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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98화 (298/300)

#   299-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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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늘에 떠 있는 중년의 남자. 그는 틀림없이 수행이었다.

마스터는 그의 정체를 확인하고 침중한 얼굴을 한다.

“믿을 수 없군. 우리를 이렇게 완벽하게 속일 수 있다니...”

수행은 고개를 돌린다. 그는 빙그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속인 적은 없네. 이건 나로서도 의외인 일이었지.”

“그게 무슨...?”

“-그보다 먼저 은결이와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자네는 나중에 보도록 하지.”

그리고 수행은 손을 휘젓는다. 스산한 예리함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폐부로 스며든다. 공간이 ‘절단’ 되었음을 모두가 느낀다. 들릴 리 없는 절단음이 ‘서걱’ 하고 모두의 귓가로 발생한다.

“아!”

-으!

쿠로사카와 푸른 이빨은 신음 같은 경탄을 흘리며 몸이 자유로워졌음을 느낀다. 당황한 이리세는 재빠르게 다시 역장을 내뻗어 쿠로사카를 막으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공격은 기묘한 이물감에 막혀 쿠로사카가 있는 곳 까지 진전하지 못한다. 마스터는 중얼거린다.

“공간을 접었군.”

수행은 빙그레 웃고는 이제 시선을 은결에게로 돌린다. 아버지와 아들의 눈이 마주한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수행이다.

“이 녀석, 늦게 와도 좋다고는 했다만, 이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장난기가 섞여든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은결은 목소리가 잘 올라오지 않는다고 느낀다. 건조했다. 너무 많은 말이 목구멍의 습기를 다 빨아들이고 게걸스레 아웅다웅 거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 많은 아웅다웅 속에서 가장 강렬한 의문이 다른 것들을 때려눕히고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나온다.

“아버지, 어떻게 이곳에?”

대답 대신에 수행은 팔목을 내민다. 거기에는 은결이 만들었던 팔찌가 채워져 있다. 한때 세연에게 주었던 것이다. 은결은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은 상쾌함을 순간적으로 느낀다. 푸른 이빨이 은결에게 그녀의 몸이 더렵혀진다고 투정했던 것은 그가 세연에게서 팔찌를 회수하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네 힘이 주변을 오염시키는 극단적인 공감주술적 특성이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다. 하지만 나는 그 힘을 완전하게 봉인할 수 없었지. 더구나 완전히 봉인되지 않는 네 힘이 어떤 방식으로 외부를 오염시키는지도 예측할 수 없었다. 네 힘이 논리적인 형식을 갖추어 외물에 고착되면 반쪽짜리 봉인이 파괴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로서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움찔, 하고 쿠로사카가 몸을 약하게 떤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팔목에 감긴 팔찌를 매만진다. 외물에 고착된 논리적인 질서를 가진 은결의 힘. 이 팔찌에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은결이 직접 손 본 간단한 진식이 새겨져 있다. 어쩌면 나의 급격한 성장은... 이라고, 쿠로사카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수행은 계속 말한다.

“또한 그것이 완전히 망가졌던 내 몸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것이리라곤 솔직히 나도 생각하지 못했단다. 이건 정말로 의외였지. 하기야, 그렇게 때문에 평범한 소녀를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신의 그릇에 적합한 수준으로 바꾸고,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보지 않았던 카미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이었겠지.”

“그랬군요...”

은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분명히 기뻐하고 있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쓸쓸한 미소였고, 분명히 고통스러운 미소였다. ‘호문클로스’ 선명하게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던 정체성의 완전한 해체. 쓰라림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실은 아니었다. 수행은 여전히 은결을 부드러운 미소로 감싸듯이 바라본다. 그리고 은결의 손을 아픔을 담아 잡는다.

“네 이야기는 모두 들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구나.”

“무엇이든지.”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은결은 말한다. 수행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런 다음, 천천히 묻는다.

“손은 타자의 자유로 자신의 자유를 성립시키는 진정한 자유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손은 타자의 선택을 언제든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주체이기를 포기하는 타자에 대한 최종적인 굴종의 양태라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손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을 답하듯, 한참의 침묵이 이어졌다. 은결은 치솟아 오르는 것을 꾸욱 견디고, 아랫입술을 세게 꾸욱, 깨물어 본 다음 문장을 완성한다.

“-그저 손일 따름입니다.”

수행은 은결을 와락 껴안는다. 은결의 아버지의 온기를 뚜렷하게 느낀다. 그의 손이 은결의 머리랄 감싸 안는다.

“-나는, 사람이 꿈을 벗어나 살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단다. 모든 존재는 현실에 살 뿐이지. 나는 그렇게 꿈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하다못해 그 꿈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었단다. 그래. 하다못해 꿈은 아름다워야 한다. 나는 여전히 그것이 옳다고 여긴단다. 하지만 너는 꿈꾸어야 한다는 것을 거절하는구나. 그건.... 네가 선택한 그 길은 무척이나 아프단다. 알고 있니?”

“알고- 있습니다.”

“그래...”

수행은 은결을 한층 강하게 껴안는다. 많은 언어가 포함된 포옹이었다. 너무나 많은 언어가 포함되어 그 한 포옹 가운데 해소되고, 녹아들어, 뜨겁게 단순화되어 표현되고 있었다. 은결은 그 포옹 가운데서 두근두근 뛰어오르는 아버지의 심장소리와, 뜨거움에 젖어가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의 심부가 그 소리에 공명해 울리며 갈망을 향했다.

“너는 언제나, 그렇게 내가 모르게 성장했고, 내가 모르게 발전했구나...”

은결은 눈을 감는다.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 은결은 흐느낌처럼 중얼거린다. 마음 가운데 뜨거움이 해소되어, 채 치솟지 못했던 의문이 모두 가라앉는다. 이제 아버지에게설명듣고 싶은 것은 없었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정말로- 충분했다. 그리고 수행은 은결의 뒤통수를 한 손으로 꽉 잡는다. 은결은 핑- 하고 의식의 혼란을 느낀다. 뱃속이 못 견디게 뜨거웠다. 그는 비명을 토했다.

“허억!”

그리고 은결은 자신의 몸에 머물러있던 거대한 힘이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조직화과정을 거치며 세포하나하나에까지 모두 덧씌워 지는 것을 느낀다. 은결의 전신이 발광하며 동공을 태울 것처럼 강한 빛을 내뿜었다. 쿠로사카는 물론 푸른 이빨조차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린다. 이어 어떤 노이즈 같은 것이 파장처럼 그곳에 있는 이들의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지지직-! 푸른이빨과 쿠로사카, 그리고 은결은 약간 두통 같은 것을 느낀다. 그리고 빛이 사라졌다. 셋은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여전히 수행은 은결을 껴안고 있었고, 아무 변한 것 없는 여전한 풍경이 그들의 시야로 스며들어왔다.

“-그렇지만 은결아, 나는 역시 네가 그 길을 선택한 것은 긍정하기 어렵단다. 너는 아직 젊다. 만일 언젠가 네가 희망하지 않는 마음으로도 이 세상을 견딜 수 없겠다고 느낀다면, 그때는 시두리의 노래를, 떠올려라. 그리고 그 노래를 순수하게 긍정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네가 시두리의 노래를 떠올리고, 그 내용을 순수히 긍정하게 된다면-”

수행은 은결의 귓가에 작게 무언가 속삭인다. 은결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무척이나 경악한 모습이다. 그는 “아-”하고, 의문인지 신음인지 모를 목소리를 토한다. 수행은 은결의 양 어깨를 잡고 몸을 떼어내더니 맑게 웃는 얼굴로 은결에게 묻는다.

“할 수 있겠지?”

“...그건... 예. 알겠습니다.”

한동안 은결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답을 우물거렸다. 거대한 부조리에 만난 것 같은 표정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눈을 보고 결의한 듯, 고통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수행은 만족한 미소를 보인다. 그는 이제 시선을 돌려 쿠로사카와 푸른 이빨을 보고서는 그들을 향해 요청한다.

“와 주지 않겠나?”

쿠로사카가 얼른 수행의 앞으로 간다. 푸른 이빨은 주저했지만, 결국 그 역시 수행의 앞으로 간다. 수행은 우선 쿠로사카를 향해 말한다.

“(아무래도... 자네가 옳았던 것 같네. 앞으로도 은결이를 도와주었으면 하네.)”

“(물론입니다.)”

쿠로사카는 굳은 얼굴로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말은 그녀가 원하던 것이기도 했다. 수행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푸른 이빨을 봤다.

“-자네에게는 은결이가 미안한 짓을 했군.”

-흥! 인간. 나는 저런 병신에게 미안하단 소리를 들어야 할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후후. 그렇다면 기쁘겠군.”

수행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푸른 이빨은 약한 서늘함 같은 것을 느끼면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투덜거린다. 이제 수행은 다시 은결을 본다. 그는 희미하게 웃는다.

“자, 이제 떠나도록 해라. 비록 힘이 회복되었다고는 해도 오래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아마 너희가 이 자리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한계이지 싶다. 그리고 우선은 몸을 숨기도록 해라. 미래와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두 사람은 미리 마련해 둔 곳으로 대피시켰단다.”

“아버지...”

은결은 신음을 흘리듯 말한다. 수행은 자상하게 웃고는 은결의 이마에 키스한다. 그리고 등을 돌려 천천히 마스터를 향해 걸어간다. 은결은 그 등을 보고서 아련함에 휩싸인다. 저 등이었다. 언제나 기대고 싶었다. 언제나 넘어서고 싶었다. 은결은 이를 악물은 다음 쿠로사카와 푸른 이빨을 향해 말한다.

“(가자.)”

그리고 먼저 은결이 허공을 박찼다. 쿠로사카와 푸른 이빨이 그 뒤를 따랐다. 공간이 몸을 감싸오듯 조여 왔다. 이어 조여든 것들이 찢어지는 것 같은 해방감이 느껴졌다. 우웅-!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도도한 대하처럼 흐르는 것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가슴이 고통에 욱씬거렸다. 그 고통을 부여잡고 은결은 생각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만일 시두리의 노래를 긍정하게 된다면 미래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했다.

자신과 미래는 친남매인데.

“---”

가볍게 두통이 일었다. 언젠가 들었던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느꼈던 결락이 불현듯 기억났다. 은결은 가볍게 두 눈 사이를 누르며 마음의 기이한 이물감을 떨쳤다. 이어 그는 눈을 떴다. 시야 가운데 세계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목적없는 세계였다. 싸늘한 세계였다.

*다음 화 정도면 끝날 것 같습니다.

*칼럼 모음을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문장 몇 정도를 수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수정할 곳이 많단 이야기를 들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데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둘입니다. 한 가지는 벤야민이 말한 것과 같이 낭비 없는 글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쿤데라가 이야기 했듯 자전거 경주 같이 목표(주제)를 향해 전력질주 하는 것이 아니라 뷔페와 같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함을 품은 글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건 사실 모순되는 요구입니다만, 이걸 이루어낸 글이 좋은 글이라고 저는 여깁니다. 그래서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통일되지만 부분만 떼어놓고 봐도 즐거울 수 있는 글을 적고자 했습니다. 요소 사이의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데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스스로도 평가 가능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부분만 떼어놓고 읽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뷔페 같은 글이 되었는가는, 아마 제가 답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요. 그저 독자 분들에게 그런 글이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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