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심연(3)
어둠 속의 학교는 무섭다.
원래 있던 세계에선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던 경우도 잦았지만, 그땐 사람도 많았고 학교에 불도 다 켜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학교는 빛이 꺼진 수준이 아니다. 심연. 심연이라고 할 수 있는 어둠이 학교를 모두 집어삼켰다.
뭔가 튀어나올 거 같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울리는 피아노 소리라던지. 발목이 잘린 육상부 소녀라던지. 옥상에서 자살한 전교 2등이라던지.
【“유치하군. 넌 아직도 그런 유령 이야기를 믿나?”】
여긴 심연의 괴물도 있고, 마법사도 있고 뱀파이어나 라이칸슬로프도 존재할 수 있는 세계잖아. 유령 정도는 우습지.
【“물론 네가 말한 것들이 이 세계에 존재하지. 하지만 유령은 네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대체 왜 유령들이 학교를 배회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단 말이냐?”】
어… 살면서 일어났던 일들에 원한(怨恨)이 생겨서?
【“네 말대로 유령은 한(恨)에 의해 생겨나는 존재다. 하지만 대다수 유령은 자신이 한을 품은 대상에게만 원한을 풀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
【”일반적인 사람들을 괴롭힐 정도로 악한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영혼은 그를 지켜보던 악마들에 의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니까.”】
그 말은, 원한이 생기면 유령에게 해코지당할 수 있다는 말 아냐? 진짜 너무너무 무섭다… 난 원한 생기게 살지 말아야지.
【“왜 너는 악마인 나보다 유령을 무서워하는 거지? 나는 지옥의 군주, 악마들의 왕이란 말이다!”】
지옥의 군주면 뭐해. 지금은 내가 손에 쥔 체인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 하는 주제에. 지옥의 군주님 제발 심연의 문이 이 세계에 열리지 않게 한번 도와주시죠?
【“넌 악마다….”】
악마한테서 듣는 악마라는 말은 칭찬일까? 조금 기분 좋을지도?
부스럭.
갑작스럽게 복도 너머에서 들려오는 부스럭 소리에 나는 긴장하며 사슬을 들어 올렸다. 어비스의 괴물인가?
조금 긴장한 채로 복도 너머를 바라보고 있자, 바퀴벌레 한 마리가 후다닥 복도를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뭐야? 그냥 바퀴벌레잖아… 이런데에도 바퀴벌레가 사네.
나는 살짝 긴장이 풀려 손을 내렸다.
【“손 내려놓지 말고 손들어!”】
벨제뷔트의 목소리가 머리에 울리고,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텅!
“캬아아아아악!”
입을 쩍 벌려 내 머리를 삼키려던 바퀴벌레가 내가 들어 올린 사슬에 튕겨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무슨 바퀴벌레가 갑자기 이렇게 커져? 너무 징그럽잖아!!
나는 허둥지둥 바닥에 뒤집혀 버둥대는 바퀴벌레의 머리에 사슬을 휘둘렀다.
죽어!!
죽어!! 징그러운 바퀴벌레야!!
죽어버려!!!
사슬을 휘두를 때마다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그런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고 싶지 않아 머리를 비웠다. 이걸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오늘 밤 꿈에 나올 거다.
스르르….
마치 이곳에 없던 것처럼 바퀴벌레의 사체가 사라져간다.
【“정신 차려라. 멍청한 놈! 여긴 어비스다. 그런 곳에 평범한 바퀴벌레가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나는 벨제뷔트의 말을 듣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가 너무 안일했어.
【“하지만 잘했다. 방금 어비스의 괴물 한 마리를 잡은 탓인지 동화율이 조금 올랐군. 가까운 곳의 생명 반응을 탐지할 수준의 힘은 생겼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생명 반응이 탐지되는군.”】
어디? 어딨는데?
【“앞으로 가다 오른쪽에 있는 교실. 그 교실 안에 무언가가 하나 있군.”】
괴물 같은 거 아니고?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군. 하지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괴물보단 인간에 가깝다.”】
나는 체인을 손에 쥐어 들고 천천히 벨제뷔트가 말한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방금 체인의 위력을 조금 느껴서 마음은 편했다. 작은 괴물 정도는 튕겨낼 수 있다. 그럼 조금 큰 개체여도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흠… 막상 문 앞에 다가오니, 심연의 괴물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군.”】
생명 반응에 어떻게 나오는데?
【“글쎄… 생명 반응은 변함없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드는군.”】
나는 벨제뷔트의 말을 듣고 조금 긴장한 채로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체인을 손에 꼭 말아 쥔 채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꺄아아아악!”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귀가 찢어지는 비명에 깜짝 놀라 움찔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괴물? 괴물인가?
“가… 강림이야?”
괴물… 은 아닌가?
“어. 나, 나, 강림이야. 걱정하지 말고 나와.”
내 말을 듣고 천천히 누군가가 책상 밑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강림아… 나 너무 무서웠어. 흐엥….”
슬픈 소리를 내며 책상 밑에서 나온 사람은, 바로 한소연이었다.
* * *
“혹시 꿈이야? 꿈 아니지?”
나를 붙잡고 펑펑 울던 소연이 정신을 차리고 내게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어… 자다 온 게 아니니까 꿈은 아니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나도 정신 차려보니 여기 안에 있었으니까. 확신할 수가 없네….”
거짓말은 안 했다. 나도 잘 모르겠고, 꿈이 아니라고 확신은 못 해.
사실, 원작 만화에서도 어비스에 대한 내용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본 부분까진 심연, 어비스의 힘을 사용하는 사람은 한소연, 어비스 위치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눈은…? 눈은 왜 그런 거야? 눈에서 빨갛게 빛이 나는데?”
“어? 내 눈이 빨갛다고?”
어? 이거 아직 빛나고 있었나? 여기 거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빛이 나고 있는지는 몰랐네. 벨제뷔트. 혹시 알고 있었어?
【“말해주는 걸 깜빡했군.”】
하… 제인이 그립다. 제인은 이런 거 바로바로 커버해줬을 텐데.
【“으음….”】
“응… 여긴 내 꿈속이구나. 괜찮아. 악몽은 익숙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소연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이건 악몽이 아니야. 내가 있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꼭 이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줄게.”
“…응, 고마워.”
“그리기 위해선… 일단 이 교실에서 먼저 빠져나가자.”
나는 교실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드르륵.
문 너머의 복도는 어두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가려 하자, 소연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내가 있으니까.”
“…응.”
사실… 나도 X나 무서워….
덜덜 떨리는 손을 잡고, 천천히 심연의 어둠 속을 걸어 나간다. 몇 개인가의 복도를 지나고 나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는지 소연이 입을 열었다.
“난 사실 어둠이 무서워서 잘 때도 조명을 하나 켜고 자거든… 수면등 같은 거….”
그건 아마 소연이 받은 가정폭력이 원인일 것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아 밤이 찾아오면, 술을 마시고 들어온 소연의 아버지가 소연과 소연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어둠을 싫어하는 한소연은, 결국 원작에선 심연의 어둠에 잠식되어 심연의 마녀, 어비스 위치가 되어버리고 만다.
“지금 내 눈에서 빛난다며. 수면등 같지 않아?”
내가 너스레를 떨자 소연이 내 눈을 보며 빙긋 웃는다.
“이렇게까지 빨간 수면등이 어딨어?”
“아 그 정도는 아냐? 내가 내 눈을 볼 수는 없어서. 아. 앞에 기둥 조심. 옆으로 살짝 돌아가야 해.”
“어? 뭐가 보이긴 보이는 거야? 난 정말 하나도 안 보이는데….”
“나만 믿으라고 했잖아. 내가 있으면 악몽이 아니라니까.”
어? 그래도 희미하게 보이는 게 아무래도 눈 때문이었나? 아직 눈에 붉은빛이 들어와 있다 이거지?
소연의 정신세계로 나를 불러들인 게 이 붉은 눈이라면, 이 세계에서 빠져나갈 방법도 붉은 눈이 알고 있을 터였다. 기왕 눈에 불도 들어온 판에 몇 가지 실험을 해볼까?
일단 내 마음대로 사용하면 가장 편할 능력은… 아무래도 미래를 보는 능력이지.
나는 머릿속으로 만화책을 그려보았다.
촤르르륵! 후드드드!
보통 이런 소리를 내면서 만화책이 열렸는데….
눈은 붉게 빛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 마음대로 미래를 볼 순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능력이 존재하진 않을까?
아까 전, 소연이의 정신에 들어오기 전 느꼈던 감각을 천천히 되새김질해 보았다.
마치 새로운 꼬리가 하나 생긴 것처럼, 조금은 생소하고 어색했던 그 감각. 그 감각을 떠올렸다.
갑자기 눈이 저릿저릿해 오며 앞이 확 밝혀졌다.
어비스의 어둠 속에 빛이 밝혀진다. 아니 빛이 밝혀진 게 아니라, 내 눈이 밝아진 거다.
현실과 정신의 경계가 보인다. 그리고 천천히 그 너머로 빠져나가려는 심연의 어둠이 보였다.
내 눈 안의 붉은빛이 느껴졌다. 붉은빛을 천천히 움직여 복도를 따라 움직였다. 1-5 1-6 1-7 1-8… 교실 문패에 달린 숫자들이 선명하게 읽힌다.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래도… 출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여기… 내가 다니던 중학교인 거 같거든? 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는지 알 거 같아. 저쪽 복도 끝 계단만 타고 내려가면 1층으로 내려갈 수 있어.”
그렇지… 학교 출구를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계단을 찾는 거지. 계단을 찾아 1층까지만 내려간다면 거의 곧바로 현관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긴급대피를 위해 계단을 내려가기만 해도 출입구를 찾을 수 있을 거다.
나는 붉은 빛으로 심연의 어둠을 더듬어 1층으로 내려가 보았다. 1층 출구에는 거대한 괴물이 아가리를 열고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나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1층… 1층은 아니야 소연아.”
생각해보면, 소연이에게 1층은 출구가 아니다. 소연의 중학생 시절, 소연이에게 있어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은, 아버지라는 또 다른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을 것이다.
【“지옥은 네 생각처럼 나쁘기만 한 곳이 아니다. 어둠의 황제여.”】
다시 한번 붉은 빛으로 계단을 타고 복도를 내달린다. 1층엔 없고… 2층… 3층… 여기다.
도서실. 붉은빛을 움직여 도서실 안쪽으로 들어선다. 도서실 안쪽은 밝은 빛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밝은 빛 한가운데에는… 한소연이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다.
“너. 지금 봤구나?”
스르르르륵.
내가 잡고 있던 소연의 손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소연‘이었던’ 것의 모습을 보았다.
뜨득… 뜨드득… 뜩… 뜨득… 뜩….
이것을 생명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미지의 무언가는, 나를 보곤 입을 열었다.
“봐버렸으면 어쩔 수 없지.”
섬뜩한 소리가 들리며, 소연이었던 그것은 형체를 바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