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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33화 (33/236)

제33화

오른쪽 눈(2)

“이 정도면 괜찮을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황서현의 치유 능력 덕분에 내 팔은 약간의 근육통만 남긴 채 제대로 움직였다.

어느덧 밤이 깊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

나는 다프네를 떠나기 전에, 창문 앞에 서서 황서현이 서 있는 뒤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지금 당장 움직이는 데에는 문제없겠군. 고맙소. 매번 이런 말 다시 하는 것도 우습지만, 이 은혜는 꼭 갚겠소.”

“그 멘트는 꼭 안 빠지네요?”

황서현이 싱긋 웃어주며 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와. 근데 진짜 예쁘긴 하다.

분명 원작에서도 황서현은 남녀불문 인기가 많았다곤 하지만… 실물로 보니 정말로 예쁘다.

몸 곳곳에 그려진 섬세하고 유려한 타투는 황서현의 외모와 어우러져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건 그렇고. 당신 태도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분위기도 바뀐 거 같고… 예전이랑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네요? 전엔 허둥지둥하더니.”

내가 잠시 멍하니 있자, 황서현이 그런 나를 보고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뀌었다? 내가? 그럴 수도 있겠네.

“사람은 제 경험에 따라 바뀌기 십상이지. 나라고 다르진 않아.”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지금이 예전보다 훨씬 보기 좋아요. 예전엔 뭔가 좀 불안하게 느껴졌었거든요. 어라.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옷도 조금 바뀐 거 같기도 하고.”

그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황서현의 말 때문인지 슈트 모양이 조금 바뀐 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꿈속에서 겪었던 일과 관련이 있을까?

“글쎄… 그 부분에 대한 대답은 나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거 같군.”

“능력과 관련된 부분인가 보네요. 알겠어요. 더 캐려고 하진 않을게요. 이것도 히어로 셀링 포인트죠?”

나의 방어적인 태도에 황서현은 곧바로 뒤로 한 발 빼며 물러섰다.

아, 맞아. 다음에 오면 주려고 남겨둔 게 있었지.

나는 툴-벨트에서 미리 경험치를 사용해 만들어뒀던 다크-호출기 두 개를 황서현에게 건넸다.

“아. 이건 나와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드는 기계요. 다크 카이저-호출기라고 부르시오.”

“와, 뭐예요 이게. 미니 무전기 같네. 여긴 무선 이어폰 같은 것도 들어 있네요. 이런 걸 뚝딱 만들어 올 정도면 손재주가 좀 괜찮은가 봐요?”

“아.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친구가 대가를 받고 만들어준 거요.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오후 7시 이후부터. 그 이전 시간엔 메시지 정도만 남길 수 있다는 점. 알아두시오.”

내 친구 제인이 경험치를 받고 만들어준 거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아… 네. 뭐. 그럼 연락하라는 거네요?”

“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풋. 꼭 연락할게요.”

으아악! 이래서 연상들은 더 상대 못 하겠어.

난 내 표정이 들킨 건 아닌지 가면을 매만지고 뒤돌아섰다.

“그럼. 이만.”

휘이이잉-

내가 창문을 열어젖히자,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 오며 커튼이 나부꼈다. 나는 그 창문틀 위에 잠시 웅크려 있다가 반대쪽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창문틀에 두 팔을 얹은 채 다크 카이저가 사라진 옥상 쪽을 바라보는 황서현.

“흐음, 낮엔 학교라도 가야 하나 보네. 대학생 정도 되려나? 아니 근데, 방금까진 괜찮다가 무슨 바람이 갑자기 이렇게 불어?”

이내 황서현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문을 닫았다.

*    *    *

제인, 이모는?

[“아직 주무셔요.”]

들킨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세요. 홀로그램을 알아차렸으면 제가 무조건 알았을 거예요.”]

오케이. 고마워.

나는 소리 나지 않게 천천히 내 방 창문을 열었다.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서 이불 위에 있던 홀로그램 투영기를 회수했다. 슈트를 완전히 해제해서 분명 가면 또한 벗겨졌을 텐데도, 붉은 눈의 영향 때문인지 어둠 속에서도 방 안의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미치겠네. 내일 아침에 이모한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제인. 이거 내 눈 위에 홀로그램 같은 거 걸어버릴 순 없을까?

[“그런 것도 가능하긴 한데. 이전에 겪어보셔서 알겠지만, 홀로그램은 격한 움직임이나 지속적인 접촉에 금방 해제가 돼버려서요. 아무래도 임시방편 정도가 아니면 힘들 거 같은데요.”]

아, 미쳐버리겠네. 이거 왜 그런 건지 예상이 가는 부분은 있어? 혹시 내추럴이 갑자기 슈페리어가 돼버린 경우도 있어?

[“글쎄요. 알아보곤 있는데, 일단 제가 확인할 수 있는 문서나 논문 중엔 그런 경우가 없는 거 같아요. 또 지금 마스터의 육체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분석해 보곤 있는데요.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아요.”]

[“몸에 없던 뮤턴트 인자가 생겼는지도 확인해 봐야 알 거 같긴 한데, 제 생각에도 그런 건 또 아닌 거 같거든요.”]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이용해 내 오른쪽 눈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사람 눈에서 이렇게 빛이 나지?

이대로 학교 가면 나도 약간 초능력자 취급받으려나?

내일 아침, 이 눈을 가지고 겪을 일들이 두려웠지만, 오늘 꽤 고생해서인지 아니면 강제로 붙여놓은 팔이 회복되고 있는 덕분인지, 나도 모르게 잠에 빠지고 말았다.

*    *    *

“강림아? 강림아!”

으으… 이모… 10분만… 딱 10분만 더요.

“강림아? 얜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못 일어나지? 나강림!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나는 이모의 목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으으윽… 다 나았다는 건 취소. 팔 근육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욱신욱신한 게 잠이 달아난다.

“어이구… 요즘 좀 불평 없이 잘 다닌다 싶었더니, 또 많이 피곤한가 보네.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강림아.”

“네에….”

나는 이모가 내 방 밖을 나가는 것을 실눈으로 확인하고 눈을 떴다.

아, 이거 어쩌지.

일단 방문을 열고 나가며, 얼굴이 보이지 않게 일부러 기지개를 켜며 얼굴을 가리려던 그때,

“너 누구랑 싸웠구나? 자꾸 이모한테 눈을 안 보여주려고 그러네. 어디 봐봐. 눈 다쳤어?”

아, 들켰구나.

이모가 내 손을 잡아 치우곤, 내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뭐라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같이 병원에 가자고 하려나?

“멀쩡하네. 우리 강림이 고등학생이 되더니 뭔가 좀 어른스러워졌나? 분위기가 좀 바뀌어서 이모가 착각했나 보다. 가서 빨리 씻고 와.”

엥?

나는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 욕실에 있는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았다.

어제 그렇게 빨갛게 빛나고 있던 내 눈의 빛은 자취를 감추고, 내 오른 눈동자 깊숙하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붉은 흔적만을 남겼다.

번쩍.

한참을 들여다보는 내게 마치 항의하듯 꿈틀거리는, 눈 안에 있는 붉은 무언가.

넌 대체 뭐냐?

*    *    *

“저… 강림아. 혹시 미용실 다녀왔어? 아니… 아닌가? 뭔가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는데….”

강수아와 친구가 된 후로부턴 아주 소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꽤 편하게 하게 된 소연이, 함께 등교하던 길에 나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을 걸었다.

역시, 아무래도 이성인 나보다 동성인 친구가 생겨야 조금 더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잘됐어.

“뭐… 미용실은 이번 주말에 가려고 아직 안 갔는데? 바뀐 건 없는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어젯밤부터 날 보는 사람마다 그런 소리를 하네. 이것도 내 눈에 들어와 있는 무언가의 영향이려나.

“으음… 대체 뭘까? 강림아. 혹시 집에서 운동해?”

한소연… 생각보다 눈치 빠르네.

“아 뭐… 운동… 운동하긴 하지. 집에서 간단하게 홈트레이닝 정도 매일 밤마다 하고 자거든. 아마 그래서 좀 건강해 보이는 게 아닐까? 하하.”

“어디. 봐봐.”

강수아가 기습적으로 내 팔을 한번 꾹 찌른다.

“으아아아악! 하지 마!”

아차. 너무 오버했나?

“뭐야? 나강림. 무슨 홈트를 그렇게 빡세게 하길래, 팔이 이렇게 아플 정도로 하는 거야?”

내 과한 반응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 강수아.

하긴, 나 같아도 팔 한번 찌른 걸로 이런 반응이 나왔으면 많이 놀랐긴 하겠다.

“아니… 집에서 푸쉬업이나 플랭크 같은 간단한 거 하는데… 어제 팔을 좀 삐끗해서 그래.”

시속 120km로 달려오는 차를 손으로 받아냈다고는 말 못 하지. 아니… 말해도 안 믿으려나?

“우와~ 강림이 대단해~ 난 운동하려고 마음먹었다가도 한번 시도해 보면 힘들어서 도저히 오래 못 하겠던데. 그럼 월요일엔 무슨 운동해? 나도 좀 알려줘.”

갑자기 품 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들더니, 내 말을 받아 적기 시작하는 한소연.

진짜 제대로 홈트레이닝 하는 건 아니라서 당장 알려주기 좀 곤란한걸.

“아… 그냥 그….”

뭐라고 하지? 진짜로 운동하는 것도 아니라서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기도 뭐한데….

내 눈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받아 적고 있는 한소연을 보니 거절하기도 조금 이상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잔머리를 쥐어짜서 대답했다.

“아, 그래! 우리 아직 우리끼리 번호 교환 안 했잖아. 혹시 번호 알려주면, 내가 나중에 보는 사이트 알려줄게. 남자랑 여자랑 해야 하는 운동이 다르니까, 거기서 참고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내 말에 한소연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버… 번호 교환? 정말…? 그래도 될까…?”

“응. 우리 다 도서 도우미인데 지금까지 번호 교환 안 한 것도 웃기긴 하다. 지금 생각난 김에 셋이 번호 교환하면 좋겠네.”

“수… 수아 번호도? 수아도 나한테 번호 줄 거야?”

번호를 교환한다는 말에 흥분해 안절부절못하는 소연이의 모습이 꽤 귀여웠기 때문에, 나는 소연의 폰에 내 번호를 찍어주고 그다음, 수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도 폰 주면 내가 찍어줄게.”

내 말에, 차갑게만 보였던 수아의 얼굴이 처음으로 당황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그… 내가 오늘 폰을 안 가져왔네. 너희 거 주면 내가 찍어줄게. 이리 줘.”

조금 전에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 보고 있는 거 뻔히 봤는데, 왜…?

아.

내가 봤던 강수아의 스마트폰은 꽤 오래된, 극 초기에 나오던 모델이었다.

의외로 그런 부분을 창피해하는 건가?

매번 쌀쌀하지만, 강수아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

나는 스마트폰을 강수아에게 건넸다.

“그래. 그냥 네가 찍어줘.”

강수아가 나와 소연이의 폰을 들고 번호를 찍어주고 있던 그때, 우리가 가고 있는 큰 길가에 있는 전자제품 전문점의 티비에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초능력 범죄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그와 반대 급수로 자경단 활동 또한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자경단 활동을 하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작년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늘어났는데요. 취재의 오전희 기자입니다.”>

그런 티비 뉴스 기사를 듣고 있던 바로 그때,

슈우우욱.

내 오른쪽 눈이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명하게 느껴지는 붉은 기운.

전자제품 전문점의 쇼윈도 유리에 비친 내 오른쪽 눈은, 어젯밤에 봤던 것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을 들여다본 그 순간.

화아아악-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며, 어젯밤 꿈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뇌리에 만화책 속 내용이 꽂혀 들어오기 시작했다.

후드드드.

손에 들고 순식간에 훑어보는 것처럼 빠르게 넘겨지는 책장들.

그 책장 안에 보이는 인물은… 나… 다크 카이저…?

손에는 기다란 총을 들고 어딘가를 겨누고 있는… 나… 아니, 내가 아니잖아?

<“지금 여기… 나… 다크 스코프는 오늘, 죄지은 자를 벌하고, 외면당하는 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이전에, 내가 영화관 뒤에서 구해줬던 빌런 네임 나이트 스코프, 정학근이었다.

나이트 스코프? 저 아저씨 이상한 짓 못 하게 막아낸 줄 알았는데… 대체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야?

나이트 스코프… 아니, 다크 스코프가 겨누고 있는 곳은… 병원.

내가 예전에 레드 래빗과 혈전을 벌인 적 있던 경한 센트럴병원의 원장실이었다.

화아아악.

그와 동시에 내 눈앞에 펼쳐져 있던 책이 사라지고, 다시 티비 앞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금까지 붉게 빛나던 눈의 불꽃이 순식간에 꺼져가기 시작한다.

나는 점점 스러지는 그 불꽃, 아니 빛이 내 눈 안으로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타라이트… 대체 내 눈에 무슨 짓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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