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화 (2/236)

제2화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

표지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바로 나, 나강림이었다.

‘이게 뭐야? 꿈인가?’

나는 홀린 듯이 만화책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주인공이었던 최강훈은 어디 가고, 내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거야?

휘리릭.

나는 책을 먼저 한번 빠르게 훑으며 원래 주인공인 스타라이트, 최강훈을 찾아다녔다.

없다.

어디에도 없었다.

내용은 내가 원래 봤던 내용과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더 암담했다.

빌런들에게 넘어간 세상은 사실상 무너져 버리고, 법과 정의는 흔적만 남아 자신의 몸을 지킬 힘이 없으면 빼앗겨야만 하는 변해 버린 세상을 보며, 늙어버린 ‘나’, 이 만화의 주인공인 나강림이 과거를 후회하며 쓸쓸하게 거리 위에서 죽어가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나는 뮤턴트 인자도 존재하지 않는 일반인이라,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내가 늙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나처럼 그려놓은 그림을 보며 나는 얼이 빠졌다.

멍하니 책을 노려보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생전 처음 보는 이 어색한 방을 둘러보았다.

뭔가 익숙한 느낌….

물건들 하나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을 법한, 내 취향에 맞는 물건들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방 한편에 있는 책장에 가까이 다가갔다.

책장에는 소설책과 만화책, 참고서와 교과서 같은 책들이 잔뜩 꽂혀 있었는데, 모든 책이 내가 본 적 있거나 혹은 내가 산 적 있는 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멍하니 책 목록을 살펴보던 나는, 책 사이에 놓인 앨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앨범 안에 있는 사진들은 모두 나와 관련된 사진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나의 부모님, 그리고 이모와 함께 찍은 여러 가지 사진들.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 부모님과 찍은 사진이 사라지고, 이모와 찍은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까지 똑같았다.

‘무슨 기억 상실증, 그런 건가?’

이모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이사를 했었는데, 그걸 기억을 못 하고 있다거나.

그래, 티비에서 가끔 나오는 해리성 기억 상실증인가 뭔가 하는 거.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기억을 점검하기 위해 내가 기억하는 사실들을 나열해 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나강림.

나이는 스물셋.

대한민국 충청남도 대전 출신.

반서중학교, 황서고등학교 졸업.

육군 예비역 군필.

현재 여친 무. 연애 경험 무.

양친 모두 사망.

오랫동안 나를 키워줬던 이모도 사망.

갈수록 우울한 기억만 나열되기 시작하길래 나는 내 기억을 더 뒤져보길 관뒀다.

‘기억이 끊겼던 순간이 너무 우울해서 그런가, 우울한 생각밖에 안 나네. 그럼 지금은 그때와 비교해 얼마나 지난 거지?’

나는 내 스마트폰을 찾아 방 안을 뒤져보았지만, 방 어디에도 스마트폰은 없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진 않을 거고… 이거 내가 기억을 못 하니까 어디에 뒀는지도 모르겠네.

달력이라도 찾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역시나 뭔가 익숙한 듯 어색한 거실 풍경을 보며 천천히 걸어 나가다, 나는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거실 현관 앞에 여자 핸드백이 하나 놓여 있었다.

‘뭐야. 돌아가신 이모 외에 나랑 함께 살 만한 사람은 없는데…. 내가 벌써 결혼을 했나? 나 아직 새 건데….’

내가 충격에 휩싸여 가방을 들고 멍하니 현관문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띠리릭

갑작스럽게 열리는 현관문 너머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며, 나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아차차차. 내 정신 좀 봐. 가방을 두고 갔네.”

순식간에 들어와 가방을 낚아채 가는 한 사람.

“강림이 방학이라고 너무 퍼져 있지 말고, 좀 움직이고 운동이라도 하고 그래. 이모는 갔다 올게!”

띠리링

“이모…?”

그 사람은 바로 3일 전에 돌아가신 우리 이모였다.

*    *    *

내가 이모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군대를 막 전역하고 나온 뒤였다. 마침, 내 말년 휴가 전에 터져 버린 전 세계적인 전염병 탓에 휴가와 출타가 제한된 사이, 이모는 자신의 병증을 알게 되었다.

우리 이모는 내가 전역하기 전까진 그 사실을 나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내가 전역을 해서 집에 오고 나서야 나에게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1년 넘게 열심히 복무했는데, 하던 건 끝까지 하고 나와야지.”

병을 앓는 중에도 마른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하는 이모에게,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장례식을 하는 3일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먼저 이모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하고 수없이 후회했다.

이모가 돌아가시고 봉안당에 모셔지기까지 쭉 내가 장례를 진행했는데… 그런 이모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꿈인가?

이모는 어버버, 하는 나를 평소처럼 포옹하고 바쁘다는 듯 나가 버렸고, 나는 멍하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고민해 보다, 거실 소파 위에서 찾은 내 스마트폰의 시계를 들여다보며 내가 알아낸 것들을 천천히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2020년 2월 24일 월요일 아침 9시 12분」

일단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

지금 여기는 2020년, 내가 17살, 고등학교 1학년이던 시점이다. 그러니까 이모가 살아 있던 때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우리 이모가 살아 있던 시점으로 돌아온 거다. 그렇다면 여기가 꿈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아까 내가 본 이모는 진짜 우리 이모가 맞을 거다.

내가 열일곱이면… 우리 이모는 지금 서른둘이네. 이 시기면 병을 얻기 한참 전이다. 내가 이모를 살려달라고 기도한 게 먹힌 걸까?

‘그렇다면 가끔 본 적 있는 소설 속에 나온 것처럼 회귀?’

하지만 회귀라고 하기엔 내 기억 속 세상과 이곳은 너무 다르다.

나는 스마트폰 메모 기능에 썼던 (회귀)라는 글자를 지웠다.

둘.

「다음 위치정보 현재 위치 : 천산시 보산 2동」

내가 지금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지도에 따르자면 천산시라고 한다.

그리고 내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내가 살던 세계에선 천산시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가 없었다. 그리고 이 천산시라는 곳은 만화 「Heroicest」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그리고 셋.

「다음 오늘의 뉴스

-초능력 범죄 또다시 발생!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초능력 범죄! 정부의 대책은?

-초능력 범죄자로 인해 일가족 몰살 ‘참변’」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아마 이 세계엔 초능력자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Heroicest」의 만화 속 세상으로 이동했다고 봐야 옳겠지.

나는 핸드폰 메모 어플에 (Heroicest」의 세계로 전이)라고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만약 이 세계가 「Heroicest」의 세계가 맞다면, 이 세계에 내가 알던 히어로들이 존재할까?’

나는 먼저 이 만화의 주인공인 스타라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별 모양 LED 전구 스타라이트/ 29,700원」

「starlight[ˈstɑːrl-] 별빛」

「스타라이트(starlight) : 미국 인디애나주 클라크 카운티에 있던 자치구.」

검색 결과에 따르면, 이 세상에 아직 스타라이트라는 히어로가 존재하진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원래 이 만화의 주인공인 스타라이트는 확실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스타라이트?)라는 글자에 동그라미를 쳤다.

넷.

어색하면서 익숙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이 집. 내 방과 집의 구조를 보고 여기가 어딘지를 깨달았다.

집 안의 내용물이 나와 이모의 취향으로 꾸며져 있지만, 여긴 「Heroicest」의 주인공인 최강훈의 집이다.

그리고 다섯.

「Heroicest 完」

내 얼굴 위로 떨어진 이 만화책의 마지막 권.

내가 현실에서 본 만화책과는 많이 다른 내용이다. 이 만화책의 바뀐 내용을 보면, 주인공 최강훈은 온데간데없고 나, 나강림이 주인공인 것처럼 그려져 있었다.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보면 나는 지금 「Heroicest」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것도 그냥 「Heroicest」가 아니라 ver. 나강림으로.

혹시 아직 이 세계에 스타라이트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스타라이트가 제대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더라….

원작 만화를 열심히 보던 적 있는 팬이긴 하지만, 그건 나이를 먹기 전 이야기고. 지금은 내용의 많은 부분을 잊어먹은 상태였다.

거기에다가 만화에 정확한 날짜나 시기가 나오는 상황은 드물다. 만화에서 나오는 상황들만을 가지고 작중 날짜를 예측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만화 속 주인공이 언제쯤 활동을 시작하는진 알 수 없었다.

나는 집 안 곳곳에 있는 이모의 흔적들을 살폈다. 이모가 아플 때 잊고 있었던 이모의 흔적들이었다.

그럴 수 없겠지만, 몇 날 며칠을 이모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모가 살아 돌아온다면 하고 빌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게 만약 꿈이더라도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스타라이트는 결국 빌런들에게 패배해 이 세계를 빼앗기고 만다.

잠시 스타라이트가 못 해낸 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이런 곳까지 와버린 거, 어쩔 수 없다. 못할 거 같아도 해야만 한다.

일단은, 내 가설대로 내가 최강훈 대신 주인공이 되었는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마, 기존의 주인공인 스타라이트의 존재를 지우고 내가 들어온 것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파악할 만한 방법이 있긴 하다.

*    *    *

내가 이 집에서 첫 번째로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오렌지색으로 꾸며진 방이었다. 이모가 좋아하는 오렌지색으로 잔뜩 꾸며져 있는 모습을 보니, 이모의 방인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이모인지라 마치 화방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거참. 이상한 기분이네.’

마치 이전에 살던 세상에서 이모와 나를 도려내 이 세계에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었다. 나와 이모를 잘 아는 무언가가 만들어놓은 세트장에 발을 디뎌놓은 기분에 조금 소름이 돋아, 나는 문을 빠르게 닫았다.

‘그러면 여기가 부모님 방이겠지.’

나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이 집 안에서 유일하게 아무도 쓰지 않는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내가 원래 살던 세상 속의 부모님은 카페와 빵집을 운영하는 평범한 자영업자셨지만,

「살해당한 경한 산업연구소 연구원 부부, CCTV 속 범인 행방 ‘묘연’」

이곳에서 나의 부모님은 대기업 연구원이셨단다. 이 부분은 원작과 똑같다.

이 집은 원작의 주인공이 어렸을 때 살던 집인데 이 집에서 부모님이 의문의 살해를 당하고 난 후, 이모와 둘이 살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이 방은 원작에서도 주인공 부모님의 방이었으니까, 아마 이 방은 이제 우리 부모님의 방일 거다.

덜컥.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방 너머에 내 원래 부모님과는 많이 다른 방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내 생각이 다 맞았어.’

원작의 설정상 부모님이 주인공을 위해 만들어둔 히어로 슈트가 아직 이곳에 잠들어 있다. 원작의 주인공은 부모님의 기일에 부모님이 그리워 이 방에 들렀다, 부모님이 남겨둔 히어로 슈트를 찾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상황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보면 이제 이 만화의 주인공인 내가 스타라이트가 되는 거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너무 오래돼서일까? 아니면 내게 어색한 설정이 줄줄이 붙어 있는 상황이라서일까? 마치 모르는 부부의 방 안에 발을 디딘 거 같아 조금 어색한 기분이었다.

원작의 주인공은 부모님이 숨겨놓은 슈트를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 발견하게 되지만, 나는 이 슈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부모님의 옷장을 열고 안쪽에 옷을 다 빼낸 다음, 숨겨져 있는 다이얼을 찾아내 생일대로 돌렸다.

띵!

이윽고 올라오는 손바닥 모양의 패널 하나.

[패널 위에 손을 가져다 대주세요.]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지시에 따라 손바닥 패널 위에 손을 올렸다.

[확인되었습니다.]

지이잉

위이이이잉

됐다! 진짜 됐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기계장 치들을 보며 나는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내 일생의 꿈이 여기서 실현되는 거다.

기계음과 함께 올라오는 슈트의 모습.

“어… 어…?”

내가 기대하던 스타라이트의 슈트와는 많이 다른….

어두운 배열의 검은색 슈트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나는 얼이 빠졌다.

아….

“존나 구려….”

내 눈앞에 보이는 히어로의 슈트는….

내가 중2병 시절에 만들어둔 내 자작 설정 슈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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