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흑염의 사용법(4)
퀘이사의 부모님은 히어로였다. 히어로들은 보통 가족에게도 그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지만, 강수아의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다.
히어로 네임 파이어 스타와 히어로 네임 블랙홀.
2인조로 이루어진 히어로 듀오는 오랜 기간 활동하며 많은 사람을 구했고, 퀘이사는 자신의 부모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람들을 위해 살아왔는지를 알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날에도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 각성한 자신의 능력이, 부모님이 못다 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선물처럼 느꼈다.
일반적으로 부모의 능력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퀘이사는 기적적으로 불꽃을 다루는 능력과 불꽃의 힘을 몸에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그 두 능력은 스스로를 불꽃처럼 태워 하늘을 날아다니던 어머니와 어떤 힘이든 몸에 흡수했다 다시 방출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능력에 비하면, 제약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퀘이사는 두 사람의 능력을 모두 닮아 있는 자신의 능력이 마치, 부모님의 선물처럼 느껴져 좋았다.
“퀘이사!! 히어로 놈들이 여기까지 냄새를 맡고 찾아올 줄이야. 마침 잘됐다. 부족한 물량을 너로 대신한다면, 클라이언트들도 만족하겠지.”
“하! 네놈의 정전기 불꽃으론 날 못 이겨.”
라이트닝 스파크가 뿜어낸 번개 불꽃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퀘이사의 능력은 불꽃을 흡수했다 분출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불에 대한 내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지만… 몸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불에는 한계가 있었다.
퀘이사는 그를 극복하기 위해 흡수한 불꽃을 머리카락으로 옮기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 받아들일 수 있는 불꽃의 양은 자신의 몸 안에 받아들이는 불꽃보다 훨씬 많았고, 머리카락에 받아들여진 불꽃은 몸에 무리가 가지도 않았다.
“크윽….”
퀘이사는 자신의 몸을 흐르는 번개를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지금 라이트닝 스파크가 뿜어내는 불꽃은 다르다. 전기가 섞여 있는 그 불꽃은 자신의 몸 안에 쉽게 흡수되었지만, 쉽게 통제되지 않고 자신의 몸 안을 돌아다니며 상처입혔다.
지금 받아들인 번개 불꽃 또한 자신의 몸을 한 바퀴 돌며 몸에 데미지를 입히고 나서야, 만족해서 머리카락을 통해 바깥으로 뿜어져 나왔다.
불합리하다.
퀘이사는 자신이 라이트닝 스파크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보통 이렇게 자신이 상성상 이길 수 없는 능력자는 밀키웨이가 상대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밀키웨이도 빌런을 상대하느라 자신을 케어해 줄 상황이 아니다.
고로, 퀘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히어로들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하하! 정전기 불꽃이라더니, 정전기가 일어난 것치곤 많이 놀란 표정인데. 천하의 퀘이사가 겁이 이렇게 많았나?”
PZZZZ-!
퀘이사는 다시 한번 자신에게 뿜어져 오는 번개 불꽃을 허공을 날아 피했다. 번개 불꽃이 자신에게 위험하다면, 그 공격을 맞지 않으면 된다.
퀘이사는 고개를 흔들어 자신의 머리칼을 휘날렸다. 계속 피하기만 하는 것보단 자신도 공격해 몰아치는 편이 덜 위험하다는 생각이었는데….
자신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온 번개 불꽃이 라이트닝 스파크의 몸에 부딪혀 흩어지는 것을 보며 퀘이사는 내심 혀를 찼다.
라이트닝 스파크의 번개 불꽃이 자신이 미리 저장해 둔 불꽃까지 침식해 버린 것이다. 번개는 불꽃을 쉽게 잡아먹었다.
PZZZZ-!
다시 한번 허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개 불꽃!
퀘이사는 서둘러 허공을 날아 그 불꽃을 피해내려고 했지만, 번개에 진탕돼 버리고 만 퀘이사의 육체는 퀘이사의 뜻대로 움직여 주질 못했고, 결국 퀘이사는 번개 불꽃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말았다.
퀘이사의 몸에 흡수된 번개 불꽃은 이번엔 퀘이사의 머릿속, 뇌까지 기어들어 가 뇌 안을 주물러놓았고, 퀘이사는 정신이 희미해져 추락하기 시작했다.
조금… 조금은 더 버텼어야 했는데….
추락하며 제 죽음을 직감한 퀘이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의 얼굴과 얼마 전 학교에서 함께 영화를 보던 학교 친구 나강림과 한소연이었다.
학교에서 사귄 친구는 처음이었는데….
추락하는 자신의 몸이 땅바닥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강수아는 눈을 감았다.
“끄으으윽… 으허… 자… 잡았다.”
떨어지던 자신의 몸을, 누군가가 받아내는 것이 느껴졌다.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강수아는 눈을 떠 자신을 받아낸 사람을 바라보았다.
까마귀를 닮은 가면이 가장 먼저 보이고, 그 위에 뒤집어쓴 검은 후드가 보였다. 그리고,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 안은 두 손. 어깨 위로 삐져나온 한 쌍의 흑염 날개.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몸 안에 남아 있는 전기 때문인지 찌릿한 무언가가 심장을 관통하는 것을 느끼며, 강수아는 정신을 잃었다.
* * *
나를 태우지 않는 불꽃이 내 어깨 위로 피어오른다. 흑염으로 만든 날개는 내 안의 무언가를 태우며 주변을 밝혔다.
다시 한번 깜빡이는 퀘이사의 불빛.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다. 나는 어깨의 날개를 움직여보았다. 둔하다. 양쪽의 날개가 내 통제를 따르지 않고 번갈아 가며 요동쳤다.
【“아까도 말했지만, 참 감이 없군.”】
[“어쩔 수 없죠. 마스터는 초능력의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왔으니까.”]
조금 더 연습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왱왱 울리는 AI와 악마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깨진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에 닿기 직전, 내 어깨 위에서 요동치던 날개가 불을 뿜으며 내 몸을 허공으로 띄운다. 아직 제대로 날지 못하고 비틀거리긴 하지만, 나는 지금 확실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건물 위를 활공하고 다니던 것과는 다른 감각이 나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꺄아아악! 마스터! 기분이 좋은 건 알겠지만, 상황이 심각하거든요?”]
퀘이사가 번개를 피하지 못하고 받아내는 것을 본 제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나도 알지. 그런데 날개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어떻게 해?
양 날개를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시야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난 VR 비행기 조종 게임을 하다가 토한 경력이 있단 말이야. 우욱….
[“마스터!! 슈트에 토하지 마세요!”]
내가 허공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두 사람은 아직 나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서로를 향해 번개 불꽃을 난사하며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 날개를 움직이면 이쪽으로 가고… 자세가 이렇게 되어 있으면, 불안정해서 제대로 날 수가 없네….
[“알고는 있었지만… 마스터 운동 신경도 영 꽝이네요.”]
나도 내가 몸 쓰는 데 재능 없는 거 알아! 나라고 하고 싶어서 하는 히어로 활동이 아니잖아.
다시 한번, 퀘이사가 번개 불꽃을 피하지 못하고 직격당하는 것이 보였다. 번개 불꽃을 얻어맞은 퀘이사가 휘청거리더니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높이가 너무 높다. 아무리 퀘이사라도 무사할 수 없는 높이다.
“으라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내 몸 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고, 그제야 가까스로 균형을 잡는 데 성공한 나는 퀘이사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추락하고 있는 퀘이사가 보인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흑염의 날개를 퍼덕이며 퀘이사를 향해 날아갔다.
[“마스터!! 저쪽이에요!”]
제인이 내가 날아가는 속도와 퀘이사가 떨어지는 속도를 계산해, 퀘이사를 받아낼 수 있는 최적의 포인트를 짚어준다.
[“지금 높이에선 날개의 힘으로 높이를 올려 받아내려고 하는 것보단, 망토의 활공 기능을 이용해 중력의 힘을 빌리는 게 속도를 높이는 데에 더 좋아요.”]
나는 날개를 접어내고 제인이 지적해 준 포인트를 향해 활공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의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다. 저 시점에서 내가 퀘이사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퀘이사는 바닥에 부딪혀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고 말 거다.
중력의 가속도를 받은 내 몸이 빠르게 밑으로 떨어진다. 예전에 타본 적 있는 롤러코스터의 10배, 아니 100배는 될 만큼 소름 끼치고 무서운 속도였다.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기의 흐름을 느끼며, 나는 제인이 말한 지점에서 정확히 퀘이사를 받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충격을 받아내고 퀘이사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양어깨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끄으으윽… 으허… 자… 잡았다.”
[“꺄아아악!”]
너무 빠르게 떨어지는 퀘이사의 몸을 받아내느라 바닥에 부딪힐 뻔했다. 제인의 찢어지는 비명이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오늘따라 얘가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정신없게?
“다크 카이저?”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퀘이사의 눈빛을 보고, 나는 내가 퀘이사를 안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맞닿아 있는 퀘이사의 신체가 갑자기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무… 무슨 말을 하지? 빌런. 그래 저 빌런은 내가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할까?
“어. 흠흠… 그렇소. 나 다크 카이저가 당신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쉬시오. 당신이 쓰러트리지 못한 빌런은 내… 내가 쓰러트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래피드 스타. 우주를 가르는 혜성처럼 빠르게.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이군. 하늘 위는 내 영역이 아니라서 말이야.”
“자네가 받지 못하면 내가 늦지 않게 받긴 했을 텐데, 아마 내 양팔이 다 부러지고 말았을 거야.”
얼굴에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히어로, 페이퍼 백이 내 옆에 서서 너스레를 떨었다. 지하 1층을 정리하고 따라 나온 모양이었다.
내가 받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내가 받아내지 못했더라도 페이퍼 백이 늦지 않게 도착해서 받아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미 내가 해결한 일이지만 조금 더 안심되었다.
나는 지금 혼자서 히어로 활동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갑자기 체감됐다.
PZZZ-!
허공에서 날아온 번개로부터 퀘이사를 지켜내기 위해 다크 쉴드를 펼쳐 퀘이사를 감싸 안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사이에 충전된 다크 쉴드가 번개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철커덕 철컥.
다시 한번 우리를 향해 번개 불꽃을 쏘아내려던 라이트닝 스파크의 손에, 날아온 총탄이 틀어박힌다.
저격총의 형태로 변형한 슈팅 노바의 아토믹건에서 나온 총탄이, 2층의 유리창을 뚫고 나와 라이트닝 스파크의 손을 맞춘 것이었다.
“여기. 저도 있습니다! 다크 카이저 님!”
4층 창문에서 나에게 손을 흔드는 다크 스코프를 보니, 4층에 남아 있던 빌런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아니면 빌런이 도망쳤든지.
“… … ……!”
이쪽을 노려보고 무언가를 중얼대는 라이트닝 스파크가 보였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 뭐라고 하는진 들리지 않았다.
[“마스터. 볼륨 올려볼까요?”]
아니… 분명 쓸데없는 말이겠지. 오늘의 빚이 어쩌고저쩌고, 다음번엔 이렇게 물러나지 않겠다 어쩌고저쩌고. 별로 듣고 싶지 않아.
“… …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지만, 너희가 이겼다고 생각하진 마라.”
이것 봐. 볼륨 올리지 말라니까. 저런 놈들이 하는 말은 뻔하디 뻔하다고.
we-o we-o we-o we-o
그 이후로도 우리를 향해 뭐라고 중얼대며 팔을 휘두르던 놈은 경찰 헬기를 보고 나서야 멀리 도망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