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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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예민해진 오감이 희미하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역장의 기색을 읽어낸다. 하나, 둘, 셋- 수요는 적어도 열 이상, 그 모양은 각양 각생, 궤도는- 전방위! 단순한 회피로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이다. 쿠로사카는 역장을 키리야미의 날로 자르고, 베어낸 역장을 발로 걷어찬 다음, 거기서 얻은 추진력으로 몸을 뒤로 날리며 칼을 쥐지 않은 손으로 술법을 전개함으로서 공간을 얻어 그 틈에 푸른 이빨이 끼어들도록 하는 간단하지만 효율 연계공격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역장을 키리야미로 베어내는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마스터가, 은결의 손을 과자처럼 부수는 모습을 보았다.
“(은결!!)”
뒤늦게, 어쩌면 거의 영원의 다음에, “크아악!” 하는 은결의 비명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극한으로 집중된 정신으로 극한으로 집중된 에너지를 가지고 수행하던 작업이 단번에 흐트러진다. 충분한 집중력으로 다루어지지 못한 키리야미의 날은 충분한 에너지를 한 지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위대한 신기는 절삭력을 잃고 역장의 운동을 따라 휘청인다. 쿠로사카의 양팔이 높게 쳐들린다. 버티지 못하고 그녀의 아귀가 찢어진다. 핏방울이 허공에 뿌려진다. 키리먀이가 튕겨나가 나간다. 예리하고 맑은 날이 눈부시게 빛을 반사하며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
쿠로사카는 비명처럼 먼 눈으로 떨어지는 키리야미를 바라보며 손을 뻗는다. 발은 재빠르게 역장을 형성해 발판을 만들어 검을 쥐기 위해 달려나간다. 그러나 후왁- 주변 대기의 움직임이 변한다고 그녀가 느낀 순간, 고무처럼 끈끈한 역장이 그녀의 전신을 장악한다. 온몸이 거대하고 강인한 테이프에 묶인 것 처럼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한다. 자신의 역장을 우아한 미소와 함께 끌어당기며, 이제 이리세는 푸른 이빨을 바라본다.
“(크윽!)”
-이런 니미랄년! 눈깔 돌릴 때가 따로 있지!
푸른 이빨을 험악하게 쌍소리를 한다.
이로서 상황은 좋지 않다.
매우 좋지 않다.
“저쪽도 슬슬 끝나가는 모양이군.”
느긋한 눈길로 이리세 쪽의 싸움을 바라보며 마스터는 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은결을 바라본다. 그는 역장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거친 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마스터는 싱긋, 웃은 다음 발로 은결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으드득! 척추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은결의 몸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바로 위에 형성되어 있던 역장의 벽에 충돌했고, 아래쪽 역장과 다시 충돌하며 그 위로 뒹굴었다. 은결 위로 형성되었던 역장이 사라지며 거기 흥건하게 묻었던 피가 그의 몸 위로 뿌려진다.
“허억, 허억- 컥.”
거칠게 숨을 쉬는 은결은 짙은 피를 한 웅큼 토해낸다. 이미 흥건한 피로 물든 역장의 바닥 위로, 다시 은결의 피가 짙게 더해진다. 역장 외곽으로 그의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 위로, 마스터는 발을 내딛는다. 은결은 어렵게 시선을 돌린다. 그와 마스터의 눈동자가 마주한다. “어, 어떻- 게...?” 은결은 희미하게 묻는다. 은결은 자신의 공격이 완벽했다고 느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는 건재했고, 강했다. 마스터는 입을 연다.
“확실히 이겼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은결은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전신을 통해 전달되는 모든 정보가, 자신의 타격이 완벽했고, 그의 반응이 한 치의 속임도 없이 완벽했다고 이야기 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라니! 마스터는 어깨를 떨며 웃은 다음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 한 동안 우물거린 다음, 내용물을 손바닥에 뱉어낸다.
“후후, 이가 셋이라. 일부러 당한 것이라곤 해도 여기까지 한 것은 대단하다고 해 주지. 실로 수세기 만에 이만한 상처를 입었군. 그러나 그 뿐이다. 자네가 내게 이길 가능성이란 처음부터 없었다. 그리고 희망이란 언제나 이와 같은 것이기 마련이지.”
그는 다시 은결은 걷어찬다. 으드득! 부러진 은결의 척추가 이제는 완전히 가루가 된다. 그의 몸이 거의 ㄱ자로 꺾어진다. 은결은 좋든 싫든 자신이 이제 다시는 이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음을 직감한다. 그는 육괴나 마찬가지인 손으로 역장을 디디고 상체를 일으킨다. “크- 어.” 점액질의 침이 붉은 피에 물들어 입으로 흘러내린다.
“할 수 있었는데, 정말로 할 수 있었는데. 할 수 있었지만, 참으로 아깝게 놓쳤는데.”
“크억!”
마스터의 발이 은결의 등을 짓밟는다. 은결은 땅바닥에 처박히듯 역장에 처박힌다. 자신의 피에 자신의 얼굴을 더럽히면서, 그는 도천시를 까마득한 상공에서 내려다본다. 무수한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건물에 살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연상된다. 무수한 삶, 무수한 고통, 무수한 마음. 소통 불가능한 독존하는 실체. 도천시에는 사념체가 들끓고, 그들과 싸우는 술자들. 저들 역시도- 창이 없는 원자들이다. 은결은 상상력의 부족을 느낀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도전한다면,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거야. 희망이란 언제나 그런 것이기 마련이지. 그렇지 않은가?”
“으-”
“그러나 모두 개소리다. 네가 나와의 싸움에서 품었던 기대와 마찬가지로, 네가 저들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 역시 비루한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목마른 사막의 여행자가 신기루를 쫒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렇지, 않...”
죽어가는 목소리로 은결은 억지로 마음을 짜내어 말한다.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내가 향하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냐. 내가 가는 이 길의 앞에는 틀림없이 분명한 보상이, 좀 더 기쁜, 좀 더 아름다운, 좀 더 나은- 그런 것들이 있다. 은결은 그렇게 생각한다-고(정말로?) 생각한다. 마스터는 은결의 반론을 막듯 강하게 입을 연다.
“다시 한 번, 똑바로 저들을 바라봐라. 이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평범하고, 흔한- 저 고귀한 이들을 봐라. 저들의 대부분이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릴 줄 알고, 저들의 대부분이 타인의 마음을 생각해 말을 삼갈 줄 알고, 저들의 대부분이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 자신을 움츠릴 줄 안다. 그것이 비록 한때의 감상에 불과할 지라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줄 줄 알고, 술자리의 치기일 수 있으나 아름다운 정의를 위해 타오를 줄도 안다. 다른 이의 말을 들으며 그것을 우선 거짓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순박함을 품고 있고, 다른 이와 대화하며 우선 거짓을 말하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지.”
“크으-”
은결은 고통에 닮은 마음의 울림을 느낀다. 당신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거야. 당신은 틀렸고, 내가 옳으니, 당신은 다만, 부정되어야 할 뿐이야. 마스터는 계속 말한다. 그의 말은 전에 없이 강건하고 뜨겁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지. 네가 내려다보는 세계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착하’다. 얼마나 착하냐 하면, 어린아이 대한 흉악 범죄가 벌어지면 몸서리를 치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해치는데 치를 떨며, 모든 이가 모든 이를 향해 당연히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착하다. 시선을 바꿔 생각하면, 인간에 대한 세상 대부분의 냉소는 가소롭기 짝이 없을 지경이다. 대체 무엇이 인간의 선량함과 정의로움을 담보해 주었다고,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한줌도 되지 않는 잔혹함과 악행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고 치를 떨 수 있단 말이지? 도리어 그것이 ‘일상’이 아닐 정도로 드물다는 것에 기뻐해야 올바르지 않나? 아무도 감히 기게스의 반지에 대해 답해낸 적이 없는데 말야. 그러니, 틀림없이 대부분의 인간은 선량하다. 단지 대부분의 인간이 인간에 대해 터무니없이 높은 도덕적인 기준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은결 옆에 쭈그려 앉는다. 은결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쥐어 들어 올린 다음 도천시를 뚜렷하게 바라보도록 하면서, 학생에게 설교하는 교사처럼 말한다.
“그리고, 다시 똑바로 쳐다봐라. 그런 선량한 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계가 얼마나 추악에 가득 차 있는지, 고통에 가득 차 있는지를, 바라봐라.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왜, 사소할지라도 선량한 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세계는 사소할지라도 선량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악덕으로 충만해 있지? 저토록 많은 사념체가 들끓어야 할 정도로? 전설의 아들, 네게 물어보지. 이것은 저들의 악덕이냐?”
반사적으로 은결은 고개를 젓는다. 이 세계가 이토록 추악한 것은 나와 저들의 악덕 때문이 아니다. 물론 실수하고, 물론 잘못하고, 물론 고집부리지만- 은결은 친구와 이제 친구와 부를 수 없는 지인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민성이라던가, 여우라던가, 늑대라던가. 누가 그들을 ‘악당’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세상이 지옥과 닮아 가는 것은-- 그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가슴이 징징 울린다. 이것은 그의 말이 품고 있는 최면 효과 때문이야. 은결은 그렇게 단정한다. 그는 자신이 계속 울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최면효과 때문이라니까! 그렇게, 강하게 단정한다.
“큭큭...”
마스터는 어깨를 떨며 웃었다. 선량한 이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추악함이라는 역설을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그는 지독한 경멸을 담아 웃는다. 그는 은결의 머리를 놓으며 다시 말을 시작한다.
“그래. 이건 평범하고 아름다운 저들의 악덕 때문이 아니다. 저들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단지 저들이 품고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로 저들을 비난하고, 저들에 실망하고, 저들에 좌절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렇다면, 전설의 아들. 너는 무엇이 세상을 이토록 못 견딜 것으로 만드는지 알고 있느냐?”
은결은 침을 꼴깍 삼킨다. 그의 물음에 답해선 안 된다고 여기지만, 치밀어 오르는 마그마의 분출처럼, 마음은 결론을 토해내기를 갈망한다. 어떤 이상의 장벽도, 그 욕구를 이기지 못한다. 은결은 말을 토악질한다.
“......은, 언......자의......에.”
음절음절 마다, 핏멍울이 함께 엉겨져 있었다. 애쓴 은결의 말은, 겨우 입모양만을 만들어내 낼뿐, 말이라고 할 수 없는 산산이 부서진 파편의 모습을 취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스터는 은결이 한 말을 이해했고, 그 답에 대해 만족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말이 옳다. 이교의 위대한 현자가 말했던 것 처럼 세상에는 한 물건도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물건이 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한 물건이 되고자 시도했던 것들은 모두 파멸했고, 한 물건이 되기를 포기한 것들만 남아 이 세상을 비루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세상은 이토록 비루하다. 세계는 어떤 존재에게도 ‘한 물건’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일어선다. 그리고 은결 주변을 걷는다. 피 웅덩이 위로 그가 한 걸음을 걸을 때 마다, 찰박, 찰박 하고 핏물이 기이한 소리를 낸다. 그는 계속 말한다.
“그럼에도 희망처럼 보이는 것들은 드물지 않게 있었지. 가령 1776년에. 가령 1789년에. 가령 1848년에. 가령 1905년에. 가령 1917년에. 가령 1968년에. 근대에 만도 이렇게 많았다. 네가 내가 만든 역장의 육체에 주먹을 꽂아 넣으며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감촉들처럼, ‘희망’같아 보이는 것들은 정말로 드물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보일 뿐이었지. ‘희망’은 ‘희망’이란 이름의 신기루일 뿐이었다. 애당초 누군가가 나빠서 세상이 그 꼬락서니 였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세상에 한 물건도 없기 때문일 뿐이었다.”
은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견디는 것 처럼 두 눈을 꽉 감고, 이를 악 문채, 전신을 엄습하는 고통을 다만 견뎌내고 있다.
“왜 인정하지 않지? 왜 상상하지 않지? 처음부터 너와 너를 닮은 무리가 쫒고 있던 것은 그런 것들일 뿐이었다. 잘못 조준된 화살처럼 엉뚱한 것들을 노리고 있을 뿐이었지. 세상을 구성하는 부분이 나빠서 전체가 그토록 추악한 꼴인 것이 아니라면, 그때 잘못된 것은 부분과 부분이 연결된 방식이다. 즉, 잘못된 것은 이 세계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노려야 할 것도, 세상의 질서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무수한 생각이 폭류처럼 흐른다. 하지만 어느 것도 말이 되지 못한다. 은결은 울부짖음 같은 것을 희미하게 토해낼 뿐이다.
“으-”
“눈 돌리지 마라. 이것은 네 아버지 역시 인정하고 있던 사실이니까. 그렇기에, 네 아버지는 우리가 진정으로 대결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네 아버지의 마지막 글은 참혹한 이교의 신화 길가메시를 인용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그저 적이 만든 게임의 규칙 위에서 놀아나고 있을 뿐이니까.”
“크-”
은결은 이를 물고 신음을 토하며, 눈을 감는다. 답은 하지 않는다. 마스터는 노한 표정을 한다. 여기까지 와서 사실을 사실로서 인정하지 않는 편협하고 늙은 고집쟁이 같은 은결이 그는 무척이나 불쾌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얼토당토않은 고집이 있기 때문에 이리세가 실패했을 것이다. 그는 역시 마지막 한 마디를 해야만 하겠다고 여긴다. 그는 천천히, 시처럼, 설교처럼, 노래처럼, 비명처럼, 신음처럼- ‘말’한다.
“그렇지 않은가. 호문쿨루스(Homunculus)여.”
영혼이 얼어붙는다.
*힘들게 떡밥 뿌렸는데, 좀 낚였나?
*투표 하셨나요? 안 하셨다면 투표 하세요.
*댓글을 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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