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오른쪽 눈(1)
“이, 이익! 고지가 코앞이었는데…! ”
“내, 내 자식 같은 보석들이…!”
내가 막아낸 차에서 주얼리 커플이 연행되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쟤네들은 저렇게 잡아넣어도 교도소 탈옥을 얼마나 잘하는지, 내가 원작을 봤던 부분까지만 해도 5번 이상 탈주해 매번 다른 사고를 치고 돌아다닌다.
쟤네들을 가둬놓으려면 일반적인 감옥으론 힘들 텐데….
내가 쟤네들의 규약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저들의 규약은 전혀 힌트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일단, 저들이 교도소까지 연행되던 도중 탈출하는 일을 막기 위해 놈들의 능력에 대해서 자세하게 경찰들에게 설명해 놓았다.
“뭐야? 당신! 어떻게 우릴 그렇게 잘 아는 거야?”
“당신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시커먼 머저리지.”
“이젠 음습한 시커먼 머저리로 불러야겠어, 쟈기양! ”
“기분 나쁜 음습한 시커먼 머저리 같으니~!”
…그리고 나머지, 저들이 교도소를 기막히게 탈출하는 방법 중에 내가 아는 방법들에 한해선, 빈틈없이 정리해서 제인을 통해 경찰에게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네~ 결국 일은 제가 해야겠네요.”]
항상 고생이 많아. 고맙다, 제인.
“가영아! 가영아! 괜찮아?”
그때, 내가 구출해 낸 임산부를 향해 달려오는 한 남자.
신발 한쪽은 어디에 흘렸는지, 헝클어진 머리로 아내에게 다급히 다가와 꽉 껴안는 게 보였다.
이름은 공다혁.
자신이 직접 지은 히어로 네임은 래피드 스타… 지만,
실은 페이퍼 백이라는 히어로 네임으로 더 많이 불리는 히어로이다.
왜 페이퍼 백이냐고?
래피드 스타는 종이봉투를 얼굴에 써야만 초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컨셉을 가지고 있거든.
그 모습이 자못 웃기기도 하고, 페이퍼 백이라고 부를 때마다 너무 싫어하는 모습을 외려 팬들이 좋아해 버린 까닭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중에 가서는 시민들에게 계속해서 페이퍼 백이라는 히어로 네임으로 불리게 된다.
자기는 매번 래피드 스타라고 불러 달라고 하지만,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자신의 아내를 품 안에 안고 계속해서 머리를 쓸어내리는 공다혁.
그 품 안에서 안도의 눈물을 펑펑 흘리는 공다혁의 아내, 이가영.
원작의 공다혁은 교통사고로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던 동생을 잃음으로써, 신체계열 초능력 중 최상위급 초능력 중 하나인 스피드스터, 즉 초고속 이동 능력을 각성하게 된다.
그것도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나선 은퇴하게 되었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는 바가 있어 가면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페이퍼 백은, 결국 지켜야 할 가족이 없어짐으로써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원작에서 막을 수 없던 사고로 인해 불행해졌던 래피드 스타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 이 상황이 꽤… 뭐랄까… 좀… 그냥… 감회가 색달랐다.
[“마스터? 울어요?”]
아니. 안 울거든?
[“마스크에서 습기가 감지되는데요.”]
땀이야. 팔이 아파서 땀이 나는 거야, 땀.
나는 원래 이렇게 래피드 스타의 아내를 멋지게 구해내고 나서,
이 세상엔 당신의 힘이 필요하오.
나와 함께 악을 무찌르지 않겠소?
같은 오글거리는 대사를 하며 손을 내밀어볼 생각이었지만,
“내가 미안해. 앞으론 이럴 때 혼자 남겨두지 않을게.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 눈앞에 펼쳐진 저런 가족애 넘치는 장면을 보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
스타라이트는 미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래피드 스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나는 다르다. 앞으로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막을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조금 더 고생한다면 굳이 멀쩡한 가족의 가장을 위험에 빠뜨려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여기서 래피드 스타의 영입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곤란하네….
“다크 카이저!! 팬이에요!”
아까 달려오는 차를 받아내느라 팔이 거의 안 움직일 만큼 아작이 난 거 같은데, 도저히 이놈의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모여 놓아주질 않는다.
“별거 아니지만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어서 그런데, 나중에 제 딸이 있는 자리에 식사라도 한번 초대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발 와주세요.”
“다크 카이저!! 사인해 주세요!”
“다크 카이저!! 근육 만지게 해주세요!”
그러면서 내 팔을 주물러 대는 고등학생.
“아, 아아. 아. 내 팔에 손대지 마시오. 뒈지고 싶지 않으면.”
“네?”
“아, 아니오. 나도 모르게 그만.”
나도 모르게 내 팔에 손을 얹은 시민에게 험한 말을 하고 나니, 이곳에 더 있을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이미지 망가지게 되느니,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편이 좋겠다.
“난 또 다른 범죄를 막아내기 위해서 이만.”
“네!! 다크 카이저!”
내 말에 뒤로 한 발자국씩 물러나 주는 시민들.
그냥 한 말에 이렇게까지 잘 따라주는 걸 보면 가끔 기분이 묘해지는데….
“내 이름은 다크 카이저. 죄지은 자들을 벌하고.”
내 말을 이어 입을 모아 내 퇴장 대사를 읊어주는 시민들.
“외면당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이 세계에 강림했다!”
대사를 치자마자 나는 사진이라도 한 장 같이 찍어달라는 시민들을 뿌리치고,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 * *
[tattoo Daphne]
지난번엔 여기 건물 앞 옥상에 서서 고민하다가, 그걸 지켜보고 있던 황서현에게 그냥 들어오라는 핀잔을 들었었지.
그래도 여자가 혼자 있는 방이니까, 나는 창문을 두 번 두드렸다.
으아악! 창문을 두드리려고 팔을 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Knock! Knock!
“누구세요?”
“다크 카이저요.”
“다크 카이저가 누군데요?”
“미안하지만, 지금은 노크 농담 같은 거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오.”
덜컥.
“어디가 많이 아파요? 빨리 들어와요.”
문이 열리고,
“어머, 이 꼴 좀 봐. 어디서 이렇게 다쳐 온 거예요?”
황서현의 얼굴이 보임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이 앞으로 천천히 넘어간다.
아… 다크 카이저는… 다른 사람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되는데….
풀썩.
“저, 저기…! 다크 카이저?”
무언가 부드러운 것에 감싸 안아지는 느낌이 들며, 나는 그대로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내가 있는 곳은, 아주 깊은 어둠 속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작은 별빛이 반짝하고 밝혀지는 것을 보았다.
“어…? 어?”
그리고 그 작은 별빛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앗 하는 사이 정말 빠른 속도로 내 눈앞까지 다가왔다.
온몸에서 밝은 빛을 내뿜으며 공중에 떠 있는 그 작은 별은, 내가 사랑하던 그 영웅, 스타라이트 최강훈이었다.
내가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어둠이 아니라 끝없는 우주였다.
우주 안에 있던 수많은 별들이 내 눈 안으로 쏟아진다.
저기 있는 저 별은 퀘이사, 여기 있는 이 별은 밀키웨이, 래피드 스타, 슈팅 노바… 그리고 저기 있는 희미한 빛을 내는 저 작은 별은… 우리 이모. 우리 이모가 있는 별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우주를 살피고 있던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나와 마주 보는 스타라이트 슈트를 입은 최강훈.
그가 입고 있는 슈트는, 내가 입은 다크 카이저의 슈트와는 다르게 멋지고 또 아름다웠다.
그래, 내가 아니라 스타라이트야말로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히어로야.
나는 내가 짊어졌던 책임의 무게에서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나를 마주 보던 스타라이트의 가면이 벗겨지고, 내 얼굴 위에 다크 카이저의 가면이 씌워지기 전까진.
나는 내 얼굴에 가면이 씌워진 후에야 내가 슈트를 입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삼 내가 입고 있던 슈트의 무게를 느꼈다.
양어깨가 슈트의 무게에 무너질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저 이제 이거 못 하겠어요. 다시 돌려줄게요. 저 이제 이런 거 안 하고 살아도 돼요. 히어로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나 대신 진짜 히어로인 스타라이트가 이 세상을 구해주세요.”
내가 슈트를 최강훈에게 건네주려던 그 순간,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이모의 별이 꺼지려고 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갑자기 번쩍 정신이 들어 건네주려던 슈트를 다시 내 품에 도로 껴안았다.
그제야 돌아오는 이모의 별빛.
그사이 내게 가면을 넘겨준 최강훈이 몸을 돌려 다시 저 멀리 별들 사이로 사라지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멀어지려는 최강훈을 향해 외쳤다.
“스타라이트! 대체 왜 제가 여기에 있고, 당신은 어디로 사라진 거죠? 왜 제가 이런 일을 떠맡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최강훈은 내 물음에도 대답 없이 계속해서 멀어져 가기만 했다.
그 모습에 조바심이 일어난 나는, 무언가 하나만 더 얻어야겠다는 생각에 최강훈을 향해 재차 외쳤다.
“스타라이트! 대체 당신은 왜 히어로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죠? 당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예요? 제가 그 사건을 막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내 이 질문에 멀어져만 가던 스타라이트가 처음으로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너라면… 이걸 막을 수 있을까?”
쿠쿠쿵!
갑작스럽게 내 뇌리로 꽂혀 들어오는 만화책 속 장면들.
다시 그려진 「Heroicest」는 내가 아니라, 퀘이사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무언가의 정신 공격을 받은 듯 혼란스러워 보이는 퀘이사가 원작의 스타라이트가 겪었던 시빌 워-킬 더 히어로 에피소드를 재현하는 모습.
자신의 손으로 히어로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쓰러트리기 시작하는 퀘이사….
그리고 그런 퀘이사를 막기 위해 싸우는… 사람은… 바로… 나. 다크 카이저.
.
.
.
“헉-!”
꿈… 꿈인가?
레드 래빗 사건 이후로 항상 악몽엔 시달려 왔었지만, 그런 악몽과는 조금 질이 달랐다.
마치… 영혼만 혼자 따로 떨어져 어디론가 다녀온 기분이다.
정신이 돌아왔지만, 꿈속에서 느꼈던 감정의 후폭풍 때문인지 잠시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밀키웨이, 황서현이 물 한잔과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신이 들어요? 뭘 하다가 왔는지 모르겠지만, 양팔이 완전히 골절되어 버려서 당분간은 쉬어줘야 할 거예요. 또 괜히 무리해서 활동하다가 또 상처 벌어졌다고 돌아와선 ‘이 빚은 꼭 갚겠다.’ 이러지 말고요. 저기, 듣고 있어요?”
황서현은 대답도 하지 않는 내가 이상했는지, 이쪽을 살펴보다 이내 의아한 표정으로 얼굴을 바짝 붙였다.
“…어라, 다크 카이저. 원래 눈 한쪽 색깔이 그랬나요?”
눈? 눈이 어쨌다는 거지?
마침, 여긴 원래 타투를 새기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방 안 곳곳에 거울이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물을 받아 벌컥벌컥 마시며 침대 옆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내 오른쪽 눈이 어둠 속에서 피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붉게 떠올라 있는 내 눈을 들여다보다가 순간 든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눈이 빨갛게 보이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모가 이 눈을 보면 뭐라고 할까? 라는 생각보단,
이런 식으로 반짝거리면 어둠 속에 녹아들어 가야 할 때 악영향이 생기겠는데. 이걸 어떻게 가리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게, 꽤 우스웠기 때문이다.
[“마스터. 그런 성능충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히어로는 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어야 하는 법이에요. 눈에 특수효과가 생겼으면 일단 좋아하고 봐야죠.”]
내가 쟤 데리고 게임을 너무 많이 했던 모양이다.
별 이상한 단어를 다 알아가지고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