저기 보이세요? 저 창문에서 한 분이 손 흔들고 계시거든요? 가까이 가서 이야기라도 한번 나눠볼까요?”

    여기서 구조 대상자의 인터뷰까지 딴다면 진짜 대박 나겠다.

    하준은 들고 있는 카메라의 줌을 당겨 구조자의 얼굴에 포커싱을 맞추고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 하준의 머리 위로, 건물에서 떨어져나온 콘크리트 덩어리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어, 하준아! 위!! 위 조심해!”

    “어?”

    하준의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눈을 질끈 감던 바로 그때,

    검은색 불꽃으로 만들어진 날개가 하준을 향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