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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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책 읽기를 그만두고 방 밖으로 나섰다. 소파에 앉아 무언가 열중하고 있는 미래가 보였다.
“뭘 하고 있니?”
“아! 아빠. 헤헤, 별거 아녜요.”
미래는 몸을 돌려 수행을 바라봤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작은 사진 한 장과 그림 조각이었다. 수행은 미래 옆자리에 앉으며 장난기를 섞어 물었다.
“그럼 ‘별거’가 뭔지 봐도 괜찮을까?”
“여기요.”
“이건...”
수행이 약간 이채로운 표정을 한다. 미래가 건낸 것은 사진 한 장과 그 사진의 사이즈에 맞춰진 것 같은, 투명한 용지 위에 그려진 폴리곤의 인간 얼굴 같은 것이었다.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해서 해 보고 있었어요. 거기 얼굴이 잘 들어맞으면 미인이라고 해서. 아무래도 해보고 싶을만한 거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이건 니 오빠 얼굴이잖니.”
수행이 손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증명사진의 얼굴은 은결이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은결의 얼굴은 사진에서도 무척이나 깊지만 어딘가 우울하게 비쳤다. 그 위로 투명한 용지 위에 그려진 얼굴모양이 잘 겹쳐져 있었다.
“아, 뭐 나야 옛날에 했죠. 꼭 자기 얼굴만 하라는 법 있는 건 아니잖아요. 관심 있으면 이 사람 저 사람 해 볼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진짜 잘 들어맞는 것 같았어요. 가령 ‘나!!’ 라던가! 오빠도 그렇고. 의외로 생각지 않게 안 들어맞는 사람도 있었고, 아니다 싶은데 딱 들어맞는 사람도 없던 건 아니지만 말이죠.”
“...아빠는?”
시대의 서글픈 애수를 담아, 수행은 묻는다.
“아, 아빠는...”
미래의 말이 곤궁해진다. 딸이 곤란해 하는 모습을 웃음을 참으며 보다가, 수행은 무척이나 자상하게 말을 더한다.
“후후, 역시 오빠가 제일 좋은가 보지?”
계절에 맞지 않게 피어나는 작은 꽃처럼, 미래의 얼굴이 금세 붉어진다. 그녀는 속으로 심술궂다고 수행에게 투덜거리다가 얼른 화제를 바꾼다.
“헤헤, 그런데 이 마스크 말예요. 어떻게 만든 걸까요? 역시 예쁜 사람들 얼굴을 많이 모아서 평균을 냈다던가 한 걸까요?”
수행은 피식 웃는다.
“그렇진 않단다.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줄까?”
“예!”
“저기 종이하고 펜, 그리고 펜과 색이 다른 형광펜을 하나 좀 가져와 보거라.”
미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가 종이와 펜을 가져온다. 수행을 그것을 받고 근처 탁자에 내려놓은 다음 선을 긋기 시작한다. 옆에서 미래가 신기하단 눈길로 그의 작업을 바라본다. 곧 수행은 정오각형 하나를 완성한다. 손으로 그렸다고 믿기 힘든 완성도였다.
“와... 아빠 잘 그린다. 자로 대고 그런 것 같애.”
“그렇지? 아빠는 젊었을 때부터 이런 도형을 그릴 일이 많아서 어지간한 것들은 자 같은 것 없어도 이렇게 반듯하게 그릴 수가 있지.”
득의양양하게 딸의 말을 받으면서, 수행은 손을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는 오각형을 그린다. 앞서 그린 오각형에 거꾸로 겹쳐진다. 그는 겹쳐진 도형에서 돌출된 부분을 모두 연결해 하나로 연결한다. 정 십각형이 만들어 진다. 다음, 그는 그 도형의 내부에 연결할 수 있는 모든 점을 연결한다. 십각형 내부에 그물 같은 선이 그려진다. 이어서 그는 취한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작업을 계속 바라보던 딸에게 묻는다.
“자, 어떠니, 여기서 얼굴이 보이니?”
“음-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헤헤, 모르겠어요.”
미래는 쑥스럽게 고개를 젓는다. 수행은 가볍게 웃는다. 지금 자신이 그린 도형은 그저 보았을 때는 질서정연하지만 복잡해 보일 뿐이다. 여기서 단숨에 사람 얼굴을 읽어 낸다는 것은 거의 천재적인 직관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나... 은결처럼. 수행은 은결이 이 도형을 보여주었을 때 간단하게 얼굴을 읽어냈던 것을 잠깐 회상해 본다.
이어 그는 색이 다른 형광펜을 쥐고 정십각형에 그려진 복잡한 선을 따라 형광펜을 덧칠해 나간다. 조금씩, 조금씩, 새로운 색으로 연결되는 선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상을 띄기 시작한다. 미래는 자신도 모르게 “와!”하는 감탄사를 터뜨린다. 수행이 그리는 그림은 정확하게 자신이 지니고 있던 그것, 바로 황금 마스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수행은 펜을 놓으며 미래에게 말한다.
“자, 이렇게 만드는 거지.”
“신기한데, 잘 모르겠어요. 어째서 오각형을 겹쳐서 만드는 얼굴이 미인의 얼굴이 될 수 있는 거죠?”
미래는 어딘가 뚱한 표정을 하며 묻는다. 순수하게 수학적인 것이 겹쳐져서 전혀 상관없는 현실에서의 ‘인간의 얼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나왔다는 점이 기이했던 모양이다. 수행은 잠시간 음- 하고 생각한 다음 말한다.
“글쎄다. 어쩌면 그건 오각형이 무척 신비한 도형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오각형이 신비로워요?”
“그래. 오각형은 그 안에 별을 숨기고 있지. 그리고 별은 다시 오각형을 숨기고 있고. 그리고 오각형과 오각형 내부의 별을 구성하는 선은 언제나 황금비를 이룬단다. 그러니까 오각형은 무한한 황금비를 그 속에 품고 있는 도형인거지. 그래서 플라톤은 자신의 우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원소를 이 오각형을 연결해 만든 정 12면체로 삼았고, 케플러는 자신의 태양계 모델에서 지구를 12면체로 덮을 수 있다는데 대해 무척이나 만족하고 실제 태양계와의 커다란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최고 업적으로 삼았을 정도란다.”
그렇게 설명하면서 수행은 다시 오각형을 그리고 오각형 내부의 꼭짓점을 연결해 오망성을 만들어 보인다. 그리고 오망성 안에는, 다시 작은 오각형이 들어 있었다. 그 작은 오각형 속에는 다시 오망성이 있을 것이고, 오망성 속에는 다시 오각형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 오각형과 오망성의 변주는 영원할 터였다. 미래는 골똘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하지만, 그 오각형이 신비롭다는 게 어째서 그 속에 사람 얼굴과 일치하는 그림을 안에 가지고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어쩌면 합리적인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고.”
“에에-”
미래는 실망한 소리를 낸다. 수행은 어딘가 쓸쓸하게 웃는다.
“황금비가 생명의 형태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오각형을 겹친 도형 가운데 완전한 얼굴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사람의 유전자를 확대해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또한 정십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거기 황금 마스크가 숨어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이것들이 우연히 일치할 뿐, 아무런 연결점을 가지지 않는다고 보려니 역시 개운하지 않게 여겨지는구나. 그래서 때때로 이런 것들 사이에는 혹시 우리가 모르는 필연적인 이유 같은 것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고 마는구나...”
미래는 고개를 끄덕인다. 수행은 따스한 손길로 미래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형이상학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칸트를 넘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고 했던 비트겐슈타인을 넘어, 지금도 그러한 사태를 통합하고자 하는 이성의 본능은 여전했다. 이어서 그는 아련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쩌면 처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뭐가요?”
“이렇게 무의미를 견딜 수 없다는 게 말이다. 사람은 도무지 무의미를 견딜 수가 없어서, 세계를 해석해서 바라보고, 그렇게 해석한 것들 가운데 그럴듯한 해석한 지점들을 다시 연결해, 목적을 가진 세계상을 지어내고 말지. 그래서 자신이 만든 현실에 사실을, 마침내 자기 자신을 가두지. 어떤 동물도 그런 ‘목적’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단다. 하지만 ‘목적’이라니, 우주가 만들어진 이후 단 한 번도 그런 것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지. 도리어 우주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그것이 목적 없이 시작되어, 목적 없이 끝날 시스템임을 보여줄 뿐. 그런 ‘없는’ 것에 대한 갈구는 결국 크나큰 전도(顚倒)를 일으키고 마는 법이고, 실제로 우리는 그런 수많은 전도들 가운데 살아가고 있구나...”
신이라든지. 진리라든지, 신분이라든지. 민족이라든지. 국가라든지. 화폐라든지-- 모두가 무의미를 견딜 수 없어 현실 가운데 그럴듯한 지점들을 연결해 만들어낸 거대한 ‘버추얼 리얼리티’들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어느 것 하나 도무지 해체할 수 없는 강고함으로 뚜렷하게 모든 이들의 생을 얽어매는 것은 -수행은 눈을 감았고, 은결의 말을 생각했고, 한숨을 쉬었다- 은결이 말한 것 처럼 손은 자유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최종적인 굴종의 양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전도에야 말로, 탈출구가 있을 수 또한 있겠지.”
잠깐 침묵해 틈을 가진 다음, 수행이 역설적으로 말을 끝냈다. 미래가 아리송한 얼굴로 감상을 전달했다.
“으음, 잘 모르겠어요.”
“후후, 이해하기 어렵다면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란다.”
미래의 투정에 수행은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면서 간단히 답한다. 이어서 그는 잠시간 무언가 생각하다가, 자신의 손을 내밀어 바라본다. 곧 그는 안정된 목소리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손을 타자의 양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은 것이라고 봐야 하려나.”
가만히 듣던 미래는 다시 의아한 얼굴로 수행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수행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네 오빠 이야기란다.”
“오빠가 왜요?”
“그 녀석이 더 쓸쓸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괜찮아요! 그때는 내가 위로해 주면 되지!”
미래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수행은 피식 웃는다.
*추천해 주신 온밝누리한 님과 진짜호랭이 님께 감사~!
*오랜만에 미래 등장.
*http://www.femininebeauty.info/news.php/weblog/comments/stephen_marquar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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