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다크 스코프의 탄생(2)
정학근, 아니 다크 스코프는 오늘 처음으로 히어로로서 활동하기 위해 밤거리로 나왔다.
입고 있는 슈트 위로도 느껴지는 싸늘한 밤공기. 지저분하고 더러운 놈들이 가득한 이 밤거리를, 나는 오늘 히어로의 데뷔 무대로 삼겠다.
물론, 자신의 첫 타깃을 경한 병원의 한강운 원장으로 삼았던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미 만들어놓은 장비들은 좀 써먹어 보고, 몸에도 익숙하게 해놓은 뒤에야 첫 타깃을 성공적으로 처리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다크 스코프는 아내와 아이를 재운 뒤, 사건을 찾아 이 싸늘한 바람이 부는 밤거리로 나오게 된 것이다.
휘이이이잉….
갑작스럽게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다크 스코프는 옷깃을 여몄다. 떨리는 손으로 가슴 보호대에 만들어놓은 주머니에 있던 메모지를 꺼내, 슈트의 내부에 붙이는 핫팩 대신 보온재를 더 추가할 것을 메모하였다.
날 따뜻한 봄이긴 하지만, 일교차가 커 낮은 따뜻하고 밤은 추웠다.
중년의 나이에 가까운 정학근의 몸은, 내복과 쫄쫄이 한 벌로 봄 특유의 극심한 일교차를 이길 수 있을 만큼 기온에 강하지 못했다.
아니. 이 몸의 떨림은 내 중년의 몸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있을 새 인생에 대한 떨림 때문이다.
정학근, 아니 다크 스코프는 그래서 오늘 처음으로 히어로로서 범죄를 찾아 집을 떠났다.
혹시 모르니까, 우리 집 문단속 잘 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 * *
철커덕 철컥.
이거…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구만….
다크 스코프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슈트에 마구잡이로 덧댄 철판은, 생각보다 무거워 벌써 온몸에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밤거리를 헤매고 다닌 지 벌써 3시간이 지났지만, 입고 있는 옷 덕분인지 신기하게 보는 시선만 받았을 뿐. 정학근은 주변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그 어떤 현장도 발견하질 못했다.
아… 이게 아닌데….
생각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적으면 좋아해야 맞는 일이었지만, 다크 스코프는 솔직히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오늘이 첫 개시 날인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가야 하다니.
3시간이면 자신이 생각했던 마지노선에 정확하게 걸쳐 있는 시간이었다. 내일의 출근을 위해선 적어도 지금, 잠자리에 들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요즘 혼자 밤마다 무언가 뚝딱뚝딱 만들어대는 일을, 그냥 나이 먹고 취미생활 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시간쯤에는 방에 기어들어 가야만 했다.
학근아. 오늘만 날이냐? 내일도 해는 뜬다!
얼마 전 봤던, 자신의 일상과 히어로의 삶을 분리해 놓아야 히어로 활동을 오랫동안 할 수 있다고 했던 히어로의 인터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이제 다크 스코프는 휴식하러 가는 거고, 정학근이의 인생을 살러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크 스코프가 오늘 장사는 접고, 집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던 바로 그때!
“꺄아아아악!”
드디어…!
누군가의 비명이 들리고, 다크 스코프는 비명이 들린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싸늘했던 밤공기가 느껴지지 않고, 무겁게 느껴졌던 슈트의 무게 또한 범죄 현장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에는 잊어버렸다.
이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저기 있다!
철커덕 철컥 터엉!
요란한 소리를 내며 히어로 다크 스코프는 비명이 들렸던 골목길을 향해 내달렸다.
헉헉대며 들어간 골목길에는,
“꺄아아아악!”
“뭐야? 무슨 고물 튕기는 소리가 이렇게 나?”
“야, 이씨, 저게 뭐야? 뭔 저런 걸 입고 다니는 새끼가 다 있어?”
눈에 띄는 소리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쪽을 쳐다보는 깡패 놈들과,
험한 꼴을 당할 뻔했는지, 옷깃을 부여잡고 버티고 있는 여성.
순간, 정학근의 눈에 불이 확 붙었다.
저런 개 같은 놈들을 봤나.
결혼하고 아이까지 키우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으로서, 차라리 강도질을 하면 참았지, 저런 말하기도 부끄러운 못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는 나, 다크 스코프가 책임지고 혼내주도록 하겠다.
정학근은 가빠오는 숨을 참아내며 준비했던 대사를 읊었다.
“흐읍, 허억… 바로 여기… 나 강림….”
“뭐야, 저거? 히어로야? 다크 뭐시기 있잖아.”
“걔는 맨날 하늘 위에서 떨어진다던데?”
“땅에서 뛰어다니는 놈이 진짜일 리가 있냐? 옷 디자인은 진짜보다 괜찮아 보이긴 하네.”
뭐? 이젠 다크 카이저 님까지 무시한다고? 너흰 오늘 진짜 뒈졌다.
정학근은 분노에 휩싸여 망토에 숨겨놓은 총을 꺼내기 위해 뒤로 손을 집어넣었다가, 그냥 허리춤의 벨트에 꽂아놓은 나이프를 두 개 뽑아 들었다.
저런 잔챙이들을 상대하는데, ‘이 녀석’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지.
정학근이 매일 밤마다 아내 몰래 만든 두 개의 나이프.
아마 이놈들만 사용해도 충분할 거다.
이 두 나이프의 이름은,
셰이드(Shade)
&셰도우(Shadow)
“지금부터, 외면받은 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죄지은 너희를 벌하겠다.”
다크 스코프는 들고 있던 두 개의 나이프를 놈들 중 두 명에게 집어 던지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온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하고, 머리 회전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놈들이 나이프를 피하고자 몸을 비트는 모습이 보이지만, 셰이드와 셰도우는 내게 생명을 부여받은 몸.
beep-beep-beep
놈들이 피해낸 나이프가 짧은 신호음을 세 번 내더니, 궤도를 돌려 다시 놈들을 추적해 가기 시작한다.
“으… 으악!”
피했다고 생각했던 나이프가 다시 돌아와 몸에 꽂힐 줄 상상도 못 했던 놈들은, 각각 팔과 다리에 나이프를 하나씩 꽂은 채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어? 이거 뭐야? 너 이 새끼, 이거 뭐야?”
마지막 남은 한 놈은 깜짝 놀라 손에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휘둘러 대며 달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저렇게 달려오는 놈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게 하나 있지.
“그런 걸 사람에게 휘두르려고? 내 다크 세이버로 상대해주지.”
다크 스코프는 허리춤에 걸어놓은 다크-세이버를 뽑아 들었다.
휘둘러지는 쇠파이프를 향해 똑같이 맞받아 휘두르는 다크-세이버!
삐이이이이익-
다크-세이버에 파놓은 홈에서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운다.
이 시끄러운 소리는, 전용 귀마개를 하고 있는 다크 스코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끄아아악”
“꺄아아악!”
갑작스러운 시끄러운 소리에 놀란 깡패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다크-세이버!
CRASH!
다크-세이버가 머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놈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세이버인데 왜 날이 없냐고? 이름이 세이버라고 꼭 날이 있어야만 하나?
다리와 팔에 칼을 꽂은 놈들이 절뚝거리며 일어나 도망치려고 하는 걸 보며, 다크 스코프는 팔뚝에 있던 버튼을 눌렀다.
어딜 도망가려고?
PZZZZZZZZ!
“끄르르르륵….”
“끄아악….”
나이프에 갑작스럽게 전류가 흘러 깡패 놈들이 쓰러져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정학근은 인생 처음으로 알 수 없는 짙은 쾌감을 느꼈다.
“아… 이래서 히어로 하는구나.”
* * *
“여기도… 아닌 거 같은데….”
나는 3번째 건물의 8층을 확인해야 할 목록에서 지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발품을 팔더라도 정확한 위치를 찾아버리기로 마음먹었지만, 그게 생각보다 훨씬 더 쉽지 않았다.
“조금 지치네. 잠깐 쉴까?”
나는 건물에서 나와, 계단에 걸터앉아 주변 건물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나이트 스코프라면 대체 어디서 저격을 하려고 할까?
“이 새끼… 여기 있었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거 보니까, 그 새끼 맞지?”
철컥.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내 주변을 둘러싸고 권총을 겨눠대는 깡패 셋.
이미 어디서 당하고 왔는지 몸에 붕대를 잔뜩 감고 있는 꼴이다.
내가 루키 히어로, 다크 카이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겪어본 적 없었던 일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혹시 내가 슈트를 안 입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봤을 정도다.
“지금 당장 그 옷 다 벗고 대가리 박으면, 뒤지지 않을 정도로 패는 걸로 끝내주마. 이 새끼야.”
얘 진짜 뭐라는 거냐?
내가 어이가 없어서 놈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놈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후회하지 마라, 이 새끼야.”
BANG! BANG! BANG!
곧바로 내 온몸을 망토로 뒤덮어 다크 쉴드를 만들어 막아낸다.
“어? 뭐야?”
내 다크 쉴드에 흐르는 어둠의 힘을 느낀 모양인지,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뱉는 깡패.
얘네 나 누군지 모르나 본데? 오랜만이네. 이런 기분으로 싸우는 거.
철컥… 철컥….
나를 향해 발사되던 총알은 한 탄창도 채 가지 못했다.
총알도 얼마 없는 잔챙이 중의 잔챙이들이었구만.
나는 내 몸을 막고 있던 망토를 일부러 크게 휘둘러 놈들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어지는 돌려차기.
CRASH!
내 발차기에 얻어맞은 한 놈이 붕 날아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BUMP!
그리고 물 흐르듯 이어진 옆차기에 다른 한 놈이 맞아 나가떨어지고,
곧바로 남은 한 놈의 목을 쥐어버리려던 찰나,
“아아악! 다크 카이저! 죄송합니다! 진짠 줄 몰랐습니다!”
지레 겁먹은 놈이 무릎을 꿇어 내게 빌기 시작했다.
뭐야?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잖아?
* * *
깡패 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렇다.
나를 따라 하는 놈이 요 며칠간 이 근처에서 스스로 만든 슈트를 입고 다니며, 별별 이상한 물건들을 이용해 이 근처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해결하고 다닌다는 이야기.
나를 따라 하는 누군가에게 당했기 때문에, 나를 가짜로 착각했다는 말이다.
[“마스터. 마스터가 그저께 해결한 사건이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풀리기 시작했어요.”]
뭐? 나 그제는 이 주변 건물이나 뒤지고 다니느라 사건 해결한 게 별로 없을 텐데?
[“그렇죠. 아무래도 마스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마스터 흉내를 내고 있든지 하는 거겠죠.”]
AI인 제인의 목소리에서 한심스럽다는 느낌이 묻어나오는 것을 무시하고, 나는 홀로그램 영상을 재생시켜 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찍혀 있는 그 영상은, 나와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가 3명의 깡패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거 방금, 그놈들이잖아?
갑자기 궤도를 트는 나이프들, 이상한 소리가 나는 막대기, 마지막으로 나이프의 전기 충격까지….
뭐야? 왜 생각보다 쓸 만해 보이지?
그리고 저 슈트, 왜 내가 입은 거보다 디자인이 잘 빠진 거 같지?
[“마스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철커덕 텅 철커턱 텅!
일을 마친 자경단은 온몸에 붙어 있는 쇳조각 때문인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사건 현장을 빠져나갔다.
생각보다 무거워 보이고, 거기에 육체 능력이 강해진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만들어놓은 장비들은 꽤 신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슈퍼 빌런들한테 먹힐 정도로 강한 장비는 또 아니다.
벨트엔 아직 제대로 쓰지 않은 장비들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저렇게 많은 장비에 방어를 위해 철로 덧댄 슈트를 입고 다니는데, 탈것도 없이 뚜벅이로 걸어 다닌단 말이지….
저런 무거운 슈트를 입고 택시를 타고 다닐 것도 아니고, 슈트를 벗었다 입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으니, 아무래도 지금 이 근처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 싶었다.
[“마스터. 근처에 차량을 숨겨놓았다가 타고 돌아다녔을 가능성도 생각하셔야 해요.”]
그러네… 혹시 숨겨놓은 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긴 하겠다.
제인. 일단 저 사건 신고 들어온 위치가 어딘지 정확하게 파악해 주고, 이 근처에 저 슈트 입은 사람 목격담 더 나온 거 있는지 확인해 줘.
아무래도 찾은 거 같네.
그래. 애초에 저격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